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운영 방안

이사회, 싱크탱크냐 장식품이냐 은퇴 CEO 풀 활용하고 역동성을 불어넣어라

161호 (2014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이사회가 생산적인 성과를 낼 수 있으려면 우선 구성이 적절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라면 3∼5, 대기업이라면 7∼9명을 추천한다. 현행법상 상장회사는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하는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외이사 비중이 높다고 해서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1년에 몇 차례만 겉핥기 식으로 회사 상황을 살피는 사외이사보다 충성심과 전문성이 높은 사내이사가 회사의 현황 파악과 경영 감독에 더 꼼꼼할 수 있다. 사외이사를 영입할 때는 전문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은퇴한 CEO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사회 회의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게 하려면 이사들이 자주 만나게 하되 미리 공부하고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사회 안에 분야별 소 그룹을 조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추억의 개그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1980년대에 크게 인기를 끌었던 고() 김형곤 씨의회장님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라는 프로그램이다. 1983년부터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재미있다. 회장님과 이사회 멤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당시 이사회는 꽤나 낭만적이었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도 대부분 회장의 친인척들이다. 회장님이잘돼야 할 텐데라고 말하며 턱을 쓸면 이사들은 잘될 거라며좋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이어 회장님이잘될 턱이 있나라며 턱을 두 번 두드리면 한 이사가 나서서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 한다. 엉터리 이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자극이다.

이사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상법은 이사회가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기업은 법이 인정하는 인간이고, 인간은 그 자체가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독립된 인격에게 주인(owner)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그 자체가 주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최대주주나 기업주를 오너라고 부르므로 이 글에서도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단언컨대 이사회는 오너가 마음먹기에 따라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싱크탱크(think tank)가 될 수도 있고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에 그칠 수도 있다. 선택은 오너에게 달린 셈이다. 기업주가 기업을 건전하게 키우기 위해 이사회를 제대로 활용하면 이사회 제도는 기업이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든든한 시스템이 된다. 그러나 이사와 이사회를 한낱 귀찮은 존재, 법에서 갖추라고 하니 마지못해 갖춰두는 장식품으로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형식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지분이 다양하게 분산돼 오너가 없는 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이런 회사에서는 주주 아닌 경영진이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고 심지어 자신에 대한 보수까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런 회사에서는 이사회 의장 또는 경영자가 왕이며 사외이사의 역할이 특히 중요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너가 없는 금융회사 대부분이 이런 형태를 띤다. 이런 회사의 이사회에 대해서는 이 글이 일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실질적인 대주주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이사회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조직으로서의 이사회: 어떤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

 

이사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회사 내 조직으로서의 이사회다. 다른 하나는 이사회의 회의다. 먼저 조직으로서의 이사회를 보기로 한다.

 

자본금 총액이 10억 원 미만인 회사로 이사가 1명 또는 2명뿐인 회사를 제외하면 주식회사의 이사는 3명 이상이어야 하며 이때 조직으로서의 이사회가 구성된다. 감사는 임원이지만 이사회 멤버가 아니며 이사회에 참석은 해야 하지만 의결권이 없다.

 

 

2012년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에 따르면 한국의 주식회사는 ① ‘이사회 의장+이사+집행임원체제를 가질 수도 있고 ② ‘대표이사+이사체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개정법이 시행되고 2년이 넘었지만번 체제를 가진 회사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에 ㈜방림과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등 2개사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번 체제를 두고 있다.

 

①번 체제와번 체제의 가장 큰 차이는 이사의 집행기능 여부다. 번 체제에서 이사는 감독기능에만 충실하며 집행임원들이 집행을 전담한다. 반대로번 체제에서는 이사들이 감독과 집행을 병행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①번 체제에서 이사회는 의장과 이사들로 구성되며 대표이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사회는 대표집행임원(CEO)과 다른 집행임원(officer)을 다수 임명해서 업무를 집행하게 한다. 이 체제는 사립학교 운영방식과 유사하므로 이와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사립학교에는 재단이사장 및 사회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있어서 정기 또는 부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하지만 학교의 실제 운영은 총장(CEO), 교무처장, 학생처장, 입학처장 등 집행임원들이 상근하면서 맡아 한다. 집행임원들은 이사회에서 임명되고 모두 등기돼야 한다. 이들은 이사와 동일한 책임을 지지만 권한은 이사회에서 위임받은 사항으로 제한된다.

