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seller Author Interview: 마크 레빈슨 저자

단순한 ‘박스’가 역사를 바꿨다. 컨테이너의 표준화, 혁신의 표준이 됐다

192호 (2016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이 꼭 보기에 멋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의 사용과 같은 사소해 보이는 개선이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거나 세계화라는 글로벌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 빌 게이츠는 최초로 컴퓨터를 발명한 사람이 아니다. 컨테이너의 아버지 말콤 맥린 역시 컨테이너를 발명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은 세계를 바꾸어놓는 혁신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고객에게 실제로 필요한 방식의 혁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를표준화를 통해 실현했기 때문이다.

- 혁신 경제에 있어 정부는 도움이 되기도, 방해가 되기도 한다. 정부의 규제와 보수성은 혁신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혁신 기술을 표준화하고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하는 데엔 정부의 힘이 필요하다.

 

매년 11, 미국의 최대 쇼핑 시즌인블랙 프라이데이가 찾아오면 한국의 알뜰 소비자들은 인터넷 쇼핑을 하느라 바빠진다. 한국산 제품도 미국에서 사서 다시 한국으로 수입해 들어오는 것이 더 쌀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의류와 전자제품, 아동용품뿐 아니라 가구와 자동차 같은 무거운 제품들도 해외에서 구입해 배송 받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최근 한 국내 해운사는 미국부터 한국까지 책상은 9만 원, 3인용 소파는 30만 원 정도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용달차 한 대 부르는 값이나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선 한국까지 배송비가 무료인 경우도 많다.

 

해상 운송이 이렇게까지 저렴해진데는 1970년대 국제 표준화가 이뤄지면서 급속도로 보급된 컨테이너 박스의 공이 절대적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길이 약 12미터(40피트)짜리 컨테이너박스 약 2000만 개가 물건의 운송과 보관에 쓰이고 있다. 석유와 가스처럼 특수 선박이 필요한 원자재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상품 화물이 컨테이너 박스에 담긴 채 바다를 따라, 철도와 도로를 따라 운송된다.

 

컨테이너 박스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았는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분석한 책이 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마크 레빈슨이 쓴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1 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2013년부터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을 추천하고 있는데 그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2

 

 

저자 레빈슨은 책에서 컨테이너화(containerization)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컨테이너 박스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변화도 누적되면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서플라이체인의 각 단계에서 운송비가 10%씩만 절감돼도 이 효과가 누적되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차이가 된다. 사소한 개선이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거나 세계화라는 글로벌 현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컨테이너가 없던 시절, 해상 운송비의 약 절반은 인건비였다. 선박에 제각각 다른 모양과 무게를 가진 화물들을 실으려면 항구 노동자 수백 명이 달라붙어도 최소한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까지 소요됐다. 그만큼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해운이었다. 화물의 분실과 파손도 잦았다. 태평양을 건너는 비용보다 항구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비용이 더 많이 들곤 했다. 운송비 때문에 한국 같은 후진국뿐 아니라 미국 같은 선진국들도 대부분의 공산품 소비를 자국 내에서 해결했다.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품목은 커피원두나 위스키, 생고무 같은 특산품이나 원자재 정도였다. 자국에서 생산 가능한 물건은 자국에서 조달하는 게 당연했다.

 

1970년대 이후 상황이 변했다. 미국의 해운 사업가 말콤 맥린(Malcom McLean)이 주창해 보급한 컨테이너 박스 덕분에 육상 및 해상 운송비가 떨어졌다. 선박은 점차 커졌고 항구의 크기도 덩달아 커졌다. 대형 크레인들이 항구에 설치되면서 배가 항구에서 노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항구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해운사의 인건비 지출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줄었다. 오늘날의 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수천 개의 컨테이너를 운반하는데 선원은 고작 10∼20명이다. 항구에서 하역 작업도 워낙 빠르게 이뤄져 선원들이 쉴 시간이 없다고 불평할 정도다.

  

 

