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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위기론에 대한 반론

저출산 심각해도 시장이 사라지진 않아. 위기론에 휩쓸린 ‘경직된 전략’ 경계를

조진서,고승연 | 226호 (2017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모두가 ‘저출산/고령화의 위험’을 말하고 ‘인구절벽’을 말하는 시대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자. 정말 인구 감소가 재앙인가? 지나치게 20세기 산업사회의 경쟁력과 1, 2차 세계대전 시기의 ‘국력’ 개념에 매몰돼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기업 입장에서 ‘비관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수립하고 시나리오를 써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혹시 긍정적 영향이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시나리오와 전망도 필요하다. 이에 기업들에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인구구조 변화를 주목하고 전략 수립 고려사항에 넣되 ‘경직된 시나리오’를 믿고 그에 따라 경직된 전략을 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단일한 실버시장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셋째, ‘몰락하는 시장’도 무조건 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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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은 국가적인 걱정거리로 여겨진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들인 돈이 약 80조 원으로 집계된다. 정부는 2006년부터 5년마다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지만 큰 성과는 없다. 2016년 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세계 최저 수준인 1.17로 떨어졌다. 신임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자들처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았다. 육아휴직 급여를 확대하고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것이 그의 대표 공약이다.

저출산은 왜 문제일까? 무엇보다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거론된다. 일을 하는 젊은 층이 줄어들고, 일을 하지 않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국가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 국민연금 고갈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이야기, 심지어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소멸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저출산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도 정작 자신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평소에 나라 걱정을 많이 하는 사회지도층, 고학력층에서도 자녀를 셋 이상 낳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1 출산은커녕 오히려 ‘기회만 있으면 해외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출산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국가적으로는 걱정되지만 내가 낳아서 키우기는 싫다는 식이다.

이런 부조화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사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관련 논의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논리적 허점이 있다. 첫째, 저출산이 한국 사회에 타격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한국 사회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진 것인지 그 인과관계부터가 확실하지 않다. 만일 저출산이 사회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문제가 있어서 저출산 트렌드가 나타나는 것이라면 사회를 고칠 일이지 저출산을 탓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두 번째로 출산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이것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발상이 옳은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 한국은 국가정책의 목적이 시민 개개인의 행복인지, 아니면 국가라는 집단의 경제적 번영인지부터 명확하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의부터 불분명한 ‘경제발전’을 위해서 개개인의 출산을 권장하는 정책들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됐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저출산 논의에서 간과해왔던 기본적인 사항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혹시 저출산은 정치인들이 얘기하듯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 혹은 인구과잉에 따른 자연의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 현상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이를 위해 우선 한국의 인구구조를 국제적으로 비교해본다. 두 번째 단계로는 출산율, 그리고 인구밀도가 사회와 경제의 여러 요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앞의 두 단계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과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출산율 제고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인들이 고려해야 할 점들을 생각해본다.



한국, 대만, 방글라데시

한국은 저출산 사회인가? 통계에 따르면 그렇다. 합계출산율(fertility rate)은 한 명의 여성이 일생 동안 낳는 아이의 수의 평균이다. 2016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7이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과 비슷한 나라로 마카오, 홍콩, 포르투갈, 싱가포르, 그리스, 스페인 등이 있다. 일본(1.4), 영국(1.8), 미국(1.9), 북한(2.0) 등은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다. OECD 국가의 평균은 1.7이다.

