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인공지능 의료 비즈니스, 이미 시작된 미래

AI 최첨단 기술에만 매료되지 말고
시장을 흔들 킬러 솔루션 들고 나와야

296호 (2020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의료 AI 솔루션 상용화의 흐름이 하드웨어 중심 의료기기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의료기기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의료 영상 분석, 진단 보조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 시장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신기술 및 신제품의 수용을 촉진할 만한 ‘킬러 솔루션’을 내놓아야 한다. 임상 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면서도 비용 효율적인 선택지임을 증명하고, 기존 시스템과 통합했을 때 전체적인 임상 워크플로를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여러 소프트웨어를 모은 통합 의료 AI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을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보다 한발 앞서 경고한 기업이 있다. 다름 아닌 캐나다의 작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블루닷(BlueDot)이다. 2003년 사스를 겪은 뒤, 감염병을 미리 예측해 대응해보자는 취지로 캐나다 의사인 캄란 칸이 설립한 이 회사는 작년 12월31일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전 세계 뉴스, 항공권 발권 자료, 실시간 기상변화, 의료 시스템 현황, 동물과 곤충의 동태 등의 빅데이터를 기계 학습으로 분석해 바이러스의 창궐과 대유행을 예상한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마비시킨 지금, AI 기술은 감염 진단을 위한 유전자증폭기술(RT-PCR)이나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기술만큼이나 질병 퇴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AI는 한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개발된 진단 키트의 설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신약 개발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국내 유전체 분석 회사인 테라젠이텍스는 AI에 기반한 단백질과 화합물의 바인딩 예측(친화력을 수치화하는 분석 방식) 모델을 활용해 코로나19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굴한 바 있다. 1 AI로 코로나19 환자의 폐 영상을 분석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선별하거나 환자의 경과를 관찰하려는 시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중국 우한의 의료진과 선전의 의료 AI 기업의 협력 연구팀은 CT 영상을 바탕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폐렴과 일반적인 지역사회 획득 폐렴을 구분하는 기술 COVNet을 개발, 영상의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라디올로지(Radiology)에 발표하기도 했다.2

국내에서는 의료 AI 솔루션 기업인 뷰노가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보조하거나 환자의 경과 관찰 연구에 활용될 수 있도록 흉부 X선 기반의 폐렴 탐지 솔루션과 흉부 CT 기반의 폐렴 정량화 솔루션을 전 세계에 무료 공개했다. 동종 업계 기업인 루닛도 자사의 AI 기반 흉부 X선 판독 보조 솔루션을 무료로 배포했다. 이처럼 새로운 감염병의 진단 및 치료법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AI의 활약상이 갑자기 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급속도로 발전해온 의료 AI 기술, 그리고 이를 다양한 임상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해 온 기업들이 있었기에 발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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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I의 등장과 발전

병원은 그 자체로 거대한 데이터센터다. 환자 진단과 치료에 따른 데이터가 생산되고 저장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 데이터는 빅데이터의 4가지 속성인 4V, 즉 크기(Volume), 다양성(Variety), 수집 속도(Velocity), 신뢰도(Veracity)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데이터 크기의 측면에서는 의료진이 진료에 참고하는 데이터 용량의 200배 이상이 수집되고 있으며, CT와 MRI 같은 의료 영상 촬영 건수는 연간 10억 건이 넘는다. 이에 반해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과대학협회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 10만 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2030년까지 의사 7600명, 간호사 15만8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아울러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시공간별로 큰 격차를 보인다. 예를 들어, 전 세계로 넓혀보면 인구 100만 명당 200명에 가까운 영상의학 전문의가 있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100만 명당 2명도 안 되는 국가도 있다. 또 시간별로 보면 심야 시간대에 응급실에서 CT나 MRI 영상을 판독할 수 있는 응급실 영상의학 전문의는 우리나라의 경우 2017년 기준 영상의학 전문의 3700명 중 0.27%뿐이다. 이 때문에 심야 시간에 들어온 환자의 영상 판독은 대개 당직 근무 중인 전공의가 담당하거나 다음 날까지 지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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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접근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과중한 업무량 및 의료 정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서 여전히 의료진 간 일관성 문제가 남는다. 구글 발표에 따르면 실명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당뇨성 망막병증의 중증도를 둘러싼 안과 전문의 간 판독 일치율은 60%에 불과하다.3 폐암 의심 환자에 대한 결절의 종류 구분에 대한 영상의학 전문의 간 일치도가 60%가 안 된다는 연구도 있으며4 유방암 확진을 위한 조직 병리검사 결과에 대한 일치도도 70%대에 그친다.5 이는 정상인 환자가 불필요한 항암 치료를 받거나 암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해 과중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솔루션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돼 왔고,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AI 기술, 그중에서도 알파고로 유명해진 딥러닝이 그 대안으로 주목받게 됐다. 전문가의 지식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변환하고 예측을 위한 알고리즘을 직접 설계해야 하는 전통적인 기계 학습과 달리, 딥러닝은 대용량의 데이터에 기반해 높은 정확도를 내는 모델을 스스로 학습한다. 그리고 대량의 데이터에 근거해 복잡하고 모호한 의학적 판단마저 자동화, 객관화한다.