책의 저자 마크 레빈슨은 이런 해운산업의 효율화가 없었다면세계화는 물론이고서플라이체인과 같은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노트북 PC 한 대에 미국에서 만든 CPU, 일본에서 만든 하드디스크드라이브, 한국에서 만든 메모리칩, 대만에서 만든 케이스가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각 부품을 중국에 있는 공장으로 운송하는 데 드는 돈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레빈슨과 빌 게이츠가 컨테이너 박스에 주목한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혁신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최초로 컴퓨터를 발명한 사람이 아니다. 컨테이너의 아버지 말콤 맥린 역시 컨테이너를 발명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은 세계를 바꾸어놓는 혁신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고객에게 실제로 필요한 방식의 혁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를표준화를 통해 실현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의 경우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운송업체들은 박스 형태의 운송을 시도해 왔다. 물건을 나를 때 상자에 넣어서 움직이는 것이 편리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문제는 표준화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운송산업은 정부 규제가 심했다. 나라마다, 운송수단마다 규제를 담당한 기관이 제각각이었다. 기업들도 이기적이었다. 배를 소유한 해운업체는 구태여 자기 돈을 들여 컨테이너를 이동시킬 크레인을 항구에 설치하려 하지 않았다. 철도 업체나 트럭 업체는 항구에 내려놓은 화물이 어떻게 배에 실리는 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회사마다, 분야마다 다른 형태의 상자와 도구를 쓰다보니 효율성이 떨어져 상자를 쓰지 않느니만 못했다. 마지막으로, 항구 노동자들 역시 강력한 노조를 조직해서 하역 작업의 기계화를 막았다. 지역사회에서 항만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했다.

 

말콤 맥린은 해운업계에 들어오기 전 트럭 운송업체를 운영해 봤기 때문에 이런 산업 간 표준화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해운사와 육송 운송업체들이 각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데 열을 올리는 동안 맥린은 선박과 트럭이 함께 쓸 수 있는 공통 규격의 컨테이너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또 집요하게 노조와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맥린은 바다와 육지를 포괄한다는 뜻의 시랜드(Sea-Land)사를 설립하고 1956년 최초의 컨테이너선을 뉴저지부터 텍사스까지 띄웠고 노선을 점차 늘려나갔다. 그러나 타사에까지 자신의 표준을 강제하지는 못했고, 전체 무역에서 컨테이너가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했다. 컨테이너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베트남전쟁이었다.

 

1960년대 미군은 항구 시설이 미비한 베트남에서 군수품을 일일이 하역해 정리하고 보급하는 데 골치를 앓고 있었다. 맥린은 직접 베트남을 방문해 미군 장성들을 설득했다. 일단 화물을 컨테이너 채로 배에서 내린 후 육지에 있는 보급기지에서 뒷정리를 하는 방식을 시험해 보도록 권했다. 컨테이너 수송의 효율성에 깜짝 놀란 미군은 이내 다른 해운사에도 시랜드와 같은 규격의 컨테이너를 사용할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에서 순식간에 컨테이너의 표준화가 이뤄졌다. 맥린은 또 베트남에서 군용 화물을 내려놓고 빈 채로 돌아오는 시랜드 선박을 일본에 들르게 했다. 일제 전자제품이 이때부터 대량으로 미국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동아시아의 수출 경제가 부흥하게 됐다. 빌 게이츠는 이 대목을 언급하며혁신에서 정부의 역할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표준 규격을 공표하거나 새로운 항구를 만드는 일은 일개 기업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반면 정부는 복잡하고 보수적인 규제로 혁신을 방해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컨테이너 항구

 

책의 저자 마크 레빈슨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뉴욕시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의 에디터로 일했다. 이 책을 쓸 때 다섯 페이지짜리 한국어판 서문을 따로 쓸 정도로 한국 경제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그리고 전직 저널리스트로서 많은 일들에 관심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상자’, 즉 컨테이너 박스에 주목했나. 해운업계와 개인적 인연이 있나.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시절, 컨테이너화의 선구자인 말콤 맥린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그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처음엔 맥린의 전기(傳記)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리서치를 하다 보니 맥린과는 거의 관계가 없지만 컨테이너의 역사에 흥미로운 측면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난 국제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컨테이너 박스에 대한 책을 쓰더라도 선박이나 조선, 해운산업이 아니라 국제무역 측면에서 접근하자고 생각했다.

 

요즘 한국에선 해외 직구가 인기다. 한국의 삼성과 LG가 만든 TV를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 주문하는 한국 소비자가 많은데, 이러면 그 TV는 태평양을 두 번 건너야 하는 셈이다.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한국까지 배송비가 거의 공짜인 경우가 많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해상 운송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떨어진 것일까? 앞으로도 이렇게 물류비가 낮게 지속될까?

 

한국인들이 미국 사이트에서 한국 TV를 산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훌륭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컨테이너화가 진행되면서 물류 요율이 굉장히 불안정해졌다. 지금 현재(2015 12) 해상 운송 운임은 엄청나게 떨어진 상태다.3 국제 무역량이 계속 증가하리라고 믿었던 해운사들이 너무 많은 수의 선박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또 미국과 동아시아 간의 무역 불균형도 한 가지 이유다. 컨테이너선이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갈 때는 꽉꽉 차 있지만 미국에서 아시아로 올 때는 많이 비어 있다. 그러니 미국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선박 운송 요금은 반대 방향보다 훨씬 싸다. 그래서 로스엔젤레스에서 부산까지 TV를 보내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자 장하준은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세탁기가 가사노동의 생산성을 급격히 향상시켜줬기 때문이라고 했다.4 당신이 생각하기에 컨테이너 박스 역시 비슷한 칭찬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컨테이너가 인터넷보다, 혹은 세탁기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꾸고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켰을까?

