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 in Practice
Article at a Glance
패스트 패션은 가격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소비자들 중엔 개도국 노동인력을 착취하거나 환경에 유해한 원료를 사용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표적 패스트 패션 기업인 H&M은 적정 임금을 지불하는 회사만을 파트너로 삼고 제품 소재에 유기농 면이 사용된 정도를 주요 지표로 관리하는 등 근로자 복지와 환경보호를 적극적으로 챙긴다. 특히 H&M은 헌 옷을 수거해 체계적으로 재활용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패션 행사를 펼치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런 노력 덕택에 H&M은 패스트 패션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
편집자주
기업의 비전과 중장기 마스터플랜에 부합하는 CSR 활동을 전략적으로 수행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어떻게 CSR을 기업 전략과 융합했을까요. 세계 유수 기업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전략적 CSR 활동에 대한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2014년 12월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14년 최고 시장 파괴자로 우버와 알리바바를 선정했다. 새로운 발상과 신기술을 이용해 기존 시장 판도를 뒤흔든 기업, 소비자와 사업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 업체에 ‘시장파괴자’라는 멋진 이름을 선사한 것이다. 이외에도 <파이낸셜타임스>는 샤오미, 테슬라 등 업종별로 20여 개 업체를 선정하면서 이들을 소개하는 지면을 연말특집으로 마련했다. 아마도 하버드대의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 뉴스를 보고 싱긋 웃었을 것이다. 시장 파괴자라는 개념은 그가 1997년에 쓴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기존 플레이어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발상으로 시장에 뛰어들어 심지어 경쟁규칙마저도 새롭게 정의하는 기업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수행하는 회사로 정의했다.
의류업계의 시장 파괴자, SPA 브랜드
의류업계는 어떠한가. 1980년대 중반 의류업체인 갭(GAP)이 최초로 콘셉트를 제안한, 그래서 새롭다고 말하기에는 머쓱할 수도 있는 SPA(Specialty store of Private label Apparel)가 파괴적 혁신의 주역이다. SPA는 자사의 기획 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해 유통까지 하는 전문 소매점을 의미한다. 요즘에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는 용어가 좀 더 일반화돼 있다. 기존 의류업체는 일년에 6번 신상품을 출시한다. 패스트 패션은 24번, 거의 2주에 한 번꼴로 신상품을 출시한다. 매장에 가면 항상 신상품이 있다. 가격도 저렴해서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다. 자라, H&M, 유니클로가 글로벌 3대 SPA 업체라고 불린다.
사회공헌 이야기를 해보자. 패스트 패션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긍정적 평가와 ‘한 철만 입고 버리는 소비풍조를 조장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함께 존재한다. 부정적 인식은 가능한 빨리 제거해야 한다. 한 번 입고 난 의류를 재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그래서 중요하다. H&M은 헌 옷 수거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가 쇼핑백에 버리는 옷을 담아가면 나중에 H&M에서 4만 원 이상을 구매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5000원 할인 바우처(voucher)를 준다. 헌 옷이 반드시 H&M일 필요도 없다.
사실 헌 옷을 수거해 할인 바우처를 제공해 주는 건 대부분 패스트 패션 업체들이 비슷비슷하게 실시하고 있는 캠페인 활동이다. H&M의 특징은 수거된 옷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상태에 따라 재착용, 재사용, 재활용, 에너지원의 용도로 활용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 집안에 여러 아이가 있을 때에는 대물림이라도 하지만 한 가구 한 자녀인 집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아이의 사촌동생에게 물려 입히기에도 괜히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 다시 입을 수 있는 상태의 제품을 수거해서 전 세계 중고시장에 유통한다. 재착용이다. 내의를 입다가 구멍이 나면 이를 걸레로 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착용이 불가능한 옷감은 청소도구 등 다른 제품으로 개조된다. 재사용이다. 이마저도 힘들 정도로 낡은 옷이라면 원사로 재활용된다. 심지어 자동차의 절연 소재로 활용된다. 이것도 곤란한 경우에는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 결코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2013년 H&M이 거둔 헌 옷은 3000t이 조금 넘는다. 이 정도면 티셔츠 1500만 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H&M이 CSR에 적극적인 이유
여러 패스트 패션 업체 가운데 유독 H&M이 CSR과 사회공헌 활동에 앞서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CEO의 경영 철학이다. 1947년 창립한 H&M은 현재 창업자의 3대손인 칼-요한 페르손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가 H&M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메시지는 ‘돈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옷이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하길 바란다’이다. 여기에 더해 H&M은 스웨덴이라는 국가 특성이 더해지며 적극적인 CSR 활동에 나서고 있다. 스웨덴은 2002년 국가 차원에서 CSR 대사라는 직책을 마련한다. 스웨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게 CSR 대사의 주 임무다. 스웨덴 기업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현지 사회공헌은 피할 수 없다. CSR 대사는 자국 출신 기업이 진출한 국가를 끊임없이 순방한다. 그 나라에서 ‘스웨덴 출신 기업이 그 지역에 무엇을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주제로 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국가가 밀어붙이는데 기업이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현지 진출 기업들은 실질적으로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며 실행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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