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코코넛형 위기’는 나심 탈레브가 소개한 ‘블랙스완’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당신이 소개한 ‘지하철형 위기’ ‘코코넛형 위기’와 ‘블랙스완형 위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는 불확실성의 강도다. 지하철형 이벤트는 강도는 약하지만 매일 수십 번이 일어난다. 매일 아침 자동차를 몰고 출근할 때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는 것이나 LG전자가 매달 똑같은 대수의 TV를 팔지 못하는 것, 또 주식시장이 하루하루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등이다. 이런 류의 작은 변동은 일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불확실성의 악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좋은 영향은 극대화할 방법들을 이미 잘 마련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회사가 재고품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재고를 넉넉히 잡는 것이나 출근 시간이 평균 40분 걸린다면 50분 전에 집을 나서는 것 등이다.
한편 블랙스완형 위기는 극도로 드물고 미리 절대로 알 수 없는 이벤트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크기의 재난을 가져온 블랙스완 이벤트였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러더스가 쓰러진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긍정적인 블랙스완도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구글의 검색엔진처럼 관련자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온 경우가 있겠다.
이에 비해 코코넛위기는 굉장히 드물지만 꼭 예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남북한 간의 전쟁을 예로 들자. 관련된 많은 나라들이 수십 년 동안 이 전쟁을 대비해 왔기 때문에 블랙스완 이벤트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터진다면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극도로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쓰나미 같은 경우도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블랙스완은 아니다. 하지만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코코넛위기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예로는 삼성의 스마트폰이 있다. 삼성 스마트폰은 블랙스완이 아니라 긍정적인 코코넛이다. 엄청난 이익을 가져오고 삼성을 아이폰과 맞상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에게 모든 리스크가 컨트롤 가능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은 왜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모든 불확실성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짐으로써 심리적으로 편안해진다. 또 걱정과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문제는 이러한 편안함이 문제를 일으키고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해서 항상 자동차로 여행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자기 삶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항공여행은 매우 안전하며 오히려 자동차사고로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식의 ‘통제 환상(illusion of control)’은 블랙스완이나 코코넛위기에서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의 고삐 풀린 트레이더가 허가받지 않은 거래를 하다가 수십억 달러를 잃는다고 하자. 이런 사람들은 곧 행운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과거에 그렇게 잃기만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은 그들이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가거나 감옥에 갈 때까지 계속된다.
기업가(entrepreneurs)들도 종종 이런 통제 환상에 빠진다. 이들은 항상 밝은 쪽만 생각하며 자신들의 벤처사업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이들 중 아주 적은 수만이 사업에 성공한다.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삼성 같은 회사로 크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통제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만 하면 사업에서도 큰 실망과 실패는 피할 수 있다. 통제의 환상을 가지지 않은 사업가는 창업을 할 때 자기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제3자의 투자를 받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특정 산업에서 이러한 통제 환상이 더 자주 발견되는가?
일반적으로 통제 환상은 국가나 산업, 기업에 관계 없이 널리 퍼져 있다. 인간은 원래 낙관적이며 그러한 낙관주의가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기도 하다. 만일 기업가들이 작은 성공 확률을 믿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혁신이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클수록 리스크도 크다. 이는 혁신을 꼭 해야 하는 산업군에서는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이런 산업에서는 전반적으로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블랙스완이나 코코넛, 지하철형 위기가 섞여 있는 경우도 있는가? 이럴 경우 경영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하철형 위기는 흔하기 때문에 우리가 늘 잘 대처하고 있다. 출근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것처럼. 하지만 이런 지하철형 위기도 코코넛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만일 출근 중에 고속도로에서 대형사고가 터져서 길 한가운데 하루 종일 갇혀 있게 됐다고 생각해보자. 하루 동안 일을 못하는 것이 대재앙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꽤 피해가 가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불확실성은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점점 커져서 코코넛 혹은 블랙스완 이벤트가 된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보자. 처음에는 그저 경기 하강으로 시작됐으나 곧 불황이 됐고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후에는 코코넛위기로, 또 블랙스완 이벤트로 발전했다. 긍정적인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고 이것이 점점 커져 코코넛과 블랙스완으로 발전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드는 데 12년이 걸렸다는 점을 상기하자. 물론, 쓰나미나 후쿠시마 사태는 처음부터 코코넛 혹은 블랙스완인 경우다.
아시아, 특히 한국의 기업들이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블랙스완/코코넛형 리스크는 어떤 것이 있는가?
먼저 블랙스완형 리스크는 우리가 알 수가 없다. 그게 블랙스완이란 용어의 정의다. 코코넛형 리스크의 경우는 먼저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산업, 기업들의 과거를 연구해보는 것이 좋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또 산업적 요소들을 살펴보고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과거의 코코넛 이벤트들을 뽑아본다. 이는 상당히 학술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불행히도 코코넛형 리스크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의사결정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애플을 이길 수 있다면 그건 긍정적 코코넛이고 3류 기업으로 전락한다면 그건 부정적 코코넛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한국 기업들이 중국, 일본 기업들과 맞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또 북한이 전쟁을 도발한다던가, 혹은 독일처럼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어떨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코코넛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보험 가입 외에 무엇이 있을까? 또 CEO는 직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하는가?
CEO들이 직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버틀랜드 러셀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불확실성에 맞서서 망설임에 마비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철학의 가장 큰 효용이다(To teach how to live with uncertainty, yet without being paralyzed by hesitation, is perhaps the chief thing that philosophy can do.)”고 말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혁신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통제의 환상에 빠지면 안 된다. 실패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되 실패에서 배울 줄 알아야 한다. 또 절대로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리스크를 가져서는 안 된다.성공을 포상하되 실패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 실제적인 처방을 몇 줄 안에 모두 쓸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중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만을 감수하고 프로젝트의 가치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계산해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코코넛형 위기에 대응하는 조직의 능력을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는가? 아니면 운에만 맡겨야 하나?
기업과 기업경영자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피할 수는 없다. 블랙스완이나 코코넛위기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나쁜 결정을 피함으로써 미래의 기회를 최대한 살리고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행운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행운은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의 것이며, 또 그것을 최대로 이용하는 사람의 것이다. 기업들은 우선 스스로의 힘을 키워서 어떤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기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인터뷰=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스피로스 마크리다키스(Spyros Makridakis) 교수
스피로스 마크리다키스(Spyros Makridakis) 교수는 의사결정론의 석학이다. 뉴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스탠퍼드대, MIT, 하버드대 등을 거쳐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젊은 시절 그리스 요트 대표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다. 2009년 애닐 가바, 로빈 호가스 교수와 공저한 <지하철과 코코넛(원제 Dance with Chance: Make Luck Work for You)>에서 ‘코코넛위기’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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