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디자인 툴킷
Article at a Glance
고객의 잠재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쓰는 글이나 고객이 해주는 말로는 부족하다. 좌담회 같은 자리에서도 서로 간의 동조현상이 일어나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는다. 고객 마음속의 ‘비밀의 경계선’을 넘어가기 위해선 고객의 생활환경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 또한 표현-동기-관점이라는 세 가지 렌즈를 통해 고객을 관찰하고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은 결국 연구자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한다. |
“발견이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보았던 것을 보면서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신선한 눈으로 사물을 관찰한다는 것은 이노베이션 과정의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당신의 경험이나 고정관념을 모두 옆으로 젖혀둬야 하는 것이다. 회의적인 생각을 내버리고 어린애 같은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갖춰야 한다. 이런 경이와 발견의 느낌이 없다면 당신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기회는 있어도 투시하지는 못한다.” - 톰 켈리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 속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얻는 것, 고객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언메트 니즈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감디자인이 추구하는 ‘사용자 통찰’의 의미다. 공감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러한 사용자 통찰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즈니스적으로 의미 있게 해석해 시장에 차별화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사용자 통찰의 발견은 기업의 기획자나 의사결정자, 스타트업 등 혁신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활동이다. 사용자 통찰에 기반한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은 기업이나 스타트업에게 시간과 리소스 낭비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경영방식이 된다. 물론 혁신은 사용자 통찰에서 시작하더라도 기술적 가능성과 비즈니스 실행력이 함께할 때 현실화될 수 있다.
사용자 통찰은 해당 영역의 문제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다. 또한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 인사이트는 기획-생산-유통-판매 등 비즈니스 실행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기획자나 혁신가들이 사용자 통찰을 발견하고자 할 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과 마음가짐에 대해 소개한다.
비밀의 경계선을 넘어가라
고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잠재 니즈나 시장에서 차별화된 사용자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사물과의 상호작용(interaction) 등을 관찰하고 그것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보다는 말, 말보다는 행동과 그 증거물로부터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을 발견하고 새로움을 통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해석의 관점에서 보면 행동보다 말, 말보다는 글이 훨씬 명확하고 논리적이다. 남들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그 증거의 관찰은 주관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그만큼 논리적 충돌의 대상이 되기도 쉽다. 주변에서 언어에 기초한 정량적 조사 결과만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찰보다 인터뷰나 좌담회와 같은 사람들의 말에 의존한 정성조사 방법이 활발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 속에는 무의식적인 거짓말이나 기억의 왜곡과 같은 변수들이 많이 작용한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언어에 기초한 질문을 받으면 논리와 이성의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진짜 속마음을 숨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반면 일상의 환경에서 사람의 행동이나 증거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어적 방법에 기초한 고객 조사의 가치가 낮다는 것은 아니다. 관찰을 통해 사람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습관적인 행동이나 관련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대화(인터뷰)를 통해 그러한 행동의 이유나 인식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관찰과 인터뷰는 상호 보완적인 통찰 발견의 도구들이다.
관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상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 속에서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호기심과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의도적 관찰’이라 부른다. 현업에서 인간 중심의 혁신업무를 수행하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관찰자가 고객이 암묵적으로 그어 놓은 비밀의 경계선(invisible secret line)을 확실히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면 관찰자는 상대방이 보여주고 싶은 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진짜 속마음이 담긴 증거물은 과감하게 경계를 넘어설 때 보여지는 경우가 많다.
당뇨환자의 냉장고에서 나온 술과 과메기 (재연 사진)
과거 만성질환자들을 도와주는 솔루션을 제안하는 헬스케어 프로젝트에서 한 당뇨환자의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1시간 동안 운동과 식이요법, 약물치료 등 당뇨관리와 관련한 자신만의 노하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특별한 어려움은 없는 듯했다. 필자는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 집안을 구경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예상 밖의 장면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소주, 맥주, 막걸리가 냉장고 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이 파고 들었다. 냉장고 가장 아래 칸에서 신문으로 겹겹이 쌓인 음식 꾸러미를 열었을 때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아, 이건 구룡포 과메기예요. 제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거든요…”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당황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얼마 후 다시 시작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까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 조절도 잘한다고 했는데, 사실 먹는 것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 좋아하는 걸 안 먹을 수는 없잖아요”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좋아하던 음식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은 당뇨나 혈압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조차도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환자들이 스스로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냉장고 안에는 술이나 박카스같이 자신의 말과는 상반되는 증거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당뇨환자들에게 냉장고는 자신의 욕망과 근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비밀의 공간인 셈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냉장고 깊숙한 곳을 훑어야 당뇨환자의 무의식적 거짓말과 그 숨겨진 욕구가 보인다. 가로막힌 가게의 칸막이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야 주인이 손님에게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다. 칸막이 밖에서 아무리 심도 깊은 인터뷰를 해도 주인은 그것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결국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해서 기획자나 혁신가는 적극적으로 고객이 그어놓은 비밀의 경계선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거절이 두려워 선뜻 경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상대방에게 예의 바른 자세와 열정만 보여주면 대부분 닫힌 경계의 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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