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대본과 린스타트업

193호 (2016년 1월 Issue 2)

 

 

 

“작가의 따귀를 한 대 때리고 싶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이른바쪽대본때문에 촬영 내내 힘들어했던 한 거장급 배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제 드라마 제작 현장의 상황은 열악합니다. 연기자들은 자신의 역할과 전체 스토리를 충분히 숙지해야 최고의 연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촬영 전에 간신히 건네받는 쪽대본 체제에서는 배우들이 명품 연기를 펼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난해 말 한 방송사의 연기대상에서 상을 받은 배우가쪽대본 관행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해 관심을 모으는 등 쪽대본은 드라마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대본을 완벽하게 작성하고 배우들이 이를 충분히 숙지한 다음에 최종회까지 촬영을 마무리한 후 TV에 방영해야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드라마가 제작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사전 제작을 한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반면 열악한 쪽대본 체제로 시청률을 거머쥔 사례가 많습니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는 한류 열풍의 주역 가운데 하나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는 대표적인 문화 상품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쪽대본이 경쟁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쪽대본에 도대체 무슨 장점이 있을까요.

 

바로 시청자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방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인터넷 등을 통해 표출된 시청자들의 의견, 분당 시청률 등으로 추론해볼 수 있는 시청자들의 관심 영역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만이 대본 작업 초기에 주인공이 죽는 비극으로 드라마를 구성하려 했다가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면 주인공을 살려낼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또 주인공보다 조연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 해당 조연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이런 장점이 발현된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놀라운 연기를 펼치는 명품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쪽대본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런 숨겨진 장점이 있다는 점은 반드시 고려했으면 합니다.

 

경영학 관점에서 쪽대본 체제의 장점을 극대화한 신사업 개발 방법론이 린스타트업(lean startup)입니다. 사실 벤처기업이든, 기성기업이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실무자들은 방대한 분량의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일에 몰입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십 장, 혹은 수백 장 분량의 사업계획서 대부분은 수많은 가정과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실제 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데도 마치 아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게 바로 사업계획서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방법론이 린스타트업입니다. 린스타트업은 서류 작업에 매달리지 말고 사업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을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테스트해보면서 가설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수정하라고 강조합니다. 스타트업 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존 기업들도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지속 성장의 아이콘 GE가 린스타트업 도입에 가장 열정적인 대기업이란 점도 참고할 만한 포인트입니다. 린스타트업 프로세스를 조직 내에 잘 구현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현을 촉진시키고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특히 쓸데없는 문서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들고 생산적인 분야로 자원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전문가들과 함께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기존 조직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소비자의 선호도를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가정하에 린스타트업을 조직에 적용해 저성장 시대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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