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하이트진로가 2019년 3월 출시한 테라는 그동안 신제품 기근에 시달리던 국내 맥주 시장에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초대형 히트 상품이다. 신제품에 목마른 소비자를 ‘새로움’을 강조하며 공략했고, 과거의 영광 ‘하이트’라는 상위 브랜드를 철저히 떼어버림으로써 오히려 참신함을 키웠다. 또한 집에서 마시는 ‘홈술’과 혼자 마시는 ‘혼술’ 트렌드에 제대로 올라탔다. 특히 저관여 상품군에서 쉽게 자극되는 ‘다양성 추구 성향’과 그에 따른 ‘브랜드 이탈’을 잘 활용했고, 마케팅 4P 차원에서는 제품(product)과 촉진(promotion) 영역에서 상호보완적 시너지를 일으키며 성공했다.
테슬라(?)의 쾌속 질주2019년 전국 주점에서 가장 많이 쏟아진 주문은 바로 “여기 테슬라 주세요”일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맥주 ‘테라’와 소주 ‘참이슬’을 일컫는 이 신종 단어는 불과 작년까지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의 고유명사로 불렸던 ‘카스처럼(오비맥주 카스와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을 밀어내고 새로운 한국 주류문화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트진로가 ‘청정라거’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내걸고 올해 3월21일 출시한 테라는 그동안 신제품 기근에 시달리던 국내 맥주시장에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초대형 히트상품이다.
제조사인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테라는 출시 39일 만에 100만 상자가 팔려 맥주 브랜드 가운데 출시 초기 가장 빠른 판매 속도를 기록했다. ‘하이트’ ‘맥스’ ‘드라이피니시d’ 등 과거 이 회사 제품의 출시 첫 달 판매량이 20만∼30만 상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최고 5배 많은 수치다.
이후 가속도가 붙으며 약 100일 만에 1억 병을 거쳐 맥주 성수기인 7∼8월 두 달간 300만 상자(한 상자당 10리터)를 판매해 출시 160일 만인 8월27일 기준으로 누적 판매량 667만 상자, 2억204만 병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초당 14.6병 판매된 것으로 병을 누이면 지구를 한 바퀴(4만2411.5㎞) 돌릴 수 있는 길이(4만6500㎞)다. 출시 101일 만에 1억 병을 판매한 후 그 절반밖에 안 되는 기간인 59일 만에 다시 1억 병을 더 판 셈이다.지난 9월에는 세계적인 미식가이드 미슐랭 가이드 서울(Michelin Guide Seoul)이 국내 맥주 브랜드 최초로 테라를 공식 파트너로 선정했다.
‘주류시장의 최전선’으로 꼽히는 핵심 상권 내 식당에서 테라는 이미 1위 맥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9월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가 강남, 여의도, 홍대 등 서울 주요 지역 식당 80곳을 상대로 맥주와 소주 점유율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테라 점유율은 61%로 경쟁사인 오비맥주의 카스(39%)를 압도했다. (그림 1)
지역별로는 여의도에서 74%의 점유율을 보여 가장 높았고 강남과 홍대에서는 각각 55%를 기록했다.
소매 채널에서 테라의 영향력은 실제 주요 개별 유통업체들의 판매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유통업체들은 제조사들과의 관계를 의식해 특정 카테고리에서의 브랜드별 판매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통사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A 대형마트에서 조사한 국내 맥주 카테고리 내 브랜드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지난해에는 오비(카스, 53.5%), 하이트(35.3%), 롯데(클라우드·피츠, 11.2%) 순이었다. 하지만 올해 10월 말 기준으로는 오비(50.6%), 하이트(24.4%), 테라(18.7%), 롯데(6.3%)로 바뀌었다. 카스와 하이트의 1·2위 구도는 유지됐지만 브랜드별 점유율을 새롭게 등장한 테라가 흡수한 것이다. (그림 2)
최근 맥주의 핵심 소매창구로 떠오른 편의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해 B 편의점의 국산 맥주 판매 순위 중 테라 500㎖ 캔의 순위를 살펴본 결과 출시 직후인 4월 9위로 시작해 5월에 4위로 올라선 후 8월부터 10월까지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테라의 성공 덕에 이 편의점에서 하이트는 오비의 아성을 조금씩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78대22였던 오비와 하이트의 매출 점유율은 2분기 74대26, 3분기 72대28에서 지난 10월에는 71대29로 조정됐다.