 

인터넷이 가져온 효용과 컨테이너화가 가져온 효용을 직접 비교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내 생각에 컨테이너는 중요한 경제적인 효과들을 가져왔다. 국제 무역량이 엄청나게 증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컨테이너 때문이다. 이는 곧 소비자들이 낮은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에서 의류의 소비자 가격은 20년 전보다도 낮다. 또 국제 무역이 활발해졌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살 수 있는 물건의 가짓수도 많아졌다. 그러니 컨테이너는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컨테이너 때문에 우리 삶의 질이 낮아진 면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제조업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컨테이너 때문에 상품의 수입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수입이 적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당신의 책에 따르면 컨테이너 박스는 20세기 초반부터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수십 년 동안 국지적으로만 쓰였을 뿐 확산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이용이 늘어나 불과 15년 만에 전통적인 운송방식을 몰아내고 국제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이 이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가져왔을까?

 

컨테이너 박스가 티핑 포인트에 이를 수 있었던 건 표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를 도입했던 해운회사들과 철도회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초창기에 이들은 서로 다른 규격을 사용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객(화주)이 자신들이 만든 컨테이너에다 화물을 넣어 다른 회사 배, 혹은 기차에 실어 보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해운사와 철도회사는 컨테이너 규격의 표준화를 두려워했다. 산업 표준화가 이뤄질 경우 고객을 포로처럼 붙잡아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는 컨테이너의 확산을 막았다. 만일 어떤 해운사가 길이 7.3m짜리 컨테이너를 쓴다고 가정하면 딱 그 사이즈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게 설계된 선박만 쓸 수 있을 것이다. 또 배가 도착하는 항구에도 그 특정 사이즈의 컨테이너를 다룰 수 있는 크레인이 설치돼 있어야만 한다.

 

컨테이너를 시도했던 수많은 사업가 중에서 말콤 맥린이 유독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전일까? 담대함일까? 아니면 규제당국이나 노동조합을 다루는 그의 협상 능력일까?

 

맥린은 자신의 비즈니스가 선박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화물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1950년대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정말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당시 해운사5 와 철도회사, 트럭 회사, 바지선(내륙 하천 운송) 회사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하고 산업 전통을 지키는 데에만 관심을 쏟았다. ‘고객은 누가 가장 멋진 배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가장 넓은 철도망을 가지고 있는지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한 사람은 맥린이 처음이었다. 고객은 A지점에서 B지점까지 물건을 안전하게, 그리고 제 시간에 옮기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맥린은 경쟁자와 다른 시각에서 사업을 바라봤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이는 혁신에 대해 좋은 교훈을 준다. 기술혁신 그 자체는 별로 흥미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요한 점은 고객에게 실제로 유용한 혁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컨테이너화를 이끈 미국의 사업가 말콤 맥린이 1960년대 중반 아프리카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항에서 찍은 사진. 그가 만든 시랜드 사는 1999년 덴마크의 머스크에 합병됐다. 맥린은 시랜드 외에도 몇 차례의 사업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으며 2001 87세로 사망했다.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단기간에 컨테이너 크기의 표준화에 성공할 수 있었나. 다른 분야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국제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정용 전압을 110볼트로 할지, 220볼트로 할지, 무게의 단위는 킬로그램과 파운드 중 무엇을 써야 할지, 자동차가 도로의 오른쪽으로 다녀야 하는지, 왼쪽으로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라 간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 아닌가.

 

컨테이너 표준화 협상은 수년 동안 지속됐다. 그 과정은 사실 굉장히 어려웠다. 컨테이너 벽의 두께가 몇 ㎜여야 하는지에 대해 10년 동안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래도 전 세계 컨테이너 해운 업계가 표준화 타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많은 대형 글로벌 해운사들이 미국 회사였고, 이들이 미국 안에서는 먼저 표준화를 이뤄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해군의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국 표준이 결국 국제표준이 됐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해운사들은 아직 컨테이너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표준이 어떻게 결정되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든 빨리 표준화 합의가 이뤄지기를 원했다.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표준이 빨리 결정돼야 그에 맞게 컨테이너십을 발주해서 글로벌 물류경쟁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컨테이너 표준화 협상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은 표준화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했다.

