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직관

발상의 전환 부른 ‘전략적 직관’ 흉내 못 낼 혁신으로 위기를 넘어라

124호 (2013년 3월 Issue 1)

 

 

“직원들은 평가하는 대로 움직이게 마련이야, 시작도 끝도 평가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필자가 1990년 말 포항제철 경영진단보고를 마치자마자 나온 박태준 회장의 첫마디였다. 당시 용역을 맡아 부탁받은 보고서를 만들기는 했지만 평가 시스템이 전략 수립이나 마케팅 활동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배우지도 않은 터였다. 이후 수차례 기업 자문을 하면서 최고경영자들은 공통적으로평가를 키워드로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고경영자들은 왜 그렇게 평가 시스템을 중요시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다시 몇 년이 걸렸다. 1996년 발간된 제프리 페퍼 교수의 Through People>1 은 그래서 더 흥미롭게 와 닿았고 이를 토대로 필자가 <팀업적 평가>2 라는 실무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누구나 뜻밖의 기회를 새로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전략적 시점과 장소를 갖는다. 그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전략적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은 본인의 몫일 것이다.

 

기업의 경영전략과 사업가의 전략경영

흔히 전략서의 고전으로 꼽히는 <손자병법>을 서양에서는 ‘The Law of War’ ’The Principle of War’ 대신 ‘The Art of War’라고 번역한다. 물론 전쟁을 치르는 법이나 원칙을 모르는 장수가 승전고를 울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법과 원칙을 익힌다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뛰어난 전략가는 수립된 전략을 기계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략을 뛰어넘는발상의 전환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7의 감각>의 저자 윌리엄 더건은 이를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전략가는 주어진 전략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는 의미다.3

20세기 초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가 주창된 이후 경영은 경영자의 리더십과 구성원의 모티베이션 및 팀워크를 통한 조직 내부의 효율성(efficiency) 향상과 복잡성(complexity) 관리에 주력했지 외부 환경의 변화(change)와 불확실성(uncertainty)의 증대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과 시나리오에는 무관심했다. 단지 1960년대 영국 아스톤그룹(Aston Group)의 학자들이 기술적·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의 조직구조 재형성 방안을 연구한 정도였다. 경영 활동이 전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를 몰고 온 두 차례의 석유 파동 때문이었다.4 이런 전략의 발전은 경쟁우위와 자원의 배분 및 규모의 경제 등 경제이론에 바탕을 둔 산업조직론적 접근(industrial organizational approach),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과 차선책(sub-optimality), 또는 만족해(satisfying solution)를 따르는 인간의 행동 방식 등 조직이론에 바탕을 둔 조직사회학적 접근(organizational sociological approach)으로 양분돼 전개되면서 전자는 기업의 제반 경영전략 수립을 위한 분석적 모델, 후자는 경영자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한 종합적 사고에 초점을 뒀다.

