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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분권화에 무너지고,지배혁신으로 다시 서다

강형구 | 120호 (2013년 1월 Issue 1)

 

일반적으로 재정적 혹은 기술적 능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실패할 것으로 여긴다. 특히 속해 있는 산업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 첨단기술 분야처럼 변동성이 큰 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실패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적 자원이나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기업의 위험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무적 혹은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턴어라운드(turnaround)를 달성하는 사례도 있는데 하이닉스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정부 지원이나 반도체 산업계의 호황을 고려할 때 하이닉스의 턴어라운드가 놀랍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후적 정당화에 불과하다. 전문가들 중에 하이닉스가 성공적으로 턴어라운드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하이닉스 사례를 통해 턴어라운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기업의 외부적 요소가 아닌 내부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고 향후 실무와 정책 개발에 참고할 만한 지침을 세우고자 한다. 특히 내부 통제 및 관리 시스템의 변화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각종 동적역량의 창출 및 실행 과정, 즉 지배혁신(governance innovation)을 강조하고자 한다.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는 1983년 현대그룹에서 설립했다. 이 시기 재벌 그룹들은 사업 분야 확장에 주력하고 있었다. 현대그룹은 1976년 인천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처음 세웠다. 1980년대 후반 반도체 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자 현대그룹은 1990년 현대전자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호의적인 시장 상황과 그룹의 투자에 힘입어 현대전자는 1990년대 세계 10 D램 제조업체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상황 전개를 분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시기를 구분했다. (1) 1999 M&A 시기 (2) 2000∼2001년 첫 번째 위기인 퍼펙트 스톰(A Perfect storm) 시기 (3) 2002∼2007년 두 번째 위기 시기 등 세 가지다.

 

(1) 1999 M&A 시기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을 덮친 금융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 김대중 정권은 경제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금융기관 및 기업 구조의 재조정을 시도했다. 목표는 재벌 구조를 재편해서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중소기업에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용된 정책이빅딜이라고 불리는 사업 교환(business swap)이다. 빅딜은 주요 산업군에서 5대 대기업 간 사업 교환 및 합병을 기본으로 한다. 빅딜 이전 반도체 산업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3개 업체가 있었다. 빅딜을 통해 2위인 현대전자와 3위인 LG반도체가 합병했다. 1999년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인수 합병 과정은 험난했다. 처음에 LG는 현대가 새로운 합병 회사를 운영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LG는 계열회사를 계속 운영하는 대가로 다른 핵심사업을 포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거래 은행들의 압력과 정부 및 감독기관의 제재 위협으로 인수 합병을 받아들였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다. 첫째, 서로 다른 기술과 공정 구조로 발생하는 문제가 많았다. 둘째, 반도체 메모리, 비메모리, 전자통신, LCD, 모니터 등 주요 사업 분야가 겹쳤다. 인수 합병 이후 사업 간소화 작업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셋째, 합병 결과로 발생하는 재정적 부담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합병 회사가 떠맡게 됐다. 이 재정적 부담은 합병 회사를 거의 부도 직전까지 이르게 했다.

 

(2) 2000∼2001년 퍼펙트 스톰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 이후, 연 수입이 10조 원에도 못 미치는 하이닉스의 부채 총액이 1999 10월 기준 1580000억 원에 달했다. 2000년 한 해 이자 비용만 14000억 원에 달했고 2001년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는 총 64000억 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D램 산업이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다. 세계 경제는 악화됐고 IT시장은 침체기를 맞았다. IT시장의 침체는 세계 PC 출하량을 처음으로 감소하게 했다. PC 출하량 감소는 궁극적으로 D램 시장을 붕괴시켰다.

 

막대한 부채와 D램 시장의 침체로 하이닉스는 안정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하이닉스가 필요로 했던 자금은 부채 상환을 위한 재정뿐만 아니라 기술 향상과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을 포함한다. 하이닉스가 현대그룹에 속해 있었다면 재무적 보호장치(funding cushion)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이미 2001 8월 현대그룹에서 분리됐기 때문에 현대그룹의 신용보호(credit umbrella)를 누릴 수 없었다.

 

인수합병 결과로 하이닉스가 부담하게 된 부채와 산업 침체, 자금 조달 난항의 조합은 하이닉스에퍼펙트 스톰이었다. 그리고 이 퍼펙트 스톰은 하이닉스를 붕괴 위기로 몰아넣었다. 2001 10월 하이닉스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 대상이 됐다. 2001 11월 종합적인 채무 재조정에 착수했다. 채무 재조정은 3조 원가량 전환사채의 전환, 14000억 원의 채무 면제, 32000억 원 부채의 만기 연장을 포함했다.

