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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경영

게임으로 엿보는 ‘이미 와 있는 미래’

이경혁 | 305호 (2020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게임은 상상력의 한계가 없다. 그래서 게임 속에는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산업 발전의 과정이나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생산 시스템이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됐을 때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1차 산업혁명의 이상적 모습을 그린 게임 ‘룸’부터 2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대량 생산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는 ‘문명’, 자동 생산 시스템을 게임에서 구현한 ‘팩토리오’까지 지난 게임에는 산업 발전 과정이 담겨 있다. 또한 최근 출시되고 있는 게임들에는 드론, 로봇,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이 바꿔놓은 미래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 게임은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상황과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은 현재진행형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고 실제 성공적으로 도입한 사례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4차산업혁명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는 이미 많은 곳에서 다룬 바 있어 이 코너를 통해 소개하기에는 진부해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 게임 매체가 1차, 2차, 3차, 4차 산업혁명 전반에 걸친 변화의 의미들을 어떻게 다뤄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각각의 변화 지점들이 갖는 의미를 보다 색다른 관점에서 두드러지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산업 발전의 과정이나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가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구현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게임이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생산 시스템의 변화 과정이 갖는 특성들을 어떻게 게임 속 세계에서 펼쳐내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8세기 후반에 이뤄진 산업혁명기에 보여준 기계의 도입,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뤄진 대량 생산 시스템의 성립, 20세기 중·후반에 갖춰지기 시작한 자동화 시스템과 다가오는 미래의 생산 구조로 각광받는 인공지능, IoT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 시스템까지 이어지는 생산 과정의 여러 장면을 디지털 게임은 생동감 있게 포착하며 현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제시한다.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들이 담고 있는 은유를 새로운 시공간에서 풀어내며 그 의미를 되짚는 게임 속 산업혁명의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자.

1차 산업혁명: 자동 베틀의 판타지, LOOM

아직 PC가 대중화되기 이전인 1980년대 ‘인디아나존스’ ‘스타워즈’ 등의 인기 영화를 만들어 이름을 날리고 있던 루카스필름은 자회사 루카스아츠를 통해 게임도 만들어 판매했다. 특히 전투나 액션보다는 이야기와 퍼즐을 중심에 두는 ‘어드벤처 게임’ 장르의 작품들을 출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루카스아츠는 1990년 ‘룸(LOOM)’이라는 이름의 어드벤처 게임을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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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 세계에서는 직업공들의 모임인 길드가 국가보다도 강력한 사회 조직이다. 양치기, 유리 장인, 목수, 옷감을 짜는 직조공 등 직업별로 강력한 길드를 형성하고, 길드는 소속된 개인들의 삶과 일자리를 책임진다. 국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임 속의 길드들은 서로 간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강력했고, 이른바 ‘위대한 길드의 시대’라고 불리는 역사를 만들어 냈다.

게임의 주인공(플레이어)은 직조공 길드 소속이다. 직조공 길드는 여러 길드 중에서도 특히 신비롭다. 이들은 아름다운 천을 짜는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외부인과의 교류를 끊은 채 섬에 틀어박혀 오로지 직조기술만 연구하며 살아가는 집단이었다. 기술에 대한 집착은 놀라운 성과를 이끌어냈다. 어느 순간부터 직조 길드는 빛과 음악만으로 옷감을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렇게 만들어낸 옷감에는 마법적 힘마저 깃들기 시작했다. 직조공 길드는 더욱 발전한 기술을 지키기 위해 더 깊이 은둔한다. 주인공의 이야기는 이런 배경 속에 시작된다.

섬유와 염료 없이도 천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마법의 힘마저 깃든다는 전형적인 판타지스러운 배경 설정이지만 의외로 게임 ‘룸’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많은 모티프를 가져왔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제목에 들어 있는 룸이라는 단어다.

