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모바일 SoC 시장 실패 원인

최고의 자원 가진 럭셔리 인텔 ‘효율+저렴’ 모바일 생태계 몰랐다

212호 (2016년 11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이크로프로세서 하면 ‘인텔’을 떠올리지만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는 예외다. 모바일용 AP(Application Process) 시장에서 ARM에 밀려 부진을 면치 못하던 인텔은 올해 여름 모바일 SoC 사업 철수를 선언한다.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 최고의 기술력과 물적·인적 자원을 보유한 인텔이 왜 AP시장에서는 실패했을까. 기술혁신 기업 인텔의 실패 요인을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Fail to face the facts
- 모바일 기기용 프로세서의 핵심은 전력 효율성과 싼 가격이었지만 인텔은 기존의 고성능 프로세서에 집중
2) Fail to do right innovation
- 제품의 성능 혁신보다 중요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을 ?등한시
3) Fail to innovate right
- 혁신을 위한 적절한 자원 배분과 평가 시스템 구축 실패


인텔은 지난 4월 스마트폰용 모뎀과 프로세서를 통합한 칩(SoC·System on Chip) 개발을 포기했다. 그동안 고전해오던 아톰(Atom) 시리즈를 종료함으로써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용 SoC 시장에서 철수 의사를 밝힌 것. 폐지 예정인 아톰 칩으로는 소피아(SoFIA), 브록스톤(Broxton) 체리트레일(Cherry Trail) 등이 꼽힌다. 이로써 2004년부터 지금까지 약 200억 달러를 쏟아부은 인텔의 모바일 SoC 시장에 대한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인텔은 1980년대 후반 당시 적자로 돌아선 메모리 사업 대신 프로세서 기업으로의 일대전환을 시도하며 오늘날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 선두 기업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짝을 이뤄 ‘윈텔(윈도우+인텔)’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PC 시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시장은 인텔의 예상보다 빠르게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됐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중심도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갔다. 구글과 삼성전자의 연대를 뜻하는 ‘삼드로이드’가 시장 지배자로 등극하면서 인텔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텔이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PC의 지배력을 모바일로 옮기기 위해서 무어스필드 기반의 모바일 인터넷 디바이스(MID) 같은 폼팩터(Form Factor)를 업계에 제한하기도 했지만 PC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모바일 시장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인텔의 제품 로드맵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던 모바일 시장의 예측 실패로 인텔은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만다.

CPU 산업을 주도해왔고, 최고의 인적, 기술적 자원을 보유해왔으며,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인텔이 경험한 모바일 시장에서의 참패는 왜 일어났을까? 혁신을 위한 대담한 노력이 왜 기대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인텔의 모바일 AP(Application Processor) 도전사

1968년 인티그레이티드 일렉트로닉스(Integrated Electronics)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인텔은 마더보더 칩셋, 그래픽 칩, 플래시 메모리 등 PC 주요 부품을 생산하던 업체였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회사였던 인텔은 1990년대, 부품업체로서는 최초로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자사의 부품을 사용했다는 마크를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1993년 생산된 펜티엄 프로세서는 최고의 성능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시장을 석권했고 이후 PC용 프로세서 분야 1위 기업의 위치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PC 시장에서의 선전이 모바일 시대에는 오히려 독이 됐다. 스마트폰과 태플릿 PC의 성장세에 맞는 발 빠른 대응에 실패한 것. PC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모바일 시장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인텔의 제품 로드맵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던 모바일 시장의 트렌드 예측 실패로 인텔은 모바일 시장의 경쟁력을 잃고 만다.

모바일 프로세서의 핵심은 ‘AP(Application Processor)’라고 불리는 손톱만 한 크기의 칩이다. 사실상 CPU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 칩 안에는 D램, GPU, 플래시메모리 등이 통합돼 있다. 이전에는 이런 부품들이 보드 형태로 AP 밖에 외장형으로 분리한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AP 안에 통합하는 것이 추세다.