판매 순위를 국산·수입 맥주 통틀어 집계한 C 편의점에서는 한때 테라가 2위까지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 편의점이 취급하는 98종의 500㎖ 캔 가운데 테라는 지난 4월 15위에서 출발해 7월에 9위를 거쳐 8월에 2위를 차지했다. 이후 9∼10월에는 4위를 유지하고 있다.(그림3) 테라의 성공은 전체 국산 맥주의 매출 신장까지 견인한다는 평가다. 한 대형마트에서 테라가 출시된 올해 3월부터 10월 말까지 국산과 수입 맥주 매출을 전년 동기와 비교해보니 수입 맥주는 5% 줄어든 반면 국산 맥주는 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테라는 단순한 맥주 신상품을 넘어 올해 국내 주류시장을 강타한 메가 히트 제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한때 맥주명가로 불렸던 하이트진로가 과거의 영광을 다시 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불어넣고 있다. 추후 성공 요인 분석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이 같은 테라의 성공 요인으로는 저관여상품인 맥주 소비자의 다양성 추구 성향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과거 도요타의 렉서스 출시 때와 같은 독립 브랜드 전략을 편 것, 혼술 트렌드에 맞춰 소매시장을 적극 공략한 것, 제품과 촉진을 영리하게 결합한 4P 보완 전략이 주효한 것을 꼽을 수 있다.테라가 국산 맥주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유1.신제품에 목마른 소비자…새로움 강조한 테라에 꽂혔다테라의 알코올 도수는 4.6도다. 경쟁 제품인 카스나 하이트진로 주력 제품인 하이트의 4.5도와 비교하면 오히려 더 높아 최근 틈새상품으로 각광받는 저도주 라인과는 거리가 먼 ‘정통’ 맥주로 분류된다. 정통 라인의 국산 맥주가 새롭게 출시된 것은 지난 2014년 롯데의 클라우드 이후 5년, 젊은 층을 겨냥한 신상품인 롯데 피츠 출시 이후 2년 만이다.
기존 제품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맥주 브랜드는 카스와 하이트가 양분해왔던 맥주 시장에 피로감을 느껴온 소비자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카스를 앞세운 오비맥주가 최대 60%, 하이트 등 하이트진로가 30% 내외를 점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리뉴얼은 있었지만 카스 출시가 1994년, 하이트는 1993년 출시인 것을 감안하면 20년 넘게 같은 맥주 브랜드의 독주가 이어진 셈이다. (DBR minibox: ‘국산 맥주 숙명의 라이벌, 오비와 하이트진로’ 참고.)
그간 오래된 국산 맥주 브랜드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은 다양성 추구 성향을 수백여 종에 달하는 수입 맥주를 마시며 해소했다. 하지만 테라 출시 시기와 맞물려 잇따라 터진 수입 맥주 관련 부정적인 이벤트는 ‘새로운 국산 맥주’에 소비자들이 눈을 돌리게 한 계기가 됐다. 한 대형마트 주류 MD는 “청정맥주를 표방해 출시했는데 때마침 당시 수입 맥주의 발암물질 이슈가 발생하며 반사이익을 거둔 측면도 있다”며 “여기에 7월 일본 맥주 불매운동 이후 판매가 급신장하며 베스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테라가 출시된 지 한 달째인 지난 4월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부 수입 맥주에 농약 성분이 들어 있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맥주 15종과 와인 5종에서 농약 성분이자 2급 발암추정물질인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됐다는 내용이 담긴 미국 소비자단체 US PIRG의 2월 보고서가 알려지며 급기야 ‘농약맥주’ 리스트까지 만들어졌다. 결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총 41종의 수입 맥주·와인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최종적으로 ‘문제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사건은 출시 초기 테라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된 중요한 이벤트로 평가된다.
여기에 지난 7월 일본이 수출 규제와 이에 따른 한일 관계 경색으로 강력한 라이벌이던 일본 맥주가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호재도 생겼다. 8월부터 일본 맥주의 주요 소매 채널인 편의점들이 ‘4캔에 1만 원’식의 할인행사에서 일본 맥주를 제외하며 주요 편의점의 일본 맥주 매출은 행사를 할 때와 비교하면 1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 결과 최근 10년간 국내 수입 맥주 시장점유율 1위였던 일본 맥주는 지난 7월 3위로 밀려난 데 이어 8월, 9월에는 각각 13위, 27위로 계속 떨어졌다.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지난 9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맥주 수출액은 59만 엔(약 630만 원)으로 전년 동기 7억8500만 엔(약 84억 원)보다 100%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