룸은 베틀이라는 뜻의 영단어다. 직조공 길드 마을에서는 가장 큰 천막 안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베틀을 볼 수 있다. 사람이 굳이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빛과 음악을 모아 씨실과 날실 삼아 마법의 옷감을 만들어내는 베틀은 직조공 길드의 상징이자 직조 산업의 심장으로 게임 속에서 그려진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베틀이라는 게임 속 존재는 실제 역사에서도 산업혁명과 깊은 관계를 지닌다.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기계 장치에는 자동화된 베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베틀은 섬유를 세로 방향(날실)과 가로 방향(씨실)으로 교차해 선(線)으로서의 섬유를 면(面)으로 바꿔내는 작업을 한다. 가느다란 실 가닥을 계속 얽어내며 넓은 면의 직물로 만드는 작업은 베틀이라는 수공구가 있더라도 고되고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게 된 계기가 산업혁명 시기에 등장한 ‘플라잉 셔틀(Flying shuttle)’이다. 셔틀은 세로로 고정된 날실 사이를 손으로 들고 가로지르도록 만들어진 장치다. 우리말로는 이를 ‘북’이라고 부르는데, 이 북의 가로 운동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스프링 장치가 추가된 것이 플라잉 셔틀이다.

1733년 발명된 플라잉 셔틀은 노동자에게 가장 고되고 오랜 작업이었던 북의 가로 운동을 자동화하면서 방직 산업의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직물의 생산량이 늘자 원료인 실이 부족해지고, 이에 따라 1767년 개발된 자동 기계가 ‘제니 방적기’다. 이처럼 신기술이 적용된 베틀 한 대가 만들어내는 생산량 확대는 방직 산업 전반의 연이은 기계화를 촉발했다. 여기에 증기기관과 수력 같은 외부 동력이 추가되면서 본격적으로 기계화된 공업 시대가 열리고 역사에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폭발적인 발전의 순간이 기록되기에 이른다.

어드벤처 게임 ‘룸’에서 직조공 길드의 한복판에 놓인 자동 베틀의 의미는 그래서 산업혁명이라는 생산기술의 혁신적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폭발적인 생산력 향상, 그리고 기계로 만들어진 균일한 품질은 이전까지 기계화된 양산 체제를 겪어보지 못했던 18세기 사람들에겐 마치 마법과 같은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룸’에서 직조공 길드가 만들어내는 고도화된 직조 기술의 산물 또한 마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은 그래서 자동화된 베틀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생산품을 받아들이는 일반 시민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동시에 게임 ‘룸’의 설정 중 한 축을 이루는 이야기, 즉 길드의 시대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게임 속 배경 또한 우리 역사 속 자동 베틀의 이야기와 엮인다. 증기 발전과 기계의 도입이라는 1차 산업혁명기를 맞으며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들에 의해 이뤄졌던 공장제 수공업 시대는 저물기 시작했다. 기계화된 생산 과정은 과거보다 훨씬 낮은 숙련도로도 동일한 생산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에 고숙련 수공업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결성했던 길드의 힘도 점차 약화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 도입된 기계화된 생산 시스템은 위기감을 느낀 고숙련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왔고, 기계를 부수거나 고장 내는 방식의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룸’의 판타지적 설정은 1차 산업혁명기의 생산 현장을 둘러싼 상황들을 가상의 세계로 오마주해낸 것이다. 마법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발전한 산업기술, 그리고 그와 함께 점차 몰락해 가는 숙련공들의 길드 이야기는 동화 같은 판타지 공간에서 1차 산업혁명기의 변화들에 대한 색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2차 산업혁명: 조립 부품과 대량 생산, ‘문명’

1991년 마이크로프로즈가 처음 발매한 ‘시드 마이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 시리즈는 인류 역사를 석기시대부터 나노 시대까지 기술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기술 발전을 큰 비중으로 다루다 보니, 특히 산업혁명과 근대화에 관련된 부분들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탁월했다.

게임 속에서 시대별로 변화하는 산업의 생산량은 곳곳에서 진행의 키포인트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게임 속 세상의 인구는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팽창하다가 맬서스 트랩1 에 의해 정체되지만 프리츠 하버의 질소고정법2 에 의한 비료의 대량 생산을 통해 다시금 성장해 근현대의 인구 규모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전기 기술과 냉장 기술의 개발은 냉장 유통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고 슈퍼마켓이라는 소비 패턴을 만들며 도시의 식품 공급량을 늘리고 위생 상태를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업혁명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다. 증기기관과 기계공학의 발달을 통해 나타나는 생산량의 증가는 각 문명이 가지고 있는 영토에서의 기초 생산량을 증대시키고, 증가한 생산량을 통해 더 많은 전투용 유닛이나 거대한 건축물, 대규모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설계돼 있다. 게임 ‘문명’ 시리즈가 특별히 훌륭하게 현실의 산업 발전을 그려낸 지점은 우리가 이른바 2차 산업혁명이라고도 부르는 지점, 즉, ‘대량 생산 시스템’의 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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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발매된 ‘문명’ 시리즈 제3편을 예로 보자. 이 게임에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개발할 수 있는 ‘교환부품(Replaceable parts)’이라는 기술이 있다. ‘문명 3’에 적혀 있는 해당 기술의 소개는 아래와 같다.

