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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법과 프로토타이핑

더 깊이 공감, 더 많이 공유:여성면도기의 신화 쓰다

주재우 | 111호 (2012년 8월 Issue 2)









신제품 개발에는 많은 투자가 들어가지만 일반적으로 시장에 출시돼 살아남는 제품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많은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새롭게 개발되는 제품의 시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데 엔지니어들이 자주 사용하는 품질의 집(House of Quality)과 마케터들이 쓰는 컨조인트 분석 등이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디자이너가 포장, 광고, 브랜드 등 제품 개발 이후의 부수적인 업무를 뛰어넘어 소비자의 니즈를 찾고 콘셉트를 개발하는 등 제품 개발의 핵심 업무를 수행함에 따라 신제품 개발에 디자인에 대한 투자나 디자이너 채용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1

 

디자이너의 역할이 제품개발의 전 영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디자이너들이 흔히 사용하는 기법들도 기존의 제품개발 프로세스에 접목되면서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요즈음 디자인과 경영을 통합적으로 가르치거나 적용하는 학교들과 기업들은 시장조사와 콘셉트 개발에서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1) 공감 기법과 (2) 프로토타이핑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거나 적용하고 있다. 이 두 기법은 Design Thinking을 실무에 적용할 때 가장 흔히 쓰이는 도구다.

 

기존 시장조사의 문제점

 

전통적으로 제품개발의 시작은 제품에 의해 채워질 수 있는 소비자 스스로가 표현하는 소비자 니즈를 발견하는 시장조사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기능의 향상을 통한 제품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가 표현하지 못하는 니즈를 발견해 이를 충족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2 또한 설문조사의 응답자들이 미래를 고려하지 못하고 현재 경험에 기반해 응답을 하거나 자신의 선호와 다른 응답을 하는 경우가 발견되면서 일반적인 시장조사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가 옳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됐다.3

 

이와 함께 전반적인 제품 개발의 방향이 정해지고 이에 필요한 정보도 갖춰진 뒤에야 시장조사를 하는 기업의 관습은 혁신제품의 개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디자인 부서, 제조 부서, 연구개발 부서 등이 시장조사의 결과를 무시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표현되지 않은 소비자 니즈를 발견함으로서 독특한 경영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공감(empathy)에 기반한 시장조사 기법들이 제안됐다.

 

일반심리학에서 말하는 공감은 본인과 타인과의 차이를 줄여 사람들이 타인의 과거 행동의 원인이나 미래 행동의 결과를 옳지 않게 추론해 틀린 결론에 도달하는 경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 경영학과 심리학을 접목한 일련의 실험들에서는 공감이 본인과 타인의 차이를 줄여줌으로써 소비자의 니즈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응급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라는 실험에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가족과 충분히 공감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실험 참가자들은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향이 많았다. 즉 그들은 의사 수급(응급실 의사들에게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며 더 많은 수의 의사가 필요하다)이나 응급실 운영(응급실이 더 오랫동안 운영돼야 한다)을 주로 거론했다. 이에 반해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가족과 공감을 시도한 실험 참가자들은 환자의 가족이 겪는 실제 경험을 거론하는 경향이 많았다 (기다려야 한다면 빨리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 의사가 직접 환자의 현재 상태를 설명해줘야 한다).

 

심리학의 공감이라는 개념이 경영학에 접목된 또 다른 예로 어린이의 휴대폰 사용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은 어린이가 성인의 휴대폰을 사용할 때 겪는 문제는 제품의 기능과 관련된 것보다 상황과 관련된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공감을 시도하지 않은 실험 참가자들은 휴대폰의 기능과 관련된 문제점(버튼이 너무 많다, 버튼이 너무 작다, 배터리 충전하는 것이 어렵다)을 많이 언급하는 데 반해 어린이와 공감을 시도한 실험 참가자들은 어린이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점(휴대폰을 떨어뜨린다, 모르는 사람과 통화한다, 응급 전화에 제때 응답하지 못한다)을 많이 지적했다.

