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과 중장기병의 진실

37호 (2009년 7월 Issue 2)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역사적 인물은 광개토대왕이다. 우리 전쟁사에서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장군 등 거대한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인물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침략자를 격퇴하는 수비자의 입장에서의 승리했다는 한계를 지녔다. 반면 만주 벌판을 횡단해 만리장성을 돌파하고, 북쪽으로는 광활한 몽골 초원의 어귀까지 진출한 광개토대왕과 고구려군의 모습은 통쾌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구려군의 중추 중장기병
이 고구려군의 중추를 이뤘던 군대가 중장기병이다. 중장기병은 말 그대로 말과 사람이 중장갑을 한 기병이다. 말 위에 탄 기사는 투구를 쓰고 전신을 갑옷으로 감싼다. 고분벽화나 발굴 유물을 보면, 고구려의 기사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작은 철판 조각과 가죽을 덧대어 만든 미늘을 이어붙인 ‘미늘갑옷’을 애용했다. 이 갑옷은 철판 1개로 이뤄진 판금갑옷보다 약했지만, 찌르는 힘에는 잘 버텨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화살에 대한 대응력이 뛰어났다. 실제로 미늘갑옷에 활을 쏘고 고속 촬영으로 관측해보면, 화살이 갑옷에 부딪힐 때 갑옷이 출렁거리면서 화살을 튕겨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튕겨내는 힘과 철판 및 가죽의 방호력으로 방탄 작용이 일어난다. 전쟁에서 화살이 정확히 수직으로 갑옷과 부딪힐 확률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 사선이나 움직이는 상태에서 부딪히기 때문에 미늘갑옷의 방탄력은 더욱 커진다.
 
중장기병은 이 갑옷으로 전신을 가렸다. 소매는 손목까지 오고, 바지는 발목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보병은 이런 전신 갑옷을 입을 수 없었다. 갑옷이 비싸기도 했지만, 보병이 이런 갑옷을 입으면 무거워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건강한 다리로 뛰어다녀야 하는 보병은 갑옷을 입더라도 윗옷만 착용해야 했다.

중장기병은 갑옷 외에도 투구, 방패, 목 가리개도 착용했다. 박물관의 전시 용품으로 인기인 통철판으로 만든 판금갑옷을 보자. 몸통만 가리는 상체용이 드물게 발굴되고 있다. 벽화에서도 보기 힘든 걸로 봐서 지휘관급 장수들이나 입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 갑옷을 착용할 때도 안에 미늘갑옷이나 특별한 가죽옷 등을 덧대고 입어야 했다. 판금갑옷은 보기에는 강해 보이지만, 고대의 제철기술로는 얇고 강력한 특수강을 제작하기 어려웠다. 판금갑옷만으로는 화살이나 창을 제대로 막을 수가 없었다. 또 열과 추위에 약하고, 창이나 화살에 맞아 안으로 찌그러들면 오히려 흉기로 돌변했다. 이 갑옷을 입은 채로 넘어지거나 말에서 떨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날 자동차의 에어백처럼 완충 작용을 해줄 속옷이 반드시 필요했다.
 
발에는 스파이크가 달린 쇠로 만든 신발을 신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부장품 중에서 이런 신발을 이따금 볼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저런 신발을 정말로 신었을까 의문을 던지곤 하는데, 실생활에서는 모르겠지만 전쟁터에서는 기사들의 필수품이었다. 보병과 접근전을 벌일 때 말에 올라탄 기사의 최대 약점이 하체와 발이기 때문이다.
 
말도 미늘갑옷으로 된 전신 갑옷을 입었다. 이 갑옷은 머리에서 몸 전체를 자루처럼 덮어 거의 말의 무릎까지 내려왔다. 말의 머리에 투구를 씌우거나 미늘갑옷을 입힐 수는 없으므로 판금으로 된 안면갑을 만들어 씌웠다. 방호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 벌이 아닌 여러 벌을 입히기도 했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군대는 기병의 속도를 포기하는 대신 중장갑에 의존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말에 갑옷을 세 벌까지 겹쳐서 입혔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중장기병대는 강력하고 중후할 뿐 아니라 멋있었다. 적에게는 강력한 두려움을, 지휘관에게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중장기병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러나 때때로 이 영감이 너무 강력해 이성을 마비시킨다. 고구려의 중장기병에 대해 몇 가지 심각한 오해가 돌아다닌다. 대표적인 오류가 중장기병이 무적, 최강의 부대라는 생각이다. 한술 더 떠 중장기병이 우리 민족에게만 있었다는, 그것도 신라와 백제에는 없었고 고구려에만 있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만주 평원과 달리 한반도에는 산이 많아 기병을 활용하기 어려우므로 신라나 백제는 이런 병력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 견해대로라면 고구려는 고대 사회에서 무적의 탱크 부대를 보유한 유일한 군대였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잘못된 오해다. 중장기병은 세계 어느 나라 군대에나 있었다. 고구려군과 싸웠던 선비족이나 중국의 군대에도, 막강한 보병에 가려 기병의 존재감조차 미미해진 로마군에도 중장기병은 있었다. 영화에는 늘 털모자를 쓰고 모피나 가죽조끼만 걸치고 다니는 몽골 기마부대도 중장기병을 운용했다. 당연히 신라와 백제에도 있었다. 평원은 고사하고 100m도 안 되는 공간이나 비탈에서도 기병의 용도는 무궁무진했다.
 
