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3.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위한 기술 투자 혁신 전략

무조건적 ‘긴축 경영’은 미래 성장 저해할 수도
뉴노멀 시대에 주목받는 디지털 기술에 투자하라

297호 (2020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 기업들도 앞으로 닥칠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분주하다. 기술 개발과 혁신을 위한 투자금을 줄이는 방안도 그중 하나의 대안이다. 하지만 경제 위기일수록 기업은 ‘똑똑한 투자’를 통해 기업의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실제로 과거 기업들 중 경제 위기 속에서 자사에 도움이 될 만한 핵심 기술들을 잘 선정해 투자한 기업들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기업들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일상의 확대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기술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자사 서비스나 제품, 기업 내부 운영 전략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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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위한 기술 투자 혁신 전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이하 코로나19)으로 인한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간의 기업 비즈니스가 국경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이뤄져 왔고, 더욱이 기술 혁신 활동들은 가치사슬을 따라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현재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를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됐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서는 경제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경제 위기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나 확산을 유발했다. 이에 기반한 기술 혁신이 경제 위기를 종식시켰다.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1814년부터 2019년까지 S&P500 지수의 중장기적 변화를 분석해보면 크게 5번의 경기 침체가 있었는데 매번 경기 침체와 더불어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일어났다. 1837년 경제공황과 맞물려 철도와 제철의 발전이 있었고, 1870년대의 장기 불황은 전화와 화학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1930년대의 경제대공황은 자동차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의 활성화를 불러일으켰으며, 1970∼80년대 오일 파동의 충격은 뒤이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완화됐다.

이러한 사례들은 위기와 기회는 늘 공존하는 것이며, 위기가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코로나19가 가져올 뉴노멀을 직시하고 중장기적인 전략적 대비책을 수립하는 한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이에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한 3가지 주요 전략을 제시한다.


어려울수록 혁신에 투자하라

많은 기업은 경제 위기에 당면하게 되면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서 일시적인 유동 자금을 확보하려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이 긴급한 당면과제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투자에 해당하는 내부 연구개발에 대해 투자를 줄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기업이 가진 한정된 자원을 단기대응을 위해 재분배(re-allocation)하는 최적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많은 기업이 사내 연구소를 폐쇄하거나 축소하면서 상당한 연구개발 인력을 감축했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국내는 물론 많은 해외 기업이 내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였다.

하지만 이러한 단기 처방은 중장기적으로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혁신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이 회복력(resilience power)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경기가 회복됐을 때, 연구개발 긴축 정책으로 인해 기업의 혁신역량(innovation capability)이 심각한 수준으로 저해되면 다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이로 인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탈리아 국립연구회(National Research Council)의 연구국장(Research Director)이자 영국 버벡대 교수인 아키부기(Archibugi) 연구팀이 2008년 전후의 영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2008년 영국 전체의 혁신투자액이 2006년과 비교했을 때 약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상당수의 기업이 긴축 정책을 채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과거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경기 침체기 동안 연구개발 투자액을 감축한 GM과 크라이슬러도 시장 장악력을 잃어 도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에 안방을 내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샤프나 히타치, 소니가 연구개발 투자액을 평균 31% 감축했다. 이때 LG와 삼성은 연구개발을 각각 119%와 37% 늘렸고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경기 침체 후 글로벌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되는 발판이 됐다.

같은 시기에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경제가 무너졌던 아일랜드 정부는 이런 어려움에도 과학기술과 혁신 기업 투자 예산은 줄이지 않았다.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토종 기술 산업의 발전이 멈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사히맥주도 19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기 극복을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해 슈퍼드라이(Super Dry)라는 히트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위기 이후를 생각하는 기업들이 슘페터(Schumpeter)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개방형 혁신이 부족한 자원 확보를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외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의 가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더 커질 수 있다. 2003년 U.C. 버클리의 헨리 체스브러(Henry Chesbrough) 교수가 제안한 개방형 혁신은 외부 자원을 레버리지함으로써 내부 연구개발 기능을 보완하고 자원 투입에 대한 최적화도 달성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특히, 개방형 혁신은 경기침체기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 택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필자가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기 전후의 영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개방형 혁신을 택한 기업들은 내부 연구개발을 줄인 기업들과 비교할 때, 경기침체기 이후의 매출액이 거의 3배 이상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표 1)

그렇다면 개방형 혁신은 어떻게 기업들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첫째, 내부 연구개발 투자를 줄인 기업이 네트워킹을 기반한 보유효과(retention effects)로 혁신 역량을 상쇄할 수 있다. 경기침체기에는 핵심 역량을 제외한 일부 영역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하나, 너무 과감한 포기는 회복력 저하 등의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이 같은 다이어트 전략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한데, 부득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부 혁신 자원들을 외부 협력을 통해 곁에 두는 보유전략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협력 파트너의 혁신 자원을 효과적으로 레버리지(leverage)하는 것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효과적인 회복력(resilience) 확보 전략이 될 수 있다.