인텔은 스마트폰 시장 초기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던 무선 랜과 와이맥스 이동통신 기술에 2010년 인피니온으로부터 3G 무선 사업부를 인수합병한 뒤 통신시장에 필요한 3G 모뎀과 LTE 모뎀을 차례로 개발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이후 인텔은 프로세서와 통신 모뎀을 한 칩에 통합한 아톰 SoC를 내놓기 위한 코드명 소피아(SoFIA·Smart or Feature phone with Intel Architecture)를 공개했고, 2015년부터 저가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아톰 프로세서와 모뎀 칩을 각각 따로 넣은 스마트폰을 선보이긴 했으나 통합칩을 내놓는 것은 성능의 문제를 떠나 제조 단가를 낮춰야 하는 단말 제조사들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실제로 인텔 쿼드코어 아톰 SoC를 탑재한 에이수스 젠폰2가 200달러 안팎에 나온 것은 고성능 중저가 시장에 적지 않은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인텔의 모바일 프로세스 혁신 방식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인텔의 혁신 실패를 견인한 문제들

인텔은 PC 계열 프로세서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그들은 꽤 오랜 기간 자신들의 방식에 도취됐다. 그렇다고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의 성장을 인텔이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의 특성 파악을 게을리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인텔은 모바일 프로세서 개발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PC에서 주로 사용되는 x86 기반 프로세서를 모바일 기기에까지 확대 적용하려 한 것이다. x86은 성능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PC 기반으로 발전을 했기 때문에 전력 효율이 좋지 못하고 발열이 심했다. 가격 또한 비쌌다. 때문에 2008년 LG전자가 스마트폰인 GW990에 x86 기반 ‘무어스타운’을 탑재하려고 시도했다가 전력 소모 문제로 출시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텔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x86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12년 ‘메드필드’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세서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이때도 동일한 x86 방식을 사용했다. 여기에 임베디드1 와 동일한 방식의 SoC로 제조하면서 전력 소모 문제를 개선했다. 당시 이 메드필드 시리즈는 기술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메드필드 시리즈 첫 양산제품인 Z2460은 싱글코어 프로세서임에도 경쟁사의 듀어코어나 쿼드코어보다 성능이나 연산능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x86의 강력한 성능과 더불어 인텔이 i시리즈에 사용하는 터보 부스트(프로세서를 효율적으로 오버 클럭시켜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와 하이퍼스레딩(코어 개수를 가상으로 늘려 효율적인 연산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탕이 됐다. 게다가 배터리 지속시간도 경쟁 제품에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스마트폰 제조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인텔은 지속적으로 x86 계열의 AP를 양산한다. 최근까지 인텔은 아톰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모바일 SoC 시장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퀄컴의 강력한 지원을 받거나 자사 칩이 있는 삼성, LG, 화웨이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의 외면을 받으면서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생태계 싸움에서 패한 인텔

특히 인텔은 ARM과의 경쟁에서 완벽하게 패하면서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다. ARM과 인텔은 프로세서라는 같은 아이템을 공유하지만 타깃 시장이 달랐다. ARM은 주로 PDA, 휴대폰 같은 저전력 소용량 데이터 처리용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디자인했고 인텔은 x86과 같은 개인용 컴퓨터와 서버용 프로세서를 만들어왔다. 영역이 달랐기 때문에 초기에는 크게 부딪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각자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키워나가던 ARM과 인텔은 스마트폰의 확산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하게 된다. 인텔이 갈수록 커지는 모바일 기기용 프로세서 시장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세서 시장의 무게 추가 PC에서 모바일 기기로 바뀌면서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고사양·고성능 프로세서에서 저전력 프로세서로 넘어간다. 이때까지 고성능 마이크로 프로세서 시장은 인텔의 독무대였다. 인텔은 자신들의 기술력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도 기존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간다. 이게 패착이었다. 배터리로 운용되는 모바일 기기에서 인텔의 프로세서들은 성능은 좋았지만 전력 효율이 떨어져 배터리 소모가 심했다. 특히 인텔의 x86 계열 프로세서들은 발열이 심해서 물리적으로 이를 식혀줄 부품이 필요했다. 소형화 경량화 경쟁이 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인텔은 비싸고, 전력 효율이 떨어지고, 발열이 심해 스마트폰에 쓸 수 없는 제품으로 인식됐다.

