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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일본은 왜 실패했나: 조직 민첩성, 21세기 초경쟁 환경의 필수 생존 요건

신동엽 | 79호 (2011년 4월 Issue 2)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한 최근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대응을 보면 일본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일본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TPS, 카이젠, 간소 생산, 유연 생산 등을 만들어내며 세계 최고의 선진 조직 경영 역량을 지녔다고 평가받던 일본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비합리적이고 느리며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행태만 보이고 있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이며 세계 최고의 산업화 국가다. 국토가 그리 넓지 않지만 물자도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이재민들은 먹을 것과 덮을 것이 없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 이럴까.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 현상은 경영학의 주요 화두인 ‘조직 민첩성’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 행정조직을 막론하고 일본은 오퍼레이션 수월성(operation excellency)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전략 계획(strategic planning) 역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두 역량은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조직 경영 분야의 양대 축으로 강조됐던 요인이다. 하지만 일본은 조직 민첩성에 심각한 약점이 있다. 지진 해일과 원전 사고처럼 예측 못한 위기가 발생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때는 앞의 두 요인이 별 쓸모가 없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조직 민첩성(organizational agility)이다.
 
21세기 초경쟁 환경(hyper competition)에서 기업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건은 순간적 찰나에 그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 조치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취하는 민첩성(agility)이다. 즉 조직 민첩성(organizational agility)은 불확실성과 급변성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기업을 비롯한 모든 유형의 조직, 개인, 심지어 사회 전체에도 가장 중요한 필수 생존 요건이다.
 
21세기 초경쟁 환경의 불확실성과 급변성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태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구제역 사태는 350만 마리가 넘는 천문학적 숫자의 가축을 살처분함으로써 우리나라 축산업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자칫 체르노빌 참사를 능가하는 지구촌 전체의 재앙이 되고 있다. 두 사고는 대규모 참사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을까? 이 정도로 심각한 사태가 되기 전에 막을 길은 없었을까? 최근 GM, 도요타, 노키아, 코닥, 모토로라, 소니, 메릴린치, 씨티 등 대형 기업들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이 대형 참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역시 조직 민첩성의 결여와 관련이 있다. 최근 세계 경영학계는 조직 수준의 민첩성(agility)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는 초일류 기업의 갑작스러운 몰락 때문이다. 2007년 말 세계 1위 자동차업체에서 불과 1년 만에 파산까지 치달은 20세기 최고의 기업 GM, GM의 몰락으로 2009년 세계 1위가 된 직후 신뢰성 위기로 곤두박질친 도요타,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휘청거리고 있는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가 대표적이다. 2011년 노키아 CEO는 직원들에게 “현재 노키아는 불타고 있는 해저 유정 플랫폼 위에서 가만히 서있지도 못하고, 수십 미터 아래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그저 떨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GM, 도요타, 노키아와 같은 공룡 기업이 순식간에 위기로 내몰린 이유는 21세기 초경쟁 환경의 본질, 즉 환경의 ‘불확실성(예측 불가능성)’과 ‘급변성(환경 변화 속도)’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어느 조직에 어떤 위기가 언제 발생할지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당연히 철저한 대비도 어렵다. 또 일단 예측 못한 위기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돼 시스템 붕괴나 대참사로 이어진다. 모든 조직이 항상 생존의 위기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갑작스러운 위기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 민첩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 민첩성의 원천
조직 민첩성은 20세기 대량생산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을 찾던 브라운(S. Brown), 베산트(J. Bessant), 도즈(Y. Doz)와 같은 전략 경영, 오퍼레이션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직 민첩성은 <표>에 나와 있듯 조직에 요구되는 대응이 단순한 한 가지 행동이 아니라 여러 방안들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어 신속하고 효율적인 전사적 통합 조정이 필요할 때 특히 중요하다.
 
환경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느리게 변하고, 조직에 요구되는 대응 방안도 한 가지뿐일 때는 치밀한 오퍼레이션 관리(Operation Management)에 총력을 기울이면 된다. 환경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급변하나 조직에 요구되는 대응 방안이 하나뿐이면 창업가적 혁신 행동과 대응(Entrepreneurship)이 적절한 전략이다. 환경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느리게 변화하나 기업에 요구되는 대응은 복잡하게 상호연결돼 통합 조정이 필요할 때는 전략 계획(Strategic Planning)이 적절한 방법이다. 그러나 21세기 기업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환경이 예측 불가능하고 급변하며 조직에 요구되는 대응 방안도 극도로 복잡하게 상호 연결돼 있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 조직 민첩성이다.
 
20세기 후반 대량생산의 산업 사회가 성숙했을 때 미국 대형 기업들이 특히 강했던 분야는 전략 계획이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 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역량을 보였던 분야는 오퍼레이션 관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두 가지를 핵심 역량으로 보유했던 전통적 일류 기업들이 모두 무너졌다. 바로 조직 민첩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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