마이클 포터에 의해 견고한 분석모델이 정립된 산업조직론적 접근에서는우리 사업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하는 기업 차원의 전략(corporate strategy), ‘비용 우위, 차별화 또는 집중화 전략 중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위해서는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하는 사업 차원의 전략(business strategy), 부서별 목표관리에 입각한 기능 차원의 전략(functional strategy) 등으로 전략의 위계와 분석방법을 제시해서 기업마다 경쟁전략 및 경쟁 우위를 위한 경영전략의 수립을 수월하게 도와줬다.5 하지만 이는 수립된 경영전략(business strategy) 그 자체지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의사결정 활동과 구성원의 임파워먼트 등 통찰력과 팀워크에 바탕을 둔 전략적 경영활동(strategic management)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전략 경영의 중요성은 기업 경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저서 <경영자의 기능>에서 정보적, 직관적, 비일상적, 쌍방적 의사소통 활동으로 정리한 체스트 바너드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바너드는경영자의 기능은 과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이다라는 말로 직관과 통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경영자의 역할에 대한 정의는 1973년 헨리 민츠버그에 의해 한결 명확해졌다. 민츠버그는경영자는 지위가 올라갈수록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임시방편적(ad hoc), 탄력적, 역동적, 암묵적인 방법으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공한 미국 상원의원들이 왜 섹스 스캔들에 휘말리는가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적용해 실증해 보이기도 한 에이브러햄 잘레즈닉 하버드대 교수는 주어진 규정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일반 관리자(manager)와 불확실성하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가야 하는 리더 경영자(leadership leader)를 구분해 관리자의 기능은 부하를 대상으로 업무 프로세스와 계획을 수립하는 등 체계화에 있는 반면 리더는 추종자들과 함께 사업에 영감을 불어넣는 꿈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고 표현했다. 메이요와 노리아는 20세기의 위대한 경영자 100인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하나같이 상황을 파악하는 감각(making sense of context)이 뛰어난 리더라고 밝혀 주었다.6 한편, ‘M경영을 통해 기업 경영의 동태적 메커니즘을 제시한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효과적인 전략은디자인 철학을 담고 있으며 탁월한 전략가는발상의 전환을 실천해 보인다라는 표현으로 진정한 전략과 전략가는 통념을 뛰어넘는 데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7 이들의 다양한 주장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흔히 기업에서 수립한 경영전략(business strategy)과 경영자가 사업과 고객, 구성원에게 보여줘야 할 전략경영(strategic management), 즉 전략적 의사결정 활동을 혼동하고 있으며 기업마다 정기적으로 구성원의 자유로운 발상을 요구하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만 강조하지 발상의 전환, 즉 역발상을 추구하는 리버스 브레인스토밍(reverse brainstorming)은 간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8

 

 

 

 

 

경영전락의 실패와 전략경영의 역할

그렇다면 SWOT, BCG모델, BSC, ERP기법, Diamond모델까지 동원해 공들여 만든 경영전략이 실패로 끝날 때가 왜 그렇게 많은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흔히 경제학에서는 시장의 실패, 정부의 실패, 자본의 실패 등을 주장하면서 이는 정부 정책이 마치유가를 올리면 국민이 기름을 덜 사용할 것이다같은 잘못된 합리성을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에서 수립하는 대부분의 전략 역시 이와 비슷하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미래는 전략을 수립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 더 불확실하며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마이클 레이노는 <전략의 역설>에서 다음과 같은 다양하고도 엄청난 불확실성과 대응 부족 때문에전략의 실패는 당연한 결과라고 피력한다. 달리 말하면 수립된 전략이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영자들이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이 사항들을 항시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9

 

●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라:사람들은 왜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외면하는가? 구매상품에 대한 고객의 진정한 욕구는 무엇인가? 시장조사는 적합하고 올바르게 이뤄지고 있는가?

● 환경적 변화를 주시하라:환경변화에 따라 브랜드와 가격경쟁에 경쟁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정부의 정책적 개입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 역량을 확인하라: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는가? 인적·물적 재원으로 수립된 전략을 실천할 수 있는가?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고 효과적인 경영기법을 실행하고 있는가?

● 부서 간 활동을 조정하라:기능별로 상이한 부서 간 업무조정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 특히 보고 활동과 업무협조 활동이 적절히 이뤄지는가? 조직구조가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변경되는가?

● 상사의 방침을 확인하라:과업 수행 초기에 상급부서나 상사와의 합의와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가? 과업 완수에 요구되는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가?

● 직원의 욕구를 파악하라:외부 고객의 욕구뿐만 아니라 내부 고객인 구성원들의 욕구와 불만사항을 알고 있는가? 새롭게 제시된 전략사항에 대해 구성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새로운 목표와 전략에 동반된 성과 관련 인센티브는 적절히 재배분됐는가?

●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라:빨리빨리문화에 익숙해 조급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는가? 주요 경로 분석(critical path analysis)도 없이 목표 달성만 재촉하지 않는가?

