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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

경제민주화, 문제 정의부터 잘못됐다

송옥렬 | 122호 (2013년 2월 Issue 1)

 

 

들어가며

지난 대선에서 재계의 관심은 대부분경제민주화담론에 쏠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기존 경제질서에 대한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경제질서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에 따라 개혁의 대상이 될 수도,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개념의 추상성으로 말미암아 논의가 혼란스럽게 진행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우리의 경제질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의 환경에서, 또 더 이상 대기업의 낙수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경제질서를 어떻게 변화 내지는 발전시킬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복지확대 또는 일자리 창출과 같이 듣기 좋은 구호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누가 어느 정도의 부담을 지고, 그것이 누구에게 편익을 제공하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이에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경제민주화 담론이 생산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최소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효과는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은 경제민주화 담론의 내용을 되짚어보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그 가운데 기업집단의 소유구조에 대한 내용은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흐른 감이 없지 않다. 기업집단도 하나의 경제현상으로서 그 질서 역시 시장주의에 기반해 각 경제주체에게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방향으로 행동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둘러싼 주장들을 검토함으로써 향후 보다 생산적인 논의에 단서를 제공하고자 한다. 규제당국이든 재계든, 경제민주화 논의 및 그 후속입법은 결국 논리적 설득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론적 기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논의의 혼선

지난 2012년 초부터 경제민주화가 대선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순환출자 규제나 금산분리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다양한 내용의 경제민주화 법안이 의원입법의 형태로 제안되거나 각 정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됐다. 기업집단과 관련된 부분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먼저 순환출자를 금지하거나 그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기존의 순환출자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이 다소 갈리지만 순환출자는 기업집단 문제의 핵심으로 언론에서 다뤄지면서 향후에도 어떠한 형태로든 입법화될 가능성이 높다.

② 금산분리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정거래법상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현행 15%에서 5%로 축소하고 은행법상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현행 9%에서 4%로 환원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③ 이와 함께 2000년대 초반 격심한 논쟁 끝에 결국 폐지됐던 출자총액제한을 다시 부활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④ 마지막으로 기업집단의 내부거래, 특히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의원입법 중에는사익편취 목적의 계열사 신규 편입 금지와 같이 회사법을 전공하는 필자도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제안도 등장했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행위규제를 거론하지 않고 기업집단의 소유구조에 대해서만 보더라도 이처럼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장이 논리적인 분석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강화를 결론으로 제시함으로써 기업집단 입장에서는재벌 때리기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펼쳐졌다. 필자는 근본적으로 이렇게 논의가 겉돌게 된 이유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집단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기업집단, 즉 대기업의 문제로 환원될 수 는 없다. 특히 최근 부각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도 그 원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담론에서는 기업집단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공하는 것이 부족했다. 이로 인한 혼란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1. 경제민주화 대상은 어디까지인가?

일반적으로 기업집단의 문제로는 경제력 집중, 선단식 경영, 비관련 다각화, 소유와 지배의 괴리 등 다양하게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삼성, 현대자동차, SK그룹과 같은 전형적인 기업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KT 또는 포스코같이 최근 민영화된 기업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관찰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KT 또는 포스코도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선단식 경영이 이뤄지고 있으며 비관련 다각화 역시 점차 심화되고 있다. KT는 계열사의 수가 2005 12개에서 2012 50개로 늘어났고 포스코도 2005 17개에서 2012 70개로 늘어났다. 특히 포스코의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 확장이 기업집단에 많은 부담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집단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우리가 문제라고 하는 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자동차그룹 같은 전형적인 기업집단, 즉 지배가족(controlling family)이 존재하는 기업집단(재벌)으로 한정하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KT 또는 포스코는 문제가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업집단 문제의 핵심은 지배가족의 존재 및 그에 의한 장기적인 경영권 승계가 된다. 흔히 기업집단의 문제를지배가족의 사익추구라고 규정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가 강조된다.

 

반대로 다른 가능성도 있다. 지배가족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 전부에 대해 동일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룹 경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행태가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순환출자 규제나 금산분리 등 규제를 입법화하는 경우에는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집단과 그렇지 않은 기업집단을 구분해 다르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경제민주화 담론이 소유가 분산된 기업집단까지 염두에 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경제민주화 입법 과정에서는 지배주주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배가족이 없고 소유가 분산된 기업이 대부분이었다면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이 이처럼 커졌을지 의문이다. KT나 포스코에서 그룹의 물류나 IT, 홍보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둔다고 가정하자. 이들 회사는 아마도 일감 몰아주기와 관계없이 경영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는 점을 삼성이나 현대차그룹보다 훨씬 쉽게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법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나 불공정한 가격에 의한 자본거래 등은 대부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소유가 분산된 기업집단에서도 경제력 집중, 선단식 경영, 비관련 다각화, 소유와 지배의 괴리 문제 등이 나타날 수 있지만 삼성,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이 문제가 지배가족의 존재로 인해 더 자주, 그리고 더 불공정한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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