 

책에서 당신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컨테이너 운송의 확산 덕을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타이완, 한국은 모두 컨테이너선이 정박할 수 있는 대형 도크를 가진 항구를 건설해서 국제무역 거점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특히 선박 건조 분야에서도 글로벌 리더가 됐다. 그렇다면 서양, 특히 미국은 남들보다 앞서 있었음에도 왜 이런 분야에서 동아시아에 뒤처지게 됐나? 또 해운산업에서도 머스크(덴마크)와 같은 후발주자들이 미국 회사들을 압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서양 기업들이 뒤처진 건 아니다. 현재 세계 3대 해운회사는 모두 서유럽에 본사가 있다. 다만 미국이 경쟁에서 뒤처진 건 사실인데, 여기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의 해운산업은 국가의 보호를 너무 많이 받고 있었다. 컨테이너 해운이 확산되며 해운사 간 글로벌 경쟁이 심화됐는데 미국은 이런 신경쟁 체제에 익숙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의 대형 해운사들이 대부분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개회사였다는 점이다. 해운은 자본 집중적인 산업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그런데 상장회사의 일반 주주들은 회사의 이익률이 낮은 시기에는 배를 사는 데 돈을 쓰지 못하도록 경영진을 가로막는다.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이것이 상장회사의 문제다. 지금도 전 세계 대형 컨테이너사의 대부분은 비상장회사다. 상장된 회사라 하더라도 대주주의 지배력이 높다.

 

컨테이너화의 교훈을 다른 분야에 적용해 효과를 본 사례가 있나.

 

책에도 간단히 언급했듯이 글로벌 석유회사와 글로벌 컨설팅회사 사례가 있다. 이 두 회사의 경영자는 표준화를 통해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하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 석유회사는 북극해에서 석유 시추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계된 대형 시추 파이프라인을 쓰고 있었고, 그 파이프들을 시추 현장까지 운송해서 설치하는 데 굉장히 많은 비용이 들었다. 각각의 파이프 조각들을 운반하기 위해서 운송 설비도 따로 제작해야 했다. 그래서 경영자는 컨테이너화라는 개념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파이프를 디자인할 때부터 운송비용을 고려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디자인한 파이프들은 표준화된 운송설비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컨테이너화의 개념을 컴퓨터 서버에 적용한 회사도 있다.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배달해줄 수 있도록 했다. 비상용 발전기를 컨테이너 형태로 만든 회사도 있다. 요즘은 집이나 빌딩도 컨테이너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6

 

요즘 새로운 혁신기업이 기존 산업 질서를 위협하곤 한다. 예를 들어 우버(Uber)는 택시 면허를 가진 사람들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책에서 당신은 컨테이너의 보급이 항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없앴고, 결국 항구 도시의 지역사회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해운산업의 역사가 우버 등 현대의 혁신 기업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까? 혹은 우버가 이미 잘하고 있다고 보는가?

 

옛 컨테이너 해운사들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우버는 행복한 편이다.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은 광고홍보비만 빼면 자본이 많이 들어갈 곳이 별로 없다. 우버는 운전자들에게 직접 자본을 조달해오라고 요구한다. 운전자 개인 차량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버의 핵심 전략이다. 반면 컨테이너 선사는 새로운 선박을 한 척 주문할 때마다 수십억 달러짜리 도박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타이밍을 잘못 맞추거나 배를 짓는 동안 시장의 상황이 변해버리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우버나 다른 비슷한 회사들은 바로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자기 자산을 가볍게 들고 가자는 전략을 쓴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자동차 구입은 자신들이 하지 않는다. 차량 구매에 따른 리스크는 개인사업자나 차량 리스 회사에 넘기고, 그들과 운송 계약을 맺는다.

 

최근 몇 년간 해운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매출과 효율성 측면에서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TPP(Trans-Pacific Partnership) 조약과 같은 국제 자유무역협정이 해운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수 있을까?

 

컨테이너 해운 산업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덕분에 오랜 기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규모의 불경제(diseconomies of scale) 현상을 겪고 있다. 요즘 건조되는 컨테이너선은 12미터짜리 컨테이너 1만 개를 실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이런 배들은 바다에 나가 있을 때는, 즉 물건을 운반할 때는 굉장히 효율적이다. 하지만 항구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과정이 복잡하다. 하역해야 하는 컨테이너 수가 너무 많아서 혼란과 시간 지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유류비를 절약하기 위해 컨테이너선을 예전보다 천천히 운행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운송 시간 증가는 고객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제조업과 유통업의 기업들은 서플라이체인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해상으로 운송해야 하는 물품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는 다시 해운사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컨테이너 해운은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한국의 해운사들, 그리고 컨테이너선 조선업체들은 아주 어려운 시간을 겪게 될 것이다. 산업 내에서 인수합병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어려운 조정 기간을 슬기롭게 넘겨야만 한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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