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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앤더슨 3D로보틱스 대표 강의 및 토론

21C 개방형 혁신, 커뮤니티 기반의 플랫폼이 답이다

이방실 | 192호 (2016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19세기는 기업과 기업이 경쟁하는 시대였다. 이때에는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었다. 반면 20세기는 제품과 제품이 경쟁하는 시대였다. 아웃소싱을 통해 얼마든지 제품을 만들 수 있으므로 굳이 생산 수단(공장)을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21세기는 개방형 혁신과 개방형 혁신, 생태계와 생태계, 플랫폼과 플랫폼 간 경쟁이다. , 애플이 조성한 개방형 혁신 모델/생태계/플랫폼과 구글이 만든 또 다른 개방형 혁신 모델/생태계/플랫폼이 서로 싸우는 시대다. 개방형 혁신을 끌어안고 싶다면 플랫폼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커뮤니티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플랫폼이야말로 혁신이 만들어지는 곳이며 재능 있는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거대한 자석이다.

 

 

크리스 앤더슨 3D로보틱스 대표가동아비즈니스포럼 2015’에서개방형 혁신: 비트의 세계에서 원자의 세계로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인터넷과 웹의 출현 이후 지난 30여 년은 개방과 협력에 초점을 맞춘 혁신을 통해 각 산업에서 새로운블루오션기회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었다. 오늘 내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혁신 모델을내부에서외부로 바꿨다는 측면에서 특정한 종류의 블루오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내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좀 더 설명해 보겠다.

 

2007, ‘포스의 혼란(a disturbance in the force)’이 일다

 

나는 다섯 명의 자녀들이 있고, 아이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이 많다. 지난 2007년 교육용 로봇 제작 키트인레고 마인드스톰을 가지고 아이들과 로봇을 만들어 보려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로봇을 만들기 위한 프로그래밍보다는 비디오 게임을 하며 놀기 원했다.

 

나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로봇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로봇(rolling robot)이 아니라 하늘을 나르는 로봇(flying robot)이라면 아이들도 관심을 가질 것 같아 구글에 검색했다. 검색창에 ‘flying robots’을 입력해 보니 맨 처음 검색 결과로드론(drones, 무인항공기)’이 나왔다. 다시 ‘drones’로 검색했더니오토 파일럿(autopilots, 자동조종장치)’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레고로 자동조종장치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자동조종장치를 만들었던 2007년은 하드웨어 측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드웨어에 각종 센서를 장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속도계, 경사각 센서, 자이로스코프 센서, 나침반 센서 등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 비싸서 감히 쓸 수 없었던 기술과 장치들을 장난감 로봇에도 도입할 수 있게 됐다. 모션 센서를 장착한 비디오 게임닌텐도 위(Wii)’가 출시된 것도 2007년이고, 웨어러블 기기인 핏빗(Fitbit)이나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3D프린팅의 출현도 모두 2007년이었다. 아두이노(Arduino)라는 오픈소스 컴퓨팅 프로젝트 역시 2007년에 시작됐으며 제조자 운동(Makers Movement, 3D프린팅 등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제조업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애플 아이폰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도 바로 2007년이었다.

 

한마디로 2007년은 영화스타워즈의 명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포스의 혼란(a disturbance in the force)’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과거비트(bits)’의 세계(디지털 세계)에 국한돼 적용됐던 개방형 혁신 모델은원자(atoms)’의 세계(실제 물리적 현실 세계)로 확대될 준비가 돼 있었다. 이는 웹 세상에 적용됐던 혁신 모델이 다른 모든 분야로도 확대 적용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개방형 혁신을 통해 디지털 세상뿐 아니라 현실 세계 역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어쨌든 나는 레고로 무인 비행기를 만들었다. 비록 내 작품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지만레고로 만든 세계 최초의 무인 비행기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레고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자동조종장치가 달린 무인 비행기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각종 센서나 프로세서와 관련된 책을 먼저 읽은 후에 개발 작업을 진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삶의 모토인실행을 통해 학습한다(learning by doing)’는 원칙에 따라 일단 저지르고 봤다. 계속 자동조종장치 개발에 집중했고,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에 드론 제작과 관련된 커뮤니티 플랫폼 ‘DIY드론(diydrones.com)’도 개설했다.