 

이사에게는 업무 집행권한이 없다. 이들은 이사회에 출석만 할 뿐이다. 다만 이사가 집행임원을 겸할 수 있고 이사회 의장도 최고집행임원직을 겸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사도 업무집행을 한다. 최고집행임원에 대해서는 대표이사에 대한 규정이 준용되므로 최고집행임원의 역할은 대표이사의 역할과 거의 같다.

 

정리하자면 회사의 업무 감독은 이사회에 집중하고 업무의 집행은 집행임원이 하도록 하자는 것이 ① ‘이사회 의장+이사+집행임원체제의 취지다. 즉 종래 이사회가 집행기능과 감독기능을 동시에 가짐으로써 발생하는 자기 감독의 모순을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식 이사회다. 미국식 이사회는 감독 기능에 초점을 둔다. 미국에는 본래 감사가 따로 없었고 이사회의 감독 기능이 매우 중요시된다.

 

 

생산적인 활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이사회 구성 방법

● 이사 수를 적정하게 구성하라.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이사회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 은퇴한 CEO를 사외이사 풀로 활용하라. 이들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적극 확보하라.

● 이사회 참석률을 높여라. 각종 수당을 회의 참석에 연동시켜라.

● 공부하는 이사회를 만들어라. 기업 정보를 공개하고 현장 학습을 정례화하라.

● 이사회 안에 전문위원회를 만들어라. 분야별 소그룹을 운영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 지게 하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번 체제를 택하고 있다. 여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존재한다. 우리의 경우 상법을 제정하기 전에 일본 상법을 의용(다른 나라 법령을 그대로 적용함)했는데 당시 일본은 이사가 감독과 집행을 겸하는번 체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법을 그대로 가져온 우리나라도번 체제를 두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이사가 감독과 집행을 모두 맡아 하고 대표이사나 이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2년에 비로소 우리나라 최초의 상법이 제정되면서 미국식 이사회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기업 문화와 관행이 쉽게 바뀔 리 없다. 기업문화는경로의존적(path dependent)’이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 기업들에는 아직도 구법 시대의 제도에 기반을 둔 문화가 남아 있다. “업무집행권은 없고 감독권만 있다고 정한 법규에 따르는 일은 기존에 선임된 이사들에게도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국내 기업의 이사들 대부분은 말단 근로자에서부터 오래 근무하고 꾸준히 승진해서 현재의 지위에 도달했기 때문에 업무에서 떠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이사의 감독기능보다는 업무집행기능에 치중해 온 탓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에는 사내이사가 다수를 이루고 대표이사가 존재하는번 체제가 더 익숙하다.

 

현실에서 양자의 차이는 크지 않다. ① ‘이사회 의장+이사+집행임원체제에서는 집행임원이 사내이사 기능을 하기도 하고 이사 중에 집행임원을 겸직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를 도입하느냐보다 제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이는 이사회 본래의 기능인 감독기능이 충실히 이뤄져 경영진의 전횡이나 배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사회의 구성 문제로 연결된다.

 

 

적정 이사 수를 유지하라

 

이제 이사회의 구체적인 구성으로 들어가 보자. 보통 주식회사의 이사는 3명 이상이어야 한다. 과거에는 이사의 수가 수십 명에 달하는 회사도 더러 있었다. 요즘은 대개 5, 7, 9명 또는 11명으로 구성된다. 이사가 13명 이상인 회사는 매우 드물다.

 

현재 대부분의 상장기업이 사외이사를 포함해 5명에서 11명의 이사를 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3∼5(소규모 상장회사) 또는 7∼9(대규모 상장회사) 선이 가장 적당하다. 숫자가 많으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타격을 입었던 미국 금융회사들은 한결같이 덩치 큰 이사회를 두고 있었다. 1 이사회가 방만하게 운영되는 데는 적정 숫자 이상의 이사들을 두고 있던 탓도 컸다. 이들은 기업의 부실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거나 처리하지 못하고 전 세계적인 위기를 몰고 왔다.

