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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의학 관점에서 본 위기관리

위기는 질병: 건강할 때 대비하라

김호,이강희 | 78호 (2011년 4월 Issue 1)
 
 

#1.위험관리 분야 전문가인 마크 앱코비츠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는 2008년에 펴낸 저서 <운영위험관리(Operational Risk Management)>를 통해 20세기에 발생한 10개의 지진 중 7개가 15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고, 그 중 5개는 특정 지역에 몰아닥쳤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지진이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집중되는 경향에 비춰볼 때 그는 아시아에 큰 지진과 쓰나미가 ‘곧’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그가 예측한 지 3년도 안 돼 뉴질랜드, 일본에 사상 최대의 지진이 발생했다.
 
#2. 2004년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마침 해운대에 있었던 윤제균 영화감독은 TV를 보며 ‘해운대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이란 상상을 했다. 이것을 토대로 5년 뒤 그는 영화를 만들었고, 영화 속에서 해운대는 일본 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8.5의 강진과 이에 따른 지진해일로 큰 피해를 본다.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일본 동북부는 9.0의 최대 강진을 맞았다.
 
#3.경상대 지구과학과 좌용주 교수는 2009년 8월 한 일간지 칼럼에서 “동해상 일본해역에서의 해저지진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해저에 대한 폭넓은 정보 획득과 더불어 유사시의 방재대책 수립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4.원전 사고의 위험을 경고한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하버드 매거진이 “과학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재앙의 실체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평가했던 제임스 차일스의 2001년작 <인간이 초대한 재앙(Inviting Disaster)>을 보면, 원전의 운용 한계를 무시할 경우 체르노빌과 같은 원전사고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아닌 게 아니라 10년 만에 일본에서 유사한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지진과 쓰나미의 발생 가능성을 학문적 측면에서 혹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예측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 두 가지 있다. 타이밍과 규모다. 이번 일본에서 발생한 ‘3.11 지진’은 일본 정부의 매뉴얼이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였고, 여기에서부터 일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위기대응에 대한 준비는 예측 가능한 선까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지진 상황에 역사적으로 가장 잘 학습돼 있고 대응 체계에서도 최고 수준이지만 이번 지진과 쓰나미 규모는 예측을 넘어서는 것으로 일본도 이 정도까지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심화되는 이상 기후, 기술의 복잡성 증가 등은 위기의 예측을 점차 힘들게 만들고 있다.
 
위기관리의 세 가지 문제
위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드는 21세기에 우리는 위기관리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효과적인 위기관리를 위해 위기의 발생 원인과 범주를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업이나 정부의 ‘제대로 된’ 위기관리 능력이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 셋째, 예측과 대응 준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건강한 상태로 복원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위기의 원인을 밝히고 예방과 회복을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야가 있다. 바로 의학이다. 오랜 역사 동안 의학은 원인을 찾기 힘든 감염병 등 각종 질환과 싸워오면서 나름의 예방과 치료 해결 프레임을 만들어왔다. 기업의 위기관리 및 질병 예방과 치료에 대해 연구해온 필자들은 이번 일본 사태를 놓고 논의하던 중 의학이 21세기형 위기관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질병과 위기
위기(crisis)는 질병(disease)이다. 서양에서 위기란 단어의 어원은 사실상 의학 용어였다. 그리스 어원인 ‘크라이시스(krisis)’는 ‘질병의 터닝 포인트에서 의사의 판단력(judgment)’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동양은 어떨까?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959년 4월 12일 인디애나폴리스 연설 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어에서 위기란 단어는 두 개의 글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나는 위험을 뜻하고, 또 하나는 기회를 뜻합니다.” 이는 우리가 위기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인용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중국문학을 가르치는 빅토르 메어 교수는 다른 견해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중국어에서 위기(危機)란 단어가 위험과 기회를 뜻하는 요소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위기에서 기()란 사실상 ‘시초의 순간, 중대한 시점(무엇인가 시작하거나 변화하는 때)’을 의미한다… 기()는 중립적이다. 기()는 더 좋은 방향으로 혹은 나쁜 방향으로 풀려갈 수도 있다….” 위기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을 종합하면, 위기는 결국 ‘터닝 포인트’이며, 여기에서는 타이밍과 판단력이 중요하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맞이한 의사처럼 말이다.
 