 

어린이 입장에서는 기능의 문제보다 실제 사용 상황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평균적으로 공감 그룹은 기능 관련 문제점을 1개 발견할 때 상황 관련 문제점을 1.59개 발견하지만 비공감 그룹에서는 기능 관련 문제점을 1개 발견할 때 상황 관련 문제점을 0.57개 발견했다.

 

공감을 이용한 시장조사 기법

 

공감에 기반한 시장조사 기법은 다양한데 그중에서 제품 구매 또는 사용 상황에서 일어나는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시장기반 인류학적 관찰법(market-oriented ethnographic observation)이 대표적이다.4  기업과 디자이너들은 이 기법을 사용해 소비자가 실제 상황에서 어떠한 소비 관련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특정 패턴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한다. 실제 환경을 관찰함으로써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 소비자의 니즈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은 채 거리를 두고 관찰도구들을 이용해 소비자 행동을 녹화/관찰하는 기계적 관찰법도 있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관찰과 대면 인터뷰를 통해 소비자 니즈를 발굴하고 확정하는 혼합법을 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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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기법을 활용한 시장조사의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일본의 전자회사인 파나소닉(Panasonic)이다. 파나소닉은 젖은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전기 면도기를 개발해 북미에서의 여성 전기 면도기 시장을 개척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46주의 제품 개발 기간 중 첫 2주 동안 시장조사가 행해졌고 이를 위해 여성으로 구성된 인류학자와 제품 디자이너가 투입됐다. 60분에서 90분 정도 소요되는 다양한 인류학적 관찰과 인터뷰가 진행됐으며 각 관찰에서 피험자들은 수영복을 입고 일상적인 환경에서와 같이 면도를 실시했다. 또한 간단한 질문을 통해 면도기 보관 장소, 면도 사용 상황 등과 같이 조사 목적과 관련된 정보가 수집됐고 실험 이후에는 인터뷰를 통해 면도 욕구와 경쟁사 제품 대비 파나소닉 제품에 대한 의견도 수렴됐다.

 

 

 

이러한 인류학적 관찰과 인터뷰의 혼합을 통해 타깃 소비자가 명확해지고 재질과 형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제품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었다. 먼저 면도를 확실하게 하고 싶고 면도를 하면서 생기는 피부 문제에 민감한 피험자들은 나이가 어리고 도심에서 살면서 데이트를 하거나 나이트클럽에 자주 방문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이 타깃 소비자로 결정됐다. 또한 면도기가 미끄럽고 욕조에 떨어뜨리면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걱정이 많이 제기됐다. 이를 통해 파나소닉 연구원들은 일본에서는 좋은 품질을 상징하는 반짝이는 플라스틱이 북미에서는 미끄럽고 부서지기 쉽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을 발견했으며 그 결과 고무 느낌이 나고 더욱 튼튼해 보이는 것으로 제품의 재질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네모 반듯하고 각진 형태를 가진 면도기를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추가로 발견해 <그림1>처럼 유선형으로 개선된 형태의 면도기가 최종적으로 개발됐다.6

 

기존 콘셉트 개발 방법의 문제점

 

공감기법이 기존의 시장조사를 보완하기 위해 쓰인다면 프로토타이핑 기법은 기존의 제품 콘셉트 개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콘셉트 개발은 다양한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더해가는 그룹 브레인스토밍(Group brainstorming)을 통해 진행됐다.7  이러한 방식은 한때 큰 인기를 끌며 실무에서도 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후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그 효과를 의심받게 됐다.