교환부품: 역사적 배경

교환부품이 처음 사용된 것은 제1차 포에니전쟁 당시 카르타고에서 사용하던 군함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는 규격화된 부품을 사용해 갤리선을 상당히 신속하게 수리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진나라에서 교환부품이 장착된 쇠뇌를 대량 생산해 적군을 압살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계속됐고, 마침내 1814년에는 엘리 테리가 아메리카에 구축돼 있는 자신의 생산 공장을 이용해 무기가 아닌 액자형 기둥 시계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1800년대 중반에는 여러 시계 및 재봉틀 제조업체의 공장에서 교환부품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싱어소잉머신 사(1870년)와 맥코믹하베스팅머신 사(1880년)에 이어 증기기관, 타자기와 자전거 제조업체에서도 이러한 방식을 채택했고, 헨리 포드 역시 저렴한 자동차 브랜드를 생산하기 위해 대량 생산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교환부품이 제조 산업에서 발전하게 된 것은 여러 제조 기계의 혁신과 발명에 크게 기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최종 부품에 아주 미세한 차이를 주는 수준으로 국한돼 있었습니다. 제조업은 공구 이송대 선반, 나사 절삭 선반, 밀링 머신과 금속 가공기가 연이어 개발되면서 대격변을 겪었습니다. 또한 기계가 전기화 및 고속화되면서 이제 숙련된 기계공은 매 시간마다 수백 개의 동일한 부품을 찍어낼 수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제조부품의 성능과 물리적 특성의 일관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구성 관리’가 시스템 공항 분야로 발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봇이 조립 공장에 투입되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소비재 영역에서 교환부품이 개발됨에 따라 산업혁명이 가속화되었고, 노동 계급에 속한 평균적인 임금 노동자들이 각종 제품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면서 삶의 질이 올라갔습니다. 적어도 일부 문명인들은 마침내 과시적 소비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예상대로 부드럽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용되는 부품이 교체 가능한 규격품이어야 한다.”

- 찰스 아이젠슈타인

“많은 이는 자신의 몸보다 자동차를 더 잘 돌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교체 가능한 부품이 있는 쪽은 자동차입니다.”

- B.J. 파머

어지간한 백과사전 이상의 정보량을 자랑하는 ‘문명’ 시리즈의 도움말답게, 교환부품이라는 기술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고대 카르타고에서 시작해 현대의 포디즘(Fordism)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한 여러 혁신 기술 중에서도 특히 ‘교환부품’을 주요 터닝 포인트로 선정한 것이 흥미롭다. 이는 교환부품을 활용한 제조가 이른바 2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대량 생산 시스템의 기초가 됐기 때문이다.

수공업 시대의 생산품과 달리 현대의 공산품은 표준화된 도량형에 기반해 만들어진 부품들을 조립해 제작한다. 간단한 나사와 볼트부터 시작하는 조립 생산 방식은 똑같은 부품을 대규모로 생산해 단가를 낮춰준다. 또 완제품에서 고장이 발생할 경우 고장이 난 부품만을 교체하면 되니 유지보수가 손쉬워진다.

이렇게 표준에 의거한 부품을 생산하고 이를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며 부품 교체를 통해 유지보수를 진행하는 현대 공산품 체계는 생산원가 절감과 유지보수성 증대 측면에서 높은 효율을 보인다. ‘문명’ 3편에서는 플레이어가 교환부품 기술을 완성할 경우 주요 생산시설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일꾼 유닛의 작업 속도가 2배 향상되며 현대 보병과 같은 기술 기반의 전투 유닛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같은 개념은 2007년 출시된 ‘문명’ 4편에서 조립생산(Assembly line) 기술로 업그레이드돼 다시 등장한다. 컨베이어 벨트를 아이콘으로 삼아 등장하는 ‘문명 4’의 조립생산 기술은 3편과 마찬가지로 기술 기반의 전투 유닛인 현대 보병을 생산케 해 준다. 또 현대식 공장 건물을 지어 생산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해 준다.

