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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크리스텐슨 교수 등 대담

“지속적인 성장에 어려움을 겪나요?
성장은 계획 아닌 때를 잘 판단하는 것”

최한나 | 264호 (2019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경제가 쇠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들이 소비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데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서 더 큰 성장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줄어들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와 마이클 레이너 딜로이트컨설팅 이노베이션 센터장, 앤 크리스텐슨 파괴적혁신연구소 소장이 나눈 대담을 정리한다(이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클레이튼으로, 마이클 레이너는 마이클로, 앤 크리스텐슨은 앤으로 표기함).



많은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기업들에 조언을 해준다면.

마이클 『Good Strategy/ Bad Strategy』의 저자인 리처드 루멜트 교수에게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겠다. 루멜트 교수가 애플 CEO로 복직한 이후의 스티브 잡스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잡스가 애플 CEO로 복직한 것은 상당히 극적인 이야기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공동 창업한 후, 애플은 산업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이 됐고, 관련 산업을 다시 정립했다. 이후 애플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여러 CEO를 거쳐 스티브 잡스 복귀가 결정됐다. 잡스가 돌아와 처음 했던 일은 출혈을 막는 것이었다. 당시 애플은 13개 제품을 내놓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애플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잡스는 우선 제품군을 4개로 축소했다. 또 비용 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했다. 이를 통해 침몰하는 배의 구멍을 막아서 다시 뜰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애플은 많은 성공을 거뒀다.

스티브 잡스를 만난 루멜트 교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제까지 많은 일을 했지만 이것이 애플의 다음 성공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의미였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답했다. “기다리겠다.” 루멜트 교수가 “수백억 달러 기업의 수장으로서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자 잡스는 “물론 그렇지만 지금은 그럴 만큼 대단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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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성장의 때를 잘 판단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장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성장을 고민한다고 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스티브 잡스처럼 때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클레이튼 소비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소비자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여러 유형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entertain)’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즐길거리를 찾는다. 모든 해결 과제에는 사회적, 감정적, 기능적 측면이 있는데 과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서비스나 제품을 구매하고 이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준다’는 과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기업이 디즈니다. 여러분이 디즈니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해보라. 즐거움을 준다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까지 디즈니는 놀이공원이라는 방법을 활용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놀이공원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미국 중부지역을 예로 들어보자.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경제 수준이 높지 않고, GM에서 최근 15만 명을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처럼 실직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들도 즐거움을 얻고 싶어 한다. 디즈니 공원에 가는 것은 이들에게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이들이 올랜도나 LA에 가서 디즈니에 방문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는 신시내티라는 미 중부의 한 도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신시내티는 물가가 별로 비싸지 않고 중부에 있으므로 누구나 차로 하루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디즈니가 신시내티에 이 포럼이 열리는 홀의 절반 정도 규모로 건물을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이 올랜도까지 가지 않고도 신시내티에 가서 디즈니가 제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해결 과제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가 쇠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들이) 해결 과제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런 능력은 더 나아질 것이다. 다만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이제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다.

엔터테인먼트와 마찬가지로 헬스케어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가능성이 많은 분야다. 따라서 기업들은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한다.


앤  마이클 레이너 센터장께 질문드리겠다. 전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이것은 해결 과제와 어떻게 연관돼 있을까?


마이클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해 넷플릭스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우수한 우편 기반 DVD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한층 진화된 콘텐츠 추천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성장한 기업이다. 이제는 HBO나 아마존 프라임과 경쟁하면서 콘텐츠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혁신에서 다시 전략으로 초점을 옮긴 것이다. 이제는 한층 더 상위 시장으로 이동해 가격을 높이면서 과거 성공을 거둬왔던 거점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런 행보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가 전략에서 혁신으로, 다시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레이튼 이번 포럼에 오신 여러분은 앞으로 남북이 겪었던 일 중 가장 큰 변화인 한반도 통일을 겪게 될 것이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물론 여러분이 이 주제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시장의 하이엔드(high-end) 계층보다 가장 낮은 층위에 더 큰 성장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 주민에게는, 기본적으로 해결돼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던 과제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이를 해결해주는 분야에서 기회가 많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한국에 대한 여러 통계 수치를 살펴봤는데 그중에서도 출산율이 매우 낮았다. 이것은 미래까지 미뤄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굉장히 다양한 난제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청년으로 한국에서 일할 때는 서로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30년 전만 해도 그랬던 사람들이 왜 출산율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인지, 왜 이렇게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 청년들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기능적인 수학적 함수의 결과들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한국은 내가 보기에 행복한 국가다. 하지만 한국의 성인들도, 어린이들도 즐거운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점점 잘 모르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 한국의 발전 속도가 떨어지는 이유인 것 같다.


