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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금융 방법론

지재권 가치 인정부터 먼저… '특허=돈' 인식 심으면 IP금융 문 열린다

최민서 | 202호 (2016년 6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IP 금융의 주요 종류와 특징

(1) 지분금융(Equity Financing): 창업 초기 자금 확보 수단

(2) 담보 금융(Debt Financing): IP 고유 가치에 기초한 금융

IP 담보 대출(IP-backed Loans)

: 가치 있는 IP를 보유하고 있지만 다른 유형의 담보물이 없거나 충분한 신용등급을 갖추지 못한 기업에 적합

IP 유동화(IP-backed Securitization)

: 로열티 수입이 이미 발생하고 있는 IP가 대상

IP 매각 후 재실시(IP Sale and License Back)

: 기업의 부채 규모를 늘리지 않고 IP를 활용해 자금 확보를 하고자 할 때 활용. 현재 로열티 수입이 없더라도 IP 그 자체로서 기대할 수 있는 금전적 가치가 큰 경우에 활용

 

 

 

지식자본에 대한 투자가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현대 경제 체제에서는 기술 기반 혁신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내에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IP 금융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IP 금융이 기술 기반 혁신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유용한 자금 공급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IP 금융이란 특허, 상표, 디자인, 저작권 등과 같은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IP)을 이용해 자금을 융통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IP 금융이 최근에 와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미 19세기 말에 발명왕 에디슨은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을 설립하기 위해 백열전구에 관한 특허를 담보로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 특허와 같은 무형 자산이라도 경제적 가치와 그 가치에 관한 위험도가 평가될 수 있는 것이라면 에디슨의 시대에도 금융의 기초로 활용될 수 있었다.

 

에디슨 시대에도 가능했던 지식재산 금융이 오늘날 국내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얘기에 속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3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지식재산금융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무형자산인 지식재산을 기초로 한 금융을 활성화시켜 창의적 아이디어와 지식재산의 개발, 그리고 사업화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지식재산에 내재된 정보 비대칭성과 불확실성으로 지식재산 금융 시장이 실패하고 있는 상황을 정책금융의 선도적 역할을 통해 보완하고 지식재산 평가와 거래에 관련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정책금융에 의한 직접적인 영향을 제외하면 국내 지식재산 시장 상황에 눈에 띄는 긍정적 변화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식재산 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재산 생태계 전반의 건전성이 전제돼야 한다. 좀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문제는 간과한 채 당장 지식재산 금융이 실패하는 문제적 현상에 대한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대응책만 고민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흔히 대응책으로 제시되는 지식재산 가치평가 시스템 고도화가 이뤄지더라도 지식재산 거래 환경 전반에 다소간의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며 정책금융을 통해 IP 금융 사례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더라도, 이런 조치만으로 IP 금융이 활성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IP 금융의 종류와 특징, 국내외 현황, IP 금융의 장애 요소 및 각국 정부의 대응책 등을 살펴본다.

 

 

 

 

1. IP 금융의 종류와 특징

 

(1) 지분 금융(Equity Financing) - 창업 초기 자금 확보 수단으로서의 IP

기업이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기술력의 품질을 인정받을 확률이 더 높다. 특허 보유를 통해 특정 시장에서 적절한 수준의 독점권을 행사한다면 그 시장의 다른 경쟁자에 비해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지식재산권의 보유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가능하다.

 

지분 출자의 형태로 이뤄지는 지식재산 금융에서는 일반적으로 지식재산을 그 보유 기업과 분리해 독립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1 , 기업에 대한 지분 출자 여부의 결정은 그 기업의 성공 가능성 혹은 수익성 등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에 따라 이뤄지며, 그 기업이 높은 수준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런 투자 결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기능하게 된다.

 

기업이 창업 초기일수록, 그리고 규모가 작을수록 지식재산의 보유 여부가 지분출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 기업들이 보유한 자산이란 게 상대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고, 지식재산 외에는 투자자가 눈여겨볼 부분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공개나 인수합병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벤처캐피털의 입장에서도 해당 기업의 지식재산 보유 여부는 투자 결정에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식재산 보유 자체가 해당 기업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고, 비즈니스 전략과 잘 연계된 지식재산이라면 특정 시장에서 일정 기간 독점력 행사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화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업이 핵심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특허와 같은 보호장치를 갖추지 않는다면 불필요하게 투자 리스크를 키우는 셈이 된다.

