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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코로나19 진단 키트 글로벌 선두주자 ‘씨젠’

2주 만에 키트 개발 ‘기술 내공의 힘’
속도•정확성•편리함 갖춘 K 방역 주역

이규열,김윤진 | 311호 (2020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씨젠이 코로나19 진단 키트로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수익과 명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전략적 민첩성을 발휘해 단 2주 만에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개발했다. 1)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하기도 전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개발을 개시한 ‘전략적 민감성’ 2) 과감한 결단으로 조직원의 집단적 몰입을 유도한 ‘리더십 통합’ 3) 다른 제품 개발을 중단하고 가용 인력과 시설을 총동원한 ‘자원 유동성’ 등 세 요소가 합을 이뤄 기민한 대응을 이끌어냈다.

둘째, 2006년부터 약 15년간 쌓아온 분자진단 기술력으로 경쟁사의 진입 장벽을 구축했다. 1) 정확하고 효율적인 진단을 가능케 한 ‘동시 다중 진단 시스템’ 2) 개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연구진의 부담을 줄여준 ‘AI 자동화 프로세스’가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1월 말 한겨울에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없어 이틀 동안 라면으로 때웠습니다. 힘들고 졸리지만 서로 웃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팀원들을 보며 신뢰를 확인했죠. 새벽 이른 시간에 제품 접수를 위해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 내려가는 차 안에서야 잠깐 동안이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접수를 마치고 의식이 몽롱하면서도 몸이 날아갈 듯한 가뿐함을 느끼며 본사로 돌아왔는데 그때 몽롱한 상태로 팀원들과 함께한 점심 식사의 감미로운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진단 키트로 알려진 분자진단 기업 씨젠 개발팀의 어느 부장이 떠올린 2020년 2월이다.

그렇게 2020년 2월, 코로나19 진단키트 ‘Allplex 2019-nCoV Assay’가 출시됐다. 1월 초 223위였던 씨젠의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는 7월20일 2위까지 치솟았다. 불과 반년 만의 일이다. 순위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코로나19 진단 키트 덕분에 씨젠이 명실상부한 코스닥 바이오 대장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시가총액뿐 아니라 실적도 급증했다. 증권업계는 씨젠의 올해 영업이익을 작년 대비 약 26배 성장한 5946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씨젠이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개발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단 ‘2주’다. 2주 만에 개발한 제품이 국내 점유율 과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국내 매출도 전 세계 매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전체의 10%도 채 안 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인정받은 분자진단 기술력으로 현재 씨젠이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수출하고 있는 국가만 67개국1 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씨젠이 발 빠른 제품 개발로 국내외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씨젠의 이민철 부사장을 만나 전 직원의 몰입이 이끌어 낸 코로나19 진단 키트의 개발과 생산, 그리고 씨젠만의 독자적인 분자진단 기술력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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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민첩성 발휘해
코로나19 진단 시장 선점

IT 기업이 2주 만에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바이오 기업이 2주 만에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바이오 업체는 통상 작업 속도가 빠르지 않다. 분자진단 키트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서 통상 7년 이상 경력의 석•박사 연구원들이 67단계의 실험을 거쳐 1년 이상 매달린다. 이 기간을 2주로 단축한 씨젠의 성과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씨젠이 코로나19 진단 시장의 선발주자로 치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략적 민첩성(Strategic agility)2 을 발휘한 결과다. 전략적 민첩성이란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 맞춰 기민하게 전략의 방향성을 바꾸는 능력을 뜻한다. 전략적 민첩성을 갖춘 기업은 선제적인 움직임으로 신사업 분야에서 지속적이고 차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전략적 민첩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민감성(Strategic sensitivity), 리더십 통합(Leadership Unity), 자원 유동성(Resource Fluidity)이라는 세 요소가 합을 이뤄야 한다. 씨젠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된 배경에도 이 세 요소의 유기적 결합이 있었다.

