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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분쟁 대응 전략

기술+법리+경제성, 다 따져봐라 때론 협상이 최고의 이익이다

김정중 | 125호 (2013년 3월 Issue 2)

 

 

A라는 특허권자가 자사의 특허를 B가 침해했다며 항의 문건을 보내왔다. 특허 분쟁에 맞닥뜨린 B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장 변호사를 고용해 팀을 꾸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까? 물론 소송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일단 상황 파악이다. 기술적 이슈뿐 아니라 법률적 이슈들까지 면밀히 따져 과연 A가 주장하는 것처럼 문제가 되는 사안인지 여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소송까지 갔을 때 법원이 최종적으로 내릴 판결에 대해 예상하는 것이다. 물론 향후 분쟁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이슈가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 승산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송을 진행하게 될 경우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안고 상황에 대처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반드시 사전 승산 분석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비즈니스 영향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당장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여러 시나리오를 적용해 예측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성 분석도 따라야 한다. 설령 소송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송을 치르면서 소요될 비용 등을 고려해 전략을 짜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건 승산 분석과 비즈니스 영향 분석, 경제성 분석을 모두 마친 후다.

 

사전 분석

1. 승산 분석

특허협상은 일반 비즈니스 협상과 달리 기술을 다룬다. 따라서 특허분쟁 발생 시 승산을 분석할 때에도 기술 측면에서 면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 측면의 분석이란 쉽게 말해 특허 청구항(claim)을 분석하는 것이다. 우선, ① 특허 청구범위를 명확하게 해석하고 청구 범위의 한정적 요소 및 인용 문헌과의 관계를 분석해 권리 범위를 파악해야 하며, ② 위 권리 범위를 바탕으로 자사 제품에 대해 특허침해 여부를 분석하고, ③ 해당 특허의 무효성을 검토함으로써 특허분쟁에서 승산을 예측해야 한다.

 

특히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는구성요소 완비의 법칙(all elements rule)’에 따라 사실 여부를 따져본다. , 특허기술이 A+B+C라는 구성요소로 이뤄져 있을 때 특허침해가 성립되려면 A, B, C 세 가지 구성요소가모두포함돼 있어야 하므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구성요소를 해석할 때 국가별로 어떤 원칙을 따르고 있는지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함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언적 침해(literal infringement) 원칙에 따라 구성요소를 곧이곧대로 해석해 A A'는 서로 다른 것이라 보는지, 혹은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적 침해 원칙에 따라 A A'를 비슷한 것으로 판단하는지 등에 대해 각국의 판례가 어떠한지를 분석해 소송에서의 승산을 예측해야 한다.

 

기술 이슈 못지 않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법률 이슈다. 특허분쟁 발생 시 기업의 특허 부서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기술 이슈만 신경 쓰고 법률 관련 이슈는 소홀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특허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의외의 월척은 법률 이슈 분석을 통해 낚을 수 있다. 너무 기본적인 사항이라 미처 신경 쓰지 않았던 곳에서 특허권자가 의외로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특허 연차료 미납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허권자가 특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허를 등록한 나라에 일정 금액을 연차료로 납부해야 한다. 이는 특허 관리의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관리하는 특허 수가 많고 전 세계 여러 나라에 특허를 등록했을 경우 간혹 연차료 납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마치 일반인들이 깜빡 잊고 공과금이나 범칙금을 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과 비슷하다. 황당한 것은 자신이 연차료를 미납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다른 기업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싶지만 현실에선 종종 발생한다. 특허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기술 이슈만 파고들 게 아니라 법률 이슈 역시 기초 조사부터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 이런 조사를 통해 허점이 많이 발견되는 경우라면 분쟁 발생 시 승률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법률 이슈 분석을 통해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특허소진(patent exhaustion) 논리를 증명해 내는 대안도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A B라는 부품업체와 자사의 특허기술(: LED) 실시권을 허락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고 치자. B는 라이선싱 계약을 토대로 부품(: 디스플레이)을 만들어 C라는 업체에 공급했고, C는 이를 사용해 완제품(: TV)을 만들어 시장에 판매했다. 이 때 A CA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특허소진 논리에 따른다면 C A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A의 특허권은 B에 라이선스되면서 그 권리가 다 소진됐기 때문이다. , B A로부터 실시권을 합법적으로 얻어 자유롭게 부품을 만들 수 있게 됐고, 그런 B로부터 부품을 얻어 쓴 C A에 추가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게 특허소진 논리다. 따라서 A 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 만약 C가 이러한 사실 관계를 입증해 낼 수 있다면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문제는 라이선스 계약이 기업 간 극도의 비밀 유지 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거의 언론 보도나 여러 가지 정황상 A B 간에 라이선스 계약이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면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야 한다.

 

2. 비즈니스 영향 분석

승산 분석 외에 분쟁으로 인해 벌어질 자사 비즈니스에 대한 영향 또한 분석해야 한다.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를 문제 삼을 경우 협상 단계에서 당장은 비즈니스에 큰 영향이 없으리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소송 단계로 발전하기 이전부터 자사(침해자) 제품을 구입하는 구매자(buyer)가 특허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구매를 중단해 타격을 입는 사례가 많다. 또 특허권자가 가처분 신청,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 세관 조치(border detention) 등의 긴급 구제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통관이 금지되면 비즈니스에 큰 타격을 입는다.

 

완제품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특허침해 소송에 휘말리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 때문에 부품업체는 종종 완제품 업체에 특허 침해 발생 시 소송 관련 제반 비용 일체를 부담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각 사 비즈니스 상황에 따라 여러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을 잘 분석해 비즈니스에 끼칠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즈니스에 압박을 느끼면 특허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3. 경제성 분석

마지막으로 경제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분쟁에 소요되는 비용과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고 특허권자가 요구하는 특허료가 자사의 제품 원가 및 사업 손익에 미치는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A라는 특허권자가 B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치자. 하지만 B는 자사 기술이 A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심지어 A의 특허권을 무효화할 근거 자료까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소송으로 치닫는다 해도 소송에서 99.9% 이길 자신이 있다. 그렇더라도 B는 무작정 소송에 들어가선 안 된다. 만약 소송에 들어갈 비용이 최소 200만 달러인데 A 100만 달러의 로열티만 주면 문제삼지 않겠다고 나선다면 승소할 확률이 높더라도 합의를 택하는 게 낫다. 비즈니스에서 어줍잖은 자존심이나 오기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설령 분명히 내가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쟁에 소요되는 총비용을 분석해야 한다.

 

전략에 따라 분쟁에 대응하고 있더라도 경제성 측면을 고려해 소송 중에라도 합의할 여지를 남겨두는 게 현명하다. 특히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고도 비교적 적은 대가를 요구하는 특허 괴물과의 싸움에서라면 소송에서 이길 승산이 크다 하더라도 일정 수준에서 합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승산이 높다고 무조건 법정으로 사건을 가져가는 것은 기업 경영 측면에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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