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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Z Consulting

유리컵 없는 믹서기, 역발상의 혁명

송미정 | 85호 (2011년 7월 Issue 2)

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 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동네를 떠돌며 주방기구를 판매하던 외판원이 인기가 좋았다. 외판원이 팔던 주요 물품 중 하나가 믹서기였다. 갖가지 과일들을 갈아 주스를 만들고 온갖 고기를 손쉽게 갈아 제수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시범을 보였던 외판원은 당시 사람들에게 요즘의 홈쇼핑 쇼호스트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강력한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눈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줬고 구경 온 사람들에게 음식을 갓 만들어 대접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판원이 보여주는 시범과 음식 맛에 혹해 믹서기를 구매했다. 필자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명절을 맞아 믹서기를 개시하던 첫날 어찌 된 일인지 어머님은 언짢아 보였다. 믹서기로 만두소도 만들고 고기전도 만드시느라 하루 종일 분주하셨지만 정작 음식 맛은 기대 이하였다. 그날 이후 믹서기는 집안에서 애물단지가 됐다. 30년 전물가로 보아 매우 비싼 값을 주고 산 믹서기 때문에 가계에 적자가 나서 어머님과 아버님의 사이가 한
동안 나빠졌던 기억이 난다.
 
모순 인식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트리즈의 대표적인 문제 형식화 기법인 기술적 모순 정의에 따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시스템의 기능과 문제의 관건이 되는 요소와 조건(approach and/or condition): 믹서기는 무거운 유리컵 안에 칼날이 달려 있는 구조로 이 칼날은 유리컵과 연결되는 하단
부 본체에 부착된 모터에 연결돼 회전함.
2) 시스템의 핵심 기능(good, 고객이 구매하고자 하는 특징요소): 유리컵 안에서 식재료들을 분할할 수 있음.
3) 시스템의 핵심 문제(bad, 고객들이 구매하고 싶지 않은 특징 요소): ① 유리컵이 일단 무거워서 사용하기 어려움 ② 한음식을 만들고 다른 음식을 만들려면 유리컵을 세척해야 하는데 너무 무거워 불편하고 남은 잔여물이 잘 닦이지도 않아 이전 식재료의 맛이 다음 식재료에 섞이게 됨. ③ 칼날과 연결된 모터에서 열이 많이 나다 보니 식재료가 커팅과정 중 약간 익게 돼 질척해지고 맛이 떨어짐.
 
이상해(理想解) 상상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했다면 다음 단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혹은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때 믹서기라는 특정 단어에 얽매이지 말고 믹서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기능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믹서기’라는 단어에 집착하다 보면 믹서기 외에 다른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정신상태로 변해 창의적이고 개방적 사고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믹서기라는 말을 버리는 것이다. 대신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 해결안의 본질을 규명해 그 본질에 충실한 이름을 붙여 목표를 세워야 한다.
 
믹서기의 본질은 식재료를 분할하는 기능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시스템의 이름을 ‘식재료 분할기 X’로 정해 벽에 걸어둔다. 그 후 기술적 모순 단계에서 정의한 본질적인 기능은 수행하면서 유해한 작용은 모두 사라진 ‘이상해(理想解)’를 상상한다. 그 이상해는 “식재료를 매우 작은 크기로 분할하는 식재료 분할기 X는 가벼워서 취급이 용이하고 세척하는 데 번거롭지도 않으며 모니터의 열 때문에 식재료의 맛이 악화되지도 않는다”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자원 분석
이상해가 무엇인지를 파악했다면 그 다음에는 현재 존재하는 식재료 분할기(=믹서)의 요소와 요소의 특성,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처럼 어떤 시스템의 요소 특징들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며 일목요연하게 분석하는 과정을 트리즈에서는 ‘자원 분석(resource analysis)’이라고 부른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각각의 지배법칙(예: 칼날은 회전력에 의해 이동한다)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자원 분석은 이러한 지배법칙을 비롯해 현재 활용되고 있지 않은 자원과 관련된 다른 지배법칙도 함께 파악하는 활동이다. 현재 ‘식재료 분할기’의 문제와 관련된 핵심 자원과 특징, 관련 문제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유리컵: 투명하다, 무겁다, 잘 깨진다, 세척이 불편하다 등
2) 칼날: 유리컵 내부에 있다, 강철 소재다, 음식물과 직접 닿는다, 음식물을 분쇄한다, 씻을 때 위험하다, 갈 때 음식물이 튄다 등
3) 뚜껑: 플라스틱 소재다, 식재료를 갈 때 내용물이 바깥으로 튀는 것을 방지한다 등
4) 식재료: 다양한 종류가 있다, 양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 적당히 갈아야 한다, 좀 뜨거워지기도 한다, 다른 것과 섞이면 맛이 이상해진다 등
5) 모터: 칼날을 돌려준다, 유리컵 하단부에 있다 등
6) 본체: 모터와 유리컵을 지탱한다, 스위치가 달려 있다 등
7) 스위치: 전기를 통하게 한다, 속도를 조절한다 등
 