1. 전략적 민감성

씨젠의 전략적 민감성은 복합적인 경영 환경의 변화를 인지하고, 즉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힘이 됐다. 국내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건 2020년 1월20일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코로나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2019년 12월, 씨젠의 임직원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에 주목했다. 발단은 학술 마케팅팀의 한 직원이 낸 아이디어였다. 이 직원은 중국 현지 뉴스에서 우한을 중심으로 신종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국내에서도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팀 내부에 건의했다. 진단 수요가 발생하기 전에 한발 앞서 키트를 개발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통상 신제품 출시나 신사업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심의하는 데는 최소 6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만큼 이 제안이 즉시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2019년 12월 말, 드디어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국내에서도 전파를 탔다. 감염병의 전염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신호가 국경을 넘어 포착된 것이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천종윤 씨젠 대표는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오기 나흘 전인 2020년 1월16일, 임원 회의에서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에 착수할 것을 미래기술연구소(현 개발자동화연구소)에 지시했다. 평소였다면 직원의 제안을 실행에 옮기기에 앞서 국가별•질환별 시장 규모와 예상 매출, 학술적 가치, 연구개발 역량 등을 철저히 분석했어야 맞다. 그러나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을 앞두고는 시장 분석을 위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천 대표 입장에서도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다.

심지어 당시만 해도 WHO조차 코로나19의 사람 간 전파는 제한적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제품 개발에 섣불리 뛰어들기엔 위험 부담이 있었다. 감염병이 한 지역에 국한돼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경우, 개발된 제품을 전량 폐기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씨젠은 2015년 메르스 때도 메르스 진단 키트 제품을 준비했다가 사태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정되면서 충분한 수익을 거두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천 대표를 필두로 씨젠의 경영진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시장을 선점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씨젠은 폐렴, 결핵과 같은 호흡기 감염증 진단 키트 제품 라인을 갖고 있었고, 코로나19가 강한 유행성 호흡기질병으로 번질 경우 선발 주자가 누리게 될 수익은 너무도 명백했다. 당장이라도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기술력의 우위를 갖추고 있었던 회사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이에 천 대표는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에 착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2. 리더십 통합

리더십 통합은 결정과 동시에 제품 개발을 일사천리로 이끌어 냈다. 리더십 통합이란 과감한 결단으로 역량을 한데 집중시켜 조직원들의 집단적 몰입을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씨젠은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기 전인 1월16일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1월27일, 질병관리본부는 씨젠을 비롯한 국내 체외 진단기 업체들을 소집해 이틀 후인 1월29일 코로나19 진단 제품에 대한 제1차 허가 접수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이틀이라는 짧은 기한 내에 완제품의 스펙과 임상 개시에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제출하라는 통보였다. 질병관리본부가 검체 샘플 등을 모두 관리하고 있었던 만큼 임상에 진입하고 제품 인허가를 빠른 속도로 받아내려면 정부 요구 사항에 맞춰야만 했다. 현실적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접수하기에는 턱없이 버거운 일정이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던 많은 업체는 기한 내 서류 제출을 포기했다. 더욱이 업계에서도 그때까지는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이 과연 투입비용 대비 수익을 보장해줄지에 대한 의구심이 짙었고, 성급히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회의론도 나오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씨젠 경영진은 어느 정도 예측하던 상황이었다. 천 대표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면 손에 쥔 것을 포기해서라도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이어 단시간 내에 인력이나 생산 설비 등 자원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연구소에서 진행 중이던 모든 기존 제품의 개발을 중단했다.

직원들에게 경영진의 비전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 뛰어드는 동시에 기존 사업까지 중단하는 만큼 내부의 동요나 염려가 없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늘어난 업무량을 부담으로 느끼고, 회사 자체의 존속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에 대표는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한 이후 약 2주간 매일 아침 주요 임원들과 회의를 가졌다. 그날의 경영진의 메시지는 팀장들을 통해 직원들에게 전달됐다. 메시지의 골자는 “손해 봐도 괜찮다. 일단 하자”였다. “진단 키트 제조사로서 진단 제품을 개발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씨젠의 경영 철학이 반복적으로 사내에 공유됐다. 통제 밖의 상황을 걱정하기에 앞서 일단 코로나19라는 공통의 적에 효과적으로 맞서는 게 급선무라는 대의명분이 거듭 강조됐다.

