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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전략

스토리텔링과 힙합 틈새시장 개척. 방탄소년단 ‘빈틈없는’ 전략 통했다

장윤정 | 223호 (2017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빌보드 200 차트 4연속 진입, 아시아 9개 도시 19회 공연 19만5000석 전석 매진. 중소기획사 출신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이처럼 한류의 중심에 설 것이라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소속사 선배의 후광, 든든한 네트워크 없이도 빅뱅의 뒤를 잇는 차세대 한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방탄소년단이 치열한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은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처음부터 국내+글로벌 시장 동시 공략 2.SNS로 데뷔 전부터 팬들과 실시간 소통, 덕후 몰이 3.1020세대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내며 공감 이끌고, 사회적 이슈에도 거침없이 발언하며 포지셔닝 달리해 4.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서며 자신들만의 ‘스토리’ 구축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조규원(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총알을 막는다는 뜻을 담은 방탄소년단. 아이돌 그룹에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선 이름이었다. 실제로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2013년 데뷔해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2014년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상남자’라는 곡으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대세 아이돌이라기보다는 ‘루키’ ‘기대주’의 느낌이 강했다. 데뷔와 함께 곧장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오른 선배 아이돌 빅뱅이나 엑소에 비하면 아쉬운 출발이었다.

하지만 천천히 내공을 쌓으며 실력을 끌어올리고 팬덤을 키우더니 결국 날아올랐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기록들이 이들의 도약을 증명한다. 올해 발표한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유 네버 워크 얼론’은 빌보드 200에서 6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번 빌보드 200 진입으로 방탄소년단은 2015년 12월 ‘화양연화 pt.2’, 2016년 ‘화양연화 영앤포에버’ ‘윙스’에 이어 4연속 빌보드 200 진입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빌보드 200은 전 세계 대중음악의 흐름을 보여주는 척도로 그 주의 앨범 판매량, 음원 스트리밍, 앨범트랙 디지털 판매량 등을 기초로 산출된다. 이 차트에 진입했다는 것은 해당 앨범의 반응이 좋았음은 물론 확실한 글로벌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가요시장은 수년째 SM, YG, JYP엔터테인먼트 메이저 3사가 지배해오고 있다. 이들 소속사의 아이돌은 그룹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형태로 TV에 생중계된다. 데뷔 이전부터 이미 팬덤을 가지고 출발하는 셈이다. 소속사 선배그룹의 후광도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다. 이 때문에 빅 3사 아이돌과 경쟁한다는 것은 중소기획사 소속 아이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설령 반짝 인기를 얻었다가도 금세 팬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상당수는 방탄소년단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빅 3 소속이 아닌 중소기획사의 아이돌, 소위 ‘흙수저 아이돌’로 불리는 방탄소년단이 이 자리에까지 오를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방탄소년단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자신들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요인을 살펴보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넘어 후발주자로 포화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여타 기업체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들이 어떻게 막강한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보했는지를 DBR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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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을 베이스로 한 트렌디한 음악으로 처음부터 국내+글로벌 시장 동시 공략

그동안 대부분의 아이돌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궤도를 다진 뒤 해외로 진출했다. 그룹 동방신기는 2003년 데뷔해 2005년 일본 시장에 진출해 일본 가요계에서 현지 가수들과 경쟁하며 케이팝(K-pop) 열풍의 불씨를 지폈다. 빅뱅의 경우 2006년 8월에 데뷔해 2008년 1월 일본에 앨범을 발매한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병행했다. 이후 활동 범위를 점점 넓혀가며 아시아 투어를 시작했다. 빅뱅, 동방신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후배 아이돌도 한국에서 슈퍼스타가 된 뒤 일본, 중국 및 아시아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방탄의 경우는 좀 달랐다. 활발한 SNS 활동으로 인해 데뷔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해외 K-pop 팬들에게도 노출이 되기 시작한 방탄은 한국에서 인기를 쌓은 뒤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성장 전략’을 선택했다. 2013년 데뷔 후, 그해 12월 일본에서 첫 번째 쇼케이스를 열며 해외에 얼굴을 알린 뒤 2014년 독일, 스웨덴 등 유럽은 물론 브라질 등에서도 팬미팅을 열었다. 일본 외에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대만 등 아시아에서 연달아 공연을 개최하며 보폭을 넓히더니 2015년에는 미국과 호주, 멕시코, 칠레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이렇듯 한국과 해외를 동시에 공략하는 가운데 해외에서 오히려 더 뜨거운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신호탄은 2014년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K-pop 컨벤션인 ‘케이콘(K-con)’, 방탄은 매력적인 퍼포먼스로 단숨에 해외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2015년 4월 공개한 미니앨범 ‘화양연화 pt.1’의 수록곡 ‘쩔어’의 뮤직비디오가 꾸준한 해외 팬들의 클릭 속에 1억 뷰를 돌파했다. 강력한 일렉트로닉 힙합 사운드의 ‘쩔어’는 방탄소년단의 해외 인기몰이에 날개를 달아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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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그룹으로 부각되면서 국내에서의 팬덤도 자연스레 확산됐다. “방탄소년단이 도대체 누구인데 그렇게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것이냐”는 호기심에 방탄의 음악을 접하게 된 이들이 새롭게 팬으로 유입된 것이다. 국내와 해외를 동시에 공략해 해외에서의 성공을 등에 업고, 역으로 국내에서 팬덤을 확대한 것은 여타 아이돌과는 차별화된 방탄소년단만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남는다. 해외에 네트워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엄청난 프로모션을 벌인 것도 아닌데 도대체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이렇게 해외 팬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일까. 그들의 활발한 SNS 소통도 빼놓을 수 없지만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은 바로 음악이다. 결국 K-pop 아이돌의 소통 통로도 음악이다. 이들의 음악이 매력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활발하게 SNS 소통을 하고, 퍼포먼스가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팬덤을 쌓아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K-pop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아시아 시장뿐만 아니라 미주 지역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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