 

커뮤니티를 만들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과거엔 비싸고 복잡해서비트의 세계에만 적용할 수 있었던 기술 및 장치들이 점점 단순화되고 저렴해지면서원자의 세계에도 손쉽게 적용될 수 있게 됐다는 걸 일찌감치 감지한 선구자들이었다. 이들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나는 전혀 몰랐지만 DIY드론 커뮤니티를 만들자 알아서 모여든 것이었다. DIY드론은 블로그가 아니라 소셜네트워크 형태였기 때문에 창의성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플랫폼 기능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글을 작성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남의 글을 읽고 서로 토론할 수 있었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수준을 넘어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해 직접 프로그램 코드를 쓰고, 회로를 설계하고, 각종 시스템을 만드는 등 협동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단지그렇게 할 수 있었기때문에 그렇게 했다. 이는 웹의 탄생 배경과 똑같이 일치한다. 웹 역시 어떤 거대한 미디어 기업이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여러 개인들에 의해 하의상달식(bottom-up)으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3D로보틱스라는회사보다 DIY드론이라는 ‘커뮤니티’가 먼저였다

 

이렇게 참여자들의 협업으로 드론에 대한 설계가 다 끝나자 이제는 어디서 이런 드론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나는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함께 디자인한 무선 비행기 조종기를 만들기 위해 회로기판 디자인 파일을 공장에 보내 주문 생산을 맡겼다. 모터는 중국에서, 포장지는 캐나다에서, 프로펠러는 타이완에서 수입했다. 주문부터 결제에 이르는 과정은 알리바바와 페이팔 등을 통해 간단하게 해결했다. 상품을 포장하는 일은 우리 집 부엌 식탁과 바닥에 상자들을 늘어놓고 아이들과 함께 직접 했다. 그렇게 만든 제품은 다 팔렸고, 그 후 커뮤니티 회원들의 계속된 요청으로 더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즈음 커뮤니티를 통해 호르디 무뇨스라는 똑똑한 청년을 알게 됐다. 당시 그는 19살짜리 멕시코 청년이었는데, 아두이노를 사용해 닌텐도 게임기 콘트롤러로 장난감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올리며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그와 만나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비행기 자동조종장치, 콘트롤러 기판 등을 함께 제작하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하다 결국 2009년 회사까지 창업하게 됐다.

 