한국은 언제부터 저출산 국가가 됐을까. <그림 1>을 보면 한국은 과거 일본과 북한보다 출산율이 월등히 높았다. 1960년만 해도 여성 한 명이 평균 6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는 수치가 역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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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1990년까지 약 30년간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이유로는 정부 주도의 산아제한 정책(‘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등), 직장을 다니는 여성의 증가, 레저/스포츠 등 여가활동의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같은 경로를 걸었고,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한국이 선진국 대비 여전히 낮은 편이다. 즉 사회문화적 요인만으로는 한국이 선진국들보다도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필자들은 한국의 인구밀도에 주목한다. 한국이 일본이나 기타 선진국에 비해서 유독 불리한 점이 바로 인구밀도다. 2017년 현재 한국의 인구는 약 5062만 명으로 세계 230여 국 중에서 27번째로 많고 OECD 35개 국가 중에서 8번째로 많다. 한국보다 인구가 많은 OECD 회원국은 미국, 일본, 독일, 터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7개국뿐이다. (표 1) 인구도 많은 편이지만 국토가 좁아 인구밀도, 특히 체감 인구밀도가 높다는 게 한국의 특징이다. 한국의 1제곱킬로미터당 인구밀도는 522명으로 OECD에서 단연 1위다. 전 세계에서 우리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방글라데시와 대만뿐이다.2 우리가 비교하기 좋아하는 일본은 사실 한국보다 훨씬 땅이 여유 있는 나라다. 일본의 인구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약 350명으로 한국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대부분 인구밀도가 200 안팎이고 프랑스는 119, 유럽연합 평균은 112다. 한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거의 5배나 더 빽빽하게 부대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많고 복잡해 보이는 중국도 148에 불과하다. (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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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국인이 생활에서 체감하는 인구밀도는 종이에 적힌 숫자보다 높다. 삼면은 바다로, 나머지 한 면은 휴전선으로 막혀 있어서 국토 크기가 비슷한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폐쇄적인 환경이다. 거기다가 국토의 약 64%가 산지이고 그 나머지의 절반은 농지다. 농업을 보호하는 국가정책 때문에 농지를 함부로 택지로 전환할 수도 없다. 주거지역은 전 국토의 2.65%에 불과하다.3 EU도 주거지역 비율이 약 2.85%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평균 인구밀도가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좁은 공간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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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에서만 살면 이런 문제점을 잘 느끼지 못한다. 외국에 나가봐야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유럽에도 한국과 비슷한 인구밀도를 갖고 있는 나라가 있긴 하다. 네덜란드다(1제곱킬로미터당 498명). 하지만 네덜란드는 전 국토가 평지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 한국의 동네 뒷산 정도다. 사실상 전 국토에 주택 건설이 가능하다 보니 도시와 마을의 풍경이 한국보다 훨씬 여유롭고 고층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네덜란드에서 주거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7%다. 한국보다 거의 세 배 넓다.5

그렇다면 전 세계 인구밀도 톱 3 국가인 한국(522), 대만(650), 방글라데시(1150)는 왜 유독 인구밀도가 높은 것일까? 문명의 발상지이며 생산성 높은 논농사를 지었던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은 역사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다. 거기다가 이 세 나라는 20세기 들어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 인근 지역들보다 더 많은 인구가 몰리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만은 1940년대 후반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지지세력이 중국 본토에서 대거 유입돼 만들어진 나라다. 방글라데시는 영국에서 독립한 후 인도 북부지역에서 무슬림 인구가 이주해왔다. 한국도 6·25전쟁에서 인구 유입이 있었다.6

이 세 나라는 인구밀도뿐 아니라 출산율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대만의 출산율은 0.9까지 떨어져 한국보다도 낮다. 방글라데시는 어떨까? 역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1970년 6.9에서 피크를 찍은 현재는 북한과 비슷한 수준(2.1)이고 계속 빠르게 하락하고 있어서 2050년 무렵 인구 증가가 멈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높은 인구밀도와 출산율 하락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방글라데시처럼 소득과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출산율이 언제까지나 높게 유지되지는 않는다.7 인간뿐 아니라 자연계에서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S자형 생장 곡선(sigmoid curve)의 형태로 개체 수가 증가한다. 초반에는 천천히 번식해나가다가 어느 순간 개체 수가 급속하게, 지수(기하급수)적(exponentially)으로 번식한다. 그러다가 개체 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환경적 제한요건(환경 저항) 때문에 증가세가 줄어들어 0으로 수렴하게 된다. S곡선 위에서 한국과 대만, 방글라데시는 20세기 후반에 지수적인 인구팽창을 겪었고 이제 평형상태를 향해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




‘맬서스 트랩’

