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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정책과 효과

주주권리 강화정책의 逆說 , 왜 일어날까?

김현종 | 161호 (2014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전략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당시 법 체계는 주주권 보호와 거리가 멀었다. 대주주들이 지배권을 유지하면서도 자본을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시기 독일 기업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명확히 분리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반면 나치정권에서 추진한 법 개정 이후 주주권을 강화하는 조항들이 대거 늘어났지만 오히려 이때 독일 기업들의 소유권은 지배주주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다. 스웨덴이나 캐나다, 스위스 등의 사례도 단순히 주주권을 강화하는 조항만으로는 소유와 경영 분리를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보다는 정부의 영향력을 줄이고 시장을 글로벌화해서 정책적 투명성을 확보하며 시장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를 논할 때 특징은 일반적인 기업보다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중심으로 언급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 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다 지배주주 경영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모두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다. 한편으로는 소유-지배 간 괴리도가 높으며 최근에는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시킬 정도로 순환출자가 증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단편적인 사례만으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판단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대규모 기업집단의 소유-출자구조가 어떻게, 그리고 왜 형성됐는지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일률적으로 주주권 보호를 주장하기에 앞서 세계 각국의 소유구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 과정에서 주주권 보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파악해야 소유지배구조와 주주권 보호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논의할 수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의 소유출자구조가 발전해 온 경로와 그 원인을 살펴보고 선진국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주주권 보호와 경영권 보호가 갖는 지배구조상의 의미를 검토하고자 한다.

 

기업집단 소유출자구조의 변화 추이

사업다각화와 출자구조의 변화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소유-경영분리는 사업다각화에 따른 출자구조의 변화에 원인이 있다. 선진국의 경우 기업의 성장재원을 외부에서 조달하기 위해 외부 주주들을 끌어들이고 이 과정에서 가족의 소유권이 점차 약해졌던 반면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의 지불보증 및 보조에 힘입어 외자를 유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외부 주주 유치의 필요성이 낮았고 따라서 가족소유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기업들은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보다는 차입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여 왔다. 이와 함께 인수합병의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유지됐기 때문에 계열사를 상장하더라도 지배주주들이 안심하고 소유지분을 일정 수준 이하로 줄이는 일이 가능했다.

 

1970년대 말부터 기업집단에서는 지배주주의 소유지분보다 계열사의 소유지분이 더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런 현상은 기업집단의 규모별로 차이가 있었다. 기업집단 규모에 따라 지배주주의 소유구조 및 계열사의 출자구조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은 기업집단의 사업다각화와 관련이 있다. 대기업이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 출자 여력이 있는 계열사가 새로운 계열사의 지분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사업다각화가 진행될수록 계열사의 지분이 증가한다. 반대로 신규 사업을 위해 새로운 계열사가 기업집단 안으로 편입되면 지배주주가 보유하고 있던 소유지분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이런 사실은 계열사의 출자지분과 진출업종 수 사이의 관계를 1970년대와 1990년대에 대해 횡단면으로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5대 그룹은 1970년대에 이미 지배주주의 지분과 계열사 간 지분 사이에 차이를 보였다. 이하 그룹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면 5대 그룹뿐 아니라 이하 그룹에서도 지배주주들의 소유권이 약해지고 계열사 지분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점점 확대되면서 30대 기업집단에서도 사업다각화에 따른 소유구조와 출자구조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고 5대 그룹이 사업다각화에 성공하며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자 기업집단의 사업다각화에 대해문어발식 다각화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90년대에는 기업집단에 대한 주요 공정거래정책이업종전문화라는 목표에 맞춰졌다.

 

 

 

순환출자 형성과 경영권 보호

1986년 공정거래법 제1차 개정에서 30대 기업집단의 계열사에 대해 상호출자가 전면 금지됐다. 공정거래법 제1차 개정 당시 이미 상법 제342조의2에서는 한 계열사(A)가 다른 계열사(B) 지분의 40%를 초과해서 보유하면 그 다른 계열사(B)는 출자한 회사(A)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상법 제369조 제3항은 한 계열사(A)가 다른 계열사(B) 지분의 10%를 초과해서 보유하면 그 다른 계열사(B)가 가진 출자회사(A)의 주식에는 의결권이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즉 심각한 수준의 상호출자는 이미 모든 기업에 대해 금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는 1990년 말까지 2년 안에 그룹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낮춰야 했고 이를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계열사의 유상증자와 자산재평가로 그룹 내 자금력 있는 기업들의 계열사 출자(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순환출자로 연결됐다. 다시 말해 순환출자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순환출자가 확대된 또 하나의 원인은 기업인수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수조 원에 이르는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계열사들이 동원됐고 이 부담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순환출자가 형성됐다. 부실기업을 사들이거나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순환출자를 형성한 사례로는 1998년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아자동차 인수, 2001년 두산그룹의 한국중공업 인수, 2002년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 등이 있다.