무뇨스는 이베이에서 산업용 장비인 픽업배치장치(Pick & Place Machine)를 사서 회로기판 등을 제작했다. 그렇게 무뇨스가 제품을 만들어 보내면 내가 회원들에게 파는 식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무뇨스를 직접 만나지 않은 상태였다. 드론을 갖기 원하는 소수의 커뮤니티 회원들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뿐이어서 나는 여전히 <와이어드> 편집장 일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원들의 수요가 늘기 시작했고, 무뇨스 역시 CNC 장비, 리플로 오븐(Reflow oven) 등 전문 장비를 하나씩 구입해 나가면 전문적인 생산 라인을 갖춰갔다. 2012년 나는 드론 제작이 단순히 취미로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미래의 산업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드론에서 감지했고, 결국 <와이어드> 편집장직을 내려놓고 3D로보틱스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생각해 보라.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미국 잡지 편집장이 고등학교만 졸업한 멕시코 이민자 청년, 그것도 얼굴 한번 본 적 없이 인터넷으로만 알게 된 십대 청년과 함께 회사를 설립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너무나 올바른 선택이다. 혁신 모델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선 십대들은 기성 세대가 모르는 기술을 너무나 잘 안다. 무뇨스 같은 청년들은 개방형 혁신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적 배경 속에 태어난-네이티브(web-native)’들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개념의 대학이 아니라구글을 통해 교육을 받는다. 고등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무뇨스는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또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누구보다도 빨리 습득해 나갔다. 그는 누가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본능적, 감각적으로 향후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그는 성능 면에서 가장 떨어지지만 가장 싸고 가장 쉬운 오픈소스 툴인 아두이노를 선택했다. 커뮤니티 회원들이 원하는 바는 단지 성능이 뛰어난 툴이 아니라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가장 가격 부담이 적으면서, 그들의 변화된 니즈를 가장 신속하게 수용할 수 있는 툴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십대들은 두려움이 없다. 나 같은 사람, 소위 기성 세대들은 산업용 기계를 이베이에서 사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조차 못할 때 무뇨스는 일단저지르고본다. 마지막으로 무뇨스는 마크 저커버그처럼 하버드대를 나온 십대는 절대 알 수 없는 걸 알고 있다. 그가 자란 티후아나는 주변에 널린 게 공장이었다. 티후아나에서 자란 10대 아이들은 공장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안다. 마찬가지로 중국 선전에 사는 10대 아이들도 티후아나에 사는 청소년들처럼 하드웨어를 어떻게 만들고 공장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잘 안다. 따라서 하드웨어 회사를 창업하려면 하버드나 MIT 졸업생들을 뽑을 게 아니라 선전이나 티후아나 출신의 10대를 채용하는 게 더 옳은 선택이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3D로보틱스는 사실 회사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커뮤니티가 먼저 만들어졌고 거기에서 회사가 나중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도, 코드도, 회로 설계 등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도 모두 커뮤니티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3D로보틱스는 단지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출발했고, 그러다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커뮤니티 외 다른 사람들까지를 상대하는 회사로 커간 것이다.

 

항공기가 아니라 프로펠러가 달린 스마트폰을 만든다

 

현재 3D로보틱스의 직원 수는 300여 명이지만 우리 중 누구도 항공산업에서 근무한 경력은 없다. 우리는 단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술 트렌드, 특히 스마트폰과 관련된 산업 영역에서 벌어지는 기술 변화에 주목해 왔고, 커뮤니티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게끔 만드는 방식으로 인재를 발굴해 왔다. 사업을 본격화한 지 불과 2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재 3D로보틱스는 북미 최대 드론 회사로 성장했다.

 

3D로보틱스가 이처럼 단기간 급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존 항공사처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비행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지 않고스마트폰날개를 달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마트폰, 프로펠러가 달린 스마트폰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각종 항공 규제나 안전 규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 센서, 카메라, GPS 기술 등 스마트폰 관련 기술을 어떻게 해야 하늘을 날아다니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렇게 생각을 달리함으로써 우리는 20세기 모델을 21세기에 억지로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얻기 원한다. 한 장의 조감도를 얻기 위해 직접 비행 교육을 받고 항공기를 조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저 누군가 대신 위에서 찍어서 보여주기를 바란다. 과거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수의사람들을 항공기 조종사로 교육하는 데 주력했다. 우리는 이 일을 사람이 아닌기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소프트웨어가 대신하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무슨 일이든 자동화를 통해 프로세스를 쉽고 간단하게 만들려면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건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모아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 일을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커뮤니티를 좀 더 공식화함으로써 보다 정교한 모양새를 갖춰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리눅스 재단 산하의 드론코드 프로젝트(Dronecode Project) 컨소시엄의 멤버로 합류했다. 현재 드론코드 컨소시엄에는 3D로보틱스 외에 바이두, 퀄컴 등을 비롯해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과 하드웨어 업체, 통신사 등이 대거 참여해 있다. 각 멤버들은 각기 다른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무인 항공기를 위한 오픈소스 플랫폼을 더욱 공고히 구축해 나가는 데 힘씀으로써 항공산업뿐 아니라 농업, 건설, 부동산 등 다양한 산업 영역으로도 무인 항공기가 확대돼 산업의 지형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드론코드 같은 컨소시엄은 비단 드론 산업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오픈스택(OpenStack,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의 오픈소스 프로젝트)처럼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컨소시엄을 통해 좀 더 공식적인 형태로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물론, 개방형 혁신을 세부 규약과 운영위원회, 분과위원회 등을 통해 거버넌스를 갖춘 공식적 구조로 만든다고 해서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이 컨소시엄을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구조를 갖추는 데 기여했으므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다층적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사람을 언제나 만족시킬 수는 없다.