여러 문화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인구밀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집단으로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소득이나 영양상태, 행복도는 떨어진다. <사피엔스>를 쓴 예루살렘대의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수렵채집 시대의 인류가 농경시대(산업혁명 이전)의 인류에 비해 덩치도 크고 영양도 고루 섭취했다고 말한다. 수렵채집 사회는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일정 영역 안에 살 수 있는 인간의 수가 제한적이다. 또 여성도 끊임없이 이동하고 사냥과 채집활동에 참여해야 했으므로 출산과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을 수 없었다. 따라서 수십만 년 동안 인류의 밀도는 낮은 수준에서 유지됐고, 비교적 쉽게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농업시대의 인류는 거주지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출산과 양육에 유리하다. 또 노동집약적인 농업의 특성상 일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한다. 서로 간에 땅을 빼앗기 위한 전쟁도 빈번히 벌여야 하며 이때 인구가 많은 집단이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농업시대의 인류는 수렵채집 사회에 비해 인구밀도가 급격히 높아졌으며, 서로 간의 경쟁, 그리고 노동으로 인해 전반적인 영양 상태와 평균수명은 오히려 농사를 지을 줄 몰랐던 시대보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구밀도와 개개인의 영양상태(소득)가 반비례하는 경향은 산업혁명 시대까지 이어진다. 이른바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맬서스(1766∼1834)는 영국의 성직자이자 인류학자로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을 썼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어떤 사회에서 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되면 이에 따라 인구도 증가한다. 그러나 인구는 지수적으로 팽창하는 반면 생산성은 산술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사회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인구 팽창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1명당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지점이 온다. 이렇게 되면 식량 부족, 전쟁, 전염병, 출산율 저하 등의 현상이 나타나 인구가 조절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경제발전 자체만으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생활을 향상시키지는 못한다. 그래서 ‘함정(trap)’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제성장은 인구 증가를 불러온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하층민의 생활 수준은 언제나 최저생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맬서스가 꼽은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이다. 중국은 고대와 중세까지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고 특히 관개시설과 홍수통제 등을 통해 농업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너무 높은 나머지 중국인 개개인의 평균적인 물질생활 수준은 동시대 유럽인들보다 훨씬 낮았다.

‘맬서스 트랩’에 대해서는 많은 찬반이 있어왔지만 최소한 산업혁명 이전 시대를 설명하는 데는 적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캘리포니아대의 경제학자 그레고리 클라크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소개한 바 있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고 인구가 급감하자 유럽인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향상됐다. 노동력이 부족해져서 자연스럽게 노동자(농부)의 임금은 상승했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했다. 영국 인구가 60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급감하는 동안 (곡물로 환산한) 국민 1인당 소득은 2배 가까이 올랐다. 병으로 죽은 사람들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평균수명도 줄지 않았다.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살아남은 사람들의 위생상태와 영양상태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유럽의 문예부흥이 흑사병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산업시대는 수십만 년의 인류역사에서 이례적으로 ‘맬서스의 함정’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시기다. 이 시대는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 덕분에 인구 팽창 속도 이상의 농업과 공업 생산성 향상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2017년 기준 전 세계 GDP는 연간 약 3.5% 증가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속도다. 반면 인구성장률은 1% 정도다. 즉 농업과 공업 생산성 향상 속도만 놓고 보면 지구는 인구 증가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땅은 제한돼 있다. 대규모 간척사업이라도 하지 않는 한 GDP가 아무리 빠르게 성장해도 땅은 늘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에게는 ‘환경 저항’으로 작용한다. 효모를 배양액에 넣고 배양하면 S자형 생장곡선 형태로 개체 수가 증가하는데 영양분을 아무리 충분히 공급해도 용기 자체의 크기를 키우지 않으면 개체 수가 일정 수준 이상 불어나지 않는다. 공간의 부족, 노폐물 증가 등이 환경 저항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환경 저항을 다른 말로 하면 ‘스트레스’다. 현재 한국과 대만, 방글라데시가 이런 인구 스트레스에 직면한 상황이다. 실제로 인구가 몰려 있는 서울의 출산율은 전국 평균(1.17)보다 낮은 0.94다.



