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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재무적 성과 위에 ‘사회적 가치’ 있다

이재열 | 270호 (2019년 4월 Issue 1)

고도성장기 한강의 기적을 가져온 화두는 ‘경제적 가치’, 민주화 시기엔 직선제로 대표되는 ‘정치적 가치’였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불안, 불신, 차별, 무기력이 넘쳐나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흘렀는데도 정치에 대한 냉소가 위험수위에 처한 지금, ‘풍요의 역설’과 ‘민주화의 역설’이 넘치는 대한민국의 화두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가치’다. 사회적 가치를 높이지 않고는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성장할 수 없고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사회적 가치는 시장가격만으로 따지기 어려운 ‘품격’을 보여준다. 배우자감을 고를 때 재산과 직업을 따져야겠지만 그 사람의 ‘인품’을 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나라의 품격을 조셉 나이(Joseph Nye)는 ‘소프트파워’라 했다. 기업도 마찬가지. 기업은 산출한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의해 그 품격이 결정된다.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가격은 겉으로 드러난 객관적 수치다. 호환성이 높아 누구나 같은 값을 지급한다. 그러나 가치는 내재적이라서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 활동의 성과에 가격표를 매기는 노력은 1934년 쿠즈네츠가 제시한 국내총생산(GDP) 개념에서 시작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후 시장에서 교환된 재화와 용역의 부가가치를 화폐단위로 측정한 GDP 개념은 단순했지만 당시엔 효과적 지표였고, 그 이후 지속해서 다듬어졌다.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를 저량(stock)과 유량(flow)으로 나눠 측정하는 기업 회계도 같은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그동안 ‘경제적 가격’만 측정한 이유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적었고, 이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일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GDP나 재무회계의 심각한 결함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GDP가 높아지면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지에 대한 반성은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측정하기 위한 UN과 여러 국제기구, 그리고 각국 통계청의 노력으로 이어졌다.

기업들도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산출했는지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아무리 많은 이윤을 남겨도 ‘얄미운 기업’으로 인식되면서 돌발적 위험에 처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반면에 끊임없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서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켜 온 ‘똑똑하고 존경받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

이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재무적 효율성’뿐 아니라 ‘사회적 정당성’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문제는 사회적 가치가 외부성 효과나 공공재로서의 특성을 담고 있어서 시장의 실패가 존재하는 영역의 특성상 기존의 가격기구로는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려면 단기적 산출물뿐 아니라 장기적 효과까지 포괄해야 하고, 개인이나 조직 수준의 산출물뿐 아니라 거시적 사회 수준의 영향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어려운 쟁점을 남기고 있다. 아직 모든 사례에 들어맞는 하나의 모범답안은 없다. 그러나 평가의 틀을 만들어나가는 일 자체가 매우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다. 앞으로 다양한 평가사례가 누적될 때 풍부한 평가의 생태계도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규범과 가치가 시장을 순치해 온 ‘자본주의의 오래된 미래’가 새롭게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소개 이재열 사회적가치연구원 이사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회과학 연구자료의 공유를 촉진해온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원장이며 사회적 가치, 사회적 경제, 사회의 질, 사회적 웰빙 등에 관한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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