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 ‘극한원가’로 시장 뒤흔든 5개 기업서 배우는 5가지 성공비결

240만원짜리 국민차 한국기업엔 정녕 꿈일까?

4호 (2008년 3월 Issue 1)

김남국·문권모·하정민 기자 dbr@donga.com
박민준 KOTRA 인도 뉴델리무역관 과장 parshop1@gamil.com
 
경영학 대가 마이클 포터는 기업의 ‘본원적 전략(generic strategy)’으로 ‘저원가(low cost)’와 ‘차별화(differentiation)’를 제시했습니다. 원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기업 전략의 근본축이라는 통찰입니다. 특히 수많은 저가 중국 제품 공세에 밀려 고전하는 한국 제조업체 입장에서 원가 경쟁력 확보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또 인도 타타자동차가 최근 2500달러(약 240만 원)짜리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극한 원가(extreme cost)’를 추구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십억 명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새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장의 덫에 빠진 한국 기업들도 이런 방법으로 신 시장을 적극 개척해야 합니다. 극한 원가에 도전한 기업들의 성공 사례와 원가 절감 솔루션을 전해드립니다.
 

“5000달러 이하 자동차는 불가능하다”

인도 타타자동차가 2500달러대 초저가 자동차 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경쟁 업체인 인도 마루티-스즈키(Maruti-Suzuki) 관계자는 이같이 단언했다. 마루티-스즈키는 일본에서 감가상각이 완전히 끝난 설비를 인도로 들여와 자동차를 제작했기 때문에 5200달러의 초저가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타타는 이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고 2500달러짜리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 중소기업인 BBT도 중국 업체마저 따라오지 못하는 9900원짜리 MP3플레이어를 생산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에어비타는 수십 만 원짜리 공기청정기가 주로 판매되던 시절, 불과 7만9000원짜리 초저가 제품을 선보여 시장의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야 하는 특수 윤활유 업종에서도 장암엘에스가 선진국 대기업을 능가하는 원가 혁신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칫솔 살균기 업체인 에센시아는 과감한 혁신으로 중국 업체들의 집요한 저가 공세를 물리쳤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극한 원가로 도약한 이들 5개 업체에 대해 심층 케이스 스터디를 벌여 5가지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1. 목표 가격부터 먼저 정하라
많은 기업들은 원가를 먼저 계산한 후 적정 마진을 붙여 제품 가격을 결정한다. 하지만 극한 원가에 도전한 기업들은 이와 정반대로 가격부터 먼저 결정한다. 예를 들어 시계를 패션 액세서리로 정의한 스와치는 세계 시장을 휩쓸었던 홍콩 저가 제품(70달러 수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인 40달러를 목표 가격으로 설정했다. 그러고 나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에서 목표 원가를 결정한 뒤 이를 달성해냈다. 도요타도 일찍부터 ‘판매가격(sales price)-목표 이익(target profit)=목표 원가(target cost)’란 생존원가 공식을 활용해왔다. 극한 원가에 도전한 업체들도 대부분 이런 접근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도 타타자동차의 초저가 자동차 ‘나노’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2003년 초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은 ‘원 랙카(1 Lakh Car·Lakh은 10만을 뜻하는 힌두어)’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10만 루피는 약 240만 원 정도로 운전기사 등 도시 서민층 근로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한다. 인도 중산층의 연 소득은 20만∼100만 루피다. 원가를 따져서 목표 가격을 설정한 게 아니라 인도 상황에서 시장성 있는 가격을 미리 정하고 무조건 그 가격대에서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원가를 맞춘 것이다. 타타는 이후 부품 개발과 구매, 물류,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목표 가격을 맞추기 위한 대장정에 들어갔다.
 
라탄 회장의 발언에 대해 글로벌 기업들은 물론 인도 경제계에서도 비웃음 섞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인도 현지에서는 “라탄 회장이 농담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너무 이슈화가 되니까 그냥 가격을 확정해 버렸다”는 루머가 나올 정도다.
 
