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탱크 타이거도 전술 안 맞으면 무용지물

39호 (2009년 8월 Issue 2)

가끔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교수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굽니까?”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래전 한국형 전투기 생산 모델을 두고 F16과 라팔이 경쟁할 때, 인터넷에는 두 전투기의 속도, 항속 거리, 무장 등을 제시하며 네티즌의 의견을 묻는 투표까지 돌아다녔다.
 
우리는 경제력이나 문화 수준, 군사력에서 세계의 어떤 나라도 무시하지 못하는 상위권의 국가로 떠올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몇 번이고 한국의 교육과 인재를 언급할 만큼 교육열도 높아 대졸자 비율이 웬만한 나라의 고졸자 비율보다 높다.
 
그러나 이 높은 지적 수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교육과 지식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사고력과 분석력이다. “F16과 라팔 중 어느 게 더 좋은 전투기일까?”라는 질문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 무턱대고 역사상 최고의 장군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예를 통해 이런 질문 방식의 오류를 살펴보자.

2차 대전 최고의 탱크는 타이거?
 
제2차 세계대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2차 대전 당시 최고의 탱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독일의 타이거 탱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타이거 탱크는 대략 194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타이거에 장착한 포는 2차 대전 때 사용된 대포 중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88mm 포였다. 88mm 포는 원래 대공포로 개발한 무기였는데, 아프리카 전선에서 대(對)탱크 포로도 사용됐다. 그런데 이 포의 위력이 대단해 영국이 믿고 자랑하던 중형 탱크까지 단숨에 파괴해버렸다. 가뜩이나 장갑이 약해 지포라이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고 있던 미군의 셔먼 탱크는 말할 것도 없었다. 88mm 포를 장착한 타이거 탱크는 현존하는 모든 탱크를 파괴할 수 있었다. 그것도 2km 이상 먼 사정거리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독일군 엔지니어들은 타이거에 최강의 방어력이라는 선물까지 얹어줬다. 탱크의 방호력은 여러 가지 기술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원시적으로 접근하면 갑옷을 덧대어 입을수록 튼튼해진다. 타이거 탱크는 엄청난 중장갑을 갖췄는데, 덕분에 무게가 56t에 달했다. M4 셔먼보다 20t이나 무거웠다.
 
타이거는 금세 유럽 전선에서 공포의 대상이 됐다. 탱크 부대끼리 격돌하는 탱크전은 러시아 평원에서 제대로 벌어졌다. 최대의 기갑전이라 불리는, 1943년의 쿠르스크 전투다. 독일군은 약 200대, 소련군은 600여 대의 전차를 투입했다. 이 전투에서 독일군 기갑부대는 타이거 탱크 대대를 독립 부대로 편성해 운영하지 않고 다른 기종으로 구성된 여러 부대에 분산 배치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타이거 탱크가 주는 공포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오토 카리우스 중위는 종전 때까지 타이거 탱크로 150대의 러시아와 연합군 탱크를 파괴하는 기록을 세웠다.
 
일부 임무에만 유용한 타이거 탱크
 
그렇다면 타이거가 최강일까? 전쟁이란 수많은 구성 요소와 필요와 목적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지휘관이 작전에 필요한 탱크를 선정할 때는 어느 탱크가 최강이냐는 질문 대신 이번 작전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기능을 지닌 탱크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타이거로 돌아와보자. 타이거는 여러 장점이 있었지만 중량이 너무 무거웠다. 따라서 기동력에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타이거는 너무 느려서 제한된 시간 안에 이동하거나 신속하게 보병을 지원해야 하는 임무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88mm 포가 지닌 공포의 파괴력 역시 한편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포의 반동이 너무 심해 포를 발사하려면 탱크를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느린 전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싸워야 했으니 더 느림보가 됐다. 느린 속도 때문에 공포의 파괴력도 공갈포가 되기 십상이었다. 타이거를 보고 적 탱크가 도망가거나 우회하면 구경만 해야 했다. 88mm 포의 사정거리로 느린 기동력을 보완하기를 바랐지만, 사정거리가 길다고 해도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3, 4km 밖에서 움직이는 탱크를 맞추는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타이거의 초과 중량 때문에 생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잦은 고장이었다. 타이거의 중량은 모든 부품에 과부하를 주어 고장률이 엄청나게 높았다. 타이거는 툭 하면 기동 불능에 빠졌는데, 특히 정차했다가 다시 시동을 걸 때 멈추는 일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한 번 사격을 할 때마다 기동 불능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해야 했다. 한 번 정지하면 다시 움직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커다란 타이거는 훌륭한 표적이 됐다. 장갑이 튼튼해 파괴되지 않아도, 고장을 내서 기동 불능 상태로 만들기는 쉬웠다. 기름 소모량 또한 엄청났다.
 