둘째, 개방형 혁신은 새로운 유형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게 해준다. 기업이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의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면 초기 연구개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경기 침체기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요구되는 비효율적 전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유형의 기술일수록 외부 파트너의 것을 활용하는 것이 경기 침체 후 성장 모멘텀(growth momentum)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외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금융위기 같은 어려운 시기에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를 축소하는 것은 기술 혁신을 위한 투자가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기에 단기 부채 같은 역할을 한다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 파트너에게 비핵심 기술을 라이선싱함으로써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기업이 보유한 모든 지식재산권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의 핵심 상품과 직결되지 않는다면 다른 기업에 이전해서 라이선스 수입을 올리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특히 특허의 경우 출원은 물론 특허권 유지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경기 침체기에는 특허 유지 비용 축소 차원에서라도 외부 라이선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특허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대표적인 기업이 저전력 고효율 CPU 업체 ARM이다. ARM이 설계한 CPU 아키텍처는 퀄컴(스냅드레곤), NVIDIA(Tegra), 화웨이(하이실리콘)가 생산하는 스마트폰, 콘솔, 자동차 전장품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고 있는데, ARM은 아키텍처 개발만 한다. 이 아키텍처를 라이선스해서 특허 로열티로만 수입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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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들의 새로운 가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AR/VR, 블록체인, 적층제조(3D Printing), 인공지능/로보틱스 기술의 본격적 시험과 적용, 그리고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해외와의 교류가 어려워지면서 여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은 그 자체가 완성된 기술이 아닌 기반기술(enabling technology)들로서 다양한 응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백그라운드 기술이다. 그러면 기업들은 이 같은 기반기술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1. 비대면 작업의 단점은 AR/VR로 극복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회의나 작업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화상회의 기반 비대면 작업은 완벽한 의사소통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대면 회의나 작업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 등 다양한 문제로 코로나19가 장기화된다면 현재의 비대면 회의나 작업 체계는 기술적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이미 현재 많은 기업이 온라인 화상회의 형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이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는 사용자 경험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접 체험이 필요한 부분이 대체되지 못한다는 것인데 화상 카메라와 마이크로 진행되는 현재의 온라인 화상회의가 사용자가 직접 경험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경험적 지식의 전달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많은 대학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공대나 의대의 실험과목들의 경우 6월 이후에 대면 집중 수업으로 전환된 것이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규모 집체교육이나 도제식 대면 교육이 불가피해지고 국내외 관계사와의 대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사용자 경험을 향상할 수 있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VR는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을 말하며, AR는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의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을 말하는데 이미 교육훈련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응용이 이뤄지고 있다.

BMW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생산라인 직원들의 숙련도 향상을 위해 자동차 수리 AR/VR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노르웨이 육군도 전차병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해 전파병 훈련 VR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스공사가 VR 기반 공급 설비 교육훈련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는데, 이 교육훈련 시스템은 비상 상황 발생 시 긴급 대응 절차 숙지•체험, 천연가스 흐름에 따른 설비 내부 동작 원리 습득, 설비사고 사례 소개 등 다양한 현장 운영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이 실제 같은 체험형 학습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VR/AR 활용도 증가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과학문화센터를 휴관하면서 VR 전시를 선보였고, 지난 2월부터 과천제이드자이, 마곡지구9단지 등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는 VR와 모바일을 통한 마케팅이 본격화되고 있다.