9900원짜리 ‘거북이(turtle) MP3플레이어’를 생산하고 있는 BBT도 마찬가지였다. BBT 창업자들은 MP3플레이어를 생산키로 하고 시장조사를 해봤다. 그 결과, 10만 원대 이상 고가 제품 시장에서는 애플이나 삼성 등 거대 기업들이 독주하고 있었다. 또 5만 원 안팎의 중가 브랜드도 저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장악, 경쟁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신 창업자들은 초저가 MP3플레이어를 양산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시중에 출시된 1만∼2만 원 대 중국산 MP3플레이어의 경우 음질이 형편없었고 교환이나 애프터서비스도 전무해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적 판단으로 9900원이란 가격을 미리 정한 다음에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낮은 원가를 달성했다.
 
세계 칫솔 살균기 시장 1위 업체인 에센시아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거래를 미끼로 기술을 빼돌린 중국 회사 때문에 2004∼2006년 3년 연속 매출이 뒷걸음질치는 시련을 겪었다. 중국 업체는 에센시아 제품의 복제품을 절반 이하 가격에 마구 찍어냈다.
에센시아는 지난해 2003년(100억 원) 수준으로 매출을 회복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올해는 국내 매출만 100억 원이 예상되며, 일본 마쓰시타에 살균 기능이 있는 전동칫솔 100만 달러어치를 공급하는 등 올해 수출액 500만 달러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부활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산 복제품과의 싸움에서 확보한 경쟁력이다. 신충식 사장은 “중국산 제품보다 약간 비싸지만 소비자들이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수준에서 목표 가격(target price)을 맞추고, 동시에 가격 차이를 상쇄하는 것 이상으로 월등한 품질을 제공하는 전략을 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인건비를 내려서 원가를 절감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신 철저한 기술 혁신과 시스템 개선을 통해 목표 원가를 달성했다.
 
2003년 기준으로 에센시아 제품 가격은 6만8000∼9만8000원 수준이었다. 신 사장은 이 가격을 중국산 제품보다 10∼30% 높은 수준(4만9000∼6만8000원)으로 끌어내렸다. 그러자 중국으로 몰려갔던 해외 바이어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창용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는 “원가관리를 위해 생산 활동 자체보다 연구개발(R&D)이나 제품 설계를 중시하는 목표원가 시스템은 이제 세계적 추세로 정착됐다”며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원가를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여기에 원가를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2. 역발상으로 과감히 기능을 줄여라
극한 원가에 도전했던 기업들은 모두가 당연시하던 기능들을 과감하게 없앴다. 제품에 핵심 가치를 부여하는 요소를 제외한 다른 부품이나 기능들은 아예 없애버리거나 대폭 성능을 낮췄다.
 
타타자동차의 나노가 극한 원가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원칙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타타는 목표가격 달성과 안전검사 기준 준수를 위해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제거했다.
 
라디오, 파워스티어링, 파워윈도우, 에어컨은 당연히 기본 사양에 들어가지 않았다. 전조등의 조사(照射) 각도 조절장치도 빠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나노가 20세기 초의 ‘클래식카’처럼 와이퍼를 하나만 장착했으며, 사이드미러도 한쪽에만 부착했다는 것. 현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도로가 부족해 교통정체가 심한 인도의 상황을 고려했다”고 분석한다. 인도에서는 2차선 도로에서 차들이 사이드 미러를 접고 3줄로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
 
타타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차양판(sun visor) 역시 운전석 쪽에 1개만 설치했다. 트렁크와 조수석 앞 수납공간도 없앴다. 물론 좌석 등받이 각도도 조절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타타는 나노의 가격을 맞추기 위해 주요 부품의 사양도 하향 조정했다. 스티어링 샤프트(steering shaft·핸들의 움직임을 기어장치에 전달하는 장치)의 경우 강철 빔(beam) 대신 속이 빈 튜브형 샤프트(steering hollow shaft)를 설치했다.
 