역발상 변환
자원분석까지 끝냈다면 본격적인 해결방안 모색에 돌입해야 한다. 역발상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보자. 트리즈의 40가지 원리1 중 13번째 원리인‘역발상’은 거의 모든 모순 상황의 극복에 관건이되는 원리다. 역발상 한 가지만 제대로 하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거의 무한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역발상은 가장 관건이 되는 핵심 요소에 대해 기존 특성을 안 갖게 하거나 거꾸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구체적인 역발상 변환 사례는 “있다면 제거하고 없다면 만들어라/크다면 줄이고 작다면 키워라/무겁다면 가볍게 하고 가볍다면 무겁게 만들어라/길다면 짧게 하고 짧다면 길게 만들어라/가열한다면 냉각하고 냉각했다면 가열하라…”처럼 무궁무진하다.
 


 

이 역발상을 어떻게 진행하면 기존의 믹서기와는전혀 다른 새로운 식재료 분할기를 생각해낼 수 있을까? 먼저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인‘유리컵’에 다음처럼 역발상 변환을 가해보자. (그림 1)
1) 기하학적 위치: 유리컵이 서있다 → 뒤집으면 어떨까?
2) 존재 그 자체: 유리컵이 있어서 씻기가 불편하다 →아예 없애면 어떨까?
3) 소재: 유리가 잘 깨진다 → 유리를 안 쓰면 어떨까?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 요소 중 또 다른 하나인 ‘칼날’에 대해 역발상 변환을 가하면 어떻게 될까? 다음처럼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그림 2)
1) 존재 그 자체: 칼날이 있다 → 칼날을 없애면 어떨까?
2) 존재의 위치: 칼날이 유리컵 안에 있다 → 분쇄 기능 부분
을 유리컵 밖에 놓으면 어떨까?
3) 작용 방향: 칼날이 유리컵 아래쪽에 있으면서 위쪽의 식재료를 분쇄한다 → 분쇄 기능 부분을 위쪽으로 올려 아래에 놓여진 식재료를 커팅하면 어떨까?
 
이처럼 역발상이라는 단 하나의 원리만을 적용했는데도 풍부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낼 수 있다. 위의모든 것을 조합한 모습은 무엇일까? 과거의 믹서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주방기구인 ‘도깨비 방망이’다. (사진 1, 2) 혹자는 믹서기와 도깨비 방망이의 기능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고 반문할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도깨비 방망이를 주부들 입장에서 써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주부들이 간편하고 손쉽게 일을 하는 데에는 30년 전의 중후장대한 하단칼날형 유리컵 믹서기와 컵도 없고 칼이 위에 달린 도깨비 방망이는 분명 동일한 기능을 한다. 거기다가 씻기도 쉽다.
 

믹서기에서 도깨비 방망이의 개발에 이르는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이 혁신적인 시스템 변환은 1)모순 인식 2)이상해 상상 3)자원 분석 4)역발상 변환의 단계적 절차를 따라 이뤄질 때가 많다. 역발상 변환을 할 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역발상을 통해 도출되는 내용은 △반드시 기록해야 하며 △기록 당시에는 그 유용성이나 실현가능성에 대해 ‘절대’ 평가해선 안 되고 △도출된 아이디어들 간 결합을 시킨 후 △맨 나중에 유용성과 문제점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애써 역발상 변환을 활용해 발상한 아이디어들이 너무 일찍 죽게 될 수 있다.
 
어떤 대상체의 특징을 가능한 한 많이 도출할수록 역발상 변환의 가짓수는 증가한다. 우리가 어떤대상에 대해 많이 아는 게 창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려면 역발상 변환과 같은 정신적 변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신적 변환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 지식 속에 파묻힐수 있다. 특히 기존 지식에 함몰되는 사례는 성인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어린이는 특성의 변환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지만 안타깝게도 어른이 될수록 특성 변환이 가능한 경우에도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창의성은 변환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것을 실행할 때 생명력을 얻는다. 위의 이상한 믹서기처럼 때때로 그것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정신적 변환 능력을 찾는 가장 빠른 길 중의 하나가 바로 트리즈다.
 
필자는 KAIST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 전문가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200건 이상의 연구 개발 과제컨설팅을 수행했다. 저서로 <회사를 살리는 아이디어 42가지(공저)>가 있다.
  • 송미정 | - (현)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 삼성종합기술원 연구혁신센터 차장
    -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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