VR/AR의 도입이 어려울 것 같지만 이미 상당 부분 모듈식 패키지화가 진행되고 있어 간단한 변형만으로 즉시 사용 가능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은 기업들이 바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는 VR와 AR 교육훈련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생산 현장 동영상을 촬영한 후 다양한 홀로그램 패키지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고온, 고압장치 등의 위험한 장비의 사용 훈련, 위험 장비에 대한 동선 경고, 근무자가 수행해야 하는 작업 순서 등의 구현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대면 교육 부족으로 업무를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큰 문제없이 작업을 수행해 낼 수 있게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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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블록체인을 통해 신뢰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암호화폐로 인한 과열적 투기가 사회문제화되면서 블록체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블록체인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담은 블록을 체인 형태로 연결한 후 이를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기존의 은행처럼 데이터의 변동 내역을 중앙집중형 서버에 기록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참여한 모든 참여자에게 데이터 변동 내역을 공개하고 이를 모든 참여자가 공유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위조나 변조가 불가능하다. 그간 블록체인 형성과 작업 증명에 대한 보상으로 생성되는 암호화폐에 대해 관심이 집중돼 왔지만 진정한 블록체인의 가치는 신뢰 구축에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로 비대면 접촉과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는 지금 주목받고 있다.

어떠한 형태이든 ‘거래’나 ‘공동 작업’이 수반된다면 블록체인의 응용 분야가 될 수 있다. 비대면 비즈니스 미팅에서 서로 주고받았던 대화 내용과 합의 내용들을 자동으로 블록체인으로 저장하는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회의록’이나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주고받은 과업지시 사항과 피드백들을 블록체인으로 저장하는 등의 ‘블록체인 기반 공급망 작업 관리’는 현재의 기술로 바로 구현이 가능하다. 코로나19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탈리아에서는 블록체인 기반 기부 캠페인이 추진되고 있는데, 기부금을 중앙집중식으로 관리하는 단체를 거치지 않고 기부자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모든 비용의 사용내역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함으로써 기부금 사용 내역과 사용 경로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 비슷한 응용 사례로 중고차 거래를 들 수 있다. 허위 매물 등 잘못된 정보로 레몬 마켓이 돼버린 중고차 매매의 경우에도 블록체인 도입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다양한 연관기술이 개발되면서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계약은 종이에 계약 내용을 적시하고 계약이 충족됐다는 입증 자료를 제출하면 계약 당사자나 중계기관이 진위 여부를 건별로 심사해 계약의 충족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이해당사자가 관여되고 수십 개의 기관이 수백 차례의 의사소통을 통해 승인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겪게 된다.

스마트 계약은 이러한 기존의 계약 절차를 블록체인을 통해 개선했다. 사전 협의된 조건을 전자계약서에 프로그래밍해 놓고, 조건이 충족됐을 때 승인과 대금 지급 등이 자동으로 이뤄지게 하는 혁신적 결제 네트워크 플랫폼을 개발한 것이다. 기존의 로펌이나 보험사, 은행 등이 대행했던 중재자 역할을 블록체인이 대신함으로써 시간과 비용, 불필요한 확인 절차 등을 간소화함으로써 계약 과정이 자판기처럼 간소화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 때문에, 수많은 계약이 일상화된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스마트 계약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비대면 작업의 보편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상당 수준의 계약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블록체인의 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공 분야에서의 응용도 증가하고 있는데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포도의 재배부터 숙성과 유통까지 와인 생산의 전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해 품질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5년 블록체인을 정부의 모든 행정 시스템에 도입한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기반의 ID를 선거에까지 활용한 바 있다. 현재, 호주나, 덴마크, 미국 텍사스주도 블록체인 기반 투표 도입을 추진 중이며 인도 역시 관련 연구개발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대면 만남을 통한 친밀감과 신뢰 형성이 어렵고 직접적이고 빠른 자원 배분이 필요한 상황에서 블록체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신뢰 기반과 투명한 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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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로벌 가치사슬의 판도를 적층제조로 바꿀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연쇄적인 출입국 봉쇄가 이뤄지면서 어렵게 구축한 글로벌 가치사슬 유지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물리적인 실체가 존재하는 ‘공장’이 필요한 만큼 중국, 베트남, 중남미 등에 제조 기지를 건설한 기업들의 애로가 많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선제적인 방역조치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있지만 해외 각국에서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가치사슬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어느 정도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 AM)에 기반한 디지털 제작(Digital Fabrication)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층제조가 3D프린팅으로 더 많이 알려지면서 소규모 시제품 제작을 위한 개인용(또는 소형) 프린터 기술처럼 인식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적층제조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용이하게 하는 프린팅 기술로 보기보다는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기반 기술로 보는 게 맞다. 실제로 영국은 브렉시트(Brexit)로 인한 숙련 노동력 감소에 대비하기 위한 제조업 육성 전략의 일환으로 적층제조 기술에 투자해 왔다.

