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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종합

디지털세상에도, 최적의 장소는 따로 있다

박강아 | 108호 (2012년 7월 Issue 1)




1.
디지털 시대와 공간의 소멸 논쟁

기업 활동에 있어 입지는 그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주요 결정 요소다.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Ray Kroc) 회장이 이미 1972년도에맥도날드는 무엇을 파는 회사인가라는 질문에 ‘Location’이라고 대답했던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최적의 입지 요인은 무엇인가? 전통적 입지이론은 생산비용의 최소화 혹은 이윤의 극대화라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적 분석 틀을 바탕으로 교통비나 시장 잠재력 등 유형적 입지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고전주의적 입지론은 포드주의적 대량 생산체제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제조업과는 크게 상이한 문화예술, IT, 바이오 등 지식기반 신산업의 입지경향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입지이론은 기업 간 거래비용, 지역 내 학습역량 등 지역 내에서 고착된 문화/역사/제도적 요인, 관계자산 등 무형적 입지요인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돼 왔다. 이러한 입지이론의 진화과정은 근래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의 등장 혹은 시장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기업의 입지 관련 의사결정 과정상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났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반드시 기업의 입지 의사결정 과정의 복잡성을 증가시켰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및 사이버 공간의 확산 등으로 경제활동의 지리공간에 대한 의존성이 줄어들어 기업의 입지 관련 의사결정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서, 의류, 가구, 농수산품 등의 온라인 자동주문이 가능해져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인터넷이 해결해주는 세상이 됐으며 최근 들어서는 팝업스토어처럼신중한(?)’ 입지 선정 과정을 무시하는 트렌드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기술결정론자들이공간의 소멸을 논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지리공간적 측면에서의 산업입지가 여전히 중요한가 하는 주제도 보다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전통적 공간이론의 진화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고 최근의 변화된 경제환경하에서 지리적 측면의 산업 입지가 기업활동에 갖는 의미를 논의한다.

 

2. 공간이론의 진화

1) 공간과 경제 연구 분야

공간과 관련한 이론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산업 활동의 터전이 되는 물리적 공간에 대해 연구한입지 이론(location theory)’을 보자. 튀넨(Johann H. Thünen), 베버(Alfred Weber) 등 독일 경제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됐던 농업입지론과 공업입지론 등은 경제학을 뿌리로 하고 있지만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지리학적인 요소를 접목했다. 오늘날 상업 입지 논의의 근간이 되는 크리스탈러(Walter Christaller)의 중심지 이론 또한 농업 및 공업입지론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지리학의 한 분야인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은 경제 현상의 공간적 배열이나 농업, 공업, 상업 등 각종 산업의 입지 및 지역 간 분포 등을 다루는 학문 분야로 입지 이론은 이 분야의 근간이다. 경제학의 세부 분야인 도시경제학(urban economics), 공간경제학(spatial economics) 역시 경제학적 분석 틀을 이용해 경제 활동의 공간적 차원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분야는 유사한 핵심 질문을 가지고 출발한다.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역 간에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특정 산업은 왜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가? 또 이 두 분야는 경제학의 한 분야인 동시에 도시의 발생과 확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도시학(Urban Studies)의 세부 분야이기도 하다. (그림1)

 

 

입지 이론은 지역과학(regional science)과도 연관이 깊다. 지역과학은 미국의 경제학자 아이사드(Walter Isard)와 주변 학자들에 의해 1954년에 Regional Science Association이 설립되면서 창시된 분야다. 아이사드는 기존 경제학, 지리학, 사회학 등 개별적인 학문만으로는 현대에 일어나는 인간 활동과 공간 현상과의 관계를 규명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으며 주된 분석 방법으로는 선형계획법, 투입산출모형, 계량경제모형 등이 사용된다.

 