그 결과 원자재 조달, 품질 관리, 인허가 등 필요한 작업을 위해 제품개발팀을 비롯해 모든 부서가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료 조달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이 컸다. 실험 재료를 긴급하게 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기존에 계약이 안 된 회사와의 거래가 필요했다. 구매팀의 한 부장은 “원자재 업체들은 씨젠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일부 재료 납품까지 몇 주 소요된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임직원이 수차례 찾아가 생산 건물 청소까지 해주면서 설득한 결과 가까스로 납품 일정을 당길 수 있었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이는 당시의 어려움과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모든 직원이 매달린 덕분에 무사히 질병관리본부가 통보한 기한 내에 완제품을 개발하고 허가를 신청할 수 있었다. 빠듯한 일정에 맞춰 서류를 제출한 국내 기업은 씨젠과 코젠바이오텍, 이 두 기업뿐이었다. 이후 제품은 임상시험을 거쳐 2020년 2월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승인을 받았다. 그렇게 2월18일 씨젠의 코로나19 진단 키트가 국내 시장에 출시됐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유럽체외진단키트인증(CE-IVD)을 획득해 유럽을 중심으로 약 30개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며 전 세계 수출도 본격화했다.

3. 자원 유동성

변화에 발맞춰 자원을 즉각 바꿔 운영하는 능력인 자원 유동성도 씨젠의 민첩한 시장 진입을 가능케 했다. 성공적인 제품 출시로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2020년 3월, 씨젠은 한 차례 더 비상 경영을 선포해야 했다. 코로나19가 국내외로 빠르게 확산돼 진단 키트 주문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대 생산 가능 수량은 한 달에 수천 키트(1개 키트는 100명 검사 분량) 수준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악화로 하루에 수천 키트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내외 영업팀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키트 생산량 앞에 혼란에 빠졌다.

이에 사내의 모든 자원이 동원됐다. 전사 인력 중 각 부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산에 투입됐다. 포장 직전 키트 뚜껑을 닫는 작업이나 단순 포장 작업 등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 없는 일은 업무와 직급을 막론하고 모두 함께했다.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매일 늦은 밤까지 생산 작업이 이어졌다. 영업팀까지 생산 지원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당시 30여 명의 인원이 세 팀으로 나뉘어 약 5시간 동안 8000키트를 포장했다.

냉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키트의 특성 때문에 쌀쌀한 날씨에도 18도 에어컨 강풍 속에서 임직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제품 박스를 포장했다. 진단의 속도가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앞서야 방역이 성공하고, 이후에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책임감의 열기가 냉방을 압도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 심각 단계에 접어들었던 4∼5월에는 제품 포장 및 운반, 보관 과정 등에 임직원뿐만 아니라 임시 기간제 인력 300여 명이 참여했다. 임시직 인력은 각 대학의 생명과학 연구실을 통해 모집했고,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신규 인력 채용, 생산 공간 확장 및 시설 자동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생산시설은 2개 건물에 걸쳐 확충됐고,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 인력도 3배로 늘렸다. 지금은 신설 공장에서 주당 500만 테스트까지 안정적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생산 시설을 집약하고 진단 장비를 포함해 다양한 제품의 생산 능력을 높이고자 경기도 하남시에 생산공장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진단 키트라는 새로운 시장이 나타나자마자 씨젠은 전략적 민첩성을 발휘해 2주 만에 제품 개발에 성공하고 시장 리더로 자리 잡았다. 2020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오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진단 키트 개발에 나서 국내에만 20여 곳이 넘는 경쟁사들이 등장했지만 후발주자들의 공세에도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옥석 가리기의 틈새에서 옥석임을 입증한 것이다. 1분기에만 전년도 전체 매출의 70%를 달성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도 전체의 약 2배다. 심지어 이는 코로나 관련 매출 중 35%만 반영된 실적이었다.