더욱이, 최근 코로나 사태로 제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이 흔들리면서 그간 오프쇼어링(offshoring)에 집중해 왔던 제조기업들의 훌륭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이는 적층제조가 물류 유통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적층제조 방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되면 제조기지에서 모든 부품을 생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핵심 부품만 중앙집중방식으로 생산하고, 간단한 부품들은 각 지점에서 현지 생산함으로써 물류 유통을 최소화하고 재고 관리를 최적화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적인 기본 의료장비 부족이 지속되자 영국 자동차 기업인 재규어 랜드로버는 산업용 적층제조 장비로 생산할 수 있는 재활용 의료안면보호대의 CAD 디자인 파일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이를 통해 영국 각지의 적층제조 생산시설에서 의료안면보호대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는 영국 국가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가 유일하게 인증한 재사용 안면보호대이기도 하다.

세계적 프린팅 업체 HP도 전 세계적인 의료장비 부족을 해결하고자 얼굴 마스크, 마스크 조절 장치, 비강 면봉, 인공호흡기 부품 등을 글로벌 적층제조 방식으로 공급함으로써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해당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적층제조의 속도가 날로 향상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건축용 3D프린터로 코로나19용 격리병동을 하루에 15채씩 생산하고 있다고 하니 빠른 현지 생산이라는 적층제조의 장점이 코로나19로 인한 물류체인망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4. 인공지능과 로보틱스를 통해 직무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수 있다.

최근 다양한 머신러닝 방법론이 고도화되면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사용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간 AI의 응용이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자동화, 자동화 프로세스의 고도화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로보틱스와 결합된 AI의 물리적 활용이 주목받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신종 감염병 진료 시 의료진의 안전과 2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고화질 카메라와 모니터, 네트워크 통신기술을 갖춘 원격의료 장비는 물론, 선별 진료소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통해 돌아다니며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사족 보행 로봇들도 투입되고 있다.

이처럼 감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해서 직무를 수행하는 로봇들이 증가하면서 사람이 해야 하는 과업의 범위와 내용이 빠르게 재정의될 것으로 본다. 온라인에서 반복적이고 단순한 계산이나 분류 같은 작업들이 AI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듯이 오프라인에서도 단순한 작업은 물론 위험한 작업들까지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AI의 사용은 직무의 대체에 그치지 않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과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AI와 로보틱스 기술이 VR/AR 기술과 융합될 경우, 원격 진단이나 수술, 원거리 물리적 작업 등이 가능해진다. 굳이 전문가가 모든 현장에 파견되지 않아도 원거리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인적자원 배분의 최적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현재도 AI 기술이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의 탐지와 치료제 후보 물질을 예측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비대면 문화에서의 소비형태 예측뿐 아니라 글로벌 물류유통의 재편 등 다양한 최적화 이슈, 더 나아가 스마트 시티 건설에도 활발하게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비대면과 이동의 제한이 ‘뉴노멀’로 자리 잡은 지금 적극적인 기술 혁신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1. Ahn, J. M., Mortara, L. and Minshall, T. (2018) “Dynamic capabilities and economic crises: Has openness enhanced a firm’s performance in an economic downturn?”, 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 27(1), 49-63
2. Archibugi, D., Filippetti, A., & Frenz, M. (2013). “Economic crisis and innovation: Is destruction prevailing over accumulation?”, Research Policy, 42(2), 303-314.
3. Chesbrough, H. (2020). “To recover faster from Covid-19, open up: Managerial implications from an open innovation perspective”, Industrial Marketing Management.
4. Di Minin, A., Frattini, F., & Piccaluga, A. (2010). “Fiat: open innovation in a downturn (1993―2003)”,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52(3), 132-159
5. Jiang, R., Kleer, R., & Piller, F. T. (2017). “Predicting the future of additive manufacturing: A Delphi study on economic and societal implications of 3D printing for 2030”, Technological Forecasting and Social Change, 117, 84-97.
6. Wang, S., Kang, B., Ma, J., Zeng, X., Xiao, M., Guo, J., & Xu, B. (2020). “A deep learning algorithm using CT images to screen for Corona Virus Disease (COVID-19)”. MedRxiv.
7. 전경련 (2006) “경기침체기 기업 생존전략”


