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 조직 내 성폭력 문제와 기업의 재무적 리스크

직장 내 젠더 이슈, 재무적 리스크에 직결
성 인지 감수성이 기업 청렴도 평판 높여줘

306호 (2020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미투 운동 이후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러 굵직한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가해자는 물론, 관련 사건을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비난도 거세졌다. 그리고 이는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매출 감소, 주가 하락 등 실제 기업의 재무적 손실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이 점차 늘어나면서 미국 기업들은 관련 이슈들을 재무적 리스크로 반영, 기업 평가 요소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비용에 대해선 세금 감면을 불허하는 등 보다 강력한 조치도 이행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개인의 상처와 고통으로만 끝이 날까. 기업은 일시적인 이미지 타격만 잘 견디면 될 일일까. 과거에는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변화를 보면 그렇지 않다. 조직 내 만연한 성희롱 사건을 눈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큰코다칠 수 있다. 미국 폭스뉴스는 회사 CEO인 로저 에일스(Roger Ailes)가 회사 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성희롱, 성추행 사건으로 피해자들에게 약 7000만 달러(약 84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최근 영화 ‘밤쉘(Bombshell)’로 유명해진 이 스캔들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 놀랄 일이 아니다. 불운한 기업에만 닥치는 일도 아니다. 조직 내 성희롱 문제를 경시하는 기업에게는 엄연한 현실이요, 존폐의 위기로 치닫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제 성희롱은 회사에서 쉬쉬하고 넘어가야 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회사가 철저하게 관리하고 대응해야 하는 리스크인 셈이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성희롱 사건들이 어떻게 기업의 재무적 손실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젠더 이슈를 포함해 차별적 조직문화가 경영 성과를 어떻게 해칠 수 있는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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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갈 길이 멀다

2010년, IT 업계에서 입지 전적인 인물이었던 HP CEO 마크 허드(Mark Hurd)는 조디 피셔(Jodie Fisher)라는 계약직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고발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허드는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그 뒤 그의 몸값은 더욱 치솟아 경쟁사에서 모셔가기 위한 영입 쟁탈전이 벌어졌다. 경쟁사인 오라클에서 그를 영입하겠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았고, 그 즉시 오라클 주가는 치솟았다. 그의 불미스러운 행동보다 그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과 능력이 기업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후 HP 자체 감사 결과 성추행은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이 사건 이후 회사를 나온 조디 피셔는 결과에 유감을 나타냈고, 허드는 오라클의 CEO가 됐다. 불과 10년 전 일이다.

최근까지도 성희롱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도의 미국의 성희롱 사건 수는 총 7944건, 2017년도에는 6696건으로 여전히 매년 수천 건이 발행하고 있다.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은 성희롱이 지속적으로 과소평가됐고, 성희롱 피해자의 대부분이 회피와 부정으로 일관하는 게 슬픈 현실이며,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99.8%의 여성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실적제 보호위원회(Merit System Protection Board)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한 직장인의 6%만이 피해 사실을 알리고 법적 조치를 취했다. 이 설문 조사는 성희롱을 경험하고 그 고통으로 인해 퇴직한 직장인들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시작은, 미투운동

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다. 201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올해의 인물로 ‘#MeToo’ 캠페인(미투운동)을 촉발한 우버(Uber)의 성희롱 내부 고발자 ‘수전 파울러’를 선정했다. 파울러는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우버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당한 성희롱을 2017년 2월 자신의 블로그에 폭로했다. 우버는 초반 부정과 묵살로 일관하다 내부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우버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을 포함해 성희롱 혐의가 있는 직원 20여 명을 해고했다.

2017년 여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와 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은 24명의 여성 창업자가 유명 벤처캐피털 경영자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벤처산업에 만연한 성희롱에 대한 신랄한 폭로와 비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창업가와 벤처캐피털 사이의 권력관계, 문화, 관련 법 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같은 해 10월에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이 30년 동안 자행한 성범죄가 폭로되며 ‘미투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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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은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은 나쁜 것이니 근절하고 피해 사실을 밝혀 가해자를 응징하자는 단순한 계몽운동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차별 중 하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원인과 결과를 냉철히 분석하고 논의해서 합리적인 동시에 과감한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사회적 담론이요, 혁명적 물결이다. 성차별적 문화의 온상이었던 기업들도 이 거대한 물결을 피할 수 없었다.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문제는 삽시간에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더 이상 개인의 일도, 조직 내부의 일도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우리의 문제가 된 것이다.