 

기업과 커뮤니티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다

 

나는 3D로보틱스의 CEO DIY드론의 회장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겸하고 있다. 이는 매우 기묘한 갈등 관계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 입장에서 바람직한 일과 커뮤니티 측면에서 옳은 일이 항상 똑같지는 않아서다. 기업을 위해 단기적인 재무 성과에 치중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커뮤니티의 바람대로 장기적인 혁신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 나가야 할지, 매일매일 조금씩 방향타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

 

CEO로서 나는 주주의 권익을 최우선시하고 이윤 창출을 목표로 삼는다. 반면 커뮤니티의 리더로서 나는 때로 회사의 대척점에 서야 한다. 기업이 행여 회사의 이윤만을 생각하다 모두에게 득이 되는 집단적 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의사결정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커뮤니티의 입장이 너무도 달라서 회사 직원들과 커뮤니티 멤버들 중 두 집단의 간극을 잇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솔직히 어떤 날은 친()기업적 성향을 보였다가, 또 어떤 날은 친()커뮤니티 성향을 보이며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기업인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다층적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사람을 언제나 만족시킬 수는 없다. 만약 커뮤니티가 원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때는 커뮤니티 사람들로부터의 피드백을 받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기업과 커뮤니티의 뜻이 이분법적으로 확연히 갈려서 도저히 합의점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커뮤니티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사실 그 이유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투명하고 확실해 보이는 기업이 아니라 모호하고 분명치 않은 커뮤니티의 뜻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정말 힘들다. 하지만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생태계가 기업을 이기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플랫폼 간 경쟁의 시대다

 

19세기는 기업과 기업이 경쟁하는 시대였다. 이때에는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었다. 반면 20세기는 제품과 제품이 경쟁하는 시대였다. 아웃소싱을 통해 얼마든지 제품을 만들 수 있으므로 굳이 생산 수단(공장)을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21세기는 개방형 혁신과 개방형 혁신, 생태계와 생태계, 플랫폼과 플랫폼 간 경쟁이다. , 애플이 조성한 개방형 혁신 모델/생태계/플랫폼과 구글이 만든 또 다른 개방형 혁신 모델/생태계/플랫폼이 서로 싸우는 시대다.

 

개방형 혁신을 채택하면 많은 경우 R&D를 공짜로 할 수 있다. 과거의 규제 장벽을 따를 필요도 없다. 비트(소프트웨어)를 남들과 공유해 포기하는 대신 아톰(하드웨어)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 반대, 즉 하드웨어를 버리고 서비스를 파는 방식도 가능하다. 어떤 방법이든 공짜로 줄 것과 돈을 받고 팔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하면 된다. 고객들은 혁신의 일부다. 그들로부터 많은 아이디어와 데이터를 모으고, 그걸 측정함으로써 디바이스를 개선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더 빨리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개방형 혁신은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로 인해 고객 수용도를 높일 수 있으며, 혁신의 속도도 가속화할 수 있다.

 

개방형 혁신을 끌어안고 싶다면 플랫폼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커뮤니티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플랫폼이야말로 혁신이 만들어지는 곳이며 재능 있는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거대한 자석이다.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참가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자사의 이익만 앞세우기보다 플랫폼 전체의 수용도를 높이는 길이 무엇일지에 대해 먼저 고민할 때 회사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홍범식 베인앤컴퍼니 대표와의 토론>

 

 

 

홍범식 베인앤컴퍼니 대표(왼쪽)와 토론하고 있는 크리스 앤더슨 대표

 

홍범식 대표:개방형 혁신의 중요성에 대해선 대부분 공감하지만 이를 실제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항상 문제인 것 같다.