 

투자 금융의 관점에서 지식재산의 가장 큰 역할은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초기 단계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점치는 데 있어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테스트를 거치면서 점차 불확실성이 감소하면 지식재산의 상징적 역할, 즉 기업 성장 가능성 추정에 필요한 실마리로서의 역할 또한 함께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벤처캐피털의 지분 출자 결정에서 투자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지식재산 보유 자체에 의한 상징성이 미치는 영향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580개 이상의 미국 바이오 기업에 대해 지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이뤄진 벤처캐피털 투자를 조사한 최근의 연구결과2 에서 기업이 보유한 특허가 갖는 상징성은 벤처캐피털의 1차 펀딩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후 2차 펀딩의 규모를 결정하는 데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바이오 기업의 1차 펀딩 규모는 평균 720만 달러 정도였는데, 기업이 특허출원을 1건 더 보유할 때마다 투자액이 약 56만 달러 정도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3 특허 보유 여부는 1차 펀딩 고려 시에 필수적 확인 사항이나 그 잠재적 가치가 1차 펀딩 시에 이미 반영되기 때문에 2차 펀딩 단계에서부터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관련된 다른 요소들이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우수한 특허를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의 성공을 장담하기는 곤란하다. 성공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기업의 성공이라는 더 크고 복잡한 문제에서 그 역할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보호하고 경쟁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단인 특허가 갖는 상징성은 그 자체로 초기 단계 기업의 자금 확보 활동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창업 초기의 기업이라면 반드시 핵심 비즈니스 모델을 보호할 수 있는 특허출원을 진행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창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핵심적 사업 요소에 대한 지식재산 권리화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담보 금융(Debt Financing) - IP의 고유 가치에 기초한 금융

지분 금융 방식에 비해 담보 금융 방식은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중소기업 입장에서 담보 금융 방식은 이자율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심지어 이 방식으로는 자금 조달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에 반해 시장에서 이미 가치가 입증된 특허 등의 지식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주로 대기업)은 지식재산을 활용해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규모 있는 지식재산 중심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로열티 수입을 발생시키고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4 이런 특허 포트폴리오들은 매각이 쉬운 만큼 담보 금융의 기초로 활용되기도 매우 용이하다.

 

IP 담보 대출 (IP-backed Loans)

지식재산 담보 대출은 일반적인 부동산 혹은 매출채권 등을 담보로 하는 대출과 비교하자면 지식재산을 담보로 하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약 채무가 변제되지 않으면 담보권자는 담보권을 실행해서 담보 대상인 지식재산을 압류하고 처분할 수 있다. 지식재산 담보 대출에는 담보의 대상이 되는 지식재산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지식재산 담보 대출은 가치 높은 지식재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다른 유형의 담보물이 없거나 충분한 신용등급을 갖추지 못한 기업에 적합한 금융 방식이다. 그러나 지식재산 담보 대출은 일반적으로 다른 유형 자산 또는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담보로 한 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금융 공급자의 입장에서 지식재산 담보 대출은 여러 가지 투자 옵션 중 하나로 기능한다. 46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 최대의 투자관리회사인 블랙록(BlackRock, Inc.)은 지난해 웨어러블 제품을 판매하는 조본(Jawbone)에 지식재산과 매출채권을 담보로 3억 달러의 자금을 대출해줬다. 주류 투자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지식재산 금융에 진출한 블랙록이 지분 출자 대신에 담보 대출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16년 차 실리콘밸리 기업인 조본이 여전히 지속적인 수익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블랙록은 조본의 성장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실현하는 대신에 지식재산5 등 현재 보유 자산에 더 가치를 두고, 회사에 대한 통제 권한까지 확보하는 안정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3억 달러의 대출금은 블랙록이 미리 정한 마일스톤을 달성해갈 때마다 순차적으로 분할 지급되는 방식인데, 만약 마일스톤이 달성되지 않으면 블랙록은 대출금 지급을 중단하고 기존 대출금을 우선적으로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블랙록은 조본에 대한 통제권한을 강화하면서 자신이 부담하는 리스크는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정책금융에 의한 인위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에 대한 지식재산 담보 대출에서 지식재산만이 독립적인 담보물로 기능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2014년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보고서6 에 따르면, 지식재산은 아직까지 너무 리스크가 큰 자산이라고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지식재산만을 대상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지식재산의 보유는 기업 전체의 투자가치 혹은 담보가치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예컨대, 지식재산을 보유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기업의 전체적인 신용도를 높여 대출 이자율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스타트업에 대한 대출은 연간 50억 달러 규모(2010년 기준), 벤처캐피털 투자가 270억 달러 정도(2007년부터 2012년 평균치)임을 고려하면, 스타트업이 대출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중요한 자금 확보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 1월 금융위가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기술평가시스템 구축 방안을 발표한 이래 기업의 재무 상태뿐만이 아니라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술금융 활성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정책금융과 관련된 기업신용대출을 실행할 때 기업의 기술력 평가를 의무화해서 중소기업의 신용모형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기술금융을 중소기업의 여신 시스템에 내재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기술보증기금과 같은 기술신용평가기관(TCB·Tech Credit Bureau)7 에 의한 기술평가를 거쳐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 기술평가 등급에 따라 대출이자를 최대 3%p까지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기업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 현재 금융위는 이처럼 기존 신용대출에 기술력 평가라는 요소를 포함시키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지식재산만을 담보로 하는 대출을 장려하는 정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산업은행에서는 지난 2013 9월부터 IP 담보대출 상품을 내놓았는데 2015 9월까지 총 122건의 IP 담보 대출을 통해 1632억 원을 중소기업에 지원했으며 기업은행도 2014년에 총 500억 원 규모로 동일한 상품을 출시했다.