● 수립된 절차를 중시하라:초기에 수립된 전략실행 프로세스를 유지하고 있는가? 초기 계획과 상이한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지 않는가? 초기 계획의 의도 또는 초심(初心)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는가?

● 상황적 변화를 예측하라:환경변화에 따른 조직 내부적 변화에 저항은 없는가? 업무수행 프로세스와 기술적·조직적 변화 간 영향 관계를 파악하고 있는가?

● 일상적 소통을 견지하라:이해관계자 집단과의 정보나 지식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가? 이해관계자 집단이나 노조대표 집단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지 않는가?

 

이처럼 전략의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살펴야 할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중에서도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요구되는 경영자의 능력은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발상의 전환’ ‘전략적 직관또는지혜경영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은 피터 드러커가 강조한 코페르니쿠스, 뉴턴, 아인슈타인, 피카소, 그리고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등이 보여준 혁신적 사고와 일맥상통한 개념이다. 윌리엄 더건의 전략적 직관은 합리적 또는 분석적 접근방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창의적 통찰력이다. 지혜경영은 제프리 페퍼가 주장해 왔으며 사람을 움직이는 정성적 접근을 의미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고착된 목표와 전략 또는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불확실성하에서 적용 가능한 진정한 전략적 신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은 전략경영의 요체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할 때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전후 문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why) 등 육하원칙을 활용한다. 이 원칙은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중요하다. 뛰어난 경영자나 엄청난 성공 뒤에는 이들 각 요소에 대한 뭔가 비상한 경영자의 결단력과 통찰력이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예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Why’에 대한 관점은 경영의 귀재, 전략의 달인일수록 확연히 차이가 날 때가 많다.

 

기획력과 통제력의 우열에 대한 발상의 전환 기업경영의 주체 집단을 크게 나누면 합리적 경영(rationality)을 주도하는 공식조직과 민주적 경영(democracy)을 부르짖는 노동조합이 있다. 이들 집단 사이에는 상호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한 노사협상, 즉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이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사항은 계층집단(hierarchy)에서 계획수립(plan)과 실천행동(do)을 담당하는 데 비해 노동조합(union system)에서는 이들 활동에 대한 견제와 반발 등 통제활동(see)이 주된 임무처럼 구분돼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이 당연시되며 주도 집단인 경영자들은 노조 주장을 견제하는 데 주력한다.

그렇다면 과연 조직의 기획력(planning power)이 노조의 통제력(controlling power)보다 더 강할까? 1980년대 일본식 경영이 전 세계를 휩쓸 때의 일이다. 일본의 품질경영 방식은 집단적 품질관리분임조(Quality Circle)를 통해 전파되고 있었다. 이런 풍조는 서양식 개인별 성과주의 인사체계를 이끌어 온 IBM에서 ‘Excellence Team’이라는 집단별 성과주의를 도입하게 만들었고,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정권하의 사회주의적 노선에 따라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에 법적으로 노조를 설치하는 일이 의무가 됐다. 프랑스에 진출해 있던 IBM은 바뀐 정책에 따라 전국 노조별 대표를 뒀고 이들 노조는 개인별 성과체제보다 집단별 성과체제를 옹호하며 이전보다 다양하고 강력한 주장을 내세웠다. 창사 이후 무노조 경영에 익숙해 있던 IBM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흔들렸다. 노조와 갈등이 심해지면서 프랑스에서의 사업 철수까지 고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개인성과체제를 견지하려는 인사팀과 집단성과체제를 정착시키려는 Excellence Team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노사 간에 전에 없던 대립과 소요가 거세진 탓이다. 당시 IBM유럽 회장이었던 자크 메종루즈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제는 좋든 싫든 노동조합을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 노조를 동반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경영자들의 역량이 이전보다 더 강해야 하고 나아가 노조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갈 수 있어야 한다.” 메종루즈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노동조합의 역할은 우리 종업원들의 복지와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이를 보다 강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경영진이 맡았던 예산권과 실행권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 이 정책이 실행되면서 IBM 노조는 종업원 복지 관련 예산권과 보직을 부여받았다. 대신 공식조직에서 노조의 종업원 복지 지원 활동에 대한 감사와 통제권을 가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3년이 지나기도 전에 노조는 복리후생 관련 예산권과 실행권을 반납하겠다며 오히려 조직에 대항하는 태도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직의 관리부서 역할을 수행해 본 노조는 경영자들의 애로를 이해하게 됐고 진정한 힘의 원천은 계획이 아니라 감사와 통제 활동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10

