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한국중견기업연합회공동기획: 오너의 선택
Article at a Glance – 전략
글로벌 초경쟁, 국내외 저성장 기조, 여기에다 대기업에 비해 자원의 제약이 심한 중견기업의 상황을 고려하면 다각화보다는 전문화가 더 유리한 전략으로 판단된다. 아모레퍼시픽은 1970∼1980년 과도한 다각화 전략에서 실패를 맛본 후 ‘미와 건강’으로 사업 범위를 한정시켰다. 이후 전문화 전략을 적용하며 관련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매출과 이익을 급속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
편집자주
DBR은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함께 ‘명문 장수기업 만들기 전략포럼’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오너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이어지고 있는 이 포럼 가운데 전문화와 다각화를 주제로 한 송재용 서울대 교수의 강연 및 토론 내용을 요약합니다. 많은 한국 조직들이 당면한 현안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국내외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국내 주력 산업도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을 도모하면서 장수기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화를 통해 성장해 온 많은 중견기업들은 향후 전문화 전략을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할지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대기업에 비해 자원의 제약이 심각한 상황에서 중견기업이 장수기업으로 가기 위해 전문화와 다각화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이러한 의사결정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는 무엇일지에 대해 살펴보자.
전문화와 다각화의 선택과 기업의 성장 전략
전문화와 다각화 중 중견기업이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기업경영 성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연계돼 있다. 모든 기업에 유용한 성장의 묘약 내지 최적의 성장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비전을 확보하고 외부적으로는 기회 및 위협요인을 잘 포착하고 대응하면서 자사에 적합한 전략을 결정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의 사업영역을 전문화할 것인지, 다각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두 가지 전략은 서로 상반되는 장단점을 갖고 있다. 전문화 전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한된 자원을 핵심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핵심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다각화 전략은 전문화 전략에 비해 성장의 규모와 속도를 더욱 크게, 더욱 빨리 하고자 하는 전략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특히 서로 관련이 없는 사업들을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킴으로써 경기 사이클 변화 등으로 인한 리스크 분산을 도모한다. 하지만 다각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제한된 자원의 분산으로 핵심사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도 있다. 조선과 해운의 수직계열화를 추구하다 위기에 빠진 STX 사태에서 보듯이 수직적 계열화 형태의 다각화는 경기 사이클 연동으로 인한 리스크나 계열사 간 의존성 심화로 인한 동반 부실화 리스크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전문화와 다각화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성장 전략 중 유기적 성장과 비유기적 성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성장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은 제품이나 기술, 혹은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통해 기존 핵심사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시장을 확대함으로써 주력 사업에서 성장 동력을 찾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다. 중견기업들은 보통 전문화된 사업 구조에서 유기적 성장 전략을 기본으로 했다. 2014년에 20%가 넘는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면서 주가 400만 원의 신화를 기록한 아모레퍼시픽의 사례를 보면 전문화된 기업이 유기적 성장 전략만으로도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970∼80년대에 과도한 다각화 전략을 추구하다 1990년대 초반에 심각한 경영 위기에 빠졌다. 이후 ‘미와 건강’으로 사업 범위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본원적 사업과 관계가 없는 사업들은 모두 정리했다. 화장품, 녹차, 제약 사업만 남겼다. 이런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계열사 수를 4분의 1로 줄였다. 전문화된 기업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995년에는 ‘미와 건강 분야의 strong brand company’라는 비전 2005를 설정했다.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확보한 자금을 연구개발(R&D) 투자와 브랜드·마케팅 역량 강화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한방화장품과 기능성화장품의 효시격인 설화수, 아이오페 등을 메가 브랜드로 성공시킬 수 있었다.방판 조직과 매장에는 고객 맞춤형 솔루션 제공 기능을 더해 성과를 더욱 높였다. 최근에는 에어쿠션이라는 혁신적 제형의 쿠션 파운데이션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대박을 터트렸다. 중국을 필두로 한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매출과 이익을 급속도로 끌어올렸다. 이처럼 기업 성장 전략의 가장 기본은 핵심사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혁신을 도모해 시장을 확대하는 유기적 성장 전략이다.
하지만 핵심사업이 한계에 부닥쳐서 더 이상 성장 동력을 찾기 힘들거나 빨리 성장하고 싶은 기업들은 M&A나 다각화 같은 비유기적 성장 전략에 의존하기도 한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핵심사업에서 규모를 키우고,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M&A를 활용하는 것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반면 구미계 기업들은 M&A를 가장 중요한 성장전략으로 사용해왔다. M&A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미국 기업의 경우 M&A 이후 기업 가치를 확실히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확률은 평균 30∼4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경을 넘어가는 M&A(cross-border M&A)의 경우 문화적 통합의 어려움까지 겹쳐서 성공 확률이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전 가장 애용했던 신사업 내부 진출(Greenfield investment)을 통한 다각화의 성공 확률은 어떨까. 이는 M&A를 통한 다각화의 성공 확률보다 낮다. 미국의 경우 인접영역으로의 확장 또는 관련형 다각화의 성공 확률이 25% 내외이며 내부 진출 형태의 비관련형 다각화의 성공 확률은 10%도 채 안 된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으로 비관련형 다각화를 해서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 자체가 가진 역량의 힘이라기보다는 1980년대까지 정부의 내수시장 보호 정책 덕분이었다. 정부는 내수시장을 보호해주면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신사업 진출의 최대 적인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또 각종 산업정책, 파격적인 정책금융 등을 제공하며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산업에서는 기업의 독과점을 용인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국내 대기업들이 비관련형 신사업 진출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현실은 이때와는 다르다. 시장은 열렸고, 정부의 보호는 기대하기 어려워졌으며, 지배구조의 변화로 신사업에 대한 전사적 지원도 힘들어졌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M&A 형태가 아닌 신사업 내부 진출, 특히 비관련 분야로의 다각화를 시도할 경우 성공 확률은 상당히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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