 

(3) 2002∼2003년 두 번째 위기

하이닉스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동안 라이벌 회사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하이닉스 인수를 시도했다. 이로써 하이닉스는 또 다른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마이크론은 현금 및 주식으로 34억 달러의 가격을 제시했다. 하지만 하이닉스 경영진은 기업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2002 4월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인수 후 소유하게 되는 공장 가치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고, 잠재적 현금 흐름 발생량을 낮게 평가했으며, 축적된 D램 분야 노하우와 기술이 국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이크론의 제안을 거절한 하이닉스는 자립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장애물에 직면했다. 사업 간소화, 채무 재조정, 비용 절감 등을 단행해야 했는데 이와 동시에 제조 공정 및 신규 12인치 제조공장 등에 대한 투자를 병행해야 했다. 또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신규 진입자였으므로 이 기술에 대한 추가 투자도 필요했다. 한마디로 하이닉스는 비용 절감과 충분한 규모의 투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하이닉스 인수 시도 실패 후 마이크론과 인피니온(Infenion)의 미묘한 보복이 표면화되면서 미국과 EU, 일본 등에서 하이닉스 D램에 상계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 경쟁이 치열한 D램 시장에서 상계관세에 대한 부담은 하이닉스의 기업 존속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턴어라운드 과정

외부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둔화와 반도체 산업의 불황, 무역마찰, 마이크론의 인수 시도, 내부적으로는 D램에의 신규 진입자로서 기술과 경험의 부족, M&A 이후 조직 관리, 재무적 자원의 부족 등 하이닉스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하이닉스는 기술 선택 및 개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파트너십 활용 등을 추진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조직과 리더십 등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혁신이다.

 

먼저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혁신 과정부터 보자. 하이닉스는 M&A와 그로 인해 발생한 첫 번째 위기 상황을 거치면서 조직 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주체들이 강한 힘을 행사하면서 분권화 수준이 높았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인수 합병을 계획한 정부와 새로 합병된 회사에서 초기 경영권을 부여받은 현대 직원들, 정부 구제정책의 한 축으로 관여한 은행 등이 이 시기 하이닉스에 영향력을 행사한 이해관계자들이다. 특히 정부와 거래은행이 마이크론의 인수 입찰을 지지했고 하이닉스 경영진과 직원들은 반대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심했다. 경영진은 이 시기를내적 통제가 미약했던 시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같은 통제 구조는 Burton et al.(2006)에 의하면 시장 방식의 통제 구조(market-style control design), 즉 시장구조(market design)로 볼 수 있다. 시장구조는 기업에 유연성을 제공하고 혁신의 발생을 용이하게 하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 시기 하이닉스에 이러한 시장구조는 내적, 외적 위기를 극복하고 필요한 전략적 행동을 취하는 것을 저해했다. 하이닉스로서는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통제 구조로 전환하는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이크론의 인수 시도가 실패로 끝난 일은 하이닉스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 내, 외부적으로시장 구조의 비적합성과 비효율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기업 통제 구조의 변화를 불러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략 등 중요한 의사 결정이 조직 내부 최고경영자 집단에 집중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거래은행들이 하이닉스의 주요 주주들이기는 했지만 최고경영진이 내부 혁신과 외부 제휴 등 중요한 상황에서 주도적인 의사 결정에 적극 나섰다. 하이닉스 경영진이 자신의 역할에 적극 나설 수 있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경영진이 채권단과 정부를 설득해 주체적으로 나서는 데는 회사 생존이 위협받을 만큼 위기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배경이 됐다.

