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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 만병통치약 아니다

최종학 | 51호 (2010년 2월 Issue 2)

 
2009년 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은 인도 뭄바이의 빈민 청년인 자말 말라끄다. 영화의 줄거리는 ‘엄청난 상금이 걸린 퀴즈 대회에 참가한 자말이 기적적으로 문제를 모두 맞춰 2000만 루피(약 6억 원)의 상금을 받고 헤어졌던 연인 라티카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8개 부문을 휩쓸었고, 전 세계적으로도 총 88개 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서 자말은 미국 회사의 아웃소싱(outsou-rcing)을 받아 콜센터를 운영하는 인도 회사에서 차를 나르는 심부름꾼으로 일한다. 자말이 동료의 부탁을 받고 대신 전화를 잠깐 받는 장면이 나온다. 전화를 건 미국 고객은 자말과 통화를 하다가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자 ‘혹시 인도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거 아니냐’며 화를 낸다. 이에 자말은 ‘당신 옆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고 둘러대지만, 고객은 화를 내며 매니저를 부르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영화에서는 그 이후 상황이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전화를 끊은 그 고객은 더 이상 해당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해당 회사의 서비스에 관한 불만과 험담을 퍼뜨릴 게 분명하다. 아웃소싱의 문제점을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 사례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불기 시작한 아웃소싱 바람은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선전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비용 절감을 꾀하는 많은 선진국 기업들이 부품 아웃소싱을 목적으로 한국 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 제품은 중국 제품보다 비싸지만 품질이 좋고, 일본 제품과는 품질이 비슷하지만 보다 저렴하다. 한국의 부품 기업 중에는 금융위기 때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초기의 아웃소싱은 생산 과정의 일부를 아웃소싱하는, 즉 부품이나 반제품을 외부 업체로부터 공급받는 일을 뜻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1970, 1980년대까지 소니, 히타치, 파나소닉 등에 OEM 제품 및 부품을 납품하며 오늘날 발전의 기틀을 쌓았다. 세계 최대 스포츠 용품 업체인 나이키는 의류나 신발 품목에 관해서는 본사 말고는 별도 생산 공장을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키는 본사에서는 제품 개발이나 광고, 회계 등의 업무만 수행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납품받는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델 컴퓨터는 자체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생산이라기보다는 조립 수준에 가깝다.
 
즉 수많은 납품 업체에서 공급받은 부품들을 모아 조립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한국의 이랜드 그룹도 제품의 디자인과 원재료 공급, 판매망 등은 본사가 담당하지만 제품 생산은 전적으로 외주 업체가 담당한다. 본사가 생산 설비에 큰 자금을 투자할 필요가 없고, 운영 인력도 줄일 수 있어 환경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 단계의 아웃소싱이 바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등장한 콜센터 아웃소싱이다. 최근의 아웃소싱은 이보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연구개발(R&D) 등을 아웃소싱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델이나 보잉 모두 인도의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들에게 프로그램 개발을 의뢰하고 있다. 인도뿐 아니라 일본에도 기술 개발 전문 회사들이 성업 중이다.
 
아웃소싱이 유행한 이유
아웃소싱이 오늘날처럼 유행한 건 미국 경제가 불경기에 접어든 1980년대 이후부터다. 오일쇼크 전까지 미국 경제는 유례 없는 성장을 계속했다. 당시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생산 시설을 대규모로 확충하고, 자동화 생산 시설로부터 나온 고품질의 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했다. 설비에 대한 막대한 투자 때문에, 생산원가 중 고정원가가 높고 변동원가가 낮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즉, 고정원가인 생산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비 비중은 높지만 변동원가인 제조 인력의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낮은 형태였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일단 판매량만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이익이 급속히 늘어난다. 판매량이 늘어도 고정비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에 소요되는 총원가(고정비+변동비)는 판매량이 늘어난 것만큼 크게 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다 석유 파동 이후 전 세계에 걸친 불경기 속에 일본 기업들이 급성장하자 미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수요가 감소해도 고정원가 비중이 높았기에 제품의 생산원가는 크게 줄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 회사들은 존속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손실을 입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이 바로 아웃소싱이다. 생산 설비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고정원가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아웃소싱으로 외부에서 부품이나 반제품을 구매하면, 이 구입비는 고정원가가 아니라 변동원가로 바뀐다. 아웃소싱을 통해 고정원가를 줄이고 변동원가를 늘리는 방향으로 원가 구조를 변화시킨 셈이다. 그 결과, 손익분기점이 과거보다 훨씬 낮아졌다. 미국 기업의 매출액 자체는 과거 세계 시장을 독점할 때보다 줄었지만, 적은 규모로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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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학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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