 

많은 사람들은 인기가 없거나, 정치적으로 옳지 않거나, 또는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콘셉트를 제안했다가 타인으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한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열심히 기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게으르게 일한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콘셉트 설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자신의 콘셉트만 계속 반복해서 개선하기 때문에 상호 간에 발전적인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실무에서는 그룹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상호 간 의사소통 없이 개별적으로 콘셉트를 개발한 다음 이를 단순하게 더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8

 

브레인스토밍을 보완하는 프로토타이핑

 

그룹 브레인스토밍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은 프로토타이핑을 이용함으로써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콘셉트의 양보다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법으로서 프로토타이핑이 강조되기 시작했다.9 또한 프로토타입은 콘셉트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때문에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한 팀 구성원들 간에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며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하지 않은 유관 부서로부터는 콘셉트에 관해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점 때문에 콘셉트 개발에 응용되는 디자인 기법으로서의 강점이 부각됐다.10

 

모든 제품은 기능(role), 모양과 느낌(look & feel), 또는 적용(implementation)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갖고 있으며 프로토타입은 이 세 가지 성질을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하나 또는 두 개의 특성을 본떠서 만든 시제품을 말한다.11  각 프로토타입은 자신들이 베껴온 제품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기능에 중점을 둔 프로토타입은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에 대해, 모양과 느낌을 따온 프로토타입은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어떠한 감각 정보를 제공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적용 프로토타입은 제품이 실제 환경에서 소비/사용될 때 어떠한 기술과 부분으로 구동되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프로토타입 기법을 사용한 디자인의 예로 Gyrus ACMI IDEO가 만든 이비인후과용 수술 도구가 있다. 이들은 수술과정을 관찰하고 담당 의사들과 심도 깊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기존의 수술 도구는 쉽게 막히거나, 줄이 꼬이거나, 작동될 때 피곤함을 느끼게 한다는 다양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6명의 이비인후과 의사들과 디자이너들은 그룹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는데 한 명의 디자이너가 주변에 있던 물건들(마커, 필름통, 빨래 집게)을 이용해 <그림2>와 같은 프로토타이입을 만들어서 콘셉트를 설명했다. 이 특정 프로토타입 덕분에 의사들과 디자이너들은 콘셉트를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의사와 환자, 그리고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이 개발됐다.

 

공감 기법과 프로토타이핑의 최신 경향과 비판론

 

최근의 공감 기법은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관찰하고 인터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특정 감각을 증폭하거나(임신한 여성을 경험하기 위해 무거운 것을 배에 착용하기) 차단해(맹인을 경험하기 위해 눈을 감고 여행 코스를 걷기) 소비자의 경험을 직접 취하고 이를 통해 더욱 세밀한 소비자 니즈를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공감 기법을 통해 얻어진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각 소비자 니즈들에 인덱스를 붙이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프로토타이핑도 예전에 비해 더욱 구체화되고 스케일이 커지고 있다. 콘셉트의 의사소통을 위해 제품의 단순 형태만을 요구하던 것에서 벗어나 점차 실제 제품과 비슷한 형태와 무게를 가지고 실제 기능을 하는 프로토타이핑이 요구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제품을 벗어나 비즈니스 전체의 프로토타이핑이 요구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공감 기법이나 프로토타이핑을 사용할 때 실제 소비자의 행동이나 실제 완제품과 최대한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high-fidelity prototyping이라 말한다). 여기에는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특히 각 기법을 사용하는 데 발생하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두 기법이 디자인적 감성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특정 소비자 니즈나 콘셉트가 제품 개발을 위해 선택되는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경영자들에게는 불만 사항으로 제기되고 있다.

 

결론

 

제품 개발은시장 조사와 콘셉트 개발이라는 두 단계로 나뉘어지며 각 단계별로 특유의 디자인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공감 기법을 이용해 직접 표현하지 못한 소비자 니즈를 찾아내며 프로토타이핑을 이용해 품질이 향상된 콘셉트를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 기법들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신제품 론칭의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차후에는 제품개발 이외의 일상적인 경영업무에도 도움이 되는 다양한 디자인 기반의 경영 기법들이 개발되기를 기대한다.

 

주재우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jaewoo@kookmin.ac.kr

주재우 교수는 서울대에서 인문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를, University of Toronto Rotman School of Management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동적 의사결정 심리학을 바탕으로 디자인 마케팅, 신제품 개발, 소비자 행동에 관해서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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