이미 1990년대 중반에도 유방암이나 폐암에 AI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수십 건에 불과한 데이터, 하드웨어의 낮은 연산능력 등의 한계로 임상 현장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병원 정보 시스템의 발전으로 수집된 대용량 데이터, 하드웨어 연산능력의 비약적 개선, 알고리즘의 효율화 등의 요소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이제 의료 AI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2016년 구글이 13만 건에 달하는 망막 영상을 기반으로 학습된 AI의 당뇨성 망막병증 진단 정확도가 안과 전문의의 수준에 근접했다는 결과를 의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 중 하나인 JAMA에 발표했고,6 이후 피부과, 영상의학, 치과, 병리과 등 분야에서 AI가 의료진의 진단 정확도에 근접하거나 넘어섰다는 연구들이 꾸준히 발표됐다.

의료 AI 기반의 비즈니스 혁신

의료 AI 솔루션 상용화의 가장 큰 흐름은 하드웨어 중심 의료기기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의료기기로의 패러다임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 3) 기존에는 진단 영상 장비나 수술 장비 등 하드웨어가 활발히 개발돼 왔다면 최근에는 하드웨어 발전의 정체와 이를 활용할 전문 인력의 공급 부족을 극복할 대안으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 의료장비에 따라오는 번들(묶음) 수준으로 여겨졌던 소프트웨어가 오늘날엔 의료 장비의 성능 개선 및 기능 확장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의료 영상 분야에서 각각의 질환 및 영상 장비, 임상 환경을 대상으로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투자 규모도 연일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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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러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의료 분야의 특수성으로 인해 비즈니스 모델 수립이 쉽지만은 않다. 다양한 솔루션이 개발되고 각국 규제 당국의 인허가를 획득하더라도 빠른 임상 도입과 확산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특히 의료기관에서는 단순히 분석 정확도가 높거나 속도가 빠르다는 것만으로는 선뜻 임상 도입을 결정하지 않는다. 파괴적인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최대 고객인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이 경로 의존성을 보이며 기존 경험에 의존하려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과 기술의 수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킬러 솔루션’을 개발해야 한다. 킬러 솔루션의 경우, 1) 특정 임상 상황에서 기존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면서도 비용 효율적이라는 점이 검증돼야 하며, 2) 개별 솔루션 차원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합했을 때 임상 워크플로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3) 여러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열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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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상적 미충족 수요 해결

전자의 성공 모델로는 미국의 하트플로(Heart Flow)사가 있다. 이 회사는 FFR-CT란 킬러 제품을 선보이고, 비용 효율성을 입증함으로써 임상 현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먼저, 효과 측면에서 심장 관상동맥 협착의 진단 및 정량 분석에 따르는 환자들의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침습적인 혈관 조영술로 시술하던 방식을 비침습적인 방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크게 줄였다. 시술 없이도 CT 영상을 촬영하고 AI로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예측하는 정량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비용 측면에서도 분석 건당 1500달러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검사 비용을 26% 이상 낮췄다. 이에 FDA 승인뿐 아니라 CE 마크 획득, 일본 식약처 허가, 영국 NICE 등재 등을 거쳐 여러 나라에서 상용화됐다. 이 제품은 현재 지멘스(Siemens)와 필립스(Philips) 등의 의료 장비와 연동된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해당 솔루션 하나로 이미 하트플로의 시가총액은 1조원 단위를 넘어섰고, 꾸준히 쌓이는 임상 검증 연구 논문을 통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임상 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며 성공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또 다른 사례로는 래피드(RAPID) AI사가 있다. 이 회사의 응급 솔루션은 의료진이 상시 대기하기 힘든 심야 시간대에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게 해준다. 응급 뇌졸중 의심 환자의 뇌 영상을 분석한 뒤 즉각적인 알람 시스템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환자 뇌 CT가 촬영되면 AI 기술로 뇌졸중과 관련된 뇌출혈이나 뇌경색 관련 소견을 탐지하고, 이를 e메일이나 모바일 앱 알람을 이용해 의료진에게 즉시 통보한다. 래피드는 최초 진단,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에 의해 생명이 좌우되는 뇌졸중 환자의 생존율과 예후를 개선하는 효과를 입증함으로써 의료기관에 빠르게 도입,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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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른 시스템과의 유기적 통합

