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olumn

보수화된 혁신기업, 다른 혁신에 무너져

269호 (2019년 3월 Issue 2)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게임 강국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계 최대의 게임사는 어디일까? 한국의 넥슨도, 엔씨소프트도 아니다. 바로 중국의 IT 강자 텐센트다. 2018년 텐센트의 게임 매출은 무려 20조 원으로 한국 전체 게임시장 규모 13조 원의 1.5배였다. 그러나 10여 년 전 텐센트는 수익모델 부재로 고전하던,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회사에 불과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텐센트는 2003년 동시접속자 3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QQ메신저 유저를 기반으로 온라인게임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역시 기대한 만큼의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다.

2004년 2월 텐센트 본사를 방문한 필자에게 30대 초반의 게임사업 담당 임원은 한국의 한 게임 회사를 소개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이 회사와 만나고 싶은데 아무리 연락해도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네오위즈’였다. 텐센트는 네오위즈와 제휴해 게임 콘텐츠와 운영 노하우를 도입하고 싶어 했다. 흔쾌히 수락한 뒤 필자는 한국으로 돌아와 네오위즈 대표를 만나 텐센트의 의향을 전달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답이 왔다. 지금 국내 사업만으로도 여력이 없어 중국은 무리라 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텐센트는 세계 최대의 게임 회사이자 세계 3위의 인터넷 기업이 됐다. 반면 네오위즈는 3000억 원의 시가총액 기업에 머물러 있다. 네오위즈뿐만이 아니다. 2018년 말 국내 1위 기업인 넥슨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가장 유력한 인수기업으로 텐센트가 거론되고 있다. 만일 실제로 인수된다면 넷마블, 카카오, 블루홀을 포함해 한국의 메이저 게임사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텐센트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것은 반세기가 넘는 기술혁신 연구에서 가르쳐준 하나의 ‘경고’를 잊었기 때문이다. ‘혁신 기업은 반드시 혁신에 무너진다’ 이 말은 하나의 파괴적인 혁신을 이룩한 ‘위대한 기업’은 보수화되고 다음 순간 닥쳐오는 혁신의 쓰나미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런 경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첫째, 기술이나 플랫폼 변화에서의 보수화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어느 순간부터 1990년대 후반 일본의 콘솔산업이 보였던 보수성을 그대로 답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존의 강점을 가졌던 온라인게임에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게임으로의 전환에 늦었다. 일본의 콘솔이 PC 기반의 온라인게임에 뒤처진 것과 동일한 결과다.

둘째, 경쟁 기업을 무시하는 오만함이다. 텐센트를 포함한 중국 기업은 한국 게임을 수입해 퍼블리싱하면서 사업을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소위 갑을 관계로 보면 한국 기업이 ‘슈퍼 갑’이었고 중국 기업은 ‘을’이었다. 그러나 2010년을 지나면서, 특히 모바일게임으로 시장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런 갑을 관계에 균열이 왔고, 지금은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 게임사는 최근까지도 과거의 ‘영화(榮華)’에 취해 있었다.

셋째, 조직과 경영의 보수화다. 한국의 게임사는 압도적인 기술 격차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로열티 수업에 의존하는 경영을 하고 있었다. 게임은 전형적인 ‘born global(태생적 글로벌)’ 산업이지만 한국 게임사들은 M&A나 글로벌 개발과 같은 글로벌 비즈니스가 아닌 한국이라는 로컬시장에 기반한 글로벌에 안주했다.

모든 산업에서 혁신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두려울 정도다. 10여 년 전의 글로벌 강자 중 지금은 이름조차 소멸한 기업도 많다. 10년 후 한국 게임은 어떻게 돼 있을까? 두려울 뿐이다. 


필자소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경영전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게임학회 부회장,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중앙대 게임콘텐츠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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