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Minds

흑사병 피해 고향 칩거하며 이룬 ‘기적’ 뉴턴의 ‘도전적 몰입’ 배우자

177호 (2015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 그의 연구업적 대부분은 흑사병을 피해 자신의 고향인 울즈소프에 내려왔을 때 나왔다. 2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자 입장에서 뉴턴식몰입으로 직원의 창조와 혁신을 이뤄내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의 의미와 오너십을 줘야 한다.

둘째, 일의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

셋째, 도전적인 일을 줘야 한다.

넷째,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1666년은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23세의 뉴턴이 고향에 내려와 만유인력 법칙의 초석을 닦았고, 빛의 기본적인 성질에 대해 규명했으며, 미적분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사에서 이토록 수확이 많았던 해는 아인슈타인의기적의 해로 꼽히는 1905년이 유일하다. 1665년 여름 뉴턴은 런던에 창궐한 흑사병을 피해 고향인 울즈소프의 농장에 내려와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했다. 2년 가까이 가족과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실험, 관찰, 사색을 거듭하며 몰입상태를 유지했다. 대학 때부터 뉴턴의 몰입은 대단했다. 당시 빛은 뉴턴의 관심사 중 하나였는데 거울에 반사된 태양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바라봤다. 이런 관찰을 눈이 망가질 때까지 반복했다. 뉴턴의 노트에는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

 

‘몇 시간 동안 나의 눈은 몹시 상처를 입었다. 그 때문에 어느 쪽 눈도 밝은 물체조차 볼 수가 없었고 보이는 것은 눈앞의 태양뿐이었다. 나는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었고 내 방을 어둡게 해 놓고 3일 동안 틀어박혀 있었다. 그동안 태양을 상상하지 않기 위해 딴 생각을 하느라 별의별 짓을 다했다. 왜냐하면 어두운 곳에 있었음에도 태양만 생각하면 곧 태양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뉴턴이 태양과 빛에 얼마나 몰입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뉴턴은 평생 몰입했다.

 

평생 몰입한 뉴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갈릴레이가 사망한 1642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 주에 있는 울즈소프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농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뉴턴이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세 살이 되자 어머니는 이웃마을에 사는 부자 노인과 재혼을 했다. 홀로 남은 뉴턴은 내성적이며 삐뚤어진 성격을 지닌 아이로 자랐던 것 같다. 손재주가 좋아 혼자서 해시계를 정교하게 만들어 햇빛의 변화를 기록하며 놀았다. 열 살이 됐을 때 새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가 동생 셋과 함께 울즈소프로 돌아왔다. 이후 뉴턴은 이웃마을의 학교에 다니기 위해 약재상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 처음에는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었으나 머리가 워낙 좋았기에 점차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다. 졸업 후 뉴턴의 어머니는 그에게 농장을 물려주기 위해 농사일을 가르쳤으나 뉴턴은 일부러 농장에 피해를 입히는 사고를 치면서 말썽을 부렸다. 결국 뉴턴은 1661년 케임브리지대에서 가장 유명한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했다. 오늘날로 치면 근로장학생으로 입학해서 다른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대학생활을 했다. 3학년이 되자 비로소 장학생 시험에 통과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뉴턴은 당시까지도 우주와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검증하려고 했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같은 선배 학자들의 업적으로 고대의 세계관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를 새로이 밝혀내기로 마음먹었다. 나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했다. 그는 때로는 독서에서, 때로는 사색에서 얻은 질문으로부터 45개의 주제를 자신의 노트에 적어놓고 매일 고민했다. 1물질과 원자, 양과 위치, 운동, 시간과 영원성, 무거움(중력), 열과 냉기, 자석의 인력, 빛과 색깔, 소리, 생성과 부패, 기억, 바다의 밀물과 썰물 등에 대해 원인을 알아내려고 항상 질문했다. 물론 유동성, 안정성, 축축함, 건조함 등 몇몇 주제는 제목 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여러 주제를 관통하는 원리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자연 만물이 그에게는 연구 대상이었다.

 

4학년 겨울 혜성이 나타났을 때, 뉴턴은 밤마다 밖으로 나와 혜성의 경로를 동틀 무렵까지 관찰하고서야 불면과 정신적 혼란 상태에서 잠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삼각법, 기하학 등 수학책을 탐독하며 고급 수학의 개요를 접했다.