 

우선 현대전자와 LG반도체 합병 이후 누적된 문제가 적지 않았다. 크게 나누면 문화적 차이, 유사한 사업의 중첩, 재정적 어려움으로 볼 수 있다. 두 회사의 문화적 차이는 합병 이후에도 하나의 회사로 자리 잡는 일을 어렵게 했다. LG반도체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고, 현대전자는 상대적으로 도전적이다 보니 문화적 충돌이 심해 진정한 한 회사를 만들지 못했다. 통합 이후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했는데 이를 제때 하지 못한 문제도 컸다. 주력 사업인 메모리반도체 외에 비메모리나 LCD 등에서 특히 중복이 심했다. 마지막으로 1999 10월 기준 총 부채가 158000억 원에 달할 무렵 총매출은 10조 원 미만에 불과했다. 재정적 어려움은 하이닉스가 필요로 했던 설비투자를 시도조차 불가능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 마이크론으로부터의 인수 시도가 있었다. 이때 정부나 채권은행들은 회사를 매각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매각이 장기적 발전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한 하이닉스 종업원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당시 하이닉스 쪽 의견이 받아들여진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나 채권단이 갖고 있는 반도체 관련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인수가 실패로 끝나면서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려 했던 채권단이나 정부 측 입김이 약해졌고 경영진은 한층 강해진 목소리를 토대로 직접 진두지휘에 나서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국내 금융시장 대신 해외 금융시장을 적극 활용했다.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 주기적인 로드쇼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벌어진 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생산을 추진했고 중국에 공장을 세웠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정부와 채권단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아울러 마이크론의 인수 제안은 내부 결속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주요 권한이 경영진에 집중되면서 직원들은 위로부터의 전략적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내부적으로 동지 의식과 결속력이 강해졌다.

 

이는 낮은 형식화와 높은 분권화로 특징되는 기존의 시장구조에서 높은 형식화와 낮은 분권화로 요약되는 기계구조로 내부 통제방식의 변화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하이닉스는 주요 혁신들을 가능하게 했고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됐다. 이 시기 하이닉스가 이뤄낸 혁신에는 문화적 혁신, 재무적 혁신, 경영팀 혁신, 기술과 과정의 혁신 등이 포함된다.

 

정리하자면 하이닉스는 경영진에 강력한 권한이 확보되는 등 통제와 관리에서의 변화를 이뤘다. 이런 변화의 목적은 위기하에서 다양한 혁신을 이루는 것이었다. 기계구조가 시장구조보다 항상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다. 내외부 환경과 비전, 전략의 변화에 따라 기계, 시장, 가족, 씨족, 모자이크 등 각 구조가 우월한 상황이 다르다.

 

문제 해결 과정

① 기술 선택 및 개발

내부 통제가 강해지면서 기술 개발에 안정적 리더십이 확보됐다. 경영진이 강한 권한을 갖고 자금 조달에 적극 나서면서 엔지니어들이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 스테퍼(stepper) 장비를 사용하면서도 당시 한계로 여겨졌던 0.18미크론을 넘어 0.15미크론 공정 개발에 성공하는 등 이른바블루칩 기술의 개발로 이어졌다. 블루칩 기술을 개발하면서 보유한 기기를 최대한 사용하고 설비 교체를 최소화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최소의 자본을 지출하면서도 차세대 기술로의 이전이 가능했다. 즉 내외부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②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변화는 과감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하이닉스는 사업 간소화 작업에 착수했다. 비핵심 사업과 자산을 처분하는 일도 이 시기에 일어났다. 구체적으로는 2001년 전기통신 사업, 2002 LCD 사업, 2004년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2005년 모니터 사업 등의 매각이 있다. 사업을 간소화하면서 하이닉스는 D램칩의 상계관세 문제 해결과 낸드플래시 생산에 집중할 수 있었다.

 

③ 파트너십 활용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 혁신으로 얻은 내부 안정은 적극적인 파트너십 및 전략적 제휴를 용이하게 했다. 하이닉스는 최소의 비용으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 파트너, 특히 외부 파트너를 적극적으로 물색했다. 여기에는 D램 시장에서의 기반을 토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낸드플래시 시장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2003 4, 하이닉스는 유럽계 회사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낸드플래시 개발 관련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는 하이닉스의 저비용 공정 기술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응용력 및 두터운 수요층을 결합한 제휴였다. 이 제휴를 통해 하이닉스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중국 우쉬(Wuxi) 지역에 합작회사를 세웠다. 총투자 규모는 20억 달러로 75000만 달러는 주식으로, 125000만 달러는 채권으로 조달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의 합작 회사뿐 아니라 하이닉스는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인 프로모스(ProMOS)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하이닉스는 프로모스에 기술 및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제공했다. 프로모스는 하이닉스에 12인치 웨이퍼 생산 기술을 제공했다. 하이닉스는 프로모스에 D램 기술 사용을 허가했고 그 대가로 하이닉스는 프로모스가 생산한 반도체 웨이퍼의 40%를 할인된 가격에 제공받았다. 이 제휴를 통해 하이닉스는 적정 가격을 유지하며 D램 생산량을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④ 재무 및 금융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혁신은 다양한 방식의 자금조달을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하이닉스는 국내 자금시장의 한계를 인식해 해외 자본시장에 접근했다. 2001년부터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했고 주식을 해외에 팔기 시작했다. 이는 더 많은 해외 투자를 가능하게 했고 국내 거래 은행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거래 은행들의 주식 보유량 비율이 61%에서 30%로 줄어들었다. 또한 자금 보유량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임금 통제와 기업 자원 절약이 진행됐다. 이런 과정에서도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변화가 중요한 배경이 됐다.