시장과 소비자에 맞춰 빠르게 생산라인을 변경해야 하는 2020년대에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어셈블리 라인의 설치와 운영은 소품종 대량 생산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 중 가장 높은 효율을 자랑한다. 대량 생산 체제를 처음 도입한 기업인 포드의 이름을 따서 ‘포디즘’으로 불리는 20세기 초대량 생산 시스템은 1차 산업혁명에 이어 두 번째로 생산력을 증대시킨 중요한 변화였다. ‘문명’ 시리즈 역시 원시시대부터 미래 사회까지 이어지는 생산성 향상의 우상향 곡선 속에서 이런 대량 생산 체제의 도입을 하나의 ‘티핑 포인트’로 설정했다.

3차 산업혁명: 자동 생산 시스템, ‘팩토리오’

3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자동화된 생산 시스템을 잘 표현한 게임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마니아들로부터는 상당한 호응도를 얻고 있는 게임 ‘팩토리오’다. 이름에서 이미 드러나듯 게임 ‘팩토리오’는 공장식 생산 설비를 최적의 단계로 자동화하는 것을 일련의 퍼즐처럼 풀어낸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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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오랫동안 얼리 억세스 방식을 통해 알려지고 있던 ‘팩토리오’는 2020년 8월 정식으로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을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아직 정식 발매가 되지도 않았지만 게임이 구현하는 흥미로운 자동화 설계가 주는 매력 덕분에 사전 수익을 충분히 올리며 정식 출시까지 무난한 개발 과정을 거쳐 왔다.

‘팩토리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외계 행성에 주인공이 불시착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어떻게든 척박한 행성에서 살아남는 것을 첫 번째 목적으로 하며, 행성에 존재하는 자원들을 모아 다시금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어내는 것을 두 번째 목적으로 부여받는다. 다른 게임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겠지만 ‘팩토리오’가 갖는 독창성은 이 모든 과업에 다른 추가 인력 없이 오로지 플레이어만 투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한 명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기에 게임은 자연스럽게 모든 작업을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플레이어는 처음엔 직접 손으로 땅을 파서 자원을 캐고 광석을 가공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플레이어의 손이 닿지 않아도 모든 것이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화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 목표인 행성 탈출용 우주선은 사람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주선은 앞서 ‘문명’에서 언급한 대로 표준화된 여러 부품의 조립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이 부품들을 만들기 위해선 대규모의 생산 시설이 요구된다. 생산은 단순히 강판과 볼트, 너트를 만드는 데서 시작되지 않고 자연의 광물을 채굴해 제련하는 1차 광업에까지 이어진다.

‘팩토리오’는 혼자서 그 모든 생산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동화 설비를 제공한다. 대량 생산 시스템의 기초인 컨베이어 벨트는 채굴한 자원들을 손쉽게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채굴한 광석을 녹일 수 있는 용광로와 제련된 금속을 깎거나 압착하는 가공 기계들이 추가된다.

대규모의 자원을 자동으로 가공하는 기술 이상으로 ‘팩토리오’에서 핵심이 되는 기술은 이 모든 과정에서 들어가는 사람의 제어를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이다. 용광로는 석탄이나 목재 같은 연료를 필요로 하는데 연료를 채굴해서 필요한 양만큼 자동으로 투입해 주는 자동 배분기가 포함되며 게임은 본격적으로 공장 자동화라는 개념을 다룬다.

일정량의 생산품이 쌓이면 이를 포장해서 다음 단계로 넘겨주는 기계, 처리량을 넘어서는 원자재가 들어올 경우 컨베이어 벨트를 정지시키는 장치 등이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된다. 생산설비 자동화를 위한 아이템들이 배치되면서 ‘팩토리오’ 안의 플레이어는 본격적으로 공장 자동화 설계자로 변신한다.

초보자는 동선 배치도 쉽지 않아 컨베이어 벨트들이 꼬이거나 석탄 루트가 막혀 용광로가 꺼지는 등의 실수를 연발한다. 하지만 익숙해질수록 플레이어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동선 효율을 최적화하고 버리는 자원을 최소화하는, 마치 실제 공장 자동화 책임자와 같은 마인드로 설비 체계를 세팅하게 된다.