DBR mini box I : 씨젠의 조직문화
“정년 없어요… 체력 다할 때까지 같이 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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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철 부사장에 따르면 씨젠이 2주 만에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약 30배 이상 늘어난 물량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이탈하지 않았다. 각자가 맡은 업무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이 부사장은 이 같은 적극적 참여의 배경으로 회사의 조직문화를 꼽는다.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인사하고, 직원이 코로나19 발발 이전 300여 명 수준에서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여전히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씨젠의 조직문화는 크게 심리적 안전감(Psycholosical Safety), 유연성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이 부사장의 말을 종합하면 이 두 가지가 위기 상황, 즉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바이오 헬스케어 조직의 결속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심리적 안전감은 팬데믹과 같이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위험을 마주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조직원 사이 신뢰와 유대감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심리적 안전감을 보장하기 위한 사내 제도가 있나.

사람을 먼저 자르지 않는 무정년 제도가 대표적이다. 씨젠은 조직원 모두를 인재(talent)로 본다. 사실 타고난 인재는 드물다. 인재가 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약점이 있고, 회사의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씨젠에 들어온 순간 모두가 인재로 대우받는다. 인재가 되는 데 있어 나이,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 회사에 정년이 없는 이유다. 자기 역량껏 회사에서 주어지는 모든 기회를 통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면 된다. 나 역시도 다른 회사에서라면 퇴직했을 나이에 입사했다. 당시 천종윤 대표가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라. 단지 본인의 체력이 다해서 일을 못하게 될 때, 그때가 정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회사에 들어오는 모든 직원에게 똑같이 말한다.

인재 개발을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어느 정도 숙련도가 높아지고, 자기 발전을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직원들에게는 대학원을 다니도록 지원해준다. 또한 각 부서의 연구 또는 업무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이를 공유하는 세미나가 계속 열린다. 자기 부서가 아니라도 씨젠 직원이라면 누구든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다. 나 또한 지금 하루 6∼7개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언제든 모르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이것이 씨젠에서 일하는 방식이다. 씨젠은 분자생물학뿐 아니라 통계, 물리, 화학, IT 등 각 분야 전문가가 모이고 섞이는 용광로다.

실제 부서 간 협업의 결과물이 현장에 적용되는가.

사내 아이디어 공모제도 ‘BIG Program(Beneficial Idea Grant, 아이디어 제안 활성화)’을 통해 협업에서 제안된 아이디어들이 현장의 실무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내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되는 아이디어 중 타당성을 검토해 회사 전체에 공개한다. 분기별로 3∼4개의 아이디어가 선발되는데 그중 생산 시스템이나 개발 선진화 등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들은 발전시켜 실제 현장에 적용하고, 공모한 직원들에게는 포상도 한다.

특히 젊은 직원들의 ‘룬샷’에 크게 관심을 갖는다. 룬샷은 터무니없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다. 다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한참 후에 혁신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중학교 때 본 ‘007’ 영화에서 실시간으로 길을 찾아주는 장치가 등장했을 때 다들 코웃음 쳤다. 당시만 해도 지도로만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GPS는 필수품이 됐다. 마찬가지로 당장의 먹거리가 아니어도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들을 공유하도록 적극 장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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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규모 채용으로 급격히 몸집이 커졌다.

2019년 말 전체 직원이 320명이었다. 올해 말까지 400명을 추가 채용할 예정이다. 갑작스럽게 회사가 성장해 신입 사원들도 불안감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들 막상 들어오면 스스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팀과 함께 일하면서 배울 점도 많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성장할 기회가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업계 대비 신입 사원 퇴직률이 낮은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

후발주자 추격 따돌린 분자진단 15년 기술력

코로나19 진단 키트의 성공은 언뜻 우연처럼 보인다. 팬데믹 속에서 급성장한 ‘코로나 수혜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씨젠이 하루아침에 이 기술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씨젠이 정확도 높은 진단 키트를 신속하게 개발해내고 시장을 사로잡은 것도 코로나19 한참 이전인 2006년부터 분자진단 기술 한 우물만 파 왔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15년간 쌓아온 동시 다중 진단, 진단 자동화 등의 기술력이 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을 뿐이다.