이에 반해 ARM은 초기부터 저전력 소용량 데이터 처리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전문 기업이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특히 ARM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방식으로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사로잡았다.

ARM은 전 세계 모바일 기기 AP 점유율이 95%에 달한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ARM이라는 회사를 들어볼 일이 없다. 왜 그럴까. ARM은 인텔을 제치고 AP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됐지만 AP를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다만 스마트폰 제조사나 AP 제조사에 자신들이 디자인한 AP 설계도를 라이선스 형식으로 판매할 뿐이다. 프로세서 하나로 대부분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데다 저렴한 가격에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스마트폰 관련 제조사들이 ARM의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시작했다. 전문 AP 제조사들은 이렇게 사들인 AP 설계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경해서 AP를 만든다. ARM이 ‘반도체 디자인 업체’ ‘반도체 지식재산권(IP) 업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ARM과 라이선스를 통해 AP를 생산하는 업체만 해도 전 세계 300여 곳이나 된다. 삼성전자나 퀄컴 역시 이들 중 하나다.

이에 반해 인텔은 자사의 AP를 직접 생산했다. AP의 설계부터 AP 안에 들어가는 D램, GPU, 플래시메모리 등 다양한 부품들 역시 자사의 제품을 고집했다. 고객사의 니즈가 반영될 틈이 없었다. PC 시장에서 인텔은 절대 ‘갑’이었기 때문에 인텔이 만들면 PC 제조업체들은 그 제품을 쓰면 됐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은 PC 시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인텔은 기존 PC 시장에서 성공했던 방식을 모바일 시장에 지속적으로 끼워 맞추려고 했다.

ARM의 전략은 자연스럽게 모바일 기기 업계에 ARM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제조사들은 ARM과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자사 제품에 최적화된 AP를 만들어 사용했다. 일단 시장의 중심 축이 ARM으로 넘어가니 인텔이 아무리 제품 성능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울러 인텔이 에이수스, 에이서에 공급할 AP 생산에 차질을 빚자 인텔에 우호적이었던 이들도 인텔 AP 대신 ARM 기반 스마트폰의 공급 정책을 조정했다. 그러다 보니 호환성 문제가 발생했다. 비록 구글이 ARM과 x86을 가리지 않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내놓으면서 호환성 문제는 해결해줬지만 여전히 모바일 시장에 대응하는 인텔의 행동에는 문제가 있었다.

인텔은 이런 상황에서 모바일 SoC 시장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리베이트를 주는 악수도 둔다. 열세에 몰린 모바일 SoC 시장에서 점유율을 되찾기 위해 OEM 업체에 페이백을 주기로 하고 그 대가로 인텔 AP를 쓰게 한 것. 단가가 높은 PC용 프로세서에서는 이 같은 전략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모바일 SoC는 단가가 압도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인텔은 리베이트를 주고 제품을 많이 팔아도 매출은 크게 늘지 않고 영업 비용만 늘어나게 됐고 손실이 커지면서 인텔은 결국 사업 포기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 시장선도기업이었다. 특히 지속적인 기술 혁신으로 시장을 선도하던 업체다. 이런 시장 선도기업 몰락의 원인을 혁신 노력의 부재에서 찾는 것은 많은 경우 현상을 너무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다가 몰락한 모토로라, 노키아, 코닥 같은 기업을 살펴보면 그들의 몰락이 시작된 시점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도 시장선도기업의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기간과 마찬가지로 혁신과 연구개발에 매진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혁신이었고 따라서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라면 선도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혁신을 경영진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최선을 다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 나름대로 혁신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선도 지위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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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은 조직과 환경 간의 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존의 산업환경이 요구하는 바를 갖추지 못했던 A기업(시점 1)은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함으로써 점차 환경과의 적합성을 높여가게 된다(시점 2). 이러한 노력들이 최고의 결실을 맺게 되면 환경과의 적합성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면서 드디어 산업의 리더로 등극한다(시점 3). 하지만 기존 기술이 발전 단계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전혀 다른 기술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사업모델을 활용하는 경쟁자 B가 산업의 주변부에서 미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때 A기업은 그 변화를 제때에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인지하더라도 그들의 성공 DNA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으로 인해 변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시점 4). 새로운 경쟁자인 B기업이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에 가장 적합한 사업모델을 활용해서 산업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이 명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A기업은 이미 떨쳐버리기 어려운 부채(liability)화된 과거의 성공요인으로 인해 최선의 노력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본질에 걸맞은 변신을 하지 못하면서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연 A기업이 혁신을 게을리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실제로 유사한 상황을 겪은 기업의 사례를 보면 그들 나름대로는 혁신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혁신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 경험에 근거해 정의된 혁신의 범주 안에서 노력했다는 점이다. 인텔의 모바일 SoC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혁신하지 않아서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함에도 불구하고 몰락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혁신에 관한 관점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피하기 어려운 성공의 덫이다. 혁신은 흔히 개선으로 이해되지만 진정한 의미의 혁신은 같은 범주 안에서의 개선보다는 범주를 넘나드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 개발, 실천하는 것이다. 혁신이란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으로서 가죽(革)을 벗겨내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롭게(新)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해서 새로운 경쟁자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고객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그들에게 소구하는 포인트, 이윤을 창출하는 메커니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업의 본질을 뒤흔들고 있는데 이를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선을 통해 극복하기를 바란다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혁신에 매진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기업들의 문제는 혁신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혁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는 다음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다.



