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종합
흔히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란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벤처기업 창업을 떠올린다.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단어도 대개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조스 등 천재적이고 비범한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생각은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대단히 편협한 관점이다. 기업가정신은 규모나 유형에 상관없이 어떤 조직에서나 발현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정신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기업가정신 분야 석학인 하워드 스티븐슨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나 역량에 구애되지 않고 혁신과 변화에 필요한 자원을 결집해 기회를 포착하고 추구해 나가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단지 벤처 창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규모에 상관없이 어떤 기업에나 적용될 수 있고, 심지어 정부 같은 비영리조직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이다. 이 중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은 기성 기업 안에서 벌어지는 기업가적 행동을 가리키는 용어다. 사내 기업가정신과 관련된 개념 정의에 대해 방대한 문헌 연구를 수행했던 Sharma & Chrisman(1999)은 사내 기업가정신을 ‘기존 기업에 소속된 개인이나 소집단이 기존 기업 내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 전체를 쇄신하고 혁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프로세스’라고 정의했다.
창업 기업가 vs. 사내 기업가
기업가정신이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가정신에 대해 일반인들이 막연하게 갖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사내 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이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흔히 기업가정신, 기업가라는 단어 뒤에는 ‘위험 감수’ ‘도전정신’ 등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탓이다.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고 일하는 샐러리맨들이 과연 새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려고 할까? 그렇게 의욕이 넘쳐 난다면 진작에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본인이 창업을 하지 왜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할까? 설령 대기업에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조직원들이 있다고 한들, 과연 조직에서 이들을 ‘진심으로’ 반길까? 가능한 위험을 최소화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는 게 중요한 대기업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조직원들은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 기업가(start-up entrepreneur)와 사내 기업가(corporate entrepreneur)의 차이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Morris et al(2011)은 창업 기업가와 사내 기업가의 차이는 위기와 보상 측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창업 기업가는 재무, 기업 운영, 법적 책임 등 회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 모든 리스크를 기업가 본인이 감수하는 대신 위험에 따른 보상이 크다.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다. 신생 벤처의 경우 창업자가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다 월급뿐 아니라 배당금, 특허사용료 등 수입원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내 기업가는 모험적인 아이디어를 사내에서 실행하다 실패할 경우 감봉, 승진상 불이익, 심한 경우 면직이나 해고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창업 기업가처럼 모든 손실 책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떠안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성공에 대한 보상의 한계도 명확하다. 승진이나 급여 인상, 포상금 정도가 거의 전부로 자신의 혁신적 아이디어 성과 대부분은 회사로 귀속된다.
창업 기업가는 사내 기업가보다 외부 환경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도 다르다. 규제의 변화, 경기 불황 등 외부 환경 변화에 좌우되는 건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신생 기업의 경우 여파가 훨씬 크다. 재무 안정성은 물론 영업망, R&D, 생산시설, 물류체계 등 전반적인 사업 인프라 측면에서 기성 기업에 비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생 벤처의 경우 단 한 사람의 실책, 단 한 번의 실수로도 회사가 존폐 기로에 처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반면, 사내 기업가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조직 내 저항, 혹은 무관심이라는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한다.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에는 위계질서가 생겨나고 조직 내 이해관계도 점점 복잡다단해진다. 이는 곧 무슨 일을 진행하든 여러 단계에 걸쳐 승인이 필요하며 싫든 좋든 다른 부서와 협력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성 조직에는 언제나 변화를 싫어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사내 기업가는 조직 전반에 걸쳐 도전 정신이 충만한 신생 벤처 기업에서라면 발생하지 않을 조직 내부 갈등 상황에 처해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사내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이유
회사가 성장할수록 기업은 최대한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직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 문화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행정관리상 필요한 일련의 규칙이 시행되며 중간 관리감독을 위한 위계질서가 자리를 잡게 된다. 업무는 정해진 계획에 따라 수행되고 표준화된 프로세스에 따라 조정 활동이 이뤄진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핵심 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일들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관료주의가 자리잡게 되고, 그 결과 기업가적 열정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애초에 기업을 번창케 했던 기업가정신이 회사가 성장하게 되면서 되레 침체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 기업의 자연스런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모순이다. 이런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 바로 사내 기업가정신이다.