저출산 위기론에 대한 비판

이번에는 저출산이 국가적 위기라고 보는 주장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타당성을 따져보자.

1. 저출산 위기론 하나: “인구 감소로 2750년 한국인이 멸종한다”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양승조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한국의 인구변화를 예측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120년 안에 한국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쪼그라들고 2500년경에는 인구 1만 명이 된다. 2750년에는 마침내 0으로 수렴한다. 이보다 앞서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도 비슷한 전망을 한 적이 있다. 2500년 기준 한국 인구가 33만 명이 될 거라 예측해 양 의원의 전망보다는 조금 긍정적이지만 어쨌든 한민족은 멸종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론적으로 출산율이 2 이하로 떨어지면 인구는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위생수준의 향상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어서 출산율의 감소를 상쇄하고 있다. 여기에 해외이민자, 국제결혼, 탈북자 등으로 인한 유입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요인으로 인해 한국의 인구는 2030년까지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엔 어떨까. 정말 우리 한민족은 결혼과 출산을 회피하는 젊은 층의 이기심 때문에 멸종의 길을 걸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30년 이후의 인구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혹은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로 인해 출산율은 얼마든지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출산율이 이렇게 빨리 떨어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찬가지로 20년 후의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지금으로서 예측하기 어렵다. 심지어 수백 년 앞을 내다보는 ‘2750년 한국인 멸종론’은 사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농담거리다. 고려시대 후기 사람들에게 미래 대한민국의 인구구조를 상상해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마당에 저출산이라는 지표 하나만 놓고 인구를 예측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인구가 자원을 소모하는 속도를 감안하면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로 인해 2500년보다 훨씬 이전에 인류 전체가 파탄이 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최근 몇 년간 미세먼지로 인해 시민들이 큰 고통을 받았던 것만 봐도 저출산보다는 환경파괴가 우리가 직면한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이런 많은 가능성들을 앞에 두고도 고작 현재의 저출산 추세 하나만을 놓고 300∼500년 후의 한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판타지 소설을 한 편 쓰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잠깐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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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출산 위기론 둘: “인구가 줄면 국력이 약해진다”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로서 인구를 1억 명 수준까지는 올려야 경쟁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있다. 이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인구가 늘어나면 GDP(1인당 GDP가 아닌 국가 총생산량)도 증가한다. 국가 간 폭력상황에서도 유리하다. 또 올림픽 같은 평화적인 경쟁 시스템에서도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나라가 좋은 성적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다. 이른바 ‘국력’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은 별개의 문제다. 앞선 <표 1>에서 한국보다 인구가 많은 26개국 중에서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

한스 모겐소 이래로 전통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늘 국력의 요소에 ‘인구’를 넣어서 계산해왔다. 하지만 항공모함과 전폭기, 위성을 활용한 ‘전략 무기’가 전쟁의 시작 전에 이미 승패를 가르는 상황에서, 이미 인공지능과 드론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시작한 시대에 70년이 넘은 이론에 따른 ‘국력 형성요소 분석’이 계속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적으로 인구가 많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도 AI 자동화 시대에는 맞는 얘기가 아니다. 단 하나 ‘내수시장의 크기’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준다면 어차피 인구가 많아도 쓸 돈이 없는 상황이기에 반드시 ‘장점’이라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대국’이라는 국가적 자부심뿐일 텐데 그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라면 굳이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를 늘리는 어려운 길을 택할 필요가 없다. 이미 인구가 많은 중국 같은 나라에 합병하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큰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은 갖게 될지 모르지만 개개인의 삶의 질은 추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3. 저출산 위기론 셋: “노동력이 줄고 경제가 약해진다”