 

한국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2014년 주주총회가 끝난 5월 기준 상장회사 전체의 평균 이사 수는 5.9명이다.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회사의 평균은 7.7, 자산 1000억 원 미만인 회사의 평균은 4.8명이다. 현재 종업원만 30만 명이 넘는 삼성전자도 이사는 9명뿐이다.

 

회사마다 이사의 수를 많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사외이사 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현행 상법상 상장회사는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특히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회사( 146)는 사외이사를 3명 이상 선임해야 하는데 동시에 사외이사가 이사 총수의 과반수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장회사의 경우 자연히 이사의 수가 5인 이상이 된다. 과반수를 맞춰야 하므로 홀수가 좋다. 아울러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회사 등 감사위원회를 반드시 둬야 하는 상장회사는 감사위원이 3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그중 3분의 2 이상을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사외이사 비율이 법률로 정해져 있으므로 전체 이사 수가 늘면 사외이사 수도 자동적으로 증가한다. 사외이사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반기지 않는 오너는 이사 총수 자체를 줄여버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짚고 가야 할 것은 사외이사가 많으면 좋은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우리 법률은 사외이사 수와 관련해 ‘4분의 1 이상또는과반수등으로 규정해서 사외이사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지배구조로 평가하도록 구조화돼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외이사 연봉은 몇 개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00∼3000만 원 정도다. 이사들의 대부분을 사외이사로 채워서 좋은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실제는 어떨까. 우리나라 사외이사들은 1년에 4번 정도만 이사회에 참석해 거마비(車馬費)를 받는 정도의 시간만 투입한다. 2 독립된 사외이사가 주축이 되는 이사회 중심의 책임전문 경영체제를 지향하는 기업으로 인정돼 ‘2004년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국내 한 대기업은 2006년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과 1500억 원을 들여 지배권 전투를 치렀다. “‘지배구조 우수기업의 선정 발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일 것이다라는 연구가설은 채택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3 사외이사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지배구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외이사 비율을 따져서 이 비율이 높다고좋은 기업지배구조상을 주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일이다. 오히려 사외이사 비율을 높이는 것은 그야말로 최저비용을 들여서 전시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외부에서 영입돼 겉핥기식으로 1년에 몇 차례 정도만 회사 상황을 살피는 사외이사보다는 회사에 상주하고 충성심과 전문성이 높은 사내이사가 회사의 현황 파악이나 경영 감독에 더 꼼꼼할 수 있다. 다만 독립성의 문제가 있으므로 법에서 요구하는 만큼의 사외이사를 임명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법이 요구하는 수준보다 사외이사를 많이 선정하거나 이사회의 대부분을 사외이사로 채웠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기업지배구조라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한국적 특수상황, 바람막이 사외이사

 

사외이사(社外理事)는 회사의 경영진에 속하지 않는 이사다. 대주주와 관련 없는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참여하게 해서 대주주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취지의 제도다. ‘비상임이사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조해독립이사(independent director)’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독립성이란 지배주주로부터의 독립성과 업무집행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이와 구별해 사내이사는 업무집행기관으로부터 독립되지 않고 업무집행기관의 지위를 겸하는 사람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사회에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춘 사내이사가 많아야 한다. 따라서 이사회의 과반수를 저비용의 사외이사로 채우게 만든 법률에는 허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대기업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보면구색 맞추기식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상호출자제한 49개 기업집단 238개 상장사의 1분기 보고서를 토대로 사외이사들의 출신 이력을 조사한 결과, 750명의 사외이사 중 36.9% 277명이 관료 출신으로 집계됐다. 4 특히 검찰·법원 등 법조계, 국세청·관세청 등 세무당국,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등 소위 4대 권력기관 출신 인사가 1년 새 165명에서 173명으로 늘었다. 그중에서도 법조 출신 인사가 84명으로 가장 많고 세무 50, 공정위 24, 감사원 15명 순이었다.