혁신이 실패하는 근본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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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ail to face the facts

일반적으로 혁신은 기존의 것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고객은 기존 제품보다 더 좋은 것을 요구하게 마련이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혁신, 공정혁신을 통해서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제공하는 기업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에 가장 적합한 자원을 확보하고 활용해서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시장선도지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게 되면 이러한 성공요인들은 제도화돼 시스템에 반영되고 또 그에 맞는 문화, 정체성, 세상을 보는 관점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일하는 방식을 더욱더 공고히 하게 된다.

기업이 이러한 성공의 선순환 과정에 돌입하게 되면 마치 레코드 판의 바늘이 정해진 트랙을 따라서만 움직이듯이 기업의 자원, 일하는 방식, 관점과 잘 맞는 아이디어만 살아남게 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과거 그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줬던 요인에 대한 파악, 그에 대한 학습을 통해 의식 또는 무의식적인 일상화(routinization), 그리고 그에 근거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형성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니, 이와 같은 제도화, 관점화, 신념화의 과정이 없이는 계속해서 변화라는 환경에 일관성 있게 대응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들은 지속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한 필수요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체계화의 과정은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첫 번째 이유는 경영환경 자체가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변하는 새로운 상황이 도래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직의 성공을 견인해왔던 요소들로 인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로 잘 알려진 현상처럼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중 특정한 부분에 너무 집중을 하다 보면 그 외의 부분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과거에 성공을 가져다줬던 전략, 시장, 사업모델에 전력을 다하다 보니 그들의 관심 분야와 일치하지 않는 변화는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배경으로만 희미하게 인식된다. 즉, 같은 방식을 통한 과거의 성공이 반복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굳어지게 되고 중요한 것으로 인지하는 변수에만 더욱더 선택적으로 집중을 해서 빠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보고 있지만 진정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인텔은 모바일 시장의 확대에 대한 대응 자체도 늦었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이 늦었음을 인지한 이후에도 인텔만의 성공 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의 핵심이 고성능에서 저전력으로 넘어가는 데도 여전히 자신들의 제품이 훨씬 성능이 좋다는 것만 강조했다. 또 ARM이 AP의 아키텍처만을 제공해 스마트폰 제조사들로 하여금 가격, 성능, 크기, 전력 소모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AP를 제작할 수 있게 한 데 반해 인텔은 고객사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 등 인텔이 절대 ‘갑’인 PC 시장에서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다수의 스마트폰 및 AP 제조사들이 자신들의 니즈를 잘 반영할 수 있고, 가격도 싸며, 모바일 기기에 잘 맞는 ARM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이른바 ‘ARM 생태계’를 형성해 나갔다. 인텔이 더 좋은 성능의 아톰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고 마지막에는 가격까지 크게 내려도 이미 형성된 생태계를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은 인지했지만 그 의미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프로이드식으로 표현하면 알고 있지만 진정으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다. 검은색 모델 T로 성공을 거둔 포드가 다양한 색상과 가격 대의 차량을 출시한 GM에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포드는 “고객은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어떤 색의 차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기존의 전략에 수정이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애플도 iPod과 iTunes 출시 초기 애플 사용자들로부터 열광적인 성원을 얻었으면서도 맥 운영 체계가 아니면 iTunes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다. 이때 참모들이 윈도용 iTunes를 출시하자는,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해보이는, 그리고 결과적으로 iPod의 엄청난 성공의 기틀이 되는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이 제안을 오랫동안 거부한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바로 포드, 잡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인들이 모델 T, 맥 컴퓨터 등 기존의 사업을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명백한 사실이 제시돼도 그 의미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헨리 포드는 끝내 주변의 조언을 거부하고 오히려 충언을 한 그의 친인척이었던 중역을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기도 한다.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환경의 변화를 감지해 낼 수 있는 민감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자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인지(sensing)보다는 모든 것이 애매하고 불명확할 때 서서히 등장하는 단서들이 의미하는 바를 나름의 시각으로 읽어낼 수 있는 해석 역량이다. 2000년대 초반 인텔도 모바일이 등장을 인지(sensing)하고 투자를 시작했지만 모바일의 등장에 관한 초기 시그널을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했기 때문에 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이는 다음에 설명하는 혁신의 종류와 방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Fail to do right innovation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올바른 혁신(right innovation)은 끊임없이 변한다.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이 변화를 읽지 못하고 근본적인 성찰 없이 n+1 버전의 개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혁신이 가능하려면 비즈니스 모델의 관점에서 많은 이슈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고려돼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