이와 유사한 사례를 포항제철(포스코)의 박태준 회장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초 노조 집행부에서 집요하게 종업원 복지 향상을 주장하자 박 회장은 아예 그 업무를 노조 간부에게 맡겨버렸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담당 노조 간부가 그 업무를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포기했다. 정부 조직 역시 평상시에는 기획재정부의 힘이 막강해 보이지만 사건이 터지면 감사원이나 검찰이 더 큰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IBM이나 포항제철의 최고경영자들은 기획보다 평가를 관장하는 것이 더 세다는 점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다소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반적인 사고와 반대되는 자신의 통찰력을 과감히 실천해보였다. 이 같은 사례들은 환경 변화와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시대에는 경영자의 직관과 통찰력이 주도하는 위기관리가 일상화돼야 하며 부서별로 할당된 일상적 전략실행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업성과 수익성에 대한 발상의 전환 유태인 격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돈을 벌려면 돈을 쫓아갈 것이 아니라 무엇이 돈이 될 수 있을지를 다시 살펴보라.” 특히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 무엇이 돈이 될지부터 살펴보는 자세가 요구된다. 독배를 마신 인수로 불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 인수,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인수는 종합물류 기업으로의 재도약, 부동산 불패신화의 재창조와 같은,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경직된 비전과 전략에서 기인한 것이다.

마찬가지 예로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14억 인구의 중국을 거대한 미래시장으로 보고 너나할 것 없이 진출했던 일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베트남으로 이전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고 야반도주하는 사업가들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 강점을 갖고 중국시장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인건비 부담을 중국 근로자들로 보전하겠다는, 약점 보완을 위해 진출한 경우다. “약점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강점만이 지속적인 성공을 기약해 줄 것이다라는 피터 드러커의 표현처럼 적어도 경영자라면 남들보다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시장 진출에 임해야 한다. 기획부서의 관행적 경영전략이나 최고경영자의 감각적 직관만으로 사업성을 평가하고 주변 동향에 편승해 투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전략적 직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낼지를 파악하는 최고의사결정자의 뛰어난 통찰력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에 프랑스 고속철도인 TGV를 도입하는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차량제조 컨소시엄업체의 일원이었던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느지막이 TGV 기관차를 제조하는 프랑스 알스톰을 방문했다. 이미 한국의 수많은 엔지니어와 고위공직자, 경영자들이 알스톰을 방문했지만 이들은 특별고객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사업진행 상황에 대한 설명만 듣고 귀국했다. 조중훈 회장은 달랐다. 방문 당일 바로 본사로 호령이 떨어졌다. “도대체 뭣들하고 있었나! 돈이 될 것은 기차가 아니라 고속철 레일이야!” 그랬다. 모두 뛰어들려고 했던 차량 제조보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전용 레일을 만드는 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알짜 수익사업이었다.

