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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를 닮은 와이너리, 켄달 잭슨

이승현 | 47호 (2009년 12월 Issue 2)
“지난 8년간 미국 백악관에는 와인이 단 한 병도 없었지만, 오바마 취임으로 미국인의 와인 소비 행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2009년 초 뉴욕에서 열린 와인시장 연구 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젊은 시절 음주 문제로 꽤나 말이 많았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시카고 집에 와인 1000병을 보관할 수 있는 와인셀러가 있을 정도로 와인을 즐겼으니 이런 말이 나온 게 당연했다. 백악관 공식 정찬에는 미국산 와인만 제공된다. 때문에 세계 와인업계는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와인을 즐겨 마시는지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보내고 있다. 과연 ‘오바마의 와인’은 뭘까?
 
바로 켄달 잭슨(Kendall Jackson)이다. 켄달 잭슨은 미국 내 테이블 와인 판매 1위, 10여년 간 미국 레스토랑 판매 및 선호도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한 유명 와인이다. 켄달 잭슨은 1982년에 설립된 와이너리다. 아직 역사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와이너리가 몰려 있는 샌프란시스코 나파 밸리와 소노마에는 100년 역사의 와이너리가 즐비하다. 하지만 켄달 잭슨은 불과 설립 1년 만인 1983년에 첫 번째 와인인 ‘켄달 잭슨 리저브 샤도네이’를 출시했다. 이 와인이 각종 와인대회에서 상을 수상하면서 켄달 잭슨은 초고속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와인의 소매시장 매출만 6억 달러가 넘을 정도였다.
 
켄달 잭슨은 안타깝게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성찬에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켄달 잭슨의 인기는 오바마의 유명세를 타고 날로 상승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켄달 잭슨과 오바마가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오바마가 그랬듯 켄달 잭슨 역시 주위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단기간에 미국 정상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켄달 잭슨의 설립자인 제스 잭슨은 와인업계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를 하다 뒤늦게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래서인지 제스 잭슨은 기존 와이너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과거 일반적인 와인 제조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우수 부지를 매입하고, 우수 종자의 포도나무를 심어 재배한다. 둘째, 수확한 포도에 적절한 와인 제조 방식을 정한다. 셋째, 와인을 생산, 출시하고 독특한 브랜드를 구축한다. 이 방식의 문제점은 막대한 초기 비용과 오랜 시간이다. 부지를 매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포도나무가 성장하는 데도 최소 3∼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와인 제조에 필요한 기술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이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웬만한 자금력과 인내심 없이는 시작할 엄두를 내기도 어렵다.
 
제스 잭슨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역발상을 시도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대개의 와이너리가 맨 마지막에 하는 와인 제조 기술력 확보였다. 그는 대학에서 와인 양조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반드시 자신의 와이너리에서만 나는 포도를 사용하겠다는 생각도 버리고 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와이너리와 계약을 맺었다. 다른 와이너리에서 구매한 여러 포도들로 블렌딩한 후 와인을 생산한 잭슨은 이 수익으로 부지를 매입했다. 다른 와이너리와 정반대의 길을 간 셈이다. 설립 1년 만에 와인을 출시할 수 있었던 이유, 초기 투자비 부담을 덜면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80년대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는 프랑스 와이너리들과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이나 포도원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제조했다. 포도 품종보다 생산지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이때 해당 지역의 토양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진다. 문제는 일조량이나 강우량에 따라 매년 와인의 품질도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켄달 잭슨은 지역보다 최종 산출물인 와인 맛과 품질을 우선시했다. 즉 단일 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기존 틀을 과감히 버렸다.
 
켄달 잭슨은 산타 바바라, 소노마, 레이크 카운티 등 캘리포니아 전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를 구입했다. 이를 함께 블렌딩해서 원하는 맛과 향의 와인을 제조했다. 그 결과, 켄달 잭슨 와인은 생산연도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매번 맛이 바뀌는 와인보다 맛을 예측할 수 있는 켄달 잭슨을 선택했다.
 
켄달 잭슨은 기존 고객층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1980년대 미국 와인시장의 주 고객은 단연 중장년층이었다. 젊은이들은 맥주를 주로 마셨다. 하지만 켄달 잭슨은 과감히 젊은 층을 목표 고객으로 선정하고, 중간 가격대 와인을 집중 생산했다. 크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과 향은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새로운 소비층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한 셈이다. 이를 위해 대량으로 포도를 구입해 단가를 낮추고 과학적인 블렌딩 기법을 접목했다. 켄달 잭슨은 높은 수준의 품질을 가진 10달러 정도의 와인, 이른바 ‘매스 부띠끄’ 와인시장을 개척한 선두 주자였다.
 
누구나 남다르게 살기를 원한다. 남다른 아이디어, 남다른 패션, 남다른 철학… 하지만 남다르게 살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대개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어떻게 그러냐’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산다. 남다른 사업, 남다른 삶을 꿈꾼다면 용기를 내야 한다. 남들이 와인 부지부터 살 때 양조학자들부터 스카우트한 켄달 잭슨처럼, 최종 디자인이 나온 다음 그 안에 어떤 기술을 넣을까 고민했던 아이팟처럼 기존 방식을 뒤엎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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