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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통해 의사결정하지 마라

정재승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우리나라는 이른바 ‘회의 공화국’이다. 정부에는 수많은 위원회가 난립해 있고, 회사에서도 날마다 회의가 열린다. 입사 초기에는 회의 준비를 하는 데 온종일을 보내고, 임원이 되면 주요 회의에 참석하느라 업무 시간을 다 보낸다. ‘일을 하는 시간보다 회의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투덜대는 조직이 생각보다 많다.
 
지나친 회의는 좋지 않다. 어떤 회의든 2시간이 넘어가면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의견이 난립하며 생각이 산으로 간다. 그래서 회의 시간을 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 1시간 정도를 권하며, 2시간 이상 진행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난상토론을 해서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결정에 대한 책임도 분산된다. 사실 회의는 의사결정을 하기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집단 지성을 강조하는 곳에선 ‘1시간 이내에 3가지 이내 안건을 처리하라’고 조언한다. 회의를 통해 구성원이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나친 회의도 문제지만, 회의가 없는 조직 또한 문제가 많다. 조직 구성원이 자주 만나지 않는 것, 각자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 편안한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주고받지 않고 각자 머릿속에서만 고민하는 것도 큰 문제다. 창의적인 조직일수록,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회의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그 반대라서 문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란 단어 역시 회사 내에서 그 의미대로 바르게 실천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구성원들이 주어진 룰에 따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회사가 생각보다 적다. 1940년대 초 광고 회사의 중역이던 알렉스 오즈번은 보통 사람들은 혼자 일할 때보다 집단으로 일할 때 두 배나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브레인스토밍이란 단어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효과적인 브레인스토밍 방법
영국 켄트대 브라이언 뮬런 등 여러 연구자들이 브레인스토밍의 효율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오히려 부정적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면 ‘성공에 대한 보상’이 적을 뿐 아니라, 실패를 해도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자주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통상 2∼3달에 한 번 정도 브레인스토밍하는 시간을 가지면 효율적이다), 편안하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다가 우연히 좋은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브레인스토밍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룰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의견을 비판하지 않는 것, 모든 구성원들이 무조건 의견을 쏟아내는 것, 연상 기법을 활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엉뚱한 아이디어도 어느 정도 발전을 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처음 들었을 때 영 이상하다고 해서 비판하고 그 싹을 죽여버리면 좋은 아이디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 그러니 비판하지 말고 일단 적어둬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이 무조건 의견을 쏟아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20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새로 출시된 제품을 보여주며 특징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제품에 맞는 적절한 이름을 생각해내도록 과제를 준다. 시간은 2시간. 사람들이 의견을 쏟아낼 것이다.
 
이번에는 20명을 네 그룹으로 나누고 30분간 똑같은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 30분이 지나면 다시 그룹을 재구성을 해서 나누고, 30분간 똑같은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 이렇게 4번을 수행하면 소요 시간은 역시 2시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제품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가 3배 이상 많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어느 조직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목소리 큰 사람(자신의 의견을 쏟아내고 강하게 개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회의는 그가 주도하게 된다. 그러면 그 옆에는 반드시 제시된 의견에 비판적인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중도 순응자’와 ‘무관심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30분마다 그룹의 구성원을 바꿔주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면, 목소리 큰 사람이 매번 바뀌게 된다. 전 그룹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었던 사람은 다음 그룹에서 다른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비판자’가 되거나 ‘순응자’가 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다양한 역할을 스스로 찾아 맡게 되어 있으며, 그 역할을 자주 바꿔주면 목소리 큰 사람들이 여럿 생겨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창의성의 원천은 이질적인 것의 연결
창의적인 아이디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서로 잇는 과정이다. 따라서 ‘연상 작용(association)’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화이트보드에 연상되는 단어들을 쓰게 하고,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단어를 떠올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조직 내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된 공간 하나 정도는 있는 것이 매우 좋다. 신경과학자들이 제안하는 것 중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면 누워서 뒹굴뒹굴하라’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은 선 자세, 다른 그룹은 앉은 자세,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누운 자세로 난해한 애너그램을 풀도록 했다. 승자는 단연 ‘누워서 문제를 풀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0%나 더 빨리 문제를 풀었다. 누워서 문제를 풀면 뇌 속 청반이 훨씬 쉽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빈백(bean bag)이나 푹신한 소파가 있는 공간에서 직원들이 편하게 잡지를 뒤적이며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도록 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 공간 안에 책과 잡지, 인터넷을 마련해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브레인스토밍을 한다고 팀원들을 한자리에 가둬두면, 대여섯 명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는 제한돼 있다. 하지만 책 속에서 과거의 인물을 탐색하고, 잡지를 통해 최신 트렌드를 이해하고, 인터넷에서 집단 지성을 활용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지구촌 67억 명의 머리를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브레인스토밍이니까.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기 바랍니다.
 
필자는 KAIST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콜롬비아대 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쳐 현재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창의적인 문제 해결, 뉴로 마케팅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2009년 다보스 포럼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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