Burgelman(1983)은 기업의 전략 수립 프로세스와 연관 지어 사내 기업가정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설명한 바 있다. 즉, 기업에서 전략을 수립하는 프로세스는 크게 유도된 전략(induced strategy)과 자율적 전략(autonomous strategy)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그림 1> 하단은 유도된 전략 프로세스가 이뤄지는 과정을 나타낸다. 즉, 기업 전략 개념(concept of corporate strategy)에 의해 유도된 전략적 행동(induced strategic behavior)이 구조적 맥락(structural context, 조직구조, 계획 및 통제 시스템, 자원 배분 규칙, 성과측정 및 보상시스템 등)을 통해 강화돼 나간다. 반면 <그림 1> 상단의 자율적 전략 프로세스는 회사의 전략 개념과 무관하게 자율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 이른바 사내 기업가의 존재를 보여준다. 이들은 자원과 역량을 새롭게 조합하는 자율적인 전략적 행동(autonomous strategic behavior)을 통해 기존 핵심사업과는 다른 신규 사업을 창출해낸다. 이러한 자율적인 전략 프로젝트는 구조적 맥락과는 전혀 다른 전략적 맥락(strategic context)에 의해 평가되고 선택돼 기업의 전략으로 연결된다.
버겔만 교수는 규모가 큰 다각화 기업의 생존에 필수 요소인 다양성(diversity)은 바로 이 두 가지 전략 수립 프로세스 가운데 상단 루프(사내 기업가정신), 즉 기업가적 활동(entrepreneurial avitivites)을 통해 구현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프로세스(유도된 전략 vs. 자율적 전략) 간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전략 경영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도된 전략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질서(order)와 자율적 전략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다양성(diversity)이 양자간 균형을 이룰 때 규모가 큰 다각화 기업이 지속적 성장을 구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내 기업가정신이 기업의 유기적 성장이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모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답이 되는 이유다.
1) 생태계형(Ecosystem Venturing)기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공급업체, 물류업체, 보완재 생산업체 등 관련 생태계 구성 기업들에 투자하는 형태다. 인텔캐피털이 대표적 예다. 생태계 유형은 기존 사업의 성공이 보완 사업과 관련된 공동체의 활성화에 달려 있고,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업들이 일반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 지원 수혜를 받지 못할 정도로 매우 초기 단계일 때 특히 유용하다. 이 유형을 택할 경우, 지나치게 다양한 곳에 투자하거나 지나친 자율성을 추구할 위험에 빠지기 쉽다.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투자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하며 재무적 수익과 전략적 이점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2) 혁신형(Innovation Venturing) R&D처럼 전통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벤처캐피털 기법을 활용하는 경우다. 즉, 조직 내 별도의 부서를 만든 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조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며, 여러 프로젝트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고, 프로제트 추진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각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는 식이다. 로열더치셸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 프로그램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현실화하기 쉽진 않지만 성공할 경우 셸의 사업에 막대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다. 게임체인저팀은 선택된 아이디어에 대해 실제 사업화를 위해 필요한 기술 예산의 10%를 지원한다. 혁신형 모델은 잠재적으로 기업 안에 기업가적 에너지는 존재하지만 혁신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기존 기능부서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될 때 적용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3) 추수형(Harvest Venturing)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채 남아도는 여분의 자원을 상업화해 궁극적으로 (매각이나 라이선싱 등을 통해) 현금을 창출하려는 게 주 목적이다. 루슨트(Lucent)가 벨연구소(Bell Labs)에서 나온 기술 및 지식재산 가운데 당장 사업부에서 활용되고 있지 않은 미활용 자산을 상업화해 가치를 창출할 목적으로 1997년 세운 NVG(New Ventures Group, 2001년 영국계 사모펀드에 매각)를 추수형 모델로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추수할 거리, 즉 기술, 지식재산, 고정자산 등 미활용 자산이 있을 때 적용 가능하다.
4) 사모투자형(Private Equity Venturing)독립적인 벤처캐피털처럼 신생 기업에 투자하는 유형이다. 투자의 가장 큰 목적은 재무적 이득이다. 기존 사업부서의 역량을 강화한다거나 새로운 성장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목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GE에쿼티가 대표적 예다. 이 유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 업체를 발굴하고 선별해 내는 데 있어서 전문적인 사모투자 회사나 벤처캐피털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 있는 능력과 네트워크가 필수다.
※ 참고: Campbell et al(2003)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