또 수동 및 자동변속기보다 저렴한 무단변속기(CVT)를 설치했다. 지난달 뉴델리 모터쇼에서는 CVT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4단 수동변속기 차량이 공개됐다.
 
타타는 각종 전등도 장기 사용이 가능한 제품보다는 안전규격을 통과할 정도의 제품을 설치했으며, 범퍼의 두께를 줄이는 등 제품수명과 안전에 관련된 사항들도 과감하게 줄였다.
 
타타는 특히 원가 절감을 위해 오토바이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빌려왔다. 나노에 오토바이와 비슷한 형태의 계기판을 채택했으며 오토바이처럼 운전석의 중앙에 설치했다. 서스펜션, 케이블, 램프 등의 설계에도 오토바이 부품의 사례를 참고했다.
 
엔진 역시 오토바이에 많이 쓰이는 2기통 엔진이다. 타타는 여러 엔진 모델을 검토하다가 결국 엔진을 자체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624cc 직렬 2기통 엔진은 이전까지 인도 최고의 경차로 불리던 마루티-스즈키 M800의 796cc 엔진과 출력이 비슷하다. 헤드와 블록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무게를 줄였으며, 독일 보슈의 전자제어식 연료분사 시스템을 쓰는 등 최신 기술도 도입했다. 타타는 나노의 엔진과 관련해 10여 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BBT도 MP3플레이어에 응당 있어야 할 메모리, 이어폰, 목걸이를 아예 없애버렸다. 메모리카드나 이어폰, 목걸이는 소비자가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MP3플레이어 본체만 있는 파격적인 군살빼기 제품이다.
 
변우영 BBT 대표는 “메모리카드나 이어폰 등은 집집마다 남아도는데 또 줄 필요가 없다. 특히 이어폰의 경우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산 1000원짜리 이어폰을 부착해봤자 문제만 일으킨다. MP3플레이어의 생명은 음질인데 싸구려 제품을 붙여줘서 좋을 게 없다. 우리는 생산 비용을 아끼고, 소비자는 제대로 된 제품을 구입해 훌륭한 음질을 즐길 수 있게 해야 윈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3. 창조적으로 제품을 재설계하라
많은 기업들은 기존 기술과 방식에 의존하며 제품을 생산한다. 하지만 극한 원가 달성에 성공한 기업들은 창조적으로 제품을 재설계한다. 대안 기술과 대체 기술을 통해 제품 소형 경량화와 원가 절감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던 것이다.
 
BBT가 초저가 MP3플레이어를 개발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독창적 설계 기술이었다. 회로 설계를 10분의 1로 축약하는 기술과 노이즈 방지 기술을 개발, 전력을 적게 소비하면서도 최고 수준의 음질을 내게 했다. 일반 소형 건전지 한 개로 17시간 재생이 가능할 정도다. 이는 동급 MP3플레이어 중 최고 수준이다. 부품 수와 납땜량도 40%가량 줄여 단가를 낮췄다. 거북이 본체의 색깔도 페인트가 가장 적게 드는 민트그린, 오렌지 등으로 정했다.
 
초저가 공기청정기 에어비타를 생산하는 이길순 대표는 전업 주부였던 1991년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이웃집을 방문했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아이와 마주친 것을 계기로 제품 개발에 나섰다. 곰팡이 때문에 악취가 코를 찌를 정도였지만 반지하방에 사는 신세로는 당시 100만 원을 호가하던 공기청정기를 구입할 수 없는 이웃을 보고, 서민들이 값싸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이 대표는 보급형 공기청정기를 만들기 위해 크기를 줄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기존 제품의 10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전구형 공기청정기를 만들려면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공기청정기 필터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필터를 유지하면서 크기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필터 대신 악취 제거 효과가 뛰어난 음이온을 사용키로 했다.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줄 기술자를 모셔오기 위해 일본까지 건너가 기술자를 영입했다. 초소형이면서 공기정화 성능이 떨어지지 않도록 음이온이 가장 많이 나오는 방법인 전자 방출침 방식을 공기청정기에 첫 적용했다. 청계천 상가를 이잡듯 뒤지다시피 해 극소형 크기에 맞는 볼트와 너트를 찾아냈고 결국 2002년 시제품을 내놨다.
 