통계청은 한국의 생산 가능 인구가 2018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이것만 놓고 보면 공포감이 생길 만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우선 ‘생산 가능 인구’라는 정의 자체가 자의적이다. 통계청은 이를 15∼64세로 정의하는데 현실적으로 이 나잇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 나잇대에 있는 사람들만 노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현재의 60대는 과거의 40대와 같다는 말도 나오는 마당에 ‘생산 가능 인구’를 특정 나이대에 고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두 번째 문제는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가 빠를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경제에서 대부분의 생산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이 주체다. 노동자의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의 생산 능력도 줄어들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기업의 고용이 줄어들곤 한다. 실제로 정부 통계에 따르면 GDP 10억 원당 취업자 수를 뜻하는 취업계수는 2008년 20명이었지만 2016년 17.4명까지 떨어졌다. 또 GDP 증가율에 비한 취업자 증가율을 나타내는 고용탄력성도 역대 최대 수준인 0.421로 떨어졌다.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반대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경제가 수축하는 사회는 아니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한국은 생산 현장에서 로봇 도입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용인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사용 대수가 531로, 미국(176), 일본(305), 독일(301)보다 훨씬 높다.

반도체 산업이 이런 ‘일자리 불임’ 경향을 잘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2016년 반도체 부문에 약 13조 원을 투자했는데 늘어난 고용 인원은 650명에 불과했다. SK하이닉스도 6조 원을 투자했지만 대졸 신입사원 채용은 250명이었다. 제조업에서의 양질의 일자리는 앞으로도 줄면 줄었지 늘어날 가능성은 적다. 공장들은 자동화되고 있으며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한 일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같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서비스업에서의 일자리 창출 역시 제한적이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제 자문역이었던 론 블룸은 이런 말을 했다. “자동차 조립공장이 생기면 월마트가 따라온다. 하지만 월마트가 생긴다고 자동차 조립공장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제조업에서 줄어든 양질의 일자리를 서비스업에서 대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닥쳐도 일자리가 우려했던 것만큼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과거 1차, 2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말을 몰던 마부들이 사라지는 대신 자동차 공장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듯이 앞으로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는 만큼 어딘가 현재의 우리는 알 수 없는 분야에서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2차,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된 양상이 4차 산업혁명에도 반복될 것이라고 확신할 만한 근거가 없다. 현재까지 진행된 바는 어떤가? 전통적인 일자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데 이를 대체할 만한 새 일자리는 그만큼 빠르게 생겨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마부 재취업론’은 현재로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일본의 사례를 보면 저출산 추세로 인해 청년층 인구가 다소간 줄어든다고 해도 노동자가 부족해 경제에 큰 문제가 생기는 상황까지 오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일본은 저출산 추세가 수십 년째 이어지면서 이미 2010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한국보다 20년 정도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실업률은 거의 완전 고용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도 봄 대졸 취업률은 이과계열이 98.7%, 문과계열이 97.3%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8 고교 졸업생의 취직률도 7년 연속 상승해 98.3%에 달했다. 노동력이 부족해 한국 등 외국의 대학 졸업자들을 수입해갈 정도다. 그래서 일본의 경제가 망가졌을까? 성장의 엔진이 꺼졌을까? 그렇지 않다. 2017년 일본의 GDP는 1.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도성장기를 오래전에 거친 선진국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치다. 도시의 거리에는 풍요가, 시장에는 일자리가 넘쳐난다. 국가 경제도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국민들도 몸값을 높여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수십 년째 저출산 추세가 지속됐는 데도 말이다.