 

정책금융에 따른 IP 금융 지원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특히 IP 담보대출과 같은 정책금융 상품을 장기간에 걸쳐 큰 규모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기술혁신기업이 사업화 자금을 보다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기업의 신용평가시스템을 바꾸어 가는 방향성에는 향후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IP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IP 담보 대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이나 TCB 평가를 거쳐 기존 신용대출에 비해 낮은 이자율 부담으로 대출을 받는 방법을 검토해볼 만하다. 이미 신용대출을 받고 있는 경우라면 기존 대출의 조기 상환 수수료와 TCB 대출로 인한 이자율 감소분을 비교해 대출 방식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IP 유동화 (IP-backed Securitization)

지식재산 유동화 또는 증권화는 이미 로열티 수입이 발생하고 있는 지식재산을 대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금융 방식이다. 실제로 이 방식이 구현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지식재산 보유자가 장래에 발생할 지식재산 관련 수입에 대한 권리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거래의 대상으로 하고 일시금을 받는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특허 로열티 유동화의 예를 들자면 특허권자는 유동화 대상 특허의 소유권 또는 그로부터 발생 예정인 미래 수입에 대한 권리를 일시금을 받고 특수목적법인(SPV)에 양도하게 되는데 이때 특허권자에게 지급할 양도대금은 SPV가 투자자들에게 증권(채권) 발행을 통해 모집한 금액으로 충당한다. 이 후 정해진 기간 동안 해당 특허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수입은 SPV가 수령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배분하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지식재산 유동화는 지식재산 보유기관이 파산하더라도 이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고, 같은 이유에서 지식재산 보유기관은 자신의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에도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지식재산이 유동화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장래 수입 발생에 관한 높은 수준의 확실성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어떤 특허 포트폴리오가 다수의 기업과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된 상태에서 현재 안정적 수입이 발생하고 있고 미래에도 불확실성에 관한 변수가 적다면 유동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로열티 수입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 특허에 대해 미래의 가능성에만 의존해서 유동화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지식재산 유동화 사례는 1997년에 발행된 데이비드 보위 채권(David Bowie bonds)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1990년까지 녹음된 총 25개의 앨범에 대한 미래의 저작권 수입을 기초로 한 유동화를 통해 확보된 금액은 5500만 달러였으며, 발행된 채권은 10년 만기에 연이자율 7.9%였다. 당시 해당 앨범들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100만 장 이상이 판매되고 있었으나 8 보위 채권은 음악 산업의 불황기였던 2004년에는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에 의해 정크본드에 가까운 수준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채권만기였던 지난 2007년을 기준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보위 채권은 성공적이었다. 투자자들은 원금과 약속했던 이자를 모두 지급받았고 2007년 이후의 앨범 저작권 수입에 대한 권리는 다시 데이비드 보위에게 돌아갔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국내 최초로 특허 로열티 유동화 계약을 체결했다.9 미래의 특허 기술료 수입에 기초해서 현재 유망 기술 분야의 핵심 특허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1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한 사례다. ETRI는 특허 라이선스를 통해 상당 규모 이상의 기술료 수입을 지속적으로 발생시켜온 신뢰할 만한 이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래에도 ETRI 보유 특허로부터 상당 규모의 기술료 수입이 발생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국제표준 특허풀(patent pool)에 가입돼 상대적으로 안정적 로열티 수입을 내는 특허가 유동화 대상이 된 경우가 있다.10 산업은행은 차세대 비디오 코덱 표준인 HEVC 기술과 관련해 KT가 보유한 특허에 대한 지분을 확보해 이로부터 발생하는 장래의 로열티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과거 MPEG 계열의 비디오 코덱 표준 기술은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HEVC 표준특허의 로열티 수입을 기초로 한 유동화도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다고 본 것이다.

