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42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인수에 필요한 자금 6조4000억 원의 대부분을 외부 차입을 통해 조달했다.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이 총 2조9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의 대부분을 금융권 차입과 채권 발행을 통해 직접 조달했고 나머지 자금 3조5000억 원은 미래에셋 등의 펀드와 연기금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재무적 투자자라고 불리는 이 펀드들과 연기금들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준 자금은 대출이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공동으로 대우건설 주식을 인수하면서 그 주식의 의결권을 금호아시아나에 위임한 것이다. 대신 금호아시아나는 인수 후 3년이 되는 시점에 그 주식을 주당 3만4000원 정도의 가격에 다시 사주기로 하는 풋백옵션 계약을 재무적 투자자들과 맺었다.1
그런데 약속한 3년이 지난 2009년 말, 2008년 발발한 세계금융 위기의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가 불과 1만 원대 초반의 가격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러니 이 주식을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3만4000원에 사들이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금융위기 때문에 직접 조달한 차입금(그림 1의 ①)의 이자 내기도 벅찬 상황이었던 터라 금호아시아나는 풋백옵션 계약 이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권이 인수금융을 제공했던 산업은행 등 채권단 손으로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까지 벌어져 그룹의 위상이 크게 하락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대우건설의 인수과정을 살펴보자.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크게 <그림1>에서 ① 대출과 ② 재무적 투자자들의 공동 지분인수 형태를 통해 조달됐다. 사실 이는 M&A를 위해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방법은 아니다. 이를테면 다른 형태의 자금 조달 방법도 있다. 2008년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했을 때 유진그룹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총 1조9500억 원의 인수자금 가운데 유진그룹의 직접투자금액은 5100억 원 정도였다. 5100억 원 중 약 3000억 원은 유진그룹이 우리은행에서 직접 차입해서 마련했다. <그림2>의 ①에 해당한다.
유진그룹은 이 금액을 투자해서 특수목적회사(SPE·Special Purpose Entity)인 페이퍼컴퍼니 유진하이마트홀딩스를 설립해서 자회사로 뒀다. 이 페이퍼컴퍼니는 금융회사들로부터 총 1조3000억 원을 차입했다. (그림 2의 ②) IMM PE와 H&Q PE 등 사모펀드의 재무적 투자자들이 3000억 원을 투자해 전환사채를 인수했으며(그림2의 ③), 하이마트의 전문경영인이었던 선종구 회장이 900억 원을 투자해서 우선주를 인수했다. (그림2의 ④) 이런 과정을 통해 총 1조9500억 원의 자금이 마련됐고 이 자금이 어피니티 에퀴티 파트너스 PE로부터 하이마트를 매입하는 데 사용됐다. 선종구 회장은 과거 종업원들과 함께 종업원지주제 형태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하이마트를 어퍼니티 에퀴티 파트너스 PE에 매각했던 당사자였으므로 몇 년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하이마트를 사들이는 데 참여한 셈이다.
인수 후 유진하이마트홀딩스와 하이마트는 합병됐다. 재무적 투자자들은 하이마트가 2011년 6월 상장될 때 보유하던 전환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한 후 대부분 매각해서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상당한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유진그룹 또한 상장 당시 일부 지분을 매각했기 때문에 <그림2>에서 ①의 차입금도 이때 지분매각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일부 상환했을 것이다. 특수목적회사인 유진하이마트홀딩스가 금융회사에서 직접 차입한 ②의 자금은 하이마트와 유진하이마트홀딩스의 합병 후 하이마트의 보유자금으로 일부 상환하고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도 상환했다. 그 결과 상장 직전인 2010년 말 166%였던 하이마트의 부채비율은 상장 직후인 2011년 9월 말 90% 수준으로 낮아졌다. 남은 부채 또한 하이마트가 벌어들이는 자금으로 상환해가면 된다.
차입매수와 관련된 법적 위험
통상 이런 방식으로 실체 없는 SPE가 금융권에서 차입할 때는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담보가 없이는 조 단위의 막대한 자금을 빌려줄 금융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인수 사례에서 담보는 SPE가 매입하는 피인수회사(이 사례에서는 하이마트가 된다)의 주식이다. 즉 아직 인수하지 않은 피인수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동시에 해당 회사 주식을 인수해서 담보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차입매수(LBO·Leveraged Buy Out)라고 부른다.
이런 경우는 합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피인수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해당 회사를 인수하는 LBO(예: 2003년 S&K의 신한 인수, 2004년 C&그룹의 효성금속이나 우방 인수, 2011년 셀렌에스엔 등의 한글과컴퓨터 인수)는 불법으로 본다. 나중에 피인수회사가 벌어들인 자금이나 피인수회사의 보유 자산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데 있어서는 양자가 다를 바 없는 데도 말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 인수회사는 거의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피인수회사에만 상당한 위험부담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피인수회사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 행위로 간주해서 업무상 배임으로 본다.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행위라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M&A가 성공해서 회사가 더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과정이 불법이면 모두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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