타타도 나노를 디자인하면서 창조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타타는 크기와 가격 문제로 인해 기존 부품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240만 원이라는 공격적인 가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 또 나노의 엔진을 뒤쪽에 장착했는데 이는 조향 장치를 단순하게 만들고 부품 수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타타는 총 부품 수를 최대한 줄이고 각 부품이 동시에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제품개발이 진행되는 도중 원자재 가격이 계속 상승하자 자동차 문 등 일부 부품을 플라스틱 재질로 변경한 것도 눈에 띈다. 플라스틱 부품은 원가는 물론 차체의 무게를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줬다. 타타는 이런 플라스틱 부품을 금속 볼트 대신 접착제를 이용해 조립했다.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면 비용이 상승하고 무게가 더 많이 나가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가능한 한 얇은 재료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인디카(Indica)의 범퍼는 3mm지만 나노의 범퍼는 2.5mm다.
 
에센시아도 회로기판을 새로 개발하면서 부품 모듈화를 추진했다. 에센시아 기술진은 자체적으로 회로를 설계해 여러 부품을 하나로 집적했다. 이 결과 부품이 들어가는 기판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부품 숫자의 감소로 최고 9단계에 이르던 생산 공정을 5단계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에센시아는 또 부품을 하나하나 납땜하던 공정을 혁신, 부품을 기판에 꽂아 넣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새로운 조립 방식 도입으로 작업 속도도 크게 빨라져 이전에 40명이 하던 작업을 25명이 할 수 있게 됐다. 에센시아는 사용 부품의 효율화에도 힘을 기울여 기존 형광등 방식 살균램프를 수명이 3배 이상 길면서도 가격은 더 싼 냉음극관(CCFL) 방식으로 바꿨다.
 
4.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어떤 기업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는 없다. 파트너와 협력업체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극한 원가 절감을 위해서도 외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개방형 혁신 체제를 만들어 협력업체의 참여를 유도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 다양한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극한 원가 절감의 핵심 방법론 중 하나다.
 
중소기업이지만 특수 윤활유 분야에서 선도적 입지를 구축한 장암엘에스는 다우코닝, GE, 도시바 등 외국의 거대 기업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차량과 전자제품 등에 들어가는 특수 윤활유는 매우 민감한 제조공정을 거쳐야 한다. 온도나 습도의 작은 변화에도 품질에 큰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특수 윤활유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도 갖춰야 한다.
결국 이 사업의 핵심 경쟁력은 얼마나 풍부한 제조 노하우와 지식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장암엘에스는 이런 노하우를 갖기 위해 외부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적극 구축했다. 중소기업으로서 자체 역량만으로 광범위한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구연찬 장암엘에스 대표는 이를 위해 우연히 알게 된 독일 업체를 설득해서 직원을 파견해 노하우를 배울 수 있게 했다. 그는 또 이 독일 회사 관계자의 집에 찾아가 가족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으며 경조사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는 한국식 인간관계 모델을 적용해 친밀도를 높여갔다. 구 대표는 이런 관계를 통해 매우 가치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번은 독일 공장에 방문했는데 윤활유 제조 공정 중간에 라인 전체의 전원을 끄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이렇게 전원을 끄는지 물었더니 첨가제를 넣을 때 온도를 낮춰서 90도 정도가 됐을 때 혼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더군요. 특수 윤활유는 워낙 민감한 제품이어서 이런 지식 하나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노하우를 토대로 장암엘에스는 경쟁 외국업체보다 싼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로 인해 미국 일본 독일 업체들은 기술장벽에 따른 과점적 이윤을 더 이상 얻지 못하게 됐다. 실제 일본 업체들이 열전도성 그리스(grease)인 ‘히트싱크 콤파운드’를 kg당 8만 원에 팔고 있었는데 장암엘에스가 1만7000원 수준으로 가격을 내리자 결국 일본 업체도 1만8000원까지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타타는 나노를 개발하면서 부품 개발과 구매, 물류,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추진했다. 특히 협력업체에게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따라 부품업체를 선정할 때는 비용절감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설계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주로 고려했다.
 