씨젠은 2000년 처음 유전자 관련 사업을 하는 벤처로 설립됐다. 이 과정에서 2005년 유전자 증폭 원천 기술인 DPO(Dual Priming Oligonucleotide)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해당 기술을 사용하면 원하는 유전자만을 증폭시킬 수 있다. 2006년에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분자진단 사업 진출을 결심했다. 이후 2009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2010년 코스닥에 입성했다. 이어 원천 기술인 TOCE3 , MuDT4 를 각각 2011년, 2014년 개발에 성공해 다중 분자진단 시대를 열었다.

현재 씨젠은 분자진단 제품 개발을 위한 인공지능(AI) ‘올리고’를 바탕으로 △타깃 바이러스만을 선별적으로 동시 다중 증폭하는 기술 △여러 개의 타깃 바이러스를 한 번에 검출하는 기술 △바이러스 종류와 함께 정량까지 산출하는 기술 △최종 진단 결과를 자동 판독해 감염 여부를 정확히 진단하는 기술 등 진단 전 과정에서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1. 정확성과 효율성 모두 잡은 동시 다중 진단

씨젠 코로나19 진단 키트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것이 동시 다중 진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진단의 정확성과 신속성이다. 동시 다중 진단 기술은 한 번에 여러 종류의 목표 유전자를 검사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분자진단에서는 각각의 유전자를 따로 검사해야 한다. 목표 유전자가 늘어날수록 검사를 위한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대량 검사는 어려워진다. 그러나 씨젠의 동시 다중 진단 기술을 사용하면 하나의 시험관에서 여러 종류의 목표 유전자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다.

WHO의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 지침은 유전자 2종(E gene, RdRp gene)을 목표 유전자로 지정했다. 대부분의 타사 제품은 해당 2종의 유전자만을 다룬다. 그러나 씨젠의 코로나19 진단 키트는 목표 유전자 1종(N gene)을 추가로 검사했다. 비영리 단체인 FIND5 발표에 따르면 씨젠의 코로나19 진단 키트는 목표 유전자 3종에 대한 임상 민감도6 와 특이도7 가 모두 100%로 나타나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정확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더불어 씨젠의 코로나19 진단 키트는 검사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유전자(Exo IC)도 추가로 검토한다. 총 4종의 유전자를 검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2종만 검사하는 타사 제품보다 결과의 정확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RNA 바이러스8 인 코로나19의 빠른 변이에도 대비가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9월에는 8종의 바이러스를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했다. 급증한 생산량으로 정신이 없던 2020년 봄부터 독감 유행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에 나선 신제품이다. 이 제품은 코로나19바이러스와 동시에 인플루엔자 독감 A•B형,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영유아에서부터 전 연령층에 걸쳐 감기와 중증 모세기관지페렴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 A•B형까지 진단할 수 있다. 매년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독감이 유행한다. 2017년부터 2018년 겨울에는 미국에서만 90만 명의 독감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8만 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와 독감의 증상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정확한 치료와 방역을 위해서는 코로나19와 독감을 구별해낼 진단 기술이 필요하다. 이 부사장은 “하나의 시험관으로 보통은 1종의 유전자를, 많아야 4종의 유전자를 잡아낸다. 10종 가까운 목표 유전자를 가려내는 건 씨젠만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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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진단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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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진단에는 분자진단과 면역화학진단 두 가지 방법이 주로 이용된다. 분자진단은 정확하지만 전문 장비를 필요로 하고, 상대적으로 진단 시간이 길다. 반면 혈액을 활용하는 면역화학진단은 장비가 필요 없고 빠르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 분자진단 기술이 표준 검사법이지만 면역화학 기술인 항원검사, 항체검사가 보조 검사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2. 분자진단 상용화 이끈 자동화 프로세스

씨젠의 또 다른 강점은 자동화 프로세스다. 자동화는 분자진단 기술 상용화를 위해 씨젠이 공을 들이는 영역이다. 이 부사장은 “그간 많은 연구 조직을 겪었지만 씨젠만큼 자동화에서 앞서나가는 조직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분자진단 기술은 정확성과 신속함으로 ‘정밀 의료의 꽃’이라고도 평가받는다. 그러나 효과만큼 빠르게 보급되지는 못했다. 고가의 장비를 새로 들여야 하고 진단 비용이 비쌌기 때문이다. 분자진단 기술이 대중화되기 위해선 의료계와 환자들의 부담을 줄여야 했다. 씨젠은 그 해답을 자동화에서 찾았다. 자동화로 개발 비용을 낮추면 검사 비용도 당연히 낮아진다. 마찬가지로 검사 과정이 자동화되면 사용이 간편해져 의료진 입장에서도 분자진단을 도입할 유인이 생긴다.