 

기업집단은 위기 시 계열사 간 출자를 늘려 경영권을 보호하려 한다. 경영권 보호를 위한 출자구조의 변화는 일본에서도 나타났던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군정 SCAP(연합군 최고 사령관)는 일본 자이바츠(재벌)가 전시 동안 일본 육군본부에 전쟁 물자를 지원했다고 인식해서 전범으로 보고 일본 자이바츠의 상호출자를 해체하게 했다. 자이바츠의 해체로 주식시장이 혼란에 빠졌고 기업 지배권 시장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나타났다. 해체된 계열사들은 그룹 차원에서 과거 계열사였던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때 백기사(white knight)1 와 백지주(white squire)2 의 역할을 자처하며 지원했다. 이때 활용된 경영권 방어 방식은 1947년 독점금지법을 회피하기 위해 과거 계열사들이 일정 소규모 지분을 소유하는 형태였다.3  1950년대의 계열방어는 주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처럼 오랜 전통을 지닌 기존 자이바츠 소속 계열사 간에 이뤄졌으나 1960년대에는 고객기업을 적대적 인수합병에서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계열화가 진행됐다. 한편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 붕괴 후 채무불이행으로 경영권이 외국기업으로 넘어간 대규모 기업들이 증가하자 대규모 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순환출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도요타그룹의 순환출자가 발달한 것도 버블경제 붕괴 후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였다.

 

주주권 보호와 경영권 방어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들의 출자구조는 사업다각화로 점점 복잡해졌고 지배주주 가족의 지분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그룹 계열사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됐다.

 

이렇게 출자구조가 변화한 것을 두고 주주권에 대한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출자구조가 활용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주주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기업출자구조를 항상 분산시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미성숙 상태에서 주주권 보호를 강조하면 오히려 결과적으로 역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주권 보호의 중요성 대두

지배구조에서 주주권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은 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사항이다. 특히 학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연구는 하버드대의 Rafael La Porta 교수, Florencio Lopez-de-Silanes 교수, Andrei Shlifer 교수와 시카고대의 Robert Vishny 교수(이하 LLSV)가 한 연구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27개 선진국의 대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소유구조를 분석한 결과, 주주보호가 적절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즉 주주보호가 과하거나 부족한 국가에서는 소유가 집중된 기업이 많았다. 소유가 집중된 기업은 대개 가족이나 정부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런 형태의 지배구조를 가진 지배주주는 피라미드와 경영참여를 통해 현금흐름권 이상의 지배력을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권 보호제도 역할에 대한 역사적 반증

LLSV는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주주권을 보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왔지만 실제 다양한 국가들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면 주주권 보호제도가 전혀 확립되지 않았거나 주주권 보호가 허울만 있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는데도 오히려 기업지배구조는 발전한 국가가 적지 않다.

 

하버드법대의 Mark Roe 교수는 소액주주 보호제도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Roe는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 사회민주주의가 확산되기 이전인 1차대전 전까지 주식시장이 상대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었으며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논의와 관련해 독일, 스웨덴, 캐나다 및 이탈리아의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Roe의 주장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회사법과 주주법은 주주권 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이마르공화국은 대주주 가족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 위협을 막고 자본시장을 통한 재원조달이 용이해지도록 제도를 개정했는데 다수 의결권 주식(multiple-vote shares), 예비주(depot share)와 우선주, 의결권 상한제 등이 이때 도입됐다. 이런 제도들은 당시 대주주들이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이 됐다. 이를 통해 지배가족들은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자본시장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유형의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책은 주주권을 약화시키는 조치였는데도 이 시기 동안 독일 기업에서는 소유-경영의 분리가 강하게 확립되는 모습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반면 나치정권이 추진했던 1937년 주주법 개정 내용을 보면 주주권을 강화하는 사항들이 포함돼 있다. 나치정권은 1937년 주주법 개정을 통해 다수 의결권 주식제도를 폐지하고 예비주도 폐지했다. 또한 우선주 소유자의 피해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우선주를 전체 기업 주식자본의 50% 이하로 한정하되 의결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은 유지하도록 했다. 우선주에 대한 배당을 1년 이상 늦게 지불하면 의결권을 회복하도록 규정했다. 1937년 주주법 개정에서는 주식회사의 공시제도를 강화하기도 했다. 즉 나치정권하의 개정에서는 주주들의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그러나 나치정권 이후 독일 주식회사는 상장폐지와 유한회사로의 전환을 통해 그 수가 절반 이하 수준으로 감소하는 변화가 나타났으며 기업의 소유구조는 집중화됐다.