뛰어난 사업가의 눈(coup d’oeuil = quick glance)에는 돈 될 것이 보이는데 일반인의 눈에는 왜 남들이 다 보는 것조차 겨우 보이는 것일까?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에서는 남들도 보는 사업을 뒤늦게 뛰어들어 따져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뛰어난 동물적 감각으로 간파하는 경영자의 혜안이 요구된다. 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관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은 한번 부도가 나거나 자금난에 빠지면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허우적댈수록 더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는 것은 대부분 새로운 기술이나 디자인 부족으로 고객 욕구에서 멀어졌기 때문인데 이들은 부족한 운영자금, 즉 돈만 다시 대출받을 수 있으면 사업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사채까지 마구 빌려 사용하다 보니 한번 망하면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폭삭 망하기 일쑤다. 일본의 벤처 및 중소기업 정책은 이를 막기 위해 사전 조정 제도를 두고 있다. 수익성이 악화되는 중소사업체에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이 본다면 아마 정부가 파산을 조장한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을보호와 육성’, 최근에는동반성장의 대상으로 보지만 일본 관료들은 중소기업을 산업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주체로 본다. 중소기업을 산업의 약자가 아닌 산업의 동력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수익성이 낮은 기존 사업은 일찍 접고 새로운 신성장 사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중소벤처기업의 생존 역시 수익성이 관건인 만큼 사양산업 종사업체가 실기하지 않고 철수해 성장유망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 퍼포먼스인 가부키 공연에 사용하는 부채를 만드는 중소업체들이 가격이 절반도 안 되는 중국산 부채 때문에 아우성을 칠 때 정부가 두 가지 안을 제시한 사례도 있다. 하나는 일본산 부채의 기술적 우위를 확실히 보여준다면 중국산 짝퉁 부채 판매를 금지해주겠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두 가지 안을 받아든 부채 제조업체들은 중국산 짝퉁 부채처럼 가장자리가 쉽게 헤지지 않는 신기술의 부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기술우위를 점하기 위해 질 좋은 부채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고 이후 10년이 지나도 가장자리 풀칠이 떨어지지 않는 양질의 부채를 만들어냈다. 부챗살 앞뒤에 두 장의 종이를 붙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아예 부채종이에 구멍을 내고 부챗살을 집어넣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경영자의 전략경영 못지않게 정부 관료들의 통찰력 또한 산업을 육성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창의성과 실용성의 가치에 대한 발상의 전환 컴퓨터 업계의 동갑내기 천재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두고 누가 더 창의적이며, 누가 더 실용적인가를 물으면 아마도 전자는 스티브 잡스를, 후자는 빌 게이츠를 꼽는 대답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경영전략을 미리 세우고 실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창의와 결단에 더해 모방과 배짱이라는 공통된 특성을 토대로 시대적 영웅이 됐다. 1971년 스티브 잡스는 오랜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부친의 차고에서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인 애플을 개발했다. 이후 잡스는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제록스에서 개발한 그래픽 인터페이스(GUI)를 도용해 마우스를 사용하는 신제품 매킨토시를 출시, 급성장했다. 당시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던 빌 게이츠는 친구 폴 알렌과 함께 컴퓨터 언어를 개발하면서 컴퓨터 업계에 뛰어들었다.

스티브 잡스를 따라잡으려던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용 언어 개발을 제안하며 접근해 매킨토시를 도용했고 MS-윈도를 내놨다. 그러면서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한다.’ 영화로도 출시된 이 두 천재 간 이야기는 뛰어난 경영자의 창의성에도 모방은 있기 마련이며 창의성은 다소 부족해도 사업적 수완이 뛰어나면 더 큰 성공을 가져온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록스는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지도 모른 채 개발한 GUI를 보유하고만 있었고 영리한 스티브 잡스가 이를 접목해 컴퓨터에 구현했다. 영특한 빌 게이츠가 다시 이를 사업에 접목해 성과를 냈다. 제록스에서도 누군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GUI를 개발했겠지만 유레카를 외치며 첫 번째 도용을 한 자는 스티브 잡스였고, 향후 컴퓨터 환경은 도스(DOS)가 아닌 윈도(WINDOW) 체제로 전환될 것을 내다보면서 이를 다시 도용한 자는 빌 게이츠였다.