위기 발생의 세 가지 요인
질병을 관리하려면 질병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먼저 알아야 하듯 위기관리에서는 위기 발생의 요인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예방의학에서 질병 발생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모델로 역학적 삼각형 모델이 있다. 이 모델은 주로 감염병에 적용되는 모델로, 병인(agent), 숙주적 요인(host factors), 환경적 요인(environmental factors) 등 3가지 생태학적 요인을 주 요소로 보고 있다. 이 역학적 삼각형 모델은 기업의 위기관리에도 매우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우선 병인은 질병이 발생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요소로 생물학적(세균이나 바이러스), 화학적(독성물질), 물리적(기압) 요인 등이 있다. 기업 위기에서도 동인(crisis agent)이 있는데, 이는 위기 발생의 핵심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리콜이라는 위기는 제품 불량이라는 위기 동인을 갖고 있다. 횡령 사건이나 고객 정보 유출에서의 위기 동인은 관련 직원의 실수나 부정행위다.
 
숙주 요인은 인체 내부 요인(intrinsic factors)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전적 요인이나 과거 감염병에 걸린 후 획득한 면역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 위기에서의 숙주 요인이란 대표적으로 오랫동안 형성돼 온 조직 내부 문화를 들 수 있다.
 
환경적 요인은 외부적 요인(extrinsic factors)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숙주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기업에서 위기발생의 환경적 요인이란 주가 등 경제 상태에서부터 국제적으로는 환율, 유가,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 지진이나 화산폭발, 기후 변화 등 환경적인 모든 것을 포함한다. 질병과 위기는 결국 이 세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건강한’ 위기관리 능력: 예방력, 면역력, 복원력
평소의 건강관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질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절대 ‘급하지’ 않다. 평상시의 위기관리 역시 동일하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기에 기업들은 일단 발생하면 위기관리에 ‘올인’하지만 평상시에는 기본적인 관리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병원 신세를 지기 전에 운동을 게을리하고 흡연과 폭음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의학적 관점에서 질병에 대응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능력으로 꼽는 세 가지 개념, 즉 예방(prevention), 면역(immunity), 회복/복원(recovery/resilience)을 활용, 기업이나 정부가 갖춰야 할 ‘건강한’ 위기관리 능력을 살펴보자.
 
1)예방:질병이나 위기 모두 예방이 중요하다. 예방은 발생 자체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예방의학에서는 질병 예방을 위해 질병 원인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발생 원인을 모두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위험 요소(risk factors) 혹은 위험 요소가 작용하는 통로(pathway)를 찾아내고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폐암이라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선 위험 요인인 흡연을 피해야 하고, 그래서 금연이라는 예방 조치가 중요해진다. (이때 흡연이 어떻게 폐암을 일으키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위험 요인으로서의 확인을 통해 예방은 가능하다.)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예방조치는 무엇일까? 첫째, 미래에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 이슈(potential issues)를 일정 주기(반기나 1년에 한 번)를 두고 찾아내고, 이 이슈의 발전 혹은 감소 정도를 역시 정기적으로(분기나 반기에 한 번) 검토하는 활동이다. 잠재 이슈에는 사업을 하고 있는 산업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이슈와 어느 조직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이슈 두 가지가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화학회사의 공장 폭발, 제약회사의 부작용 이슈 등을 꼽을 수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직장 내 폭력, 교통사고, 성희롱 등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앞서 살펴본 위기 발생의 세 가지 요인의 상호 작용을 자연스럽게 살피게 된다.
 
