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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tegic Planning

‘초일류, 세계최고, 글로벌, 종합…’ 전략, 미사여구와 잡다한 목표부터 빼라

이동현 | 110호 (2012년 8월 Issue 1)






기업 경영에서 전략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개념도 드물 것이다. 온갖 용어에 전략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그럴 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략, R&D 전략, 재무 전략 등 다양한 경영 활동을 전략이라고 표현하면 왠지 해당 활동이 수준 높게 관리된다는 착각을 유발한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되는 개념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의미하는 바와 의미하지 않는 바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개념이 명확해 질 것이다. 게다가 전략은 경영자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주제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의 조사에 따르면 전략 기획이나 비전 선언문(vision statement)은 지난 10년간 경영자들이 선호하는 경영 기법 중 늘 상위권을 차지했다. 따라서 전략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전략에 대한 인기만큼이나 실제 현업에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소위나쁜 전략(bad strategy)’은 전략에 대한 경영자들의 잘못된 인식이 낳은 총체적인 부실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나쁜 전략의 속성과 원인

 

전략 분야의 개척자이자 대가로 알려진 UCLA 경영대학원의 리처드 루멜트 교수는 2011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원제: Good Strategy Bad Strategy)>에서 좋은 전략을 세우려면 무엇보다 나쁜 전략을 인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책에서 제시한 나쁜 전략의 대표적인 속성들은 전략에 대한 오해가 낳은 심각한 기업 관행들이었다.

 

우선초일류 기업으로 대표되는 미사여구가 나쁜 전략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전략일수록 추상적이거나 근사한 용어들을 늘어놓고 고차원적인 사고의 결과물인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발표하는 전략에초일류’ ‘세계 최고’ ‘종합’ ‘글로벌등의 용어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실제 이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복안을 제대로 표현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 1>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부 한국 공기업들의 비전 및 전략을 정리한 표다. 표에서 주요 전략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미래성장 동력 확보, 글로벌 경쟁력 확보, 고객만족경영, 지속가능경영 등 거창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 전략이 틀린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표현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차별적인 정책들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 1>처럼 일부 공기업의 핵심전략이 그럴듯한 미사여구 나열에 그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홈페이지 내용만 보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한 가지 원인은 사명(mission), 비전, 가치(value), 전략이라는 정해진 틀에 빈칸을 채우는 식으로 전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형식을 활용해서 전략을 만들면 조직의 진정한 문제를 파악하고 기회를 분석하는 골치 아픈 작업을 피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바라는 긍정적인 내용만 담으면 되기 때문에 누구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방식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틀에 박힌 전략 수립은 실질적인 전략을 만들려는 노력을 피상적인 문구로 변질시켜 아무런 효과가 없는 나쁜 전략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둘째, 좋은 전략은 핵심 목표에 자원과 노력을 집중한다. 반면 나쁜 전략은 잡다한 목표와 허황된 목표에 자원과 노력을 분산시킨다. 단순히 해야 할 일(To-Do List)의 목록을 전략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목표와 전략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대담하고 높은 목표를 설정하거나 장밋빛 희망사항을 비전에 담으면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높은 목표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흔히 구성원들의 열정과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지만 풍차를 공격하는 열정의 돈키호테를 전략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사고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점을 파악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전략이 아니라 단지 희망사항을 나열하는 데 그치게 된다.

 

소수의 중요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모든 희망사항을 포함한 목록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 거기에장기(long-term)’라는 명칭까지 부여하면 그 어느 것도 당장 이룰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목록이 될 것이다. 어떤 기업은 12개 전사전략, 30개 전략과제, 그리고 무려 100개 실행과제를 세부 전략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전략들은 자원의 제한으로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들조차도 목록이 실현될 것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방대한 목록이나 희망사항이 전략으로 둔갑한 가장 큰 이유는 경영자가 선택, 즉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어려운 작업들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리더가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내리지 않으려고 할 때 방대한 목록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연관성 없는 개별적인 행동들을 나열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기 위한 계획을 잔뜩 늘어놓고 사정이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천수답 경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면 당장 갈등이 없어 일시적으로 마음은 편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략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들을 검토하고 선택해야 하며 선택된 대안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조직 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하자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주장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나쁜 전략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오히려 회피한다. 한때 미국을 대표했던 초일류 기업이었던 코닥은 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 붐이 확산되면서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매년 20%씩 성장한 반면 전통적인 필름 시장은 15%씩 감소했다. 덕분에 91 190억 달러에 달했던 코닥의 매출액은 2003 130억 달러로 급감했다. 하지만 코닥은 무려 5년이 지난 2003년까지도 이러한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당장 필름 매출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필름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 수치들이 제시됐다.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제일 먼저 개발해 이미 역량을 확보했던 코닥이지만 기존 필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코닥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던 위기를 왜 감지하지 못했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공식화된 계획 시스템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간과한 것이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경영자들은 점점 더 현장에서 멀어지고 현장을 잘 모르는 기획 스태프들이 사업계획을 주도하면서 마치 스태프들이 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기업에서 의사결정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들은 기획 스태프들이 도맡아 작업하게 된다. 그들은 애초 시간과 스킬이 부족한 경영자들을 대신해서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대행했다. 결과적으로 사업의 책임자들은 이들 스태프들이 제공하는 분석 자료를 참조해서 전략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경영진은 점점 더 현장에서 멀어지고 오직 기획 스태프들이 제공하는 복잡한 수치와 분석 자료에 근거해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기획 스태프들이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하면 경영진은 회의를 통해 승인만 하는 식으로 변질됐다.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기획 스태프들이 분석을 도맡았지만 어느새 이들이 제공하는 분석 자료들만 두꺼워졌을 뿐 정작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보고서로 전락했다. 사업 계획이 두껍고 멋진 파워포인트 장표의 경연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됐다. 이제는 사업의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는 주도권을 실제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또한 사업 책임자들은 기획 스태프의 보고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한 생산 현장과 고객의 목소리도 중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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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현dhlee67@catholic.ac.kr

    - (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
    -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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