 

유럽 전역에 창궐한 흑사병으로 런던에서도 6명에 1명꼴로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1665년 여름 케임브리지의 칼리지들은 휴교를 했고 연구원들과 학생들은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뉴턴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책장을 만들고 자신의 서재를 꾸몄다. 그리고쓰레기 책(Waste Book)’이라 이름 붙인 1000쪽에 달하는 백지 노트에다 자신의 발견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포함한 뉴턴의 위대한 발견과 발명은 대부분 이 시기에 이뤄졌다. 그는 우주와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와 근본적인 힘을 규명하기 위해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방법론인 수학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수학 원리나 혁신적인 미적분 같은 방법을 발명하게 됐다. 그는 고향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내 자신의 연구에 몰입했다. 뉴턴은 확실히 남달랐다. 이런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고 자신의 노트 안에 묵혀뒀다. 뉴턴의 노트를 펼쳐본 동료들은 흥분해서 이를 발표하라고 들쑤셨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훗날 라이프니츠와 미적분의 최초 발명을 두고 논쟁한 걸 보면 명성에 초연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위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개별적인 학문적 성과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세상을 설명하는 자신의 체계를 아직 완벽하게 구축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1687년에 가서야 만유인력의 법칙이 담긴 책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발표했다.

 

1667년 학교가 문을 열자 뉴턴은 석사 학위를 받았고, 1669년에는 수학과 교수였던 스승이 은퇴하면서 루카스석좌 교수 자리를 물려줬다. 광학 연구로 얻은 지식과 손재주로 반사망원경을 만든 공로로 1672년에는 왕립학회 회원으로 뽑혔다. 이후 케임브리지대에서 학자로서 뉴턴의 생활은, 그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해 수강생이 없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순탄했다. 재미있는 건 이 시기 뉴턴이 연금술에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수천 권의 책을 뒤지고 일일이 실험하며 점점 바깥 세계와 멀어졌다. 실험과 연구에 몰두해 있던 뉴턴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 사람은 핼리 혜성을 발견한 에드먼드 핼리였다. 그는 뉴턴의 이론을 책으로 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1687년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인 <프린키피아>를 출간했다.

 

이후 뉴턴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가 됐고 1689년에는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696년 조폐국부국장으로 일하면서 위조 화폐를 막기 위해 동전 옆면에 톱니 자국을 새겨 넣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금화와 은화의 주위를 깎아 금궤를 만드는 범죄를 막기 위함이었다. 이런 공로로 1699년 조폐국 국장으로 승진했고, 교수직을 후배 수학자에게 물려줬다.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하면서 화폐 위조범을 잡아 취조하는 일을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1703년 뉴턴은 왕립학회 회장으로 선출됐고, 1705년에는 과학에 대한 공로로 기사작위를 받았다. 인생 말년까지 명예로운 삶을 살다가 1727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자신의 연구에 몰입해서 살았다.

 

 

 

몰입과 창조

예로부터 무아지경, 물아일체, 삼매경 등 몰입 상태가 인간에게 극적인 만족감을 안겨준다는 통찰은 많았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도 사람이 어떤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절정 경험(peak experience)을 체험할 때 최상의 행복감과 완성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몰입은 이런 만족감뿐만 아니라 뉴턴이 그랬듯이 창조를 낳기도 한다.

 

몰입이 어떻게 창조로 이어지는지 설명하려면 뇌과학 지식을 빌려와야 한다. 사람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은 뇌의 신경세포 작용이다. 뇌에 있는 신경세포는 수천억 개이고 이들은 수백조 개의 시냅스에 의해 연결돼 있다. 어떤 일을 하면 그 일과 관련한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가 활성화된다. 이 시냅스는 가소적(plastic)이어서 그 일을 하면 활성화된 시냅스의 성질이 바뀐다. 즉 뇌의 경험과 학습에 따라 시냅스가 변화한다. 이렇게 변화된 시냅스가 뇌에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면 그와 관련된 시냅스가 처음에는 백만 개 정도 활성화되다가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하면 천만 개, 수억 개로 늘어난다. 어떤 일에 몰입하게 되면 뇌 속에서 그와 관련된 시냅스가 활성화돼 그 일과 관련한 기억과 정보들로 뇌가 꽉 차게 되고 이들이 서로 연합하고 상호작용을 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이렇게 시냅스가 끊임없이 활동하다가 해결책을 찾으면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몰입하면 가끔 자다가 아이디어가 솟아나는데, 그 이유는 수면 중에 장기기억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한 오래된 정보와 기억들이 수면 중에 모이기 때문에 해결책을 도출하기가 쉬워진다. 한편 오랫동안 집중하다가 문제를 해결하면 쾌감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뇌에서 분비된다. 이게 바로 몰입에 의한 쾌감과 만족감이다. 뉴턴은 평생 이렇다 할 연애를 하지 않았는데 연애보다 지속적으로 강한 몰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쾌감이 훨씬 컸던 것이다.