직원들은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억울함과 상처, 고통을 세상에 끄집어내는 용기를 얻었고 기업들은 이들의 외침과 호소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직원들의 성적 피해를 눈감거나 묵인하는 기업이나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기업은 회복하기 힘든 평판의 훼손과 이미지 타격으로 존속을 위협받기 십상이다. 성희롱 피해자들이 숨거나 침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도 매우 다양해서 이제 기업이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앞으로도 이 물결은 도도히 흐를 것이고 인간 공동체의 모든 분야에 변화의 싹을 틔울 것이다.

성희롱의 대가는 고스란히 주주에게

성희롱을 포함한 경영진의 부정행위가 주주 가치와 영업 성과를 심각히 훼손한다는 자료는 차고 넘친다. 미시시피주립대의 클라인 교수에 따르면 한 건의 부정행위가 발각될 때마다 주주 가치는 즉각적으로 평균 1.6%p가 감소한다. 이를 시장 가치로 환산하면 1억1000만 달러(약 1320억 원)에 달한다. 부정행위를 한 주체를 최고경영자로 한정할 때는 주주 가치 손실은 4.1%p(2억2600만 달러; 2712억 원)로 껑충 뛴다. 클라인 교수는 주주 가치 훼손의 직접적 원인으로 기업 생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청렴도 평판(Ethical Reputation)을 지목한다. 윤리적 흠결이 드러나면 평판에 상처를 주게 되고 결국 기업의 생산성, 소비,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기업 가치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기업의 필수 이해관계자인 전략적 사업 파트너, 금융기관, 투자자, 소비자와의 관계 손상으로 인한 비용은 치명적이다. 기업이 관리할 위험은 유동성 위험, 환율 위험, 이자율 위험, 소송 위험, 국가 위험, 부도 위험만이 아니다. 평판 위험을 잘 관리하는 기업이 주주 가치도 잘 보존하고 성장시킨다.

주가 하락과 같은 부정행위에 대한 시장의 냉정하고 민첩한 평가와 대응은 와인스타인컴퍼니(Weinstein Company)의 추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17년 10월 와인스타인사의 텔레비전사업부 하나의 기업 가치는 약 6억5000만 달러(약 7800억 원)였다. 와인스타인의 성 추문이 세상에 알려진 후 몇 주가 지나자 한 금융 전문가는 와인스타인사가 최대 40%p 할인된 가격에 팔릴 것으로 내다봤다. 90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당했다고 폭로했을 때 와인스타인사의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고 뉴욕 검찰총장이 와인스타인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을 때 주가는 또 한번 추락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 와인스타인컴퍼니는 부도 신청을 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케이트 업톤(Kate Upton)이 게스(Guess)의 공동 설립자 폴 마시아노(Paul Marciano)를 성희롱으로 트위터에 폭로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 게스의 주가는 약 18%p 급락(약 3000억 원의 손실)했다. 게스의 공식적인 부정도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카지노 거물 스티브 윈(Steve Wynn)의 성폭력 사건을 기사로 내고 3일 후에 그의 회사는 35억 달러(약 4조2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물론 윈은 기사 내용을 부정했다. 포천(Fortune)지의 기자는 이를 ‘미투운동 시대에 성희롱 행위에 대한 비용’이라고 비꼬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매출과 영업이익이 기록적으로 급성장하며 재계와 투자자의 주목을 끌었던 한샘도 2017년 사내 성폭행 논란으로 주가 폭락을 경험했다. 한샘의 신입 여직원이 사건을 폭로하던 당일 17만500원이었던 주가는 이후 연일 하락해 5일째 되는 날에는 16만3500원에 거래가 됐다. 이전의 갑질 및 성추행 전력과 맞물려 사건의 여파는 2018년으로 이어져 주가는 2018년 10월에 5만300원까지 하락하며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주주 가치가 약 70%p 증발했다. 한샘 주가는 올해 초까지도 등락을 거듭하며 5만 원대에 머물다 8월 초에야 10만 원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여전히 3년 전의 주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인권유린과 존엄성 훼손에 대한 대가는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는 값비싼 교훈을 주는 사례다.

