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ic Communication
편집자주
개인과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협상 능력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는 시대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협상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경쟁의 강도가 치열해 질수록 사회는 ‘불통(不通)’과 ‘분열(分裂)’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소통(疏通)’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과학적 방법론이 절실한 때입니다. 기업 대상 맞춤형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 교육기관인 HGS 휴먼솔루션그룹이 협상 전략과 기술, 갈등관리 등 소통의 과학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파트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 이사를 가야 하는 당신. 맘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다. “이 금액에 계약하시겠어요?” 부동산 중개업자의 질문에 잠시 망설인다. ‘정말 이 집이 최선일까? 지금보다 1000만 원 정도는 깎을 수 있지 않을까? 집 주인에게 도배는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당신에게 부동산 중개업자가 다시 한마디 내뱉는다. “오늘 오전에도 이 집 보고 가신 분 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는 찰나 부동산 중개업자의 전화벨이 울린다. “1003호요? 지금 마침 그 집 보고 있는데… 30분쯤 후에 이리로 바로 오시겠어요?” 중개업자가 전화를 끊자마자 당신이 서둘러 말한다. “좋습니다. 제가 계약하는 걸로 할게요.” 갑자기 다급해진 당신. 이유가 뭘까?
배트나(BATNA)란?
협상 워크숍을 하다 보면 워크숍 참가자들이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저는 대기업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매업체인 대기업에서 갑을 관계라는 걸 무기 삼아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주로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협상이 너무 어려워요. ‘을’이 ‘갑’을 상대로 협상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협상에서 갑과 을이란 없다’는 것. 갑과 을의 관계에서는 힘의 크기가 일방적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갑’이 되고 힘이 없는 자가 ‘을’이 돼서 갑이 을에게 지시하는 게 갑을 관계다. 하지만 협상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다른 사람은 복종하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갑이 을과 ‘협상’을 하고 있다는 건 갑도 무엇인가 을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무리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갑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줄 수 있다면 갑을 관계는 ‘파트너’ 관계로 바뀔 수 있다. 결국 ‘을’ 스스로 자신을 어떤 위치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좀 더 현실적인 다음 답을 들어보라. 두 번째 답은 배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배트나는 하버드대 협상 교수인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가 제안한 개념1 으로 ‘협상이 결렬됐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말한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수박 한 통을 사려고 집 앞 시장에 갔다. 1만5000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당신. 하지만 과일가게 주인은 2만 원을 부른다. 가격이 좀 비싼 것 같아서 다른 과일가게는 없나 살펴보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장에 과일가게가 한 군데밖에 없다. 그래서 당신은 어쩔 수 없이 2만 원을 주고 그냥 그 집에서 수박을 산다. 그렇지 않으면 더 멀리 있는 시장에 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수박 먹을 기회를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바로 옆에 또 다른 과일가게가 있다면 어떨까? 당신은 곧장 옆 가게로 가면 된다. 그리고 그 가게에서 수박을 2만 원보다 싼 가격에 팔고 있다면 그걸 사면 된다. 바로 이것이 배트나의 힘이다. ‘다른 과일 가게’라는 배트나가 있을 땐 2만 원보다 싼 가격에 수박을 살 확률이 높아진다.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약서상에서는 ‘을’이라도 갑 이외의 다른 업체들과 거래할 기회가 많다면 갑인 상대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반대로 아무리 ‘갑’이라도 ‘을’ 말고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갑 행세를 하기 힘들다. 결국 협상에서의 갑을 관계란 배트나가 있느냐, 없느냐로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을’의 위치에서 협상을 잘하기 위해선 배트나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이처럼 배트나는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매우 유용한 도구다. 그래서 프로 협상가들은 협상을 하기 전에 항상 나의 배트나가 무엇인지 연구한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배트나가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한다. 이를 통해 상대가 나와의 협상에 대해 ‘괜찮은 거래구나’, 혹은 ‘놓쳐선 안 되는 계약이구나’라고 인식하도록 만들어 낸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부동산 중개업자와의 협상 역시 배트나 때문에 협상의 틀이 완전히 바뀐 경우다. “다른 사람도 이 집을 탐내고 있다”는 말 한마디가 당신이 빠른 결정을 하도록 만든 셈이다. 기억하라. 협상에서 계약서상의 ‘갑’과 ‘을’은 무의미하다. 배트나가 있는 협상가가 갑이고 그렇지 못한 자가 을이다.
상대의 인식을 바꿀 만한 배트나가 없다면?
배트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협상 워크숍을 할 때도 다양한 실습을 통해 배트나의 힘을 체감하도록 한다. 참가자들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배트나의 중요성을 느끼며 감탄한다. 그런데 꼭 한 명씩 이런 질문을 한다. “배트나가 좋은 건 알겠는데 우리 회사에는 배트나가 없습니다. 그럼 저희에게 배트나는 쓸모 없는 그림의 떡 아닌가요?” 여기에 대한 답은 단호하게 “No”다. 그 이유가 뭔지 다음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미국 텍사스의 휴스턴 전기전력회사가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철도회사 벌링턴 노던 산타페(Burlionton Northern Santa Fe, 이하 BNSF 철도)와 벌였던 협상 상황2 을 보자. 휴스턴 전기전력회사는 발전에 필요한 석탄을 대량으로 구입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철도를 이용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회사 발전소까지 오는 철로는 BNSF 철도가 독점권을 갖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BNSF 철도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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