인텔이 ARM과의 생태계 구축 경쟁에서 밀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 e-Book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소니와 아마존의 사례를 들 수 있다. 현재 e-Book 시장은 아마존의 킨들이 주도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소니가 아마존보다 앞서서, 그리고 킨들보다 훨씬 좋은 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다양한 책을 스캔해서 그들의 전용 웹사이트에 올려 놓고 소비자들이 구매한 후 그들의 e-Book 리더에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에서도 소니는 아마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도권을 아마존에게 빼앗기고 만다. 일반적으로 아마존의 성공 요인이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책이라는 콘텐츠에 관한 권리는 유통업체인 아마존이 아니라 저자와 출판사가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소니와 아마존의 차이가 없었다. 결정적인 차이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책 값에 대한 배분 이슈에서 두 회사의 전략이었다. 소니는 출판산업의 전통적인 50:50 기준을 적용해서 e-Book의 9.99달러 중 약 5달러를 저자와 출판사에게 배분하고자 했으나 25달러에 판매되는 종이책으로부터는 12.50달러를 받던 저자와 출판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제안이었으며 이 문제는 소니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존은 저자와 출판사에게 종이책과 e-Book을 가리지 않고 동일한 12.50달러를 제안했고 이 제안을 저자와 출판사는 받아들이게 된다. 아마존은 e-Book을 판매할 때마다 발생하는 손실을 e-Book 리더를 판매할 때 발생하는 이익으로 보충해가면서 시장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고 아마존의 킨들을 구매한 고객은 전용포맷을 사용하는 킨들용 e-Book만을 구매하는 록인 현상이 발생하면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한다.