 

앞서 살펴본 지식재산 유동화 사례들은 모두 현재 상당 규모로 존재하는 현금흐름에 기초해 미래의 현금흐름을 예측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식재산 유동화는 다른 종류의 IP 금융방식에 비해 투자자 입장에서 접근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 현재 존재하는 현금흐름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인가를 평가하는 것이므로 기술에 대한 전문적 평가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추정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현재 현금흐름을 발생시키는 특허 등의 지식재산이 있다면 유동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 데이비드 보위는 유동화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자신이 일부 지분만 소유하고 있던 자신의 과거 앨범의 지분을 모두 사들였다. 자기 앨범의 가치가 나중에 더 커질 것을 예상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보위의 이런 결정은 나중에 더 많은 부()를 가져왔다. ETRI는 장래의 특허 로열티 수입을 유동화해서 마련한 자금을 수익화 잠재력이 높은 특허를 확보하는 데 사용했다. 이러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장래에 더 많은 특허 로열티 수입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렵겠지만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해내고 있는 지식재산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보다 높은 수익화 잠재력이 있는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지식재산 유동화를 고려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IP 매각 후 재실시(Sale and License Back)

IP 매각 후 재실시 방식은 주로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 매각 후 재임대(Sale and Lease Back) 방식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세일앤리스백 방식이란 부동산의 소유권을 매각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그 부동산을 임차함으로써 매각대금을 통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대신 부동산 매수인에게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와 유사하게 IP 매각 후 재실시(Sale and License Back·SLB) 방식은 지식재산 보유 기업이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지식재산의 소유권을 매각하는 것과 동시에 매수인에게 일정 기간 동안 로열티를 지급하겠다는 약정을 하는 구조를 갖는다.

 

통상 매도인은 일정 기간 후에 미리 정해진 금액으로 해당 지식재산을 재매입할 수 있는 옵션을 두게 되는데 세무당국에서는 이러한 옵션이 부가된 지식재산 SLB 계약에 대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매매가 아닌 양도 담보로 간주해11 지식재산 양도에 따른 세금이 부과되지는 않는다. 한편 이 방식으로 특허를 매도한 기업 입장에서는 확보한 금액이 장부상에 부채가 아닌 특허 매각 수입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기업의 부채 규모를 늘리지 않고도 필요한 자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산업은행이 아이디어브릿지를 통해 코데즈컴바인과 12 상표권에 대해 SLB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코데즈컴바인은 지난 2013년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본사 사옥 매각을 추진하던 중 일시적으로 가중된 자금운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자사가 보유한 핵심 상표권 88(외부기관 평가액 390억원) 100억 원어치를 산업은행에 매각하고 1년간 일정 비율의 상표 사용료를 지급했다. 현재 해당 상표는 모두 코데즈컴바인이 재매입을 완료한 상태다.