 

 

시사점

많은 분석가들이 반도체 산업의 호재와 일련의 정부 계획 및 개입을 하이닉스 턴어라운드 과정에 중요한 요소로 지적한다. 실제로 이 같은 환경적 요소들이 최악의 수준에서 어느 정도 호의적인 수준으로 변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과 구제 계획 등 환경적 요소만으로는 하이닉스가 위기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성공한 과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 경영진이 기업의 각종 자원에 변화를 주는 행위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조직, 문화, 리더십 등 무형의 자원에 변화를 주는 행위를 포함한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하이닉스와 같은 메모리 제조업체(특히 마이크론사)의 수익에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가 추세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는 산업상 호재만으로는 하이닉스의 우수한 성과를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하이닉스는 경제 및 산업의 호황에서의 절대적 성공은 물론 경쟁사 대비 상대적 성공도 이뤄냈다.

 

둘째, 정부의 구제 정책은 주요 전략적, 기술적 계획의 발생 및 시행과 분리돼 있었다. 구제 정책만으로 하이닉스의 성공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와 거래 은행들이 하이닉스 경영진이 제안한 전략적 파트너십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마이크론의 인수 시도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갈등에도 주목할 만하다.

 

구체적으로 하이닉스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사업 포트폴리오, 재무 및 금융, 조직 및 리더십의 네 단계에서 동적 역량을 창출하고 실행했다. 이런 변화의 기본에는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혁신이 있었다. 이처럼 동적 역량을 개발하고 실행하기 위한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변화를지배 혁신(Governance Innov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닉스 사례에서 지배 혁신은 두 번의 위기를 겪으며 형성되고 단련된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역동적 변화로 가능했다. 채권단과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결정 주체를 단일화(낮은 분권화)하고 내부 통제력을 높인(높은 형식화) 결과 여러 동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다.

 

하이닉스 사례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 외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동적 역량을 창출하고 실행하기 위한 내부 통제와 관리 시스템의 혁신, 즉 지배 혁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둘째, 기업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을 강조하는 기존 경영학 이론(: 자원기반이론, 동적역량이론 등)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확장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정책개발자들에게 거시적 정책뿐 아니라 기업 내부의 역량 개발과 혁신을 유도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hyungkang@hanyang.ac.kr

전희경 이화여대 글로벌사회적책임센터 연구원 jun.hannah@gmail.com

강형구 교수는 현재 한양대 경영대학 파이낸스 경영학과의 학과장이며 재무금융 대학원 주임교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버지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듀크대 퓨쿠아 경영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군장교 근무 후 리먼브러더스 아시아본부 퀀트전략팀, 삼성자산운용, 국제통화기금, 액센츄어 등에서 재무와 금융에 관한 교육 및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현재 하버드대 Edmond J. Safra Center for Ethics의 리서치 펠로이기도 하다. 주 연구 분야는 비기술적 혁신, 자원배분과 전략에 대한 프로세스, 행동재무 등이다.

전희경 연구원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University of Michigan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리먼브러더스와 노무라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반도체 섹터 분석을 담당했다. 현재 이화여대 글로벌사회적책임센터의 연구원이다. 주 연구 분야는 경영전략, 지배구조,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책임투자 등이다.

 

참고문헌

Jun H, Woo W, Kang H. 2012. Hynix Semiconductor: Global Pioneer. Asia Case Research Journal. Forthcoming

Jun H, Woo W, Kang H. 2012. How to succeed in the presence of financial and technological gaps: From the perspective of governance innovation. Working paper.

 

  • 강형구 강형구 | -한양대 경영대학 파이낸스 경영학과 교수
    -현재 하버드대 EdmondJ. Safra Center for Ethics의 리서치 펠로
    -공군장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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