씨젠은 2018년 AI를 활용한 분자진단 시약 개발에 성공했다. 생물학, 화학, 통계학, 컴퓨터공학 등 전문가 130여 명이 참여해 약 15년간의 씨젠의 분자진단 기술을 디지털화하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작업이었다.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2주 만에 개발하는 데 있어서도 이 AI 시약 개발 자동화 시스템의 역할이 컸다. 중국 학계와 질병관리본부에서 공개한 코로나19 염기서열을 바탕으로 씨젠의 AI 시약 개발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해 100명의 전문가가 3개월 동안 해야 할 분량의 작업을 3시간 만에 처리했다.

씨젠의 진단 자동화 플랫폼은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크게 줄여주기도 했다. 환자로부터 채취한 샘플이 검사실에 도착하면 핵산 추출부터 PCR 검사9 , 결과 판독, 집계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 검사 자동화 프로세스 덕분에 한 곳에서 하루 최대 7만 건 정도의 검사가 가능한데 이는 수작업 대비 10배 이상 높은 검사 효율이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 또한 방지할 수 있다. 의료 현장의 전산 시스템과 씨젠의 진단 자동화 플랫폼의 연결이 용이하다는 점도 의료진의 진료 편의성을 높였다.

코로나19 이후의 씨젠

씨젠은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코로나19 진단 키트의 시장성을 예민하게 파악했고, 기존 사업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으로 내부 역량을 집중했다. 부족한 물적 자원, 인적 자원은 조직 내부, 외부 가릴 것 없이 발로 뛰며 확보했고, 전략적 민첩성을 발휘해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2주 만에 개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5년간 쌓은 씨젠의 분자진단 기술력이 시장의 안정을 이끌었다. 동시 다중 진단 시스템은 정확하고 효율적인 진단을 가능케 했고 분자진단 상용화를 이끈 자동화 프로세스는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다. 실제로 2020년 11월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에 씨젠 주가가 급락했을 정도로 시장의 평가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현황이나 확진자 추이에 따라 요동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19 진단 키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인력을 채용하고 생산 라인을 확충해왔는데 시장이 축소되면 오히려 커진 몸집이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급성장한 것은 맞지만 그전부터 분자진단 시장은 체외 진단 시장 가운데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었고 회사의 늘어난 장비와 플랫폼은 코로나19 외에 모든 분자 제품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게 씨젠 측 설명이다. 아울러 회사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씨젠의 장비와 플랫폼을 도입한 고객들이 호흡기 질환, 급성 설사, 인유두종, 성매개 감염 질환 등 타 증상 제품 라인으로 사용을 확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가령, 씨젠의 PCR 장비의 작년 판매 대수가 255대였는데 2020년 1, 2분기에만 각각 226대, 303대가 판매된 만큼 향후 록인(Lock-in) 효과에 따라 꾸준한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원래 세계 분자진단 시장은 3개 기업(Roche Diagnostics, Hologic, Qiagen)이 51%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 구조였다. 자연히 규모가 영세한 국내 업체들이 힘쓰기 어려웠다.10 그러나 코로나19로 K방역의 우수성과 더불어 씨젠의 분자 키트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씨젠의 입지가 확장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씨젠은 분자진단 상용화를 넘어 생활화를 바라본다. 씨젠이 그리는 미래에는 누구든 비용과 지역에 상관없이 분자진단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병원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 동시 다중 진단이 자가 검체 채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방지해주기 때문에 택배로 키트를 받아 집에서도 정확히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검사 결과를 모바일 앱으로 받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애플이 처음 스마트폰 시장을 열었을 때 다들 그 쓸모를 의심했지만 이제 스마트폰은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 마찬가지로 씨젠이 ‘분자진단의 애플’이 돼 인류 생활 건강과 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부사장이 밝힌 씨젠의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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