 

 

 

 

 

SLB 계약 방식을 시도하는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 대상 지식재산에 대한 적절한 가치평가를 하는 것은 필수다. 과거 미국의 투자회사인 애벌린(Aberlyn)은 바이오 기업인 로메드(RhoMed) 500만 달러로 평가된 특허를 대상으로 SLB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후 RhoMed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로열티를 지급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애벌린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특허를 제3자에게 매각하려 했으나 이 또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13 이런 사례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재산이 SLB에 적합한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지식재산을 활용하는 SLB 방식은 기존 매각 후 재임대(Sale and Lease Back)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담보의 대상이 되는 자산의 가치에 대한 신뢰가 확고해야 한다. , 대상 지식재산이 현재 수입을 발생시키고 있지는 않더라도 그 자체로 거래가 용이해야 하고, 거래 시에 기대할 수 있는 금전적 가치가 매각대금, 이자, 그리고 거래비용을 합산한 것보다 더 높아야 한다. 애벌린의 경우에는 이 요건의 충족 여부에 대한 사전 검토가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SLB 방식에서는 매각 후 다시 실시허락(License Back)이 이뤄져 매도 기업이 계속해서 로열티를 납부하는 구조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매도되는 지식재산이 매도 기업의 사업수행에 꼭 필요한 요소인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코데즈컴바인의 경우 매도 대상 상표를 사용하지 않고는 의류 판매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이 요건이 만족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요건들을 갖추지 못한 지식재산이라면 SLB 방식의 계약에는 부적합한 대상이라고 봐야 한다.

 

2. IP 금융의 국내외 일반 현황

 

2013년 금융위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지식재산 금융 활성화 방안이 발표된 이래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을 중심으로 기존 보증, 대출 제도를 지식재산 보유 기업에 다소 유리하게 개선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고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로열티 유동화, 세일앤라이선스백 계약 등과 같은 새로운 방식이 시도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정책금융 시행에 따른 변화를 제외하면 과연 국내 지식재산 금융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할 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에 반해 민간 주도로 이뤄지는 미국의 지식재산 금융 활동은 적어도 통계 수치상으로는 활발한 것처럼 보인다. 2015년의 조사결과14 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IP 담보 금융에 활용된 미국 특허는 무려 33만 건이 넘는다. 대출을 제공한 금융기관의 현황은 < 1>과 같다.

 

 

 

 

그러나 이 조사결과를 보고 지난 6년 동안 33만 건이 넘는 미국 특허에 대해 적절한 가치평가가 이뤄지고 이를 토대로 IP 담보 대출이 이뤄졌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기업이 보유한 자산 전체를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면서 특허도 전체 담보의 일부로 활용됐다는 해석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2005년 이래로 S&P 500 기업의 전체 가치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상회하고 있다15 는 점을 고려하면 담보 대출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특허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거시적인 통계 수치를 제외하고라도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재산 금융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반박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지식재산 금융 시장 자체는 아직 성숙기에 도달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지식재산 금융은 결국 지식재산의 시장가치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논할 수 없으며 시장가치는 그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될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미국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지식재산 금융 시장을 갖춰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지식재산 보호에 적합한 지식재산 법 체계와 제도, 사법 및 행정 체계가 자리하고 있다.16

 

한편 중국에서는 지난 2008년 중국 특허청이 지식재산 담보 금융 시범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2014년 한 해에만 무려 489억 위안( 87000억 원)의 자금 대출이 특허를 담보로 이뤄졌고, 519억 위안( 92000억 원)이 상표권을 담보로, 26억 위안( 4600억 원)이 저작권을 담보로 이뤄졌다.17 참고로, 같은 기간 한국에서 유사한 방식의 정책금융을 통해 지원한 지식재산 담보 대출 규모는 약 1100억 원 정도였다.18 지식재산만을 담보로 이뤄지는 대출 규모로는 이제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지식재산 금융 시장이 단기간에 양적 성장을 이룬 데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이 가장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간에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특허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일환으로 금융기관을 직접 통제해 엄청난 규모의 지식재산 담보 대출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예컨대, 2014 2월 중국의 국가개발은행은 중국 펄프·제지업체인 산둥촨린(山東泉林·Tranlin Paper)에 특허 110건과 상표 34건을 담보로 무려 79억 위안( 14000억 원)의 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시책은 같은 기간 자국민에 의한 특허출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기여했고, 그런 면에서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달성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정책금융을 통해 지식재산만을 담보로 대출된 자금들이 과연 회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지식재산 제도와 사법 체계가 과거에 비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산둥촨린의 경우에서처럼 중국 특허에 그렇게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이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과연 대출 실행 시에 담보 대상인 지식재산권에 대한 평가가 적절히 이뤄졌는지 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지식재산 담보 대출을 받은 기업들의 상황이 악화된다면, 과연 중국 금융기관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 나갈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3. IP 금융의 장애 요소 및 제언