역설적이지만 세계적인 컴퓨터 왕국을 건설해 온 IBM은 이제 더 이상 컴퓨터 업계의 제왕이 아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발상의 전환에 돌입한 애플과 MS가 제록스와 IBM을 뒤로 하고 컴퓨터 환경을 지속적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모방과 창조의 조합, 그리고 또다시 모방과 창조의 조합으로 이어지는 컴퓨터 업계의 사업 환경에는 ‘What if’, 빌 게이츠가 도스를 IBM에 넘겼다면,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의 GUI개발팀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경로로 수집한 지식의 파편들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조합해 비즈니스 모델 창조는 물론 사업 추진의 결단력으로 연결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 어린 회고담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들의 성공전략을 그대로 따른다고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도 없다. 성공전략의 수립보다는 성공의 기회를 포착하고 단호히 실천하는 전략적 직관과 신속한 추진이 요구될 뿐이다.

 

신속성과 적시성의 적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², 의사결정에는 시간과 정보와 능력의 제약이 따른다는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는 시간과 공간과 지식에 있다고 설파한 앨빈 토플러 등 주요한 논리와 주장의 대부분에시간이라는 변수가 포함된다. ‘빨리빨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시간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실천하려는 노력 자체가 하나의 통찰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윌리엄 더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전문적 직관이다. 즉 습득된 전문지식만으로 경쟁자보다 신속하게 움직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인식이다.11

신속성(speed)으로 시간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이제 통념화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속성보다 적시성(timeliness, timing)으로 진정한 시간의 가치를 파악하는 관점이 더욱 중요할 때가 많다. 마치 싱크로나이징 선수들의 발동작이 동시에 올라오고 내려가야 높은 점수를 받듯 생산부서에서 자동차 10만 대를 만들면 영업부서에서 거의 동시에 팔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효율성이 극대화될 것이다. 조직에서 신속성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효과적인 성과를 향해 뛰어가는 동시성이다.

 

전략을 완성하는 직관의 통찰력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기업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분석적인 머리도 필요하지만 피터 드러커와 제프리 페퍼의 주장처럼 인본적인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여기에 공감하면서도 경영자들은 왜 계량적 분석결과와 시스템적 운영방식을 맹신할까?12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실태를 살펴보자. 금융위기 극복 이후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및 IT·반도체 산업 환경은 지속되는 세계 경제의 저성장과 올 들어 원-달러 가치가 1050원까지 떨어지는 원고 현상, 중국과 일본의 협공을 받는 품질과 가격 경쟁력의 위기, 경제민주화 구호 탓에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보다 정치권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시장, 정책 불확실성 증대로 고조되는 불안과 위기감 등이 만연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벤처기업들도 혁신 방안을 제대로 모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2.9% 정도로 세계 경제 성장률 3.5%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13 이 같은 주요 지표들을 대하면서 경영자들은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저성장과 경쟁격화, 새로운 리스크 요인의 발생은 경영자들에게 끊임없이 불확실성을 안겨주면서 보다 멀리 내다보는 전략적 직관, 즉 번뜩이는 통찰력을 요구한다. 이런 통찰력은 Why&How를 적용해 단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라도 리버스 브레인스토밍을 해볼 때 비롯된다. 이럴 때 최고경영자는왜 중국시장만 바라보는가? 중동과 남미 시장에 지역 본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가등 발상의 전환을 위한 주제어를 임직원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한직관의 경영은 경영자의 전략적 직관만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구성원들의 직관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단계, 즉 환경 분석에 대한 합리적 자료의 제공, 새로운 대응방안에 대한 경영자의 통찰력과 결단력의 제시, 역발상을 포함한 구성원의 창의력을 일깨우기 위한 리버스 브레인스토밍의 활용, ‘함께결정하는 전략의 실천으로 완성되도록 분석과 소통과 결단과 추진이라는 프로세스 등을 요구한다. 구성원들이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를 공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Why&How를 자발적으로 고민할 때 경영자의 통찰력뿐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직관을 활용하는 진정한 전략의 실천 즉, 전략의 완성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박기찬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 kichan@inha.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프랑스 파리 HEC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INSEAD 연구원 및 대한항공 임원을 거쳐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앙인사위원회 정책자문위원, 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공항공사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조직정치론> <글로벌 기업 디자인> <사회감사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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