4. 저출산 위기론 넷: “연금, 복지 재정이 취약해진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속되면 국민연금 고갈이 앞당겨지고 의료보험과 각종 복지재정도 취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돈을 내는 사람은 적어지고 돈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타당한 예측이다. 하지만 그것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연금, 보험 등 복지제도는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들이다. 그런데 ‘복지제도가 취약해지니 세금 낼 인구를 늘려라’라고 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주장이다. 국민을 위해 복지제도가 있는 것이지, 복지제도의 유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금과 세금 납입자가 부족해지면 부족해지는 대로 보완책을 강구할 수 있으며 실제로 선진국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복지 예산 확보를 위해 선진국들이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국채 발행이다. 일본의 경우 국채의 이자 지급에만도 한 해 예산의 4분의 1을 쓸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 운영이 위태롭지는 않다. 외화 표시 국채가 아닌 자국 화폐 표시 국채는 정부 스스로 만들어내는 화폐 시스템 위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이론적으로는 발행량의 한계가 없다. 어차피 국가 경제 시스템 안에서 순환하는 돈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국가 경제에 국민 전체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명목상 국채 발행을 늘려서 화폐를 많이 유통시킨다고 해서 경제에 실질적인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한국은 일본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국의 연금, 복지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낮으며 국민들의 기대치도 낮다. 세율이나 국채 발행 등 국가 재정 면에서도 충분한 여유가 있다. OECD의 평균 세입/GDP 비율은 34.3%지만 한국은 25.3%에 불과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등의 서유럽 복지국가는 이 비율이 40%를 넘기기도 한다.

만일 극단적으로 청년 1명이 노인 10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사회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정도까지 갈 리도 없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1명이 1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경제 생산성을 달성하면 문제가 없다. 즉, 노령화의 속도보다 생산성 향상의 속도가 빠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전망을 할 필요가 별로 없다. 이미 대한민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 이상의 경제발전을 달성했으며 생산성 증가 속도가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 속도를 충분히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의 과실을 고루 분배하는 일만 잘해도 연금/복지 재정의 위기는 피할 수 있다.

5. 저출산 위기론 다섯: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하락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과거 거품경제 시대의 부동산 가격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지역이 많다. 하지만 당시는 ‘도쿄 땅을 전부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얘기까지 돌았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일본을 제외하면 국가적 차원에서 출산율 저하와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해 경제 위기를 불러올 정도로 자산가격이 폭락한 현대 국가는 아직 없다. 자산 특히 부동산의 가격은 인구구조보다는 경기와 국가정책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주택보급률(주택 수/가구 수)은 100%를 넘겼지만 인구 비례 주택 공급량과 1인당 주택면적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크게 낮다. 2013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일본이 476이었고 영국은 435, 미국은 419였다. 한국은 320에 불과하다. 1인당 주거면적은 2014년 기준 33제곱미터로 일본과 영국(36), 프랑스(37), 미국(68)에 훨씬 못 미친다.9 이런 상황에서 인구 증가세가 다소 둔화된다고 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앞서 설명했듯이 한국은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데다가 산지와 농지가 대부분이고 택지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택 공급이 크게 늘어나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수도권 지역의 택지 공급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기업을 위한 몇 가지 제언

이상에서 보듯 저출산 추세가 가시적인 미래에 한국 경제나 한국 사회에 큰 위협을 줄 것이라는 전망은 근거가 부족하다. 위기를 미리 대비하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위기를 과장하는 것도 국가의 정책 우선순위나 기업의 미래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잘못된 판단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 정책 우선순위는 DBR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은 아니니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국가 정책적으로는 GDP를 높이기 위해 국민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듯한 구시대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에 도달한 나라이며 다소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인구 감소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살 만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 살 만하다고 느껴야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는 것이다. 반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거나 다자녀 가구에 아동 수만큼 양육비를 지원하는 등의 직접적 금전적 혜택을 주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생명의 출산을 돈으로 보상하는 방법은 도덕적으로도 논란이 있을뿐더러 그 실효성도 증명하기 어렵다.10 출산을 금전으로 유혹하게 되면 가난한 계층의 출산율 제고 효과가 상대적으로 더 커지기 때문에 결국 사회적으로 빈부격차가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부유층의 출산율이 높아야 그 부가 교육에 투자되고 또 세대가 거듭되며 상속을 통해 사회적으로 부가 고르게 분배되는 효과가 있다.11