 

크리스 앤더슨:대부분 신생 기업, 특히 웹 문화(web culture)를 기반으로 설립한 스타트업들에게 개방형 혁신은2의 본성과 다름 없다. 하지만 기존 기업들에 개방형 혁신은 명확하게 이해하기도 힘들며, 심지어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단적인 예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 보자. 기존 기업들에게 지재권은 특허로 당연히 보호돼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많은 신생 스타트업들은 지재권이 없어져야 할 대상이라고 여긴다. 시장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특허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3D로보틱스의 무선 조종장치 기술은 세계에서 복제가 많이 일어나는 기술 중 하나다. 나는 정말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 침해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기술을 대신 마케팅해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지적재산권을 경쟁자들한테 값없이 넘겨주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 공유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채택할 것이고, 더 낮은 가격에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그건 소비자들에게 좋은 것이고, 세상에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좋은 건 결국 우리 회사에도 좋다.

 

결국 문제는, 웹 이전(pre-web) 환경에서 성장해 온 기존 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는 한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는 실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기존 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기존 제품을 기존 조직에서 내놓으면서 개방형 체제로 가기란 너무 어렵다.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GE처럼 스핀오프 방식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개방형 혁신을 추구할 수 있다. GE의 경우 제트엔진부터 의료장비, 각종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자사가 진출해 있는 모든 산업 영역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위주로 변화되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 GE의 기존 핵심 역량이었던 하드웨어는 갈수록 범용화되는 반면 센서, 프로세서 등 소프트웨어 기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실리콘밸리에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울 회사를 스핀오프해 개방형 혁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GE의 방식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엔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분명한 점은 GE가 개방형 혁신을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핀오프 외에 기존 기업이 개방형 혁신을 추구하기 위해 고려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개방형 혁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때 전제는, 피인수 기업을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 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을 추구하겠다며 범하는 흔한 실수가 있는데 소위개방형 혁신 대회(Open Innovation Challenge)’ 같은 걸 실시하는 것이다. 이런 컴퍼티션 방식은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자체 R&D 없이 제대로 된 개방형 혁신을 한다는 게 가능한가? 적어도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필요 없는 기술인지 옥석을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기업 내부적으로 R&D를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앤더슨:3D로보틱스를 포함해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시대를 주도하는 기술 트렌드에 대해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 그대로 외부에 있는모든구성원들과항상이야기를 하며 기술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잠재적 파트너 회사는 물론이고 경쟁사와도 늘 이야기하며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모든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빠짐없이 체크한다. 우리 회사엔 오로지 기술평가만 담당하는 별도의 팀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 팀의 경우 시장에서 쓰이고 있는, 또 향후 쓰일 기술들에 대해 평가하는 일 외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기술 관련 미팅에 참석하고, 그 기술의 가치에 대해 신속하게 평가한다. 그 이후엔 선택의 문제다. 아무리 기술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우리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최종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

 

:개방형 혁신을 추구할 때 커뮤니티의 규모가 점점 커질 경우 기업과 커뮤니티 간 협업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앤더슨: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지시한다. 하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그들도 서서히 독립하기를 원한다. 이때는 자녀들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의 독립을 두고자식이 부모를 버린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동시에 부모들은 자녀들이 여전히 가족의 일원으로서 동일한 가치관과 원칙을 지켜가기를 원한다. 결국 핵심은 부모와 아이들 모두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점이다.

 