상당 수준에 도달한 공장 자동화를 다루는 ‘팩토리오’는 현장의 전문가들이 보기엔 무척 단순해 보이는 시스템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팩토리오’는 FA(Factory Automation)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도 잘 구현된 자동화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생산 효율의 증대가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임이다.

‘팩토리오’의 게임 디자인은 최적화된 동선, 정확하게 계산된 루틴 설계를 통해 원하는 목표치를 생산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탐색하도록 한다. 이 구조는 그래서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자동화 시스템의 핵심만을 간략하게 정리해 직접 체험케 하는, FA의 정수가 어디에 있는지를 체험을 통해 느끼게 만드는 독특한 기능으로 의미를 갖는다.

4차 산업혁명의 먼 미래: ‘호라이즌 제로 던’

‘룸’ ‘문명’ ‘팩토리오’ 등을 통해 앞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이전에 생산 시스템에서 효율 개선의 티핑 포인트로 작용한 혁신의 요소들을 살펴봤다. 최초로 인간 노동을 기계로 대체한 자동 베틀, 표준화와 대량 생산을 통해 막대한 양의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 대량 생산과 교환부품 시스템, 대량 생산에서 관리와 운영의 소요를 최소화하게 만들어준 자동화 시스템까지 이어지며 현대의 생산 체계는 18세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생산성을 확보해 낸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디지털 게임은 여러 가지 형태로 현실의 생산 양식들을 게임 속에 구현하며 그 본질을 드러내 왔다. 이는 게임의 상상이 비단 과거의 생산 시스템뿐 아니라 미래의 생산 시스템에 대한 상상과 예측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2017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된 ‘호라이즌 제로 던’이 아마도 그 대답으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뛰어난 그래픽과 깊이 있는 세계관, 다채로운 적들과 펼치는 역동적인 액션을 통해 게이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어내며 명작의 반열에 들어가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 게임을 평가함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될 또 다른 포인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설계된 게임 속 설정들에 대한 관찰과 분석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의 시대는 기술 문명의 현대 세계가 멸망한 뒤 천 년이 흐른 시점이 배경이다. 세계 곳곳에는 천 년 전 인류가 세웠던 건물의 폐허들이 마치 유적처럼 수풀에 덮인 상태로 남아 있다. 폐허 속에 살아남은 인류는 앞선 세대가 가진 기술과 지식의 전승이 끊어진 채로 다시 원시 상태로 돌아갔으며, 수렵과 채집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원시 부족사회 느낌을 물씬 풍기는 천 년 뒤의 미래에는 그러나 다소 기묘한 풍경이 공존한다. 들판을 누비는 야생동물들 사이에 웬 야수 모양의 기계들이 섞여 있는 것. 기계 야수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세계를 배회한다. 사람들은 이들 기계 야수를 사냥해 희귀한 부품과 연료 등을 조달하며 살아간다. 기술 문명이 멸망한 지 천 년이 지난 뒤에도 기계들이 계속 작동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라이즌 제로 던’은 배경 설정에서 4차 산업혁명의 자동화 공장을 언급한다. 게임 곳곳에 숨겨진 ‘가마솥(cauldron)’이라 불리는 공간이 대표적이다. 원시시대에 가깝게 구성된 외부의 자연환경과 달리 ‘가마솥’ 안쪽은 오늘날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생산 시설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론이 재료를 수송하고,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들을 로봇 팔이 기계 야수들을 계속 조립 생산해내는 자동 생산 기지 ‘가마솥’ 내부의 풍경은 이 게임의 상상력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생산 시스템 변화에 한 발을 딛고 서 있음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에 이뤄진 산업의 기계화(1차), 20세기 초반에 형성된 대량 생산 시스템(2차), 20세기 중반에 완성된 자동화(3차)에 이어지는 생산 환경의 변화다. 이 기술 혁명의 핵심에는 다가올 미래에 형성될 인공지능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화가 자리한다.3 지멘스의 암베르크공장,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 등이 4차 산업혁명 생산 시스템이 지향하는 현실의 스마트 팩토리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자동화된 생산 공장이 이론 그대로 완성됐을 때의 모습을 미래에 대한 상상 속에 그려 넣으며 게임의 기본 설정을 완성한다.