 

일반적으로 지식재산 금융이 활성화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자산에 비해 범용성이 부족하다. 지식재산은 특정 회사의 비즈니스와 결합돼 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종류의 IP는 제한된 수요자 그룹에서만 통용될 수 있고, 극단적인 경우 IP를 비즈니스와 분리해 처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극히 일부의 특허만이 동종 또는 이종 비즈니스의 제3자에게도 적용돼 라이선스 수익화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IP 거래 시장이 충분히 발달돼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유동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특허 거래가 가장 활발한 미국의 경우에도 거래를 희망하는 특허의 10% 미만에 대해서만 거래가 이뤄지며 거래에 소요되는 기간은 최소 6개월 이상이다. 유동성이 낮고 불확실성이 큰 자산을 금융의 기초로 하기는 쉽지 않다.

 

셋째, 금융 거래를 위해 투입돼야 할 비용이 높다. 담보 대상물인 IP의 가치평가를 위해서는 기술적, 법률적, 경제적 측면에서 고도의 전문 지식이 동원돼 적절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며, 이는 다른 종류의 자산에 대한 가치평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외에도 가치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성 부족, IP의 자산성에 대한 금융권의 인식 부족, IP 자산 가치의 변화에 대한 예측곤란성19 등도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일반적 장애요소 외에도 국내에는 지식재산 금융의 활성화를 방해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특허 등 지식재산권 보호 체계가 지식재산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허의 경우, 등록된 특허가 무효될 가능성은 통계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략 50∼70%에 이르고, 특허침해 확인을 구하는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의 경우 침해인정비율은 20%대 수준에 머무는 반면 비침해 확인을 구하는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에 따른 비()침해 인정비율은 무려 80%를 넘는다.20 법원에서 특허침해소송에 이기더라도 인정되는 손해배상액은 50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절반 이상이며, 평균 손해배상액은 1억 원 안팎에 불과하다.21 국내에서 과연 특허를 등록받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특허를 포함한 국내 지식재산권은 그 가치가 낮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나마 낮은 가치도 실현 여부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투자 결정에서 보수적 판단을 하게 마련인 금융기관들이 지식재산을 금융의 기초로 활용하리라고 기대해본들 상황이 개선될 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현재 국내 IP 금융의 원동력인 정책금융이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려야 하겠다. 앞서 살핀 TCB 평가를 통한 신용대출이나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 제공하는 IP 담보 대출도 직접 시도해볼 만하다. 장기적으로는 정책금융이 주는 제한적 혜택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IP 금융이 주는 효용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속적으로 변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에 유기적으로 연계된 특허 확보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확보된 특허는 IP 금융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특허 라이선싱 활동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 창출까지 가능하게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식재산이 갖는 가치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투자 대상인 지식재산에 대해 적절한 가치평가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특허의 품질이 아무리 좋더라도 무효화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고, 특허의 유효성이란 지속적으로 변해가는 법 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높은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할수록 극복해야 할 위험요소도 많아지는 법이다. 따라서 안전한 투자를 원한다면 단 한 건의 중요 특허에 투자하기보다는 그런 특허가 적어도 서너 건 이상 포함된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이종 담보물과 결합해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도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지식재산을 보다 전형적인 유형의 담보물(매출채권, 부동산 등)과 결합하거나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재산 간 결합(: 기술 특허와 저작권)으로 이런 본질적인 위험요소를 더욱 낮출 수 있다.