 

몰입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신체 변화를 겪게 된다. 우선 시간이 빨리 간다. 그리고 의식이 그 문제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면 그 문제를 생각만 해도 쾌감을 얻는다. 집중도가 올라가면 쾌감 역시 증가한다. 이런 쾌감에 따라 사기와 의욕이 치솟고 자신감이 생기며 낙천적으로 변한다. 무엇이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한다. 감각이 섬세해지고 자신이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는 감정이 생긴다. 이에 따라 가치관마저 바뀐다.

 

몰입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몰입은 세 가지 조건이 갖춰졌을 때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첫째, 명확한 목표가 있을 때다. 바둑, 테니스, 포커 같은 게임을 할 때 몰입하기 쉬운 이유는 목표와 규칙이 명확히 설정돼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활동 결과가 빨리 나타날 때다. 즉 피드백이 빨리 나타나야 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어 활동에 더 빠지게 된다. 바둑은 돌 하나를 놓을 때마다 형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알 수 있다. 몰입이 쉬울 수밖에 없다. 셋째, 과제의 난이도와 실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뤘을 때다. 쉽지는 않지만 너무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몰입에 들어가게 된다.

 

그럼 구체적으로 몰입에 의해 창조와 혁신에 이르는 방법을 뉴턴에게서 배워보자.

 

창조를 위한 몰입 전략

첫째, 일의 의미와 오너십을 줘야 한다. 그래야 목표를 실제 일하는 사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목표 없는 조직은 없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목표가 있어도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그것이 남의 목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처리하지 않으면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으면 목표가 아무리 명확해도 일에 몰입할 수 없다. 그래서 우선 일하는 사람이 그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게 먼저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조직의 리더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아줘야 한다. 다음으로 일에 대한 권한을 가져야 목표가 일하는 사람 것이 된다. 일하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해야 일에 대한 주도권과 애착이 생기고 목표에 몰입하게 된다.

 

목표 없는 조직은 없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목표가 있어도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그것이 남의 목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뉴턴은 자신의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뉴턴은 해가 뜨고 달과 별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우주와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를 밝혀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주변 만물의 현상과 움직임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플라톤은 내 친구지만 진리가 더 훌륭한 내 친구다라고 말하며 스승과 의견을 달리하며 했던 말을 인용했다. 뉴턴은 노트에 이렇게 써 넣었다. “플라톤은 내 친구이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내 친구지만 진리가 더 훌륭한 내 친구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넘어서 새로운 체계를 확립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무모한 시도였지만 뉴턴은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분명히 인식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뉴턴은 말수가 적었을 뿐 아니라 웃음도 없었다. 그런 그가 평생 크게 웃었던 적이 한 번 있다. 친구가 유클리드의 책을 빌리는 뉴턴에게 그 책은 무엇을 하려고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뉴턴은 대답하지 않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친구와의 우정을 끝냈다. 자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사람과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우주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둘째, 일의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 스포츠에 몰입이 쉬운 이유는 결과가 금방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게임이 끝난 후의 경기 결과뿐 아니라 플레이 하나하나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축구에서 패스 역시 우리 편에게 공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곧바로 드러난다. 슛의 결과도 공이 날아간 즉시 알 수 있다. 그래서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조직에서 일을 할 때는 이게 쉽지 않다.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일의 중간 과정은 어떻게 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행이 몰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그래서 최종 목적지로 향해 가는 과정, 과정의 중간 결과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가령 결과를 얻기 위해 거쳐가야 할 프로세스나 그 일을 하기 위해 쌓아야 할 역량 등을 작은 목표로 나눠 그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받으면 성취감이 들어 일에 몰입하게 된다. 결과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 진정한 몰입이 일어날 수 있다.

 

 