 

스웨덴의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자. 스웨덴 기업들이 집중화된 기업지배구조를 갖지 않는 것은 정치적 배경의 영향이 크다. 사회민주당 정부가 차등의결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지배주주가 지분을 완전히 소유하는 소유 집중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에 대해 스웨덴 지배구조 연구자인 HO는 주주권의 보호보다 정치적 지원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소유지배 괴리라는 것은 주주권 보호가 약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괴리를 정부가 지원해주고 대신 노동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환경에서 나타난다는 의미다. Dyck Zingales에 따르면 스웨덴 기업들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소액주주 보호가 강한 영미국가와 동일한 수준인데 이는 소유 집중과 경영권 프리미엄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사례는 주주권 보호제도와 피라미드 기업집단의 확장 사이에 관련이 낮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캐나다에는 1910년까지 연방정부 차원의 회사법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1910년에 제정된 회사법은 2년마다 주주총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1917년 회사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매년 주주총회 개최 의무규정을 포함했으나 여전히 소액주주의 권리보호나 임원의 신뢰의무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이해상충의 문제 역시 법원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주주들은 법률상 기업 장부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갖지 못했다. 이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서는 1920년대에 일반 주주들의 주식소유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에 상장회사 주주들의 권한을 보호하는 조항이 증가했으나 캐나다 정부는 그런 조항들이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캐나다 공시제도는 미약했으며 내부자 간 거래가 합법적일 정도였다. 캐나다의 지배구조 연구자인 Randall Morck 교수는 1950년대 캐나다 주식시장을 1920년대 미국 수준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0년부터 1950년까지 캐나다의 자본시장은 착실하게 성장했으며 기업들의 재원조달 기능을 수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명백한 사실은 이 기간 동안 캐나다의 가족지배형 피라미드 기업집단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미국의 압력으로 1960년대부터 주주권 보호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한다. 온타리오 주 정부는 온타리오 증권위원회를 발족해서 기준 공시를 강제하고 내부거래를 중지하도록 규정했다. 캐나다 정부는 주주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Canada Business Corporations Act에 차별보상제도(oppression remedy)를 포함시켰는데 이는 소액주주가 대주주 등 내부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제도였다. 이 제도는 전문경영자가 아닌 실제 지배력을 가진 대주주를 겨냥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에게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후 1990년대에는 비록 미국의 공시제도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이전보다 강력한 주주권 보호를 위한 개혁이 추진됐다. 이처럼 캐나다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주주권 보호를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 캐나다에서는 가족지배형 피라미드 기업집단의 비중이 더 증가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탈리아 사례 역시 주주권 보호와 소유구조 사이에 관련성이 낮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1942년부터 1973년까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이 초기에 도입한 상장회사와 금융시장 관련법은 주주권을 보호하는 제도였다. 은행법, 시민법과 상법, 파산법 등이 그런 제도였는데 이런 제도가 마련되면서 주주에 대한 기업의 업무수행 연간보고서 작성 의무가 생겼다. 또한 상호주식 보유를 억제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지배하에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주회사가 소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 즉 법제도의 개정방향만 놓고 보면 파시스트 정권은 주주권 보호를 강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파시스트 정부는 자본시장 역할을 제한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실질적인 주주권 보호는 없었으며 오히려 주주권 약화와 현저한 소유 집중 현상이 나타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다양한 국가들의 역사적 사례들을 보면

주주권 보호제도가 전혀 확립되지 않았거나

허울만 있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는데도 오히려

기업지배구조는 발전한 국가가 적지 않다.

 

 

 

주주권 보호의 의미와 글로벌화의 중요성

주주권 보호의 역사적 의미

 

주주권의 보호가 곧 소유분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영국의 소유분산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20세기 영국 기업의 소유분산 과정은 지배가족의 지분이 매각되면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20세기 들어 급증한 기업 인수 활동으로 나타난 결과다. 기업인수를 위해 재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주식을 발행하면서 지분이 희석된 것이다. 영국 기업은 적극적인 기업 인수합병 활동을 위해 주식을 발행하면서도 피라미드를 형성하지 않은 채 성장하는 과정을 밟았다. 주목할 점은 이런 과정이 강력한 규제나 주주보호 장치가 없는 당시의 영국 자본시장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영미국가처럼 금융자본가와 금융기관이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국가와 달리 그렇지 못한 국가에서는 주주권의 보호제도 확립보다는 정부의 자유시장주의 채택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보다 중요한 사항이다. 자유시장주의에서 벗어나 정부가 규제와 법제도를 통해 기업 활동에 적극 개입하면 해당 국가 경제사회 안에는 규제로 인한 벽을 틈타 이익을 내려고 하는 지대추구(rent-seeking)4 행위가 증가한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 이런 규제를 우회할 수 있거나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업들이 로비활동 등으로 혜택을 얻을 수 있으므로 대정부 로비 능력을 가진 사업가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기업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정부 권력을 설득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또한 가족지배 기업일수록 대대로 장기에 걸쳐 정부 관료들을 포섭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보호를 지속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권력 집중이 심화되면 자본가들은 금융시장에 투자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거대한 피라미드 기업집단을 운영하거나 여기에 투자하려는 유인을 가진다.