캐나다 매니토바대가 2011∼2017년 기간 동안의 기업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성희롱 점수가 상위 5%에 속한 기업들(성희롱 문화가 매우 심각한 기업들)의 연간 초과 수익률은 최저 -8.4%, 최고 -21.2%를 기록했다. 초과 수익률이란 기업의 주식수익률과 주식시장 평균 수익률의 차액으로 0보다 크면 시장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린 평균 이상의 양호한 기업, 0보다 작으면 평균 시장수익률도 벌지 못한 평균 이하의 부실한 기업으로 판단할 수 있다. 성희롱이 심한 기업군의 초과 수익률은 평균을 훨씬 밑도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이를 기업당 연간 주주 가치 손실로 환산하면 9억 달러(1조800억 원)에서 22억 달러(2조6400억 원)다. 주주 가치의 재앙적 파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희롱은 피해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고 이는 생산성 저하, 고용 불안정, 경력 단절로 진행돼 기업에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것은 피해자가 성희롱의 시작부터 끝없이 감당해야 하는 격통의 무게다. 그 무게는 피해자의 삶을 강도처럼 유린하고 태풍처럼 부숴버린다. 돈이라는 숫자로는 환산이 불가능한 비용이다.

2016년 미국 고용기회평등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성희롱 고소 사건으로 인한 합의금과 법적 비용이 2012년도에만 3억5600만 달러(약 4272억 원)였고 2015년 고용기회평등위원회가 성폭행 피해자들을 위해 가해 기업들로부터 징수한 배당금은 3900만 달러(약 468억 원)였다. 1988년 한 연구에 따르면 성희롱으로 발생한 헬스케어 비용, 휴가비용, 생산성 감소 비용, 이직으로 인한 고용비용 등의 연간 총비용이 포천 500에 속한 기업당 670만 달러(약 80억 원)였다. 이를 2017년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1400만 달러(약 168억 원)다. 실적제 보호위원회가 연방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연구(1992∼1994; 2년간)는 성희롱 피해 때문에 발생한 이직, 생산성 감소, 유급 병가 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3억2700만 달러(약 3736억 원)라고 밝혔다.

징벌적 조치로 기업 책임 강화한 미국 정부

미국은 2017년부터 세제개혁법(Tax Reform Act of 2017)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성희롱이나 성적 학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기업의 배상합의금을 비용 처리하는 것을 불허하는 조항을 골자로 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기업은 배상 합의를 할 때 비공개 합의(Non-Disclosure Agreeent, NDA)를 할지, 공개 합의(Disclosure Agreement, DA)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 NDA의 경우 배상합의금을 비용 처리할 수 없고 DA일 경우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 NDA와 DA 중 어떤 합의를 할지는 자본예산결정(Capital Budgeting) 사항이다. 즉, 기업의 순현가(Net Present Value; 부가가치와 비슷한 개념)를 극대화(주주가치 극대화)하는 합의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NDA의 경우 변호사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배상 비용은 감세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결정적 단점이 있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예들 들어, 법적 비용이 400만 달러(약 48억 원)이고 배상합의금이 1000만 달러(약 120억 원)라면 법인세율을 21%라고 가정할 때 감소 효과 혜택이 사라짐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은 294만 달러(1400만 달러의 21%)에 달한다. 세제개혁법은 성희롱에 대한 법적 대응을 보다 투명하게 하고 당사자 간 합의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는 데 기여한 바 크다. 더불어 NDA와 DA를 고려한 의사결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 내 성희롱 방지가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기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성과를 얻었고 성희롱 방지와 관련한 정기 교육 훈련, 기업 윤리 강령 제정 등 긍정적 부수 효과도 유발했다.

미투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방치한 성희롱으로 인해 기업은 비싼 대가(기업 가치 감소, 주가 폭락)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업들도 이를 잘 인지하고 있다. 인수 기업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인수합병 시 인수 대상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인을 분석하는데 ‘성희롱 발생 가능성’을 중요한 기업 가치 감소 지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수합병 시 소위 ‘미투 조항’을 신설해 인수 대상 기업의 경영진이나 간부급 직원들이 현재까지 특정 기간 내(계약마다 다름) 성희롱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기업의 신실한 서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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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조항(월스트리트에서는 와인스타인 조항이라고도 불림)이 인수합병 계약서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초부터다.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행 사건이 주요 언론 매체에 보도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 후다. 인권 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는 미투 조항이 기업들의 위험 회피 도구에 불과하더라도 인수합병 과정에서 성희롱에 관한 대화(사례, 예방, 인지)가 오고 간다는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발전이고 성희롱 예방에도 일조할 것으로 내다본다. 미투 조항과 같은 수단이 다변화돼 성희롱 피해자가 전적으로 짊어져야만 했던 엄청난 중압감을 경감하는 효과가 확대, 재생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미투 조항은 성희롱을 방지하려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국제적 협업이기보다는 기업 가치를 보호하고 동시에 사업 위험을 낮추려는 기업의 사업 전술이라는 한계는 있다. 부수 효과로 기업 내에서의 성희롱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성희롱을 방지하는 근본 대책이 되기에는 미흡하다. 하지만 미투 조항은 일회성 대응이 아니라 미투운동과 성희롱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공식적 대응책이다. 성희롱 가해자를 해고하거나 처벌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법의 적용이 아니라 미투운동의 정신을 기업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위험 회피 수단 중의 하나인 인수합병협약서에 흡수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더 나아가 기업의 경영진은 성희롱을 실질적인 평판 위험으로 보기 시작했고 왜 성희롱이 일어났는지, 왜 지금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현재의 평판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찾고 있다. 평판과 경영 자문 회사인 테민앤드컴퍼니(Temin & Company)는 성희롱으로 고소 고발된 사회 저명인사의 자료를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모았는데 총 810명이었다. 이 중 유명 코미디언 빌 코스비(Bill Cosby)와 연방 대법관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도 포함됐다. 2018년 10월까지 총 56명의 최고경영자가 성희롱 가해자로 고소당했다. 테민에 따르면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이 성희롱, 성폭행 보고나 고발에 이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고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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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여성 차별로만 보지 말라