2) 신고전주의 입지이론

입지이론의 고전은 튀넨의 농업입지론을 시작으로 베버의 공업입지이론 이후 뢰쉬(August Lösch), 스미스(David Marshall Smith) 등 학자들에 의해 발전됐고 20세기에 들어서는 피오레(Michael J. Piore)와 세이블(Charles F. Sabel), 스콧(Allen J. Scott)과 스토퍼(Michael Storper), 크루그먼(Paul Krugman), 포터(Michael Porter) 등 경제학자들에 의해신경제지리학’혁신등의 관점이 주목받게 됐다. 크게 두 갈래로 이론의 흐름을 구분 지어 생각해 보면 주로 운송비, 원료비, 노동비, 동력비 등 생산 비용에 주목한 신고전주의의 고전적 입지이론과 집적의 이익과 혁신을 접목시킨 신경제지리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전적 산업 입지론의 기초가 되는 베버의 공업입지론은 기본적으로공장은 생산 비용이 최소인 곳에 입지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공업 생산에 필요한 비용 항목들로는 원료비, 동력비, 노동비와 설비 등 고정자산의 감가상각비, 이자비용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입지의 영향을 크게 받는 비용들은 원료비, 동력비, 노동비로 볼 수 있는데 베버는 이를 기반으로 각각 비용의 중요도에 따라 운송 지향형, 노동 지향형, 집적 지향형 공업 등을 설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시멘트 제조업 등은 원료 취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원료산지 근처에 자리잡아야 한다.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이나 베트남, 미얀마에 많은 제조업 생산기지들이 입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생산 요소 중에서도 베버는 운송비를 가장 중요한 인자로 봤는데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초기 산업 사회에서는 운송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교통수단의 발달과 유통 혁명으로 운송비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현 상황하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또한 베버의 입지 삼각형에서는 원료산지, 소비지가 하나의 점으로 고정돼 있고 경쟁 공장의 입지는 없는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에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림2) 이후 뢰쉬는 최소비용 대신최대수요에 주목한 이론을 전개했고 스미스는 베버의 최소비용과 뢰쉬의 최대수요를 통합한 이론을 제시했다.

 

 

3) 신경제지리학의 태동

비용 최소화와 이윤 극대화를 가장 중요시하는 신고전주의적 입지 이론과 달리()경제지리학은 문화, 관계자산(relational asset), 제도(institution)의 역할 등에 주목한다. 이론의 중심이 바뀐 것은 제조업에서 지식기반경제(Knowledge Economy)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산업의 중심이 제조업과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에서 IT, 문화 콘텐츠, 바이오 등 신산업으로 넘어가면서 창조적 인력의 확보와 이들의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및 지식의 교류, 이러한 환경을 제공하는 터전으로서의지역입지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피오레(Michael J. Piore)와 세이블(Charles F. Sabel)은라는 저서에서 기존 경제지리학과 최초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들은 포드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대량 생산체제가 일본과 독일 등 신흥 강국의 생산체제와는 다르다고 봤다. ‘후기 포드주의(Post-Fordism)’로 이름 붙인 신흥 강국들의 생산체제는 기존 수공업적 생산방식과 포드주의적 대량 생산체계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제도, 관습, 사회적 규범(norm) 등의 지역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역설했다. 스콧(Allen J. Scott)과 스토퍼(Michael Storper)는 지식기반사회 내에서의 다양한 산업 사례를 연구했다. 이들은 시장과 환경의 변화로 산업 내 분업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기업 간 Collaboration, Cooperation, Coordination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4) 발전하는 신경제지리학

신경제지리학에서 지금까지도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산업 클러스터는 이러한 다양한 이론적 기반에서 만들어졌다. 이 분야에서 대표적 학자 중 한명인 색서니언(Annalee Saxenian)은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IT 기업 집적과 네트워크 효과에 주목하면서 실리콘밸리의 1980년대 고속 성장을 설명했다. 동부 Route 128지역의 수직통합형(vertically integrated) 산업 벨트의 형성보다 실리콘밸리의 분산형(decentralized) 모델이 성장에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기업 간 협동(cooperation)과 일상적인 사회적 교류가 발생하고 유지될 수 있는지역이 생산에 있어서의 공간적 단위(Storper, 1997)이며 지역 내 전문화된 기업들의 그룹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유럽의 주요 학자들은 하이테크 기업들이 특정 지역에 모이는 이유로 혁신(innov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역 자체를 하나의 생산체계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연구는 하이테크 업계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지식이며, 따라서 산업 입지의 중요 요소는 지역 내 지식의 전파와 상호 간 배움의 기회(mutual learning)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베델(Bethelt), 마스켈(Maskell) 등 학자를 중심으로 클러스터에서의 혁신 활동을 위해서는 ‘local buzz(클러스터 내에서의 네트워킹)’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local buzz가 강화된 형태의 여러 개 클러스터들이 서로 연계돼 지식을 주고받는 형태의 ‘global pipeline(클러스터 간 네트워킹)’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이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렇게 발전·계승돼온 신경제지리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학자 중 하나는 국제 교역 관련 이론가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다. 그는 산업의 집적, 지역 간 격차 등을 교통비, 수요분포, 수확체증(규모의 경제)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모델로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크루그먼은 미국 내의 다양한 제조업의 입지변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피드몬트 지역의 카펫 산업, 글로버스빌의 가죽장갑 제조 산업, 시카고의 농기계 산업 등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 특정 지역에 집중하고 이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하게 된다. 혁신적인 산업뿐 아니라 일반적인 제조업 또한 집적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면서 크루그먼은 경제학에서의공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피력하면서 ‘New Economic Geography’라는 용어를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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