새로운 솔루션이 기존 시스템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통합돼 전체 임상 워크플로를 개선하는지도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다. 이에 최근 의료 AI 분야에서는 기존 병원 시스템에 자사 소프트웨어를 침투시켜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존 기업과 신생 기업의 경쟁이 한창이다. 기존 진단 영상 장비 업체와 의료 영상 병원 정보 시스템인 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제공자들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새로운 마켓플레이스 제공 기업들까지 가세한 양상이다. 보통 병원들은 다양하고 복잡한 절차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단일 질환 중심의 접근보다는 영상 획득부터 판독, 결과 제공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워크플로 관점의 접근을 선호한다. 실제로 이미 GE, 필립스, 지멘스 등의 진단 영상 장비 업체들은 하드웨어, 그리고 이와 연계된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통해 병원 시스템과 통합돼 있다. 이들은 또 AI를 추가적인 서비스로 병원에 제공하기 위해 각각 에디슨(Edison), 인텔리스페이스 AI 워크플로 스위트(IntelliSpace AI Workflow Suite), 팀플레이(Teamplay) 등의 플랫폼도 구축했으며, 자사 솔루션뿐 아니라 제3의 협력 기업 솔루션까지 도입해 생태계를 확대, 강화하려 하고 있다.

한편 케어스트림, 후지필름, 인피니트 등 PACS 제공자들은 의료 영상 데이터베이스 및 판독 시스템을 중심으로 이미 의료진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이점을 살리려 하는 중이다. 따라서 기존 판독 환경에 추가하는(add-on) 형태로 AI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하며, 특정 질환보다는 해당 임상 환경 전반에 유틸리티로 포지셔닝해 지능화된 임상 판독 환경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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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원화된 사용자 플랫폼 구축

이와 별개로 엔보이AI(EnvoyAI), 아터리스(Arterys), 블랙포드(Blackford), 뉘앙스(Nuance) 등은 각각의 의료 AI 솔루션을 애플리케이션(앱) 형태로 호스팅하는 독립된 마켓플레이스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 이들의 사업 목적은 개별적인 솔루션에 대해 통일성 있는 사용자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공급 채널을 일원화, 대형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수많은 AI 기반 의료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가 마켓플레이스 서비스를 통한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개별 솔루션에 대한 검증 및 품질 관리, 이익 배분 등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고, 각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직접 사업에 뛰어들면서 복잡한 경쟁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이런 마켓플레이스 형태의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구글, MS, 아마존, 엔비디아 등 실리콘밸리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들까지 의료 AI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이 분야 국제 전시회에 클라우드 공룡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 영상은 규모 자체가 방대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수집 및 저장하거나 AI 모델을 학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엄청난 연산량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의료 AI가 수익성 높은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 분야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들이 향후 의료 AI 솔루션 마켓플레이스를 제공하거나 직접 의료기관을 상대로 데이터 수집, 저장, 분석, 전달에 이르는 통합 의료 AI 플랫폼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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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I 비즈니스의 현주소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 FDA가 인구 노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와 의료진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전향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2012년부터 기계 학습 기반의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이에 따라 2017년 1월에는 아터리스(Arterys)사가 개발한 AI 기반 심장 MRI 영상 정량화 솔루션이 FDA 승인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딥러닝을 이용한 클라우드 기반 의료 영상 정량화 소프트웨어가 승인을 받고 상용화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어 2018년 4월에는 의료진의 개입 없이도 환자의 상태, 즉 당뇨병 합병증 중증도에 따라 전문의 상담을 권고해주는 AI 기반의 망막 영상 분석 솔루션 IDx-DR가 승인을 받았다. 이에 더해 미국 FDA는 개별 의료기기가 아닌 의료기기 제조사에 허가를 주는 프리-서트(Pre-cert) 프로그램을 시작해 10여 개 회사를 참여시켰다. 이런 대대적인 변화가 나오면서 수많은 스타트업과 기존 대형 영상 진단 의료기기 기업에서 AI 기반 의료 영상 분석 솔루션에 대한 연구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수십 종의 제품이 FDA의 승인을 받은 상태다.

국내에서도 의료 영상 분석 및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는 현행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되고 있으며, 따라서 임상 현장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서 2016년부터 식약처를 중심으로 AI 기반 의료기기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 이듬해 관련 허가 심사, 임상 유효성 평가 가이드라인이 생겼다. 이 같은 발판이 마련되면서 AI 기반 의료 데이터 분석 및 진단 보조 솔루션 개발 업체인 뷰노는 2018년 5월 국내 최초로 소아 골연령 진단 보조 솔루션인 ‘뷰노메드 본에이지’에 대해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승인을 획득했다. 현재 50개 이상의 의료기관이 솔루션을 사용 중이다.