인텔도 결국 AP의 성능 경쟁에서 ARM에 진 것이 아니다. 생태계 조성 경쟁에서 진 것이다. 전통적으로 제품의 디자인에서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수직적 통합 모델을 사용해서 고가의 CPU를 생산, 판매함으로써 PC와 서버 시장을 주도해왔고 모바일 시장도 같은 시각에서 접근했다. 반면 ARM은 CPU 디자인에 전념하고 이를 삼성전자나 TSMC 같은 기업에게 기술료를 받고 라이선스를 주는 전혀 다른 수익모델을 사용했다. 또한 ARM의 아키텍처는 기술적으로 단순하고 전력 소모가 적다는 점뿐만 아니라 고객사가 원하는 사양으로 CPU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개발자와 제조업체를 끌어들이게 됐고 그 결과 ARM의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강력한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3) Fail to innovate right

조직의 정체성을 바꿀 정도의 혁신은 단순한 방향 설정과 아이디어 제시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조직은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결합체이며 한정된 자원이라는 제약조건하에서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조직의 성장과 이익창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던 기존 사업이 가장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직 정체성의 핵심이며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혁신은 기존 사업과는 판이하게 다르거나 심지어는 제살 깎아먹기(cannibalization)를 동반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 조직은 이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많은 기업들이 태스크포스나 사내 벤처, 혹은 양손형 조직 등의 모습으로 신사업을 시도하는 조직을 분리시키고 인적, 물적인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수준의 격리가 이뤄졌어도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은 구조 외적인 면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자원 배분의 문제다. 모바일 산업이 서서히 등장하던 2000년대 초반 인텔 내부에는 모바일을 위한 기술개발 외에도 수많은 프로젝트가 조직의 한정된 자원을 할당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인텔은 기존의 거대한 PC산업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고성능, 고가격, 고마진 CPU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 마진이 큰 서버용 CPU의 개발에 최고의 자원이 우선 배분됐다. 반면 기존의 PC나 서버용 CPU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능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가격 및 개당 마진 또한 낮으며, 잠재시장은 큰 것으로 예측되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모바일 시장을 위한 기술개발은 아무래도 자원배분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즉, 구조적으로는 신사업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운영했지만 실제 투입되는 자원 측면에서는 조직 내 자원배분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로 고려되지는 않았고 그 결과 그들의 선언과는 달리 모바일 시장을 주도하는 데 필요한 자원배분이 이뤄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평가의 문제다. 신사업 추진 초기의 일정 기간은 성과에 대한 압박 없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자유를 허용하지만 언젠가는 조직이 기대하는 성과를 충족시켰는지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 신사업의 지속적인 추진 여부와 추진하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기업은 과거의 성공에 근거한 평가기준을 적용하게 되는데 문제는 기술과 시장의 동향이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매출액, 영업이익률 등의 정략적인 평가기준을 적용할 경우 많은 프로젝트가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중단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일상적으로 적용되는 정량적인 평가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에는 기존에 익숙한 시장을 기존 제품의 연장선상에서 추구함으로써 그 기술이 가지고 있는 시장구조재편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인텔도 비슷한 실수를 한다. 인텔은 기존의 영역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New Business Initiative(NBI)라는 독립된 조직을 통해서 3∼4년 기간 동안 43개의 아이디어에 투자를 했고 최종적으로 4개의 프로젝트가 평가기준을 통과해서 기존의 조직에 흡수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NBI의 최초 추진 목적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남은 4개의 프로젝트는 기존 조직이 하고 있던 사업과 매우 관련성이 높은 프로젝트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혁신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는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프로젝트를 추진한 의도와는 다르게 기존 사업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만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결론을 대신해

향후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 저전력에 더 가볍고 싼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물인터넷 기기에 들어갈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오히려 속도나 연산능력보다는 작고 가볍고 오래가는 특성을 가진 제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텔이 모바일 SoC 분야에서 손을 뗀다고 해서 사물인터넷 등 차세대 먹거리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텔은 일단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변화의 시그널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기술/제품의 변화뿐만 아니라 수익모델과 에코 시스템의 구축과 같은 다양한 혁신을 올바른 방법으로 추진한다면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혁신이 등장할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김한얼 가천대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hk3624@gmail.com

김한얼 교수는 고려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KDI국제정책대학원,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생각해볼 문제

1. 기업들이 혁신에 실패하는 이유는 혁신의 방향을 잘못 잡아서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현재 기업이 집중하고 있는 혁신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을 기업 스스로가 인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2. 기업이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을 탐지하고 발빠르게 제품이나 프로세스를 혁신하기 위해 적합한 조직 형태는 무엇일까?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