고구려의 중장기병이 무적이라는 생각도 잘못이다. 중장기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그것이 최강이냐 아니냐를 논해서는 안 된다. 중장기병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냐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중장기병의 장점은 방호력과 돌파력이다. 이 장점을 활용해 적의 대형과 방어벽에 구멍을 내는 게 중장기병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탱크와 비슷하다. 제1차 세계대전 말에 처음 탱크가 등장한 이유도 철조망과 참호로 뒤엉킨 지루한 진지전을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옛날 전쟁은 크게 2단계로 이뤄졌다. 1단계에서는 적의 대형이나 방어선을 돌파한다. 방어선이 무너지면 측면과 후면이 노출되므로 적의 방어력이나 저항 의지가 급속도로 떨어진다. 공격 측은 승세를 잡은 셈이지만 아직은 전조에 불과하다. 이 단계까지는 적군의 사상자도 많지 않다. 적이 패했다고 해도 전투력과 재기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진짜 승리를 거두려면 돌파구로 진입해 적을 몰아붙이고, 적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 전투력을 실질적으로 꺾어놓아야 한다.
 
이때 공격 측은 2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는 보병을 그물처럼 사용해 적을 몰아세우거나 가두는 방법이다. 그물에 갇힌 적은 항복하거나 그물이 없는 쪽, 즉 보병이 의도한 방향으로 도주한다. 달아나는 적을 처치하는 것은 기병의 몫이다. 바로 이 장면이 적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히는 순간이다.
 
하지만 현실 전투에서 우리의 자랑인 중장기병대는 그런 결정적 역할을 할 때쯤이면 땅에 누워 있다. 중장기병의 약점은 속도와 지구력이다. 갑옷과 마갑, 무기를 합하면 장비 무게만 60∼80kg은 됐을 것이다. 여기에 기사의 몸무게까지 더한 무게를 얹었다. 우리 전통 말들은 체격도 작아 오늘날의 조랑말보다 조금 큰 수준이다. 그 가여운 말들이 이런 중량을 안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얼마나, 몇 분이나 달릴 수 있었을까? 실험을 해보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조깅 수준도 되지 않았을 거라고 보는 분도 있을 정도다.
 
말은 보행 속도로 가면 무거운 중량을 안고도 꽤 멀리 갈 수 있지만, 뛸 때는 달릴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짧다. 전투가 클라이맥스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중장기병은 더 이상 싸울 기운도 없고, 적을 추격할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추격과 섬멸은 경기병대의 몫이다. 간혹 중기병이 갑옷을 벗어 던지고 경기병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대형 돌파도 탱크가 소총 부대를 밀어붙이듯 쉽게 되지 않는다. 중장기병의 장점 중 장점이라는 장갑도 당시 기술로는 완전하지 않았다. 특히 화살의 위력은 생각보다 컸다. 우리나라는 궁수의 실력이 뛰어나 일류 궁수는 철판을 댄 방패도 몇 개나 뚫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리 좋은 갑옷도 치명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정도지, 완전한 방패막이가 되지는 못한다. 결국 잠깐의 돌파 작전이 끝나면 대부분의 중장기병과 말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잘 훈련된 창병은 더 무서운 존재였다. 그들이 온전하게 버티고 있는 한 정면으로 붙어서는 중장기병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보병들은 중장기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분법적 사고의 위험성
많은 지식인들, 심지어 역사 연구자들도 고구려 중장기병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이 오해는 단선적이고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나라 교육과 지적 풍토의 결과물이다. 그 폐단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놓을 정도로 크고 심각하다.

우리는 하나의 사물, 제도, 현상에 직면했을 때 그것의 기능, 역할, 메커니즘, 용도를 분석하기보다는 ‘좋은 것과 나쁜 것’ ‘강한 것과 약한 것’ ‘부자들을 위한 것과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 등으로 쉽게 나누곤 한다. 중장기병의 특징과 장단점, 용도를 분석하기 전에 ‘최강’ ‘유일’ 등의 수식어를 쉽게 붙이는 게 바로 그런 사례의 하나다. 이런 사고 구조 아래서 중장기병의 용도와 기능에 대한 분석, 전술 개량과 응용의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전쟁사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도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중장기병에 대한 오해는 지식의 유무 이전에,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과 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장기병의 분석에 ‘강함과 약함’이라는 분석 틀을 적용하면, 고구려군 승리에 대한 원인 분석도 중장기병 일변도로 흐른다. 결국 ‘중장기병만 육성하면 최강의 군대가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말과 철만 있으면 누구나 창단할 수 있는 중장기병대를 고구려군만 보유했다는 괴이한 결론까지 나온다. 경영 현장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 현상의 원인 파악, 해석, 제도의 용도, 교훈, 적용의 과정이 모두 잘못되고 만다.
 
오늘날 경영자들 사이에서 인문학적 통찰력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잘못된 인문 교육은 오히려 이분법적 사고만 주입시킨다. 인문학적 통찰력으로 발전하려면 먼저 이분법적 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바로 통찰력이 필요한 진정한 이유다.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2호 Hyper-personalization 2020년 3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