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임직원이 우울증, 불안장애, 무기력증 등의 정신건강 질환을 앓는 경우 이것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으로 남을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 병을 앓지만 회사에는 출근을 하고 남들에게 숨기는 경우다. 이런 경우 회사 차원에서 개개인의 질환을 알아내고 치료하려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낙인효과로 인해 오히려 더 숨어버리게 만들 뿐이다. 정신질환에 관대한 ‘멘탈 프렌들리’ 문화를 만들고 문제가 있을 경우 자연스럽고 비밀스럽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편집자주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한정우(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한국은 OECD에 가입된 20개국 중 인구 대비 자살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수가 가장 많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170개국을 조사한 자료에서도 남미의 가이아나에 이어 자살률 2위로 기록되고 있다.
2009년 통계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자 중 사무직의 비중은 전체의 18.5%로 가장 높았다. 서비스 및 판매직(17.4%), 전문직(16.1%), 관리자(14.2%)가 그 뒤를 이었다. 이는 단순노무(13.4%), 기계조작 및 조립(13.9%), 농림어업(9.3%)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직장에서 우울증 등을 앓다가 퇴직한 직후 자살하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실제 ‘화이트칼라’ 직종의 자살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지도 모른다. 꼭 자살까지 이르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무기력증(번아웃증후군)은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저해할 뿐 아니라 조직 전반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는 기업 내 정신건강 관리에 특화된 국내 유일의 의학 연구조직이다. 이들은 2013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직장인 72만 명(누적)의 정신건강 데이터를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흥미로운 보고서들을 발표해왔다. 일례로 지난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시행한 직장인 9만5079명을 살펴보니 남성 중 2.4%가, 여성 중 8%가 우울증 환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 직장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예상대로 직무 관련이었고 특히 40대 남성에서 높게 나타났다. 직급과 연령이 낮을수록 직장문화, 관계 갈등, 조직 체계 등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DBR은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 위치한 기업정신건강연구소를 찾아 임세원 부소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교수)과 김형준 수석(임상심리사)을 만나 기업 차원에서 조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임 부소장은 본인이 우울증을 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시공사, 2016)>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임세원 부소장(왼쪽)과 김형준 수석
강북삼성병원이 기업 정신건강연구소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임세원: 강북삼성병원은 오랫동안, 또 많은 회사들을 상대로 근로자 건강검진을 해왔다. 정신건강 연구는 우리가 선도했다기보다는 기업 측의 니즈에 병원이 따라간 측면이 많이 있다. 기업이 임직원의 신체건강검진은 많이 하는데 그것만 가지고 뭔가 부족한 것 같다고 본 것이다. 특히 한국의 산업 구조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생산직이 위주였지만 지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몸이 아프지 않다고 해서 일을 잘하거나 능률이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적인 면에서의 케어(care)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직원들이 우울해 한다거나, 불안해 한다거나 하면 뭔가 업무도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이런 점들을 건강검진 시 함께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기업의 요구가 먼저 있었다. 이런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건강검진에 반영을 하고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즉 니즈에 병원이 따라 간 셈이다. 처음엔 어디 그런 일을 할 만한 곳이 있나 찾아봤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분석법을 개발하고, 그러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강북삼성병원의 건강의학본부 차원에서 그런 필요성을 인식했고 건강의학본부가 정신과 교수님들에게 의뢰를 해서 신영철 소장님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지게 됐다.
기업정신건강분석은 일반적인 심리상담과 어떻게 다른가.김형준: 기존에도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일부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심리적인 부분들을 상담소 운영 등을 통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고 질병이나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다루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임상적인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임세원: 초기에는 고위험 환자들을 주로 살펴봤다. 기업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 가운데도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고 일을 계속 함으로 인해서 능률도 떨어질뿐더러 계속 그런 상태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살과 산업재해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시작은 이런 고위험군의 발견과 조기 치료를 목적으로 했다. 그런데 연구소에 노하우가 쌓이면서부터는 고위험군뿐 아니라 임직원 모두에 대해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해 업무 효율 개선을 꾀하는 쪽으로 조금씩 영역이 진화하고 있다.
주로 어떤 업종의 기업이 기업정신건강 진단을 받는가. 또 진단은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가.임세원: 제조업, 서비스업, 금융업 등 다양한 분야의 사기업뿐 아니라 공기업과 공공기관, 구청, 시청, 도청 등도 진단을 받는다. 신체건강검진과 정신건강검진을 패키지로 같이하는 회사도 있고, 따로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현재 어느 정도까지 정신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가.김형준: 웬만한 대기업은 대부분 다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임세원: 기업에 따라 수준의 차이는 크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임직원의 정신건강이 회사의 생존과 연관된 문제라는 걸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회사는 굉장히 많은 예산을 써서 신경을 쓰지만 어떤 회사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잘하는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정신과 전문의를 고용한 곳도 있다. 모든 직원에게 정신건강검진을 무료로 제공하고, 거기에서 어떤 소견이 발생하면 사내 정신과 의사 내지는 상담사들과 연계해주는 자체 연계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보다 초보적인 수준의 회사라고 하면 자체적으로 상담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사내 상담소를 두기도 한다. 아니면 1년에 한 번 정도 우리 같은 전문기관에 의뢰를 해서 정신건강 평가를 받게 하고 거기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바우처 방식으로 상담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 4회까지는 회사에서 전문가와의 상담 비용을 지원해주고 그 이상의 상담이 필요하면 개별적으로 비용을 내게 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