 

그러므로 자본시장이 발달한 국가가 아니라면 소유분산을 위해서는 주주권의 보호보다는 정부 개입 성향의 감소와 자유시장 원칙의 수용이 더 중요하다. 자유시장 정책에 따라 자본시장 자체가 성장하고 활성화하면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을 신뢰하고 소유분산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기업지배구조와 글로벌화

 

자유시장 경제정책과 더불어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중요한 또 다른 요인은 글로벌화다. 기업소유구조에 대한 글로벌화의 영향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캐나다 사례다. 1968년 집권한 캐나다의 Trudeau 수상은 당시 미국 소유의 자국 기업이 증가하자 국유기업 육성 등 국수주의적 정책을 다양하게 추진했다. 그중 하나로 외국의 기업 인수에서 캐나다 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1971 CDC(Canada Development Corporate)를 창립했다. CDC는 외국의 적대적 기업인수에 대항하는 백기사 역할을 수행했다. Trudeau 수상은 1973년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을 조사하기 위한 기구로 FIRA(Foreign Investment Review Agency)를 설립하기도 했다. FIRA는 에너지산업 분야의 기업인수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Trideau 수상이 추진한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 방지 정책들로 캐나다 기업들은 외국에 매각되기보다는 정부 소유의 기업집단이나 자국의 민간기업들에 팔렸다. 이런 과정에서 가족지배형 피라미드 기업집단이 거대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1970년대 캐나다와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했던 국가가 스위스다. 스위스는 의결권 상한(ceiling for voting rights) 제도 등 경영권 방어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다. 이로 인해 소유집중도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다 1970년대 스위스는 금융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는데 이로 인해 기업지배구조상 변화가 나타났다. 스위스는 시장자본화 비율이 높은 국가로 거의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외국인의 투자가 늘면서 시장자본화가 확대된 경우이기 때문에 외국인 주주들의 도전에 쉽게 노출됐다. 스위스의 대표기업 네슬레의 소유권이 다양하게 분산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외국인 주주들의 소유권 확대가 가속화하면서 스위스 기업의 주식구조에 변화가 나타났다. 스위스에서 차등의결권이 없는 단일 주식(single share) 체제를 가진 기업은 1989년만 해도 스위스 주식시장의 13.1%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인 주주들의 도전이 지속되면서 단일 주식 체제를 갖춘 기업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고 2001년에 이르러서는 70.7%에 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론적으로 스위스 기업들은 주식시장의 평가와 기관투자가들의 비판에 민감해졌으며 이로 인해 주주가치를 한층 향상시킬 수 있었다.

 

 

시사점

 

위에 서술한 것처럼 주주권 강화를 위한 입법은 실제로는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입법화 과정은 포퓰리즘적 요소를 통해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를 제한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사례도 있었다. 즉 역사적 사례들은 주주권 보호 조항의 신설이나 강화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이념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주권 강화제도가 도입돼도 정부가 전체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 정책 목표를 갖고 있으면 자본시장의 발전이나 주주권 강화는 이뤄지기 어렵다. 신설된 법제도가 자본시장에 대한 전시용에 불과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목표와 결과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장 또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성향이 상당히 감소했으나 여전히 크고 작은 기업 활동에 간섭할 수 있거나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을 갖고 있다. 정부 개입이 축소돼야 자본시장의 자생적 기능이 살아나 주주권 보호제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캐나다 사례와 같이 국수주의적 보호체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잃게 만든다. 이래서는 외국 주주들의 공세를 견뎌내기 어렵다. 스위스처럼 외국 기업에 대한 제한을 완화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배구조상 경쟁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 적극적이며 더 많은 투자자들이 참여할수록 자본시장은 기업지배구조를 개선시키는 역할을 자생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 kim@keri.org

필자는 미 텍사스대(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부연구위원을 지냈고 현재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기업지배구조, 산업조직, 경쟁정책 및 기업재무다. 저서에 <한국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역사적 영향 요인 고찰 및 시사점> <순환출자구조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경영효율성에 대한 영향요인 분석-기업집단 내부통제구조를 중심으로> <계열사 출자 및 실물투자관계에 대한 실증연구> <기업성과에 대한 소유지배구조의 영향분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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