이밖에도 여러 스타트업 및 관련 대기업에서 식약처 허가를 획득해 2020년 4월 현재 10개 이상 기업의 20종 이상의 의료 AI 솔루션이 임상에 도입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외에는 전 세계적으로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은 사례가 드물고, 특히 중국과 일본의 경우 최근에야 AI 기반 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각국의 인허가를 획득하기 시작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규제 마련 및 상용화 속도는 빠른 편이다. 국내 성과를 기반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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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AI 상용화의 길

빌 게이츠는 “우리는 앞으로 2년 뒤에 닥쳐올 변화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지만 10년 뒤에 올 변화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의료 AI 영역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현세대 AI의 아버지이자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인 튜링상(Turing Award)을 수상한 토론토 대의 제프리 힌튼 교수는 2016년 한 행사장에서 “5년 안에 AI가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넘어설 것이므로 영상의학 훈련을 그만둬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의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바 있다. 의료 AI가 최근 수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의료진보다 높은 진단 정확도를 보여주는 기술과 사례들이 축적돼 왔지만 이런 기술이 본격적으로 임상 현장에 도입돼 사용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다. 과대평가로 인한 근시안적 목표 설정, 과소평가에 따른 개발 위축 사이에서 상업적 성공 시점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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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측면에서는 딥러닝 모델의 설명력 부족이나 결과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정량화하고 보완할 것인지, AI의 비정상적인 작동을 유도하는 적대적 공격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AI 모델의 개발과 검증에 활용되는 민감한 데이터의 보안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등의 이슈가 남아 있다. 또 여전히 AI 기반 의료 솔루션들이 다양하지 않고, 기존 병원 시스템과의 통합 수준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규제의 측면에서도 여전히 의료기기 허가, 신의료기술평가, 보험급여 결정과 같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힌 문제를 풀어야 하며, 이를 위해 상당한 비용과 시간 등의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개발 이후에도 큰 불확실성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분야에 진입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하는 기업 경영자는 단지 기술의 발전 속도나 파급 효과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리기보다는 관련 산업의 규제 현황과 윤리적, 법적 이슈, 이해관계자들의 관계, 제품 수요자의 니즈 등을 분석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가령, 국내에서는 단일 보험 체계에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 수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AI 의료기기의 도입과 상업적 성과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의료 AI 솔루션의 역할이 의료진의 편의성 개선이나 병원 생산성 향상에 그친다면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오진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선별 검사로의 효용을 입증하는 등 근거를 훨씬 더 탄탄하게 마련해야만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장기간의 연구와 추적 관찰이 필요한 만큼 단기간에 임상 도입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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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문 영역에서 AI의 일상적 활용은 다양한 윤리적, 법적 논란을 유발한다. 특히 의료의 진단 및 처방에 있어서 AI의 오진이나 잘못된 처방이 환자의 건강이나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준 경우 책임 소재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그 책임이 최종적인 판단을 한 의료진에게 있지만 향후 AI가 일상적으로 적용되고 의사의 개입 없이도 사용되는 경우엔 해당 AI를 개발한 제조사도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와 맞물려 AI로 인한 의료사고가 일어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AI 개발사, 사용자인 의료진, 그리고 공공 및 민간 보험 중 누가 얼마나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의료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의료진의 숙련도가 저해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심전도 판독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청진기를 이용한 진단이 신기술 도입으로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향후 의료진이 AI가 작동하지 않거나 오작동하는 상황에서도 AI에 의존하던 진단, 시술을 현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제도적 이슈들이 기술 발전과 제도 개선으로 하나씩 해결되고 있고, 의료 데이터의 표준화와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할 만큼 AI가 의료의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 잡는 건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이 틈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상업적 성과를 거두려면 결국 최종 수요자인 의료진과 환자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첨단 기술에만 매료되기보다는 시장의 미충족 수요를 간파하고 하트플로, 래피드AI사처럼 시장에서 환영을 받는 킬러 솔루션을 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기술도 결국 수요자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소개 정규환 뷰노 부사장•최고기술책임자(CTO) kyuhwanjung@gmail.com
정규환 CTO는 포항공대에서 산업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SK텔레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등에서 빅데이터 및 AI 관련 연구 개발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뷰노의 공동 창업자로서 의료 AI 솔루션 연구 개발을 이끌고 있다. 대한의료AI학회 및 대한의학영상정보학회 산업이사로서 학술 활동 및 강연을 통해 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