성희롱 방지를 위한 접근법과 책무는 학자, 정부, 기업마다 상이하다. 학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기 위한 이론과 실증 연구를 하고, 정부는 성희롱을 처벌하고 억제하는 법과 규제의 제정과 효과적 실행을 위해 노력하고, 기업들은 보다 나은 작업 환경 및 직장 환경 조성, 성희롱 사건에 대한 기업의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법적 처벌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지배구조 속에 반영해야 한다.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앞서 소개한 미투 조항이 남성 우월적 문화가 깊이 뿌리 박힌 기업 컨설팅 시장, 금융시장, 월스트리트 인수합병 시장에서 시작됐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미투 조항은 기업 세계와 월스트리트가 성희롱 없는 세상을 향한 혁신과 개혁의 깃발을 든 것이 아니다. 부정행위에 대한 시장의 민감한 변화, 기업가치 감소라는 응보에 대처하는 기업 경영진과 금융 자본의 전술적 접근에 불과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차별 없이 공정하고 성희롱 없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혁신과 개혁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재무 관리에서는 대리인 문제와 대리인 비용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보통 대리인인 경영진과 고용인인 주주의 목표가 정확히 일치하기 어렵기 때문에(대리인 문제) 생겨나는 불가피하고 보이지 않는 비용(대리인 비용)을 일컫는다. 주주들은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경영진이 자신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도록 감시하고 격려하고 조언한다. 기업지배구조를 바로 세워 경영진이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주 가치를 그 어떤 비용보다도 저해하는 것이 대리인 비용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희롱 문제가 어마어마한 평판 비용을 지불해야 함을 인식하자. 평판 비용은 주주 가치 감소로 직결된다. 성희롱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녹아 있는 기업지배구조와 성 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 충만한 기업 문화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존엄한 길임을 명심하자.

더 나아가, 경영진의 구성에도 신경을 써서 여성의 리더십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최근(2020년 7월) 캐나다 매니토바대 연구는 여성 리더십이 직장 내 성희롱을 감소시키는 일등공신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사회에 여성 이사가 한 명 증가할 때마다 성희롱 발생률은 18%p 감소했고, 여성 CEO를 가진 기업들의 평균 성희롱 발생 빈도는 남성 CEO가 경영하는 기업 집단 평균의 절반(51.7%)에 그쳤다. 성희롱 발생 빈도를 절반으로 낮춤으로써 각 기업이 매년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은 약 1000억 원으로 평가됐다. 능력 있는 여성이 경영자 시장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시장의 유연성과 의식 개혁이 시급하다.

성희롱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불법적, 반윤리적 행위가 아니다. 권력, 위계관계, 가부장적 기업 문화, 편견, 선입견이 존재하는 곳엔 항상 도사리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성희롱 문제를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근시안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금물이다.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 기업과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통, 문화, 관습, 무관심, 두려움을 볼모 삼아 사회와 경제, 국가, 문명의 발전을 저해해 온 원흉이 바로 성희롱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마주해야 하고 불편하지 않을 때까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행복도 노력하면 유전된다고 한다. 이만, 성희롱은 도태시키고 성평등을 유전시키자.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swkwag@sookmyung.ac.kr
필자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와 텍사스공과대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영통계학 석사, 테네시대에서 재무 관리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타주립대 재무 관리 교수로 11년간 근무한 후 현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행동재무학/경제학, 기업가치평가, 투자, 금융시장과 규제 등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8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2020년 11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