 

맺음말

 

1980년대 이후 미국의 특허권 보호 강화 정책은 미국 특허의 가치를 세계 최고로 올려놓았고,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이후로는 많은 금융 자본이 특허 비즈니스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로써 미국의 특허 비즈니스는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특허괴물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특허괴물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특허권 보호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 유명 지식재산 매거진인 <IAM(Intellectual Asset Magazine)>이 표지 제명을 ‘End of empire(제국의 종말)’로 하고, 19세기 이래로 특허 시장을 지배해온 미국이 이제는 더 이상 그 자리를 자신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22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 변하는 대로 부()를 축적할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카일 바스(Kyle Bass)는 최근 미국 특허제도를 이용해 상장 제약회사의 특허에 무효심판(Inter Parte Review)을 신청하고, 주가에 영향을 줘 시세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과거의 특허 강화 정책이 만들어준 제약 특허의 가치23 를 최근의 특허 약화 정책을 이용해 공격하는 상황이지만 결국 분쟁은 특허가 애초에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특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특허 시장에 돈이 몰려들고, 특허 금융이 저절로 생겨나기만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경우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강제로 특허 시장에 자금을 주입하는 방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런 방법을 추진할 만한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특허 보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허 보호가 강화되면 기술 기반 혁신기업이 핵심 특허를 무기로 대기업은 물론 해외기업과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게 된다. 또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지금처럼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으로부터 특허 로열티를 받고 대등한 위치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 특허는 곧 돈이라는 인식과 신뢰가 확산되고, 결국 요원하기만 하던 지식재산 금융도 설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DBR mini box

 

 

각국 정부의 IP 금융 활성화 대책

 

현재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IP 금융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IP 시장 인프라 구축

영국 정부는 Copyright Hub라는 온라인 저작권 거래 플랫폼을 운영해 사용자들이 웹을 통해 간단한 저작권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있고, 싱가포르 정부는 2013년부터 Global IP Hub 계획의 일환으로 IP 경매, IP 거래 플랫폼, 저작권 거래소 등을 추진하고 있다. 덴마크 특허청도 2007년부터 IP Marketplace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용자가 매각 또는 라이선스를 희망하는 지식재산권을 개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고, 인도와 칠레 정부도 이와 유사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i 우리 정부는 과거 기술거래소의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지식재산 거래소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ii

 

2. IP 금융에 대한 위험 분담

한국을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은 지식재산 금융에 대한 위험 분담을 위해 지식재산이 담보의 대상이 되는 대출에 대해 우대 금리를 적용하거나 보증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개발은행이 적극적으로 지식재산을 담보로 받아들여 담보물의 가치에 관한 위험부담을 그대로 떠안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와 유사한 모델을 그 세부 방식이나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일본, 브라질 등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3. IP 가치평가 시스템 개선

지식재산 가치평가에 대한 신뢰 부족은 지식재산 금융의 중요한 장애 요소 중 하나다. 가치평가에 대한 신뢰성 제고를 위해 유럽위원회의 가치평가 전문가 그룹은 EU 차원에서 가치평가를 수행할 자격을 갖춘 전문가를 심사해서 등록하는 제도의 운영을 제안한 바 있다. 이와 유사하게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IP 가치평가 자격 인증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표준화된 가치평가 방법에 대한 공식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하는 것으로 IP 가치평가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Tips for Practitioners

 

IP 금융 활용에 관한 조언

 

● 기업 입장

① 비즈니스 전략과 특허를 연계하라. 지속적으로 변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에 따라 특허 확보 전략 역시 변화해야 한다.

② 단순 담보물이 아니라 수익화 도구로 활용하라. 지식재산이 독립적으로 담보가 될 수준이라면 범용성이 높고 처분이 용이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제3자에게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 투자자 입장

① 개별 특허건보다는 특허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라. 특허의 유효성이란 지속적으로 변해가는 법 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안전한 투자를 원한다면 단 한 건의 중요 특허에 투자하기보다는 그런 특허가 적어도 서너 건 이상 포함된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② 이종 담보물과 결합해 투자 리스크를 줄여라. 특허와 매출 채권, 특허와 부동산처럼 전형적인 유형의자산과 특허를 결합하거나 특허와 상표 혹은 특허와 저작권 등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재산 간 결합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최민서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식재산활용실장 choims@etri.re.kr

 

필자는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KAIST에서 석사 학위(정보통신공학)를 받은 후 바이오 및 뇌 공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부터 변리사로 지식재산 업무를 시작해 현재는 ETRI에서 특허 라이선스, 소송, 기타 IP 기반 수익화를 총괄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특허 로열티 유동화 계약을 체결했으며 영국의 저명한 지식재산 관련 매거진 <IAM(Intellectual Asset Magazine)>에서 해마다 선정하는 ‘IAM Strategy 300 - 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 2014년과 2015년 잇따라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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