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겸의 Sports Review
성공한 운동선수들의 인터뷰를 분석해 보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운동했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력이고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더 많이 노력했다고 믿는 것이다.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에 ‘상대 선수가 저보다 더 훈련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저의 타고난 재능을 상대가 따라올 수 없어서 우승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선수를 보았는가? 경기에 이긴 선수만이 아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가 ‘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금메달을 놓친 원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실력과 관계없이 운동선수들 중 자신이 보통 선수들보다 운동을 덜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선수들이 자신이 평균보다는 더 노력한다고 믿는다.
늘 접하는 일이라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따져보면 선수들의 이러한 믿음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선수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는 판단은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면 사실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수들 평가를 모두 모아보면 이런 말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수는 모든 선수보다 더 열심히 운동했다.’ 또는 ‘모든 선수의 훈련량은 전체 선수 평균 훈련량보다 높다.’ 이는 단순히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훈련하고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운동선수들이 자신을 평가하는 데 훨씬 더 관대해서? 아니면 승리한 선수들이 타고난 재능에 대해 겸손한 척 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선수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에서 찾을 수 있다.
가용성 휴리스틱이란 쉽고 빠르게 생각나는 근거를 우선 사용해 평가하고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정확한 평가와 결정을 위해선 즉시 떠오르는 근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시 떠오르는 생각이 타당한 근거가 아닐 수도 있다. 다른 근거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정확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평가나 결정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운동선수들의 노력량에 대한 자기 과대평가는 가용성 휴리스틱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경우에도 반자동으로 사용한 가용성 오류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제일 열심히 했다’거나 ‘다른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는 믿음은 자신의 노력량과 다른 선수의 노력량에 대한 두 가지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을 때만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종류의 정보는 가용성 면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누구나 자신이 훈련하고 고생한 것은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선수들이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은 본 적조차 없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팀 선수 또는 함께 운동하는 선수들이 있으면 다른 선수의 노력량도 잘 알 수 있지 않겠냐고? 그렇지도 않다. 함께 운동하는 중이라 해도 결국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경험이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선수에 대한 정보의 생성량 자체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평가는 가용한 기억 또는 인상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정보도 다른 선수에 대한 것보다는 자신에 대한 것이 더욱 생생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가용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 자신의 노력량은 빠짐없이 모두 챙겨서 저울에 달지만 다른 선수의 노력량은 주변에서 눈에 띄는 것만 대충 모아서 반대쪽 접시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노력을 모은 것이 다른 선수의 노력을 모은 것보다 항상 무거워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러한 가용성 오류로 인한 자기 노력 과대평가를 경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스포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재 신화’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성공하면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성공한 이유는 타고난 재능 때문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천재 신화는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성공과 실패, 또는 승패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내가 상대보다 더 노력했기 때문에 나는 할 만큼 다 한 것이다. 상대가 더 재능이 뛰어나서 이긴 것을 내가 어쩌란 말인가?’ 이런 생각 때문에 노력을 더했는지, 덜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고, 운동을 효과적으로 열심히 했는지, 무작정 열심히 했는지도 따져보지 않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천재 신화는 나는 노력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안 되는 거, 나는 할 만큼 했으니 됐다고 포기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내가 상대보다 조금 덜 열심히 했다’거나 ‘내 노력의 질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동기부여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러한 천재 신화는 상당 부분 오류임이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전문성(expertise) 연구의 권위자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sson) 플로리다주립대 교수는 1993년 『1만 시간의 법칙(10,000-hour rule)』으로 천재성을 설명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릭슨 박사에 의하면 10년 또는 1만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꾸준히 연습하면 자기 분야에서 최고에 다다를 수 있다. 즉 많은 경우 천재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다만 천재 본인들 말고는 천재들이 얼마나 많이, 어떻게 노력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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