뉴턴은 훗날 독일의 변호사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한 수학자 라이프니츠와 미적분에 대한 우선권 논쟁을 벌였다. 라이프니츠는 뉴턴보다 10년 정도 늦게 독자적으로 극한에 관련된 이론과 미분학을 정립했다. 그러나 그는 미분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켜 훨씬 더 편리하게 푸는 방법을 고안해 유럽에서는 라이프니츠의 방법을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뉴턴과 제자들은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방법을 입수한 후 다른 기호법을 사용해서 다른 이름으로 똑같은 셈법을 출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훗날 두 사람 모두 독자적으로 미적분을 발명했다고 판명됐다. 이런 일이 일어난 까닭은 뉴턴이 자신의 미적분을 세상에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턴은 고향인 울즈소프에 내려와서 우주와 자연 만물을 움직이는 힘의 원리를 규명하려고 했다.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행성은 곡선으로 움직였다. 또 탑에서 떨어뜨려 가속되고 있는 물체의 위치 변화 역시 곡선의 그래프를 그린다. 뉴턴은 이런 곡선의 면적을 구하거나 곡선에 접한 접선의 기울기를 구할 필요를 느꼈다. 이를 위해 무한급수 같은 새로운 수학 이론을 개발했고, 결국 미적분까지 발명했다. 그에게 수학이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연계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논문을 발표하지 않은 게 나중에 문제가 된 것이다. 이처럼 뉴턴은 자연계를 움직이는 원리를 규명한다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 무한급수나 미적분 같은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짜릿한 성취를 즐겼다. 뉴턴이 중간 과정에서 결과를 지속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기에 거대한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몰입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도전적인 일을 줘야 한다. 과제가 내 실력에 비해 난이도가 있어야 재미가 있고 몰입이 된다. 바둑이나 테니스의 상대가 내가 이기기에 약간 어려워야 게임이 재미있다. 너무 쉬운 상대는 지루하고, 이기기에 불가능한 상대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과제의 난이도와 실력에 따라 우리는 여러 심리상태를 경험한다. (그림 1) 과제의 난이도도 낮고 실력도 필요치 않은 활동을 할 때 무관심한 상태가 되기 쉽다. 대표적인 활동이 TV 시청이다. 여기서 실력이 약간 증가하면 권태의 심리상태가 된다. 단순한 가사노동이나 잡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여기서 실력이 더 증가하면 느긋함에 이르게 된다. 독서나 식사가 바로 이런 상황이다. 이런 여유로운 상태에서 활동의 난이도가 조금 올라가면 문제해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운전을 할 때 이런 심리상태에 이르기 쉽다. 반대로 실력은 그대로인데 난이도만 높아지는 활동을 하면 걱정이 생긴다. 언쟁이나 격론을 벌일 때가 이렇다. 여기에서 또다시 난이도가 높아지면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힘든 업무나 버거운 공부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실력이 조금 상승하면 각성 상태가 된다. 버거운 공부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의 배움이나 학습활동에서 각성의 심리가 된다. 이렇게 실력과 과제의 난이도가 상승하고 자신감이 늘어나면 어느 순간 몰입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조직에서 직원들을 몰입하게 하려면 약간 도전적인 과제를 부여하는 게 좋다.

 

 

빛에 대한 연구나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체계를 다 잡은 1670년대부터 뉴턴은 연금술에 매달렸다. 다른 금속으로 금을 만드는 비법인 연금술에 몰두한 이유가 돈에 눈이 멀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평생 관심을 뒀던 연구의 일환이었다. 즉 연금술을 연구한 이유는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세계, 즉 원자의 비밀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질을 이루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들이 어떻게 자연에서 만들어지고 변하고 없어지는지를 밝히고 싶었다. 또 원자의 세계를 이해하면 중력이나 자기력이 가지는 힘의 근원을 알 수 있고 우주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금술은 그가 우주와 만물에 적용하는 원리를 발표한 후 그의 이론을 미시적인 세계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이건 사실 현대물리학에 와서나 가능한 일이었기에 실패했다. 연금술에 심취해 있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뉴턴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동료 교수를 집으로 초청했다. 가정부가 식사 준비를 끝냈고 동료 교수도 도착했지만 실험실에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심지어 기다리던 교수가 두 번이나 불러서 식사시간을 알렸지만 뉴턴은 계속 실험에만 열중했다. 결국 동료 교수는 혼자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연금술은, 다시 말해 원자의 비밀을 밝히려는 시도는 뉴턴에게도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기에 그가 온갖 능력을 쏟아부어 몰입할 수 있었다.

 

넷째,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현대인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통해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고 직장에서 해야 할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더욱이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담당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할 때 뇌 속의 관련 시냅스가 활성화돼 몰입도가 올라간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이자 베라왕그룹의 CEO인 베라 왕은 매일 오후 11시부터 밤 2시까지창조의 시간을 갖는다. 베라 왕의 독특하고 세련된 디자인은 대부분 이 시간에 나왔다. 그녀는 밤이야말로 한꺼번에 일곱 명의 사람들이 달려오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샘솟는 아이디어를 스케치북에 옮긴다. 매일 반복하기 때문에 이 시간이 되면 저절로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창조의 시간이 베라 왕의 성공 비결이었다.

 

뉴턴의 업적도 대부분 흑사병을 피해 고향인 울즈소프에 내려왔을 때 한꺼번에 나왔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2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뉴턴의 말년은 명예로웠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금술에 실패한 후에는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조폐국 국장으로도 활동하지 않았을까. 뉴턴은 화폐 위조범을 잡아 취조하고 벌 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말년에 그는 몰입할 대상을 찾았던 것 같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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