필자소개 안준모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jmhan@sogang.ac.kr
필자는 서울대에서 화학공학 학사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기술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소기업청과 과학기술부,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근무했다. 개방형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조업(high value manufacturing)과 중소 벤처기업의 기술 혁신 활동, 기술 창업과 사업화, 기술 혁신 정책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DBR mini box “체질 바꿔라” 도요타 등 변신 고군분투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처 부진으로 인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은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제조업의 대표 격인 도요타, 글로벌 코스메틱 시장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시세이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움직임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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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위기 돌파를 위한 체질 개선책

도요타는 코로나19 쇼크 이후 각국의 경제회복에 대비하면서 공장 가동이 멈춘 상황을 활용해서 생산 현장의 개선이나 인재 육성, 부품 협력사와의 협업 개선책 등에 주력하고 있다. 평상시 일상적인 업무에 치여서 할 수 없었던 생산설비의 점검과 개선을 위해 여유 인력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수요가 회복될 때 보다 높은 생산성으로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준비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근로자의 경우도 여유 시간에 각종 스킬 향상을 위한 학습, 조직 내의 AI 활용 노하우 축적 등의 기회로 삼고 있다. 또한 부품의 조달선을 분산해 리스크에 강한 체질을 만들기 위해 부품, 자재 등의 거래대상 기업을 탐색하는 한편, 이들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전사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도요타는 전 세계의 거래선 및 잠재 거래선과의 협업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해 거래의 투명성, 개방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도요타도 각종 부품의 핵심 거점으로서 일본, 중국, 동남아 등 3대 거점 간의 균형을 추구하면서 비용 효율성과 서플라이체인의 안정성을 함께 제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요타는 코로나19로 인한 각 국가의 입국 제한 조치로 인해 핵심 기술자들의 해외 교류가 차단돼 초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첨단 산업 업계도 코로나19가 확산되자 해외 기술자의 입국이 제한돼 큰 위기를 겪었다. 일본제 첨단 장비를 활용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기계 운용 등에 차질을 빚으면서 목표 생산량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도요타는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안경처럼 착용하고 시야에 가상의 3D 영상을 비추는 고글형 단말기)를 활용해 작업자끼리 현실 공간과 가상 데이터를 동시에 확인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MR(Mixed Reality)를 현장에 도입해 자동차 정비 작업의 진행 상황 등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해 왔다. 이러한 MR를 활용한 작업 환경을 통해 실제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일본에 있는 기술자가 해외 기술자와 현실감 있게 가상공간에서 협업 및 대화하면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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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이도, 중국 알리바바 제휴 등 웹 판매력 확충

시세이도는 여행객의 급감으로 면세점에서의 판매가 크게 타격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집중한 곳은 주요 판매 시장인 중국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와 2019년 맺은 전략적 제휴 관계를 활용해 중국 화장품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상품개발센터 등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샴푸, 보디케어 제품 등을 중국 소비자에게 적합한 제품으로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지역적으로 광대해 소비자 특성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알리바바가 가진 빅데이터 분석력을 활용해 중국 시장 토착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 2016년에 단순 전자상거래 시장의 비율이 15%를 넘어선 이후 성장세 둔화 시대를 맞았다고 보고 그동안 ‘뉴리테일 전략’을 내걸고 오프라인 유통전략을 강화해 왔다. 이 결과 알리바바는 단순한 온라인 기업이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형 기업으로 발전해 왔다. 이에 따라 시세이도로서는 알리바바를 통해 골목 상권의 유통점포 등과의 연결성도 강화해 중국 시장에 보다 깊게 파고들고 있다.

게다가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라는 알리바바의 뉴리테일 전략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해서 온라인 판매로 연결하는 등의 상승효과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오프라인 상점 등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상점 등에서 점장 등이 상품을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설명하고 질문에도 대답하면서 판매)도 활용하고 있다. 지난 3월8일 국제 여성의 날에는 38시간에 걸쳐서 진행하는 생방송 ‘Douin(TikTok의 중국판)’을 통해 상하이의 신세계성백화점의 매출이 전주 대비 10배나 증가했다. 이 쇼핑센터에 입주한 시세이도도 1시간 만에 61만∼76만 엔의 매출을 올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부분의 코스매틱 상점의 매출이 ‘0’에 가까웠던 시기 거둔 성과다. 또한 시세이도는 코로나19 위기로 고전하는 중국인을 지원하는 행사로서 ‘Relay of love’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필자소개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임자문위원 jplee@lgeri.com
필자는 196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호세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1988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통령 자문 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남북 대외협력 전문위원회 위원, 산업자원부 제조업 공동화 대책회의 위원, 미래부 미래성장동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 『일본식 파워경영』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