커뮤니티와 기업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커뮤니티가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야 한다. 처음에 3D로보틱스는 미미하게 시작했다. 커뮤니티의 지시에 따라 모든 걸 수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커뮤니티에 소속된 소수의 개발자들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커뮤니티 바깥에 있는 수많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게 됐다. 커뮤니티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3D로보틱스를 두고커뮤니티를 저버렸다고 말하는 건 미성숙한 일이다. 커뮤니티 역시 성장해야 한다. 우리가 리눅스재단 산하 드론코드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플랫폼은 우버, 구글 등 미국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앤더슨:개인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플랫폼은 위챗이라고 생각한다. 샤오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모두 정말 좋은 플랫폼이다. 그리고 모두중국플랫폼이다. 단언컨대 현재 중국 기업들은 플랫폼 게임을 정말 잘하고 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다. 중국 기업들이 진정한 혁신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 기업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구글 같은 외국 플랫폼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제재도 한몫했다. , 무역 장벽과 진정한 혁신이 서로 섞여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중국의 이런 현상을 두고 잘못된 시사점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글로벌 플랫폼의 진입을 제한함으로써 로컬 플랫폼을 키울 수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통상적으로 내수시장 진작을 목적으로 외부의 경쟁을 제한하는 시도는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한국에선 우버가 불법이라고 들었다. 그런 규제를 통해 중국처럼 로컬 플랫폼을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잘못하다간 브라질과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중국 플랫폼 업체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바깥에서도 그들이 선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10∼15년 뒤에 산업 구조는 어떻게 바뀔 것으로 예상하나? 전통적인 기업들이 여전히 존재할까?

 

앤더슨:당연하다. 21세기는 플랫폼과 플랫폼 간 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존 기업들은 어떤 식으로든 플랫폼의 일부가 될 것이다. 미래에는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될 것이고, 소프트웨어가 모든 사물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에 연결된 모든 것은 다 플랫폼으로 연결될 것이다. 자동차든, 집이든, 건물이든, 그 어떤 디바이스도 모두 똑같다. 어떤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든 그건 사물, 하드웨어안에 들어가 있는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당연히 하드웨어를 만드는 역량은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은 생산, 제조 기술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구글도 가지고 있지 못한 역량이다. 관건은 이걸 어떻게 기업 내부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기업이라는 경계를 넘어 확대시킬 것인가다.

 

내 핸드폰은 넥서스5X.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스마트폰 중 한국 기업인 LG전자에서 만든 제품을 선택했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은 정말 잘하고 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큼 훌륭한 기술과 제조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특징들은 주로 LG전자, 삼성전자처럼 역사가 오래 된 기업들에 해당되는 자질인 듯하다.

 

반면 신생 기업들, 특히 첨단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기반의 한국 스타트업 기업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언어 장벽도 존재하고 내수시장도 크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 한국 스타트업들은 삼성전자나 LG전자처럼 하드웨어 측면에서 세계적 역량을 가진 제조사에 접근할 수 있다. ,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훌륭한 하드웨어 기업을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은 어느 나라에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한국인들이 이런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드웨어 혁신인 메이커스 운동 관점에서 보든, 소프트웨어 혁신 측면에서 보든 스타트업을 하고자 하는 이들의 숫자가 내 기대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결국 문제는 기업가정신이다. 실리콘밸리에선 모든 사람들이 창업을 한다.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 중 어느 시점에서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건 진정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한 직장에서 장기간 회사 생활을 하는 전통이란 실리콘밸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스타트업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본업에 매여 있다 보니, 그것이 사람들의 에너지를 모조리 고갈시켜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경기 상황이 여전히 좋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 경기 침체가 심화될수록 창업이 늘어난다. 하지만 한국에는 언제나 기존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있어서 창업이 더딘 것일 수도 있다.

 

:개방형 혁신을 추구하려는 한국 기업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앤더슨:개방형 혁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모든 자원을 완벽하게 소유하지도 못한 채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현재 지금 사는 시대의 본질이다. 21세기에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다. 단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소유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막다른 길에 부딪힐 것이다. 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두려움 없이 커뮤니티와 협력하기로 결정한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물론 당신의 회사가 다른 회사보다 더 많은 이익, 더 많은 시장점유율을 가져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협력해야 수익성 있는 시장에 서 있을 가능성이 크고, 혁신을 일궈낼 기반을 구축할 가능성 또한 크다. 고민해야 할 사항은 개방형 혁신을 외면하고 포기하느냐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개방형 혁신 속에서 제 몫을 차지해 나가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당신이 독점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게 개방형 혁신 플랫폼의 핵심 개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리=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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