타타는 협력업체와의 거래에서 연간계약(annual contract) 대신 장기 물량계약(long term volume contract)을 체결해 부품 공급가를 크게 낮췄다. 또 인터넷을 통한 구매로 비용을 절감했다. 일반적인 자동차 업체의 인터넷 부품 조달 비율은 10∼15% 수준인데 반해 타타의 인터넷 구매 비율은 30∼40%에 이른다.
 
한편 타타는 유통 비용 절감을 위해 제품 조립을 타타 공장이 아닌 대리점에서 하도록 할 예정이다. 인도는 도로 사정이 열악해 완성차를 운반하는 것이 부품 형태로 운송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타타는 나노를 조립하기 쉬운 키트(kit) 형태의 반제품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또 대리점이 자동차를 편하게 조립할 수 있도록 접합 부분에 용접 대신 접착제를 사용하도록 했다.
 

5. 기술을 보호하라
핵심 기술이 유출되면 기존 상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업체들은 극한 원가를 가능케 한 핵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특허도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BBT 변우영 대표는 중국 업체나 다른 중소기업이 회로 축약 기술을 쉽게 복사하지 못하도록 제품 곳곳에 위장회로를 숨겨놨다고 밝혔다.
 
에어비타 이길순 대표는 아예 핵심 기술의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괜히 특허를 신청해봤자 경쟁사가 복제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업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을 때가 가장 뼈 아팠습니다. 그중 가장 아픈 경험은 많은 물량을 줬던 한 대리점 업체 사장이 납품업자를 꼬드겨 에어비타를 모방한 제품을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핵심 기술의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업은 에어비타만큼 작은 크기와 우수한 정화력을 지닌 공기청정기를 생산하지 못했죠. 1년도 안 돼 그 업체는 저절로 망했습니다.”
 
[DBR TIP] 자회사 98개 인도 대표그룹 타타, 초저가 나노 개발로 전세계가 주목
 
박민준 KOTRA 인도 뉴델리무역관 과장
 
타타그룹은 자회사 98개를 보유한 인도의 대표 기업집단이며, 국민 기업으로 추앙받고 있다. 2006∼2007 회계연도 매출은 288억 달러. 이는 인도 GDP의 3.2%에 해당한다.
 
타타그룹은 1868년 타타 가문에 의해 설립된 이후 민족 기업이란 이미지를 얻어가면서 국민들의 꾸준한 지지를 받아 왔다. 식민지 시대 영국은 인도인의 호텔 이용을 금지했다. 그러자 타타그룹은 인도인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최고급 타지마할 호텔을 건립하기도 했다.
 
라탄 타타 현 그룹회장은 인도의 평범한 4인 가족(부부와 어린아이 두 명)이 스쿠터 한 대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보통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10만 루피짜리 초저가 자동차 나노 아이디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나노 프로젝트 발표 후 많은 사람들이 이 계획을 비웃었다. 그러나 올해 초 실제 차량이 공개됨으로써 라탄 타타 회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불굴의 기업인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인도인들은 세계 최저가 차량을 인도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현지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믹타임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2%가 “타타 나노는 세계 자동차 산업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응답했다. 현지 언론들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나노가 일으킨 저원가 혁신의 트렌드를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와 르노닛산,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초저가차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등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급변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나노 발표 후 인도 현지에서는 중고차 가격이 15∼30% 급락했다. 인도에서 초저가차는 벌써부터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