한국의 국가적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마이클 센터장께서는 경제 주기를 고려했을 때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


마이클 나는 많은 분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1950∼1970년대를 지나면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은 선진국의 하나로 일선에 서 있다. 지금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갈 것인지를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모든 부분에서 선택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조직이든, 국가든, 개인이든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가족을 꾸릴지 말지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탄소 배출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지구 역사상 5번의 멸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96%의 종이 사라졌던 멸종의 시기를 가져왔던 원인은 탄소로 인한 오염이었다. 그로 인한 변화가 너무 빨라서 생태계를 구성하던 많은 종이 사라졌다. 당시 탄소가 매년 3Gt(기가톤)씩 배출됐는데, 지금은 매년 11Gt씩 배출되고 있다. 청정에너지는 아직 큰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분야인데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질의응답
질문 1. 애플은 세계적인 혁신 기업이지만 2018년 신제품은 ‘고가 고성능(high price, high performance)’이 아닌 존속적 혁신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마이클 나는 애플이 존속적 혁신을 하고 있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애플은 여전히 ‘premium performance, high price’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적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60∼80% 수준의 제품을 출시하는 경쟁사보다 낫다고 본다. 앞으로도 애플은 이러한 전략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애플이나 삼성, 화웨이가 추진하는 전략은 각각 다를 것이다. 애플은 전체 시장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다. 특정 세그먼트를 공략하는 것이다.


질문 2. 전기자동차가 등장한 파괴적 혁신의 상황에서 한국의 현대차처럼 내연기관에 의존한 기존 자동차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클레이튼 상황은 명확하다. 기존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려고 한다면 렉서스나 BMW, 벤츠 같은 하이엔드 시장도 공략하게 될 텐데 이는 존속적 혁신에 해당한다. 하지만 시장의 가장 낮은 층위로 가면 내연기관 기반의 자동차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있고, 이들에게 전기자동차는 매력적인 옵션으로 다가갈 것이다. 내가 만약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다면 유럽이나 북아시아가 아니라 나이지리아와 같은 시장, 즉 생산성을 구가할 수 있는 시장에 진출할 것이다.


마이클 기술이 고급 시장에서 저급 시장으로 내려와서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고,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되면 이를 더 낮은 비용의 기술로 상용화한 기업들이 고가 시장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런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테슬라를 생각해보면 테슬라는 고가 시장에서 출발해서 주류 시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것이 모델3의 전제였다. 테슬라는 패턴과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1962년 IBM은 공정의 수직 통합을 달성하고 그 누구도 디스크 드라이브가 무엇인지 모르던 때에 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들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이와 유사하게 만약 나이지리아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려고 한다면 이곳에서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너무 비쌀 것이다. 테슬라는 수직 통합된 디자인과 제조 공정을 가질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배터리까지 자체 생산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저가 시장에도 진입할 수 있었다. (전기차와 관련한 시장 구도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질문 3. 한국 헬스케어 시장에서도 파괴적 혁신이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규제가 혁신 동력을 막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제언이 있다면?


클레이튼 제가 한국 시장과 역사에서의 사례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혁신가들은 그 혁신의 범위가 규제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규제 당국은 언제나 규제 범위 안의 사람들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몽골에서 사용되는 기술에는 한국 규제 당국의 손이 닿지 않는다. 혁신가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마이클 혁신과 관련해서는 어느 시장이든 문제를 가지고 있다. 클레이튼 교수님 말씀에 덧붙이자면 규제를 피해야 한다. 규제 당국이 이 기술을 포용할 수밖에 없는 혁신을 달성해야 한다. 기업은 아직 의료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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