둘째, 다양한 부서를 아우르는 위기관리팀(cross functional crisis management team)의 설치다. 위기 발생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위기와 그 위험요인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는 한 부서의 시각이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양한 부서의 팀장급과 임원급으로 태스크포스 형식의 위기관리팀을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
 
2)면역:인체 내부에 들어온 위험 요소를 초기에 인지하고 쫓아내는 능력이다. 예방이 애초에 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면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왔을 때 이를 잡아내고 싸워 이기는 능력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에서 면역력에 해당하는 조치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위기의 모니터링 능력이다. 예를 들어, 기업에 접수되는 소비자 불만들은 모두 향후 커다란 위기로 발전될 수 있는 위기의 ‘씨앗’과 같다. 사업 현장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이슈들을 모니터하고 이를 관련 부서와 즉시 공유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능력은 위기관리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소셜 미디어로 정보의 파급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상황에선 실시간 모니터링과 즉각적인 조치의 중요성이 날로 커진다. 각 기업의 홍보팀에서 매일 아침 미디어 모니터링을 할 때를 생각해 보자. 미디어 모니터링의 핵심은 단순히 해당 기업 관련 기사가 나왔는가 여부만 파악하는 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사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들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내부에서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에는 사업환경 스캐닝(environmental scanning) 부서를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결국 기업의 ‘위기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필립 코틀러와 존 캐슬라이언은 2009년 저서 <카오틱스(Chaotics: The Business of Managing and Marketing in the Age of Turbulence)>를 통해 불확실성 시대에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둘째, 기업의 문화다. 앞서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이슈의 모니터링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상당수의 기업에서 이러한 잠재 이슈를 모니터하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잘못 이야기를 꺼냈다간 경쟁사로부터 ‘허튼 소리’ 한다고 공격을 당할 것이고 상사로부터 꾸중을 들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맥스 베이저먼 교수와 리더십 컨설턴트 마이클 왓킨스는 조직 내부에서 위기를 예방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애쓴 사람들보다 위기가 터진 후에 수습하는 사람들이 보통 조직 내에서 더 인정을 받고, 이로 인해 위기의 초기 관리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고 경고한다. 소위 조직 내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이슈의 모니터링이나 사전 조치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바로 리더의 의지다. 기업에서 ‘정치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리더가 나서는 것 외에 현실적 방법이 없다. 따라서 리더가 앞서서 위기의 모니터링과 공유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미국의 경비행기 제조업체 세스나(Cessna)에서는 직원이 실수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즉각 보고를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고 이는 제품의 안전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3)회복/복원:건강한 사람도 살면서 육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에 노출되고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예방과 면역 등을 통해 건강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잠재적으로 누구나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건강에서 회복력과 복원력은 중요하며 특히 질병 발생의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이 능력의 중요성도 높아진다.
 
일본의 3.11 지진 사태는 많은 부분 ‘예방’과 ‘면역’ 시스템에서 감당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불확실성이 날로 증대되는 21세기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점차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예측이 힘든 위기 발생이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조직의 위기관리 능력에서 복원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이 취할 수 있는 회복/복원력 조치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평소 위기 상황에 대한 모의연습(simulation)이다. 미국의 <타임>지는 2007년 캘리포니아의 화재로 인한 재난을 보도하면서 “중요한 응급 대응 능력은 여러 해에 걸친 트레이닝, 기획, 그리고 연습을 통해 얻어진다”라고 적고 있다. 심지어 상상 속에서 미리 위기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제임스 차일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비행기에서) 긴급시에 관한 기내설명 중에 다른 승객은 신문을 읽고 있어도 당신은 가장 가까운 비상문까지 의자 등받이 개수를 세어 놓아라.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이것을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연기가 짙고 검어서 통로와 비상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체의 화염과 붕괴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승객은 열려있는 출구를 지나쳐 일부러 힘들게 객실 끝까지 걸어서 탑승구를 목표로 몰려든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이 초대한 대형참사 ).”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 비상구가 어디인지를 안내할 때도 마찬가지다. 평소 모의연습을 통해 위기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거친 조직들은 실제 위기 상황 때 대응력이 훨씬 더 빠르며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들이 최소 1년에 한 번씩 위기 시뮬레이션을 하는 이유다.
 