기업 차원에서는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세움에 있어 저출산 현상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인구구조나 사회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저출산’은 미래의 한국 경제가 맞게 될 수많은 변화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극단적으로 길어질 수도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일자리에도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지정학적인 변화 가능성도 있다. 남북관계 변화로 인해 경제 환경과 산업 환경, 일자리 환경에 막대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이슈들에 비하면 저출산 현상은 언론매체에서 자극적으로 다루는 것만큼 시급하게 걱정해야 할 이슈는 아니다. 저출산 현상 자체에 너무 신경 쓰기보다는 1∼2인 가구의 증가와 같은 가구구조 변화로 인한 소비자 취향의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인구구조 변화를 주목하고 전략 수립 고려사항에 넣되 ‘경직된 시나리오’를 믿고 그에 따라 경직된 전략을 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하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격동과 맞물려 있다. 이전까지 산업구조와 경제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는 변화하는 인구구조가 실제로 어떤 사회/경제적 변동을 만들어낼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건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화, 급격한 시장이나 고용구조 등의 변동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다.

둘째, ‘단일한 실버시장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실버시장, 시니어 세대를 겨냥한 시장을 하나로 묶어서 접근하는 경향이 많이 있는데 이번 호 DBR 스페셜 리포트 중 김양팽 연구원의 ‘일본 사례연구’12 를 봐도 알 수 있듯 시니어 시장 역시 충분히 세분화할 필요가 있고, 단순히 ‘노인 소비자/고객’을 공략한다고 뭉뚱그려 접근하면 안 된다. 베이비부머로 ‘획일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여유자금과 시간이 있는 노년에 오히려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몰락하는 시장’도 무조건 버려서는 안 된다. 저출산 흐름은 물론 영유아용품 시장, 학용품 시장, 교복 시장 등의 위축을 가져온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그랬고, 최근의 한국도 그렇다. 이런 와중에도 그 시장에서 매출을 올려가며 성장하는 기업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어쨌든 아이는 태어나고 교육은 이어진다. 오히려 자녀 1인당 투자액은 예전과 비슷하거나 늘 수도 있다. 따라서 ‘저출산 시대의 추락하는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저출산 시대 달라진 시장’의 관점에서 새로운 전략을 지속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애장품’형 펜으로 문구시장에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 모나미, 자신의 부모와 별거하는 맞벌이 초보 부부가 한꺼번에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영유아용품을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일본의 영유아제품 업체 니시마쯔야(西松屋)와 아까짱혼포(赤ちゃん本舗) 등이 다들 ‘망해간다’고 여기던 시장에서 새로운 전략으로 매출을 증대시킨 성공 사례들이다.



나오며

지구의 인구가 10억 명이 되는 데 10만 년이 걸렸다. 20억 명이 되는 데는 100년이 걸렸다. 40억 명이 되는 데는 50년이 걸렸다. 그게 1970년이었다. 지금은 거의 80억 명이다.13 상식적으로 지구의 인구가 이런 속도로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억지로 인구를 줄일 필요는 없지만 억지로 지금보다 더 늘리거나 키울 필요도 없다. 특히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특이하게 높은 지역에서 자연적 반작용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OECD 국가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면 호주, 노르웨이, 미국, 스웨덴, 덴마크, 캐나다 등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반면 일본과 한국은 항상 하위권에 맴돌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희생해서 국가 경제 덩치를 키우자는 패러다임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저출산으로 인해 사회구조의 변화는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헤쳐 온 수많은 어려움들에 비하면, 또 앞으로 맞게 될 여러 문제들에 비하면 그것은 아주 사소한 어려움일 수 있다. 저출산 현상의 단점만 부각시키기보다는 여기에 따른 긍정적 효과도 고려할 때가 됐다. 한국인도 프랑스인처럼, 덴마크인처럼 여유롭게 살면 안 되는지 질문을 던져볼 때다. 인구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Unconventional Insights

1 ‘수백 년 뒤에 한국 인구는 0이 된다’는 예측은 무의미하다. 고려시대에 지금의 인구구조를 예측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괜한 공포감이 기업의 유연한 전략 수립을 막는다.

2 인구감소는 곧 생산 가능 인구 혹은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지금 시대에 과연 이것이 국가경쟁력 약화의 요인, 경제 추락의 원인이 될지는 제대로 따져 봐야 한다. 내수시장 축소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여유를 갖고 오래 사는 사람이 많으면 그마저도 영향이 적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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