 

법이 요구하는 수준보다 사외이사를

많이 선정하거나 이사회의 대부분을

사외이사로 채웠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기업지배구조라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법조 출신 사외이사가 많은 것은 한국적 특수상황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법조인이 경영에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사외이사로 영입된 것은 아닐 것이다. 툭하면 터지는 조사·감독·수사 등 사정(司正) 작업이나 각종 규제 등 공권력 행사로 인한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기업이 방어책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이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주주 일가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차단하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현실에서는 외풍을 막는바람막이로 활용되는 셈이다.

 

혁신적인 산업 분야는 해당 기업 경영진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고 실질적인 조언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사외이사 구성 방식을 바꿔야 한다. “변호사 몇 명을 끼워 구색 맞추기 식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에 손해이며이사회를 적극 활용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로버트 포젠(Robert C. Pozen)의 말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외이사, 전문성을 먼저 봐라

 

사내이사는 입사동기들 중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능력을 인정받아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사외이사는 명성에 의존해 영입된 사람이 많다.

 

한국에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것은 불과 16년 전이다. 따라서 모범적인 관행이나 문화가 확립됐다기보다는 그저 다른 기업들의 현황이나 산업적 분위기 등에 따라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 원래의 취지와 동떨어진 제도로 잘못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외이사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엇갈린다. 사외이사에 대한 부정론은 사외이사를 거수기(擧手機) 또는 고무도장(rubber stamp)으로 본다. 회사가 상정한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가 반대한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 긍정론은 사외이사가 반대하지 않은 데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담당 직원이 사외이사를 방문해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의문을 해소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작 회의에서는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후자가 우리 기업 문화에 좀 더 부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직원이 성의를 가지고 일부러 찾아와 설명하고, 이러한 사전 설명으로 안건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면 회의장에서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는 사전 정지작업 없이 회의장에서 찬반으로 편을 나눠 격돌하는 편을 후진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사외이사가 얼마나 많이, 또는 자주 반대했느냐 보다는 사외이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단순히 반대 건수를 계량화해서 사외이사의 무기능을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사외이사는 물론 잘못된 경영 전략에 대해 적극적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언제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외이사의 요체는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먼저 독립성을 갖춘 이사란 지배주주 입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사를 말한다.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인 기업은 반드시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여기서 추천된 인사를 사외이사로 임명해야 한다. 지배주주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그렇다고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는 지배주주와 무관한, 독립된 인사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 기업문화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 제도 그 자체보다는 운영하는 사람의 의지 문제다. 아무리 이사회 관련 규제 및 제도가 잘 정비돼 있다고 하더라도 오너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사회를 자신의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 특히 국내 대기업에서는 오너가 이사회 의장이면서 대표이사이고 사외이사 추천위원장까지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연이나 혈연으로 얽힌 인사들이 많은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상법과 그 시행령은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상장회사 사외이사의 결격사유를 정황하게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결격사유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법에 따르면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 회계감사 또는 세무대리를 하거나 법률자문이나 경영자문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을 추천할 수 없다.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해당 상장회사 외에 2개 이상의 다른 회사(상장·비상장 불문)의 임원이 될 수 없다. 이 밖에도 상법 제542조의8과 동 시행령 제34조를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법에서 정하는 결격사유에 위배되는 인사를 섭외할 수 있다.

 

다음은 사외이사의 전문성이다. 이사회는 경영진이 마련한 주요 경영 전략을 검토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그 핵심 역할로 한다. 따라서 이사들은 풍부한 기업운영 경험과 전문지식을 가지고 회사의 전략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해당 업종의 큰 줄기뿐 아니라 지엽적인 사항들까지 꿰뚫을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미국 기업의 96%는 다른 회사의 은퇴한 임원들을 사외이사로 활용한다. 영국 기업들도 풍부한 사업 경험과 상업적 배경을 가진 경영인 출신으로 이사회를 구성한다. 투자가나 전문 경영인으로 이사진을 구성한 GE, 포드, 구글, 코카콜라 등을 보자.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직 고위관료, 전직 검사나 판사, 세무공무원, 경영학 교수 등으로 채우는 것과 현저하게 대비된다.