둘째, 모의연습이 사전 훈련이라면, 위기 이후에 진행하는 훈련도 있다. 바로 위기에 대한 학습과 공유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에서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각종 실수를 ‘수치의 상징(badges of shame)’이 아닌 ‘교육의 기회(teaching opportunities)’로 삼고, 성공 케이스뿐 아니라 실수한 케이스도 서로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실제 이로 인해 이 병원에서 문제점에 대해 공유하는 비율은 30% 이상 증가했다. 보통 기업에서는 연표를 작성할 때 성공 케이스들을 중심으로 만들지만,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기업의 위기 연표를 만들어 보고 이를 검토하면서 핵심 교훈(key lessons)이 무엇인지를 공유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 경험한 위기로부터 얻은 교훈만큼 살아있는 학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위기가 지나고 나면 서로 책임 공방이 있는 경우는 있지만 학습의 장을 마련하는 곳은 흔치 않다. 위기로부터 배워 나갈 때 조직의 치유 및 복원력은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인체의 복원력으로부터 배우는 위기관리
일본의 지진 사태를 계기로 위기로부터의 복원력은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위기관리 측면에서 복원력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체가 가진 복원력으로부터 조직의 위기 복원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체의 장기가 가진 신비로운 특징 중 하나는 인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한 과도한 스트레스나 질병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됐다는 점이다. 즉 인체는 건강한 평상시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주어지는 질병이나 위기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체는 이러한 스트레스 대응 능력까지 제대로 갖춘 상태가 의학적으로 ‘정상’에 해당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기는 일부가 손상되거나 이식을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헌혈을 하거나 간의 일부 또는 신장 하나를 이식하거나, 위의 상당부분을 절제하더라도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이러한 인체의 신비가 기업의 위기 복원력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업의 조직이나 경영 전략, 그리고 물리적 시설의 건설도 위기나 재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돼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668년에 설립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학 및 제약 기업인 독일 머크(Merck)의 공장 시설 및 안전장치는 기업에 요구되는 안전 법규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디자인됐다. 이러한 머크의 철저한 경영 철학과 실행이 300년 넘게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난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필립 코틀러와 존 캐슬라이언이 2009년 제시한 ‘카오틱스(chaotics)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맥락과 일치한다. 혼돈과 불확실성을 ‘새로운 보편성(new normality)’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앞서 기업이 ‘건강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기 위해 취해야 할 구체적 조치로서 제안한 평상시의 위기관리팀 구성 및 운영, 잠재 이슈의 발견, 이슈 모니터링 시스템, 시뮬레이션 등은 모두 위기 발생 ‘이전에’ 평소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평소의 조치들이 위기 상황에서 조직의 복원력을 증가시켜 준다.
 
위기는 질병이고 위기관리는 건강관리와 닮아있다. 평소 건강에 대한 관심과 운동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빠른 복원을 약속한다. 기업이나 정부의 위기 예방과 대응, 복원력도 위기 발생 이전에 위기관리에 얼마만큼의 관심, 시간, 자원, 노력을 투자했는가에 달려있다. 누구나 살면서 병원 신세를 지듯, 기업과 정부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조만간 위기는 또 발생한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발생이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지금부터 신경 쓴다면 말이다.
 
 
 
김 호 더랩에이치 대표 hoh.kim@thelabh.com
이강희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사무관 kangheel@korea.kr
김호 대표는 한국외대에서 불어와 철학을 전공하고 미국 마켓대에서 PR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글로벌 PR 컨설팅사 에델만의 한국법인 대표를 역임했으며 저서로 <쿨하게 사과하라(공저, 2011)>가 있다.
이강희 사무관은 예방의학 전문의로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약회사 한국MSD에서 근무했으며 2004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주로 보건의료분야 업무를 담당해 왔다.
 
 
  • 김호 김호 |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hoh.kim@thelab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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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희 | - 제약회사 한국MSD 근무
    -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분야 업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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