문명 멸망 후 천 년 뒤의 미래라는 설정은 완성된 스마트 팩토리의 모습을 새로운 측면에서 조망한다. 생산 관리자가 없어도 천 년 동안 멈추지 않고 기계 야수를 계속 만들어내는 ‘가마솥’의 모습은 스마트 팩토리가 완벽하게 구현됐을 때의 모습을 시사한다. 원료와 동력의 수급부터 재료가공, 설계, 조립생산뿐 아니라 시스템 스스로에 대한 유지보수까지 천 년간 문제없이 수행해 낸 완벽한 4차 산업혁명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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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제로 던’이 그려내는 4차 산업혁명의 미래는 생산 기술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기계 야수들이 자연스럽게 대지를 활보하는 모습은 단지 생산뿐 아니라 완성된 제품의 유지보수까지도 전면적인 인공지능의 통제 아래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미래의 하늘을 활보하는 드론 사례가 자주 거론되는데 완성된 4차 산업혁명의 이상적인 환경에선 그 드론의 수리조차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시스템 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공장 안의 설비뿐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 스피커와 같은 모든 생산품이 네트워크 안에서 생산 이후의 유지보수까지도 자동 시스템 안에서 처리되는 근미래를 ‘호라이즌 제로 던’은 그리고 있다.

인간을 대체하는 생산과 노동의 기계 앞에서

18세기의 산업혁명부터 오늘날 IoT와 인공지능에 의해 이뤄지는 자동화된 대량 생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를 네 개의 게임을 통해 살펴봤다. 게임을 통한 생산 환경 변화를 살펴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의 노동이라는 생산 방식이 물리적인 부분에서 시작해 점차 지능의 영역까지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플라잉 셔틀의 간단한 스프링 장치가 베 짜는 노동자의 팔 근력을 대체했고, 표준화된 부품조립 생산 시스템은 인간의 집단 노동을 효율화했다.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은 관리 영역에서의 부하를 더욱 줄여냈고 4차 산업혁명이 내건 기치는 아예 그 생산에 필요한 의사결정까지도 인공지능에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을 향한다.

요약하자면, 산업에서의 혁신적인 변화는 결국 생산에서 인간을 대체해 온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생산에서 인간의 범주는 초창기 낮은 기술 수준에서는 단지 육체적인 영역에 국한됐으나 발전을 거듭하며 기술은 인간의 사회적 측면과 사무적 능력, 나아가 의사결정 능력까지 생산에 미치는 모든 영역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라는 개념은 도구와 연장을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의 모습을 가리킬 때 쓰이는데 생산 도구를 발전시켜 온 인간은 마침내 도구를 넘어 생산의 의도 자체까지도 도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오늘날 이야기되고 있는 포스트휴먼(Post-human)의 개념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본주의에서 시작된 보편인권의 개념이 반려동물과 인공지능, 언젠가 만날지도 모를 외계인처럼 인간 아닌 존재를 만났을 때 어디까지를 공존의 대상으로 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현실적인 난제로 다가오고 있다.

포스트휴먼의 난제는 생산 환경 전반에서도 마찬가지 질문을 낳는다. 생산의 측면에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 생산 시스템의 출현은 생산에서 인간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할 상황을 부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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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출시된 어드벤처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그러한 질문을 실제로 던진다. 한때 20세기 미국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자동차 공업의 심장 도시 디트로이트가 21세기 자동차 공업의 쇠퇴를 맞아 슬럼화된 가운데 게임은 2038년의 미래를 바탕으로 인간의 노동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안드로이드 제조업을 통해 부흥하는 디트로이트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게임은 안드로이드 등장으로 인해 실업률 40%에 육박하며 다시금 위기를 맞는 디트로이트와 스스로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의 권리를 외치기 시작하는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호라이즌 제로 던’의 천 년 뒤 이야기가 보다 너른 상상력이었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2038년은 좀더 근미래에 맞닥뜨릴 난제들을 선사하며 플레이어 앞에 고민거리를 던져놓는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과 생산을 완벽하게 대체할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미래가 언젠가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기술의 진보 속 미래의 생산과 노동은 단지 기술적인 측면의 고민에 머물지 않고 인간이라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되물음마저 품는 일이 될 것이다. 당장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은 하나도 없지만 1차 산업혁명 이래 인간을 대체해 온 흐름을 되짚으며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안겨주는 인사이트는 적지 않다. 윌리엄 깁슨의 말처럼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 이경혁 | 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게임연구자
    현)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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