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2015년 ‘72초’ 드라마라는 채 2분이 안 되는 웹드라마와 함께 나타난 칠십이초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살짝 비틀거나 재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면서 국내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들이 가장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모바일 및 웹 콘텐츠 제작 기업으로 떠올랐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스마트폰으로 보기에 최적화된 촬영 기법, 대사보다 내레이션 중심의 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칠십이초의 콘텐츠는 2030세대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모바일 콘텐츠 문법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광고 아닌, 광고 같은, 광고 영상’을 만드는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이나 콘텐츠 자체를 브랜드화해서 해당 콘텐츠에 등장하는 제품을 실제 상품화하는 ‘콘텐티드 브랜드’ 전략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모바일 콘텐츠는 돈이 안 된다’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혼자 사는 30대 남자. 아침 6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깨 일어나자마자 ‘섹시하게’ 목욕가운을 입는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위해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는 365일 완벽하게 정리돼 있다. 그중 맨 앞에 있는 식빵을 꺼내 토스트를 굽는다. 이때 커피는 필수!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갓 내려진 ‘룽고’ 커피를 토스트에 곁들인다. 아, 난 인텔리한 남자니까 영자신문도 잊지 않는다.퇴근 후 집에 놀러 온 애인과 술 한 잔을 한다. 그녀가 말한다. “전 와인 마시면 취해요.” 그래, 오늘은 와인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참으로 ‘완벽한’ 하루다.그런데 다시 알람 소리가 들린다. 왜지?… 왜 또 알람이 울리는 거지? 아차, 이 모든 게 꿈이구나. 너저분한 침대, 텅 빈 냉장고. 다시 현실이다.혼자 사는 젊은 남자의 이상과 현실을 그린 웹드라마 ‘72초’의 첫 회 내용이다. 1분40초 정도로 짧은데다 특별한 내용도 없고, 심지어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 동영상은 네이버TV에 방영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제작사인 ‘칠십이초’를 세상에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15년 5월10일, 첫 예고편이 올라온 이후 칠십이초는 이 웹드라마를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올렸다. 모바일 콘텐츠지만 마치 드라마처럼 매주 같은 시간에 네이버TV와 유튜브 등에 콘텐츠를 올림으로써 정기 연재 형식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첫 에피소드였던 ‘나는 혼자 사는 남자다’ 방영 이후 ‘나는 오늘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오늘 미용실에 갔다’ ‘나는 평범한 남자다’ 등 흔남(흔한 남자)인 남자 주인공의 일상을 위트 있게 보여주는 짧은 드라마 형식의 동영상들이 연이어 방영됐다. 낯선 여자와 엘리베이터를 단둘이 탔을 때 남자들만이 느낄 법한 은밀한 심리나 연예인 머리를 본뜬 멋있는 헤어스타일을 꿈꾸며 미용실에 들어서곤 결국 ‘깔끔하게요’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현실 남자들의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여기에 B급 ‘병맛’ 코드가 가미되면서 영상에 재미를 더했다.
웹드라마 ‘72초’ 시즌 1이 네이버를 통해 공개되면서 가능성을 눈여겨본 기업들이 너도나도 제휴 요청을 해왔다. 하지만 칠십이초는 나름의 원칙과 스타일이 확고했다. 자신들의 제작 방식이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작업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그들만의 특별한 스타일로 보여주는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 이후 자신감을 얻은 칠십이초는 72초 드라마 시즌 2, 오구실, 두여자(Deux_Yeoza), 바나나액츄얼리, 태구드라마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모바일 및 웹 콘텐츠 생산 전문 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렇다고 칠십이초를 웹드라마 제작 전문 업체로 부르기는 애매하다. 모바일에 특화된 드라마를 주로 제작하지만 광고도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찍는다. 또 기업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대놓고 PPL을 앞세운 ‘광고 아닌, 광고 같은, 광고 영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신들이 제작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장품 판매에도 기웃거리더니 아예 콘텐츠를 활용한 패션 브랜드까지 론칭하고 성수동에 매장 오픈을 준비 중이다. 기업들이 가장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싶어 하는 콘텐츠 제작사, 거기에 MCN(Multi Channel Network) 업계에서 가장 고퀄러티의 콘텐츠를 만든다고 평가받는 칠십이초. 모바일에 특화된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워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고 있는 칠십이초의 성장 스토리를 DBR이 분석했다.
공연기획자, 연출가, 미술감독, 무대감독이 모여 만든 스타트업모바일 콘텐츠 분야는 전형적인 레드오션 시장이다. 젊은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채널이 모바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모두가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이고 CJ E&M 등 대기업 계열 콘텐츠 제작사, 외주 제작사, 광고회사 등 콘텐츠 제작에 일가견이 있다는 기존 강자들이 콘텐츠 제작 능력과 제작비 동원 능력 등을 앞세워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이른바 아프리카TV, 유튜브 등을 활용한 1인 미디어가 범람하면서 시청자들의 선택권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넓어졌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평균 클릭 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칠십이초는 이런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짧은 시간에 가장 주목받는, 그리고 가장 혁신적인 모바일 및 웹 콘텐츠 제작사로 자리매김했다. 그 배경에는 창업자 그룹의 독특한 이력이 한몫했다.
특이하게도 칠십이초의 공동 창업자들은 공연기획, 무대감독, 미술감독 등 순수 예술 분야 출신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칠십이초 창업 전 인더비(In the B)라는 공연기획사에서 함께 일했다. 모바일 및 웹 콘텐츠 시장 경쟁자들이 대부분 독립제작사나 마케팅 업체, 기술 스타트업인 것과 대비된다. 그 때문에 이들은 처음부터 ‘데이터 분석’이나 ‘모바일 문법’ 등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잘 몰랐다. 대신 재미와 창의성에 집중했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성지환 대표는 수학을 전공한 개발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공연 기획 일을 하면서 보냈다. 본인이 잘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멀쩡하게 학교를 잘 다니다 졸업 전 마지막 기말시험을 앞두고 공연 기획 일이 해보고 싶어 커리어를 전환한 케이스다. 성 대표는 서울아트스쿨(SSOPA·한국공연예술학교의 전신)에서 이론을 배우고 자라섬재즈패스티벌에서 공연 기획 실무를 배운 후 2010년 인더비라는 공연기획사를 세운다. 이 인더비가 칠십이초의 모태다.
인더비는 무대감독, 뮤지션, 배우 등 다양한 전공 분야 창작자들이 소속돼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상을 전문으로 하던 회사는 아니다. 인더비의 당시 제품들을 살펴보면 각기 다른 전공자들이 모여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EBS의 ‘다큐프라임’팀과 함께 제작한 ‘악기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장르의 창작가들이 모여 만든 아트파티 공연 ‘톰과 제리의 밤’ 등이 대표작이다. 칠십이초의 첫 작품인 웹드라마 ‘72초’ 역시 사실 인더비 시절 만들었다.
인더비는 창업 후 4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선보였고 독특하고 창의적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실험적인 것들을 시도하다 보니 돈 버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던 것. 결국 5년을 채우지 못하고 성 대표는 인더비를 접는다. 당시 상황을 성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신기한 일을 많이 하니까 문화예술 분야 지원 기관에서 지원금을 주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가 하는 일이 돈이 될 만한 사업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사업을 더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