 

주요 기업에서 은퇴한 CEO 출신들을 인재 풀(pool)로 활용하라. 이들보다 경영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운영하는사외이사 인력뱅크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뱅크에는 전현직 기업인, 교수,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기타 경력자 순으로 약 1000명의 전문 후보군이 등록돼 있다. 기업이 원하는 경력, 학력, 성별, 연령, 외국어 능력 등 조건을 제시하면 추천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2∼3배수를 추천해 준다.

 

회의로서의 이사회: 격정적인 토론회가 되려면

 

이사진이 좋다고 반드시 생산적인 이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이사회를 만드는 것은 법률의 규정이나 규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사외이사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그들의 전문성과 식견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일단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이 100%가 되도록 해야 한다. 기본 연봉 외에 회의수당(per-meeting fee) 비중을 높여 사외이사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적도록 해야 한다. 사외이사 직무수행규준을 제정해 활용할 수도 있다.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사외이사가 투입한 시간이나 노력, 책임의 정도 등을 고려해 보수를 달리 하는 것이다.

 

참석한 이사들은 침묵보다 활발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입을 열고 말을 하게 하려면 아는 바가 많아야 한다. 이사는 공부해야 하고 기업은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외이사가 지방 및 해외 사업장을 둘러보고 연수를 받도록 해서 기업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내 인트라넷에 일정 범위에서 접속할 수 있도록 해서 정보의 교류를 원활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경영진은 이사들에게 경영 전략과 현안에 대해 적극 질문하고 논쟁을 유도해야 한다. 이사는 대표이사에게 업무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각 이사는 3개월에 1회 이상 이사회에 업무의 집행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이사들이 자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3개월에 1회 이상 업무 집행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는 이사회는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은 개최돼야 할 것이다. 이사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기 이사회가 연간 6회 이상 개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 좋다. 그 밖에 수시로 임시이사회를 열어 어쩌다 한번 만나 친목을 도모하는신사들의 사교클럽(gentlemen’s club)’이 되지 않도록 한다. 이사회의 연간 일정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서 미리 공지하고 참석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은행연합회가 만든은행 등 사외이사 모범 규준등을 참고해서 업계별 모범 규준을 확립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업무상 책임배상과 관련해 이사책임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이사들의 적극적인 행보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사 수가 많은 회사에서 좀 더 능률적이고 전문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사회 내의 전문위원회다. 의무는 아니지만 보상위원회, 사회공헌위원회 등을 두는 곳도 있다. 자산총액이 2조 원 이상인 상장회사라면 이사회 내에 반드시감사위원회를 둬야 한다. 감사위원회에는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를 1명 이상 둬야 한다. 이처럼 분야별로 전문성 있는 소그룹을 운용하는 것은 전체 이사회가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기업에 공통적인 최선의 지배구조는 없다

 

나라마다 기업 환경이 다르고 기업마다 처지가 다르다. 기업이 스스로에게 최선인 지배구조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지배구조의 선택도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잘못된 지배구조를 택하면 경쟁력이 약해지고 기업은 도태될 것이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정부가 사기업의 지배구조까지 정해줄 의무는 없다. 그저 가이드라인 정도만 제시하고 어떤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는지 공시를 철저하게 하도록 해서 투자자들이 자세하게 알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사외이사 비율을 의무화할 것이 아니라 사외이사를 임명하게 하되 임명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유럽식 ‘comply or explain’ 방식이 타당할 것이다.

 

상장 대기업의 대주주도 인지해야 할 점이 있다. 상장 대기업쯤 되면 기업의 대주주는 그 기업이 여전히 개인의 소유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본래 법인(法人)은 그 스스로가 주인이다. 시장의 엄중함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고든 스미스 교수5 시장의 힘이 기업 의사를 결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시장은 기업의 행동과 심지어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결정할 수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sskku@hanmail.net

필자는 성균관대 법과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독일 Marburg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기업법학회, 한국상사법학회, 한국국제거래법학회, 한국해법학회의 각 회장, 법무부 상법(회사법)개정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상장회사협의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대표 저서로 <회사법> <상법총칙상행위법> <어음수표법> <보험해상항공운송법> <국제거래법>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7호 New Look at Gen X 2022년 06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