타이거가 강하기는 했지만 많은 약점도 갖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타이거에 가까이 간다는 게 지극히 어려울 것 같지만, 타이거의 둔탁함과 뻔한 기동로 덕분에 가끔씩 근접 접근이 가능하기도 했다.
 
물론 타이거는 위압적이었다. 타이거가 전선에 나타나면 적 탱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돌진해오는 탱크를 파괴할 방법이 없는 참호 안의 보병들은 공포에 떨었다. 쿠르스크에서처럼 타이거를 선두에 세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이거는 엄청난 중량 때문에 도로 사정이 나쁜 곳에는 갈 수 없었다. 어찌어찌 자신은 통과를 해도, 타이거가 한 번 통과하면 도로를 완전히 짓뭉개버려 경전차나 트럭조차 지나갈 수 없는 길이 되기 일쑤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타이거는 고정 거점을 사수하거나, 근거리에 위치한 포위망을 뚫거나, 상대에게 겁을 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이는 전쟁이 요구하는 수많은 임무 중에서 일부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절대적인 최강의 무기는 없다
 
독일군 수뇌부가 타이거를 생산하던 1943년은 모든 전선에서 독일군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시기였다. 특히 물자와 보급의 열세가 두드러졌다. 그렇다면 ‘수량 경쟁을 포기하고 질로 전환하자. 열 마리의 늑대보다 한 마리의 호랑이가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독일군 수뇌부의 이런 판단이 과연 들어맞았을까. 열 마리의 늑대도 자신들의 장점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술을 세운다면 호랑이 한 마리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 덩치만 크고 관절염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호랑이라면 더욱 쉽다. 세계의 모든 전쟁에서 열세에 처한 국가가 사용하는 전술이 게릴라전이다. 게릴라전의 생명은 기동력이다. 게릴라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족한 병력과 물자를 상쇄하는 최선의 방법이 기동력이다. 병력과 물자에서 열세인 군대가 스스로 웅크리고 앉아 골리앗을 내세워 방어하는 방법이 과연 효과적일까?
 
물론 목적에 따라서는 이 방법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과 러시아를 망라하는 글로벌 전역에서 그 방법은 전혀 옳지 않았다. 즉 타이거의 생산 목표였던 최강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지향에서부터 잘못됐다. 그 전에 독일군은 앞으로의 전장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전술은 무엇이고, 그 전술에 맞는 기능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올바른 결론을 내려야 했다.
 
전장에서 최강의 무기가 없듯, 경영 현장에서도 최고의 방법은 없다. 어떤 전략과 전술이든 목적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전략과 전술을 생각해야 한다. 너무나 간단한 진리지만, 이 공식을 실전에 적용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모양이다. 이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과 교육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변해야 한다. 어떤 교육이나 강연에서든 그 교육을 통해 ‘가장 좋은 것’을 찾으려 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교육과 지식은 제일 좋은 것을 섭취하는 행위가 아니다. 사회와 경영 현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복잡하고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실체와 상대하기 위해, 현재의 시점에서 필요한 것과 목적에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한다.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