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 Air 경영
글로벌 기업의 위기는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어제의 밴치마킹 대상, 유망하다고 했던 사업이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한 세상이 됐다. 미국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워졌던 미국의 태양광 업체는 파산상태에 직면했다.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나선다. 유망사업에 대한 이야기에 경청하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으려 한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이 정보가 막힘없이 흐르는 세상에 나만 아는 블루오션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설혹 있더라도 신기루처럼 쉽게 사라져 버릴 것이다. 유망하다고 했던 곳에는 기업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더 이상 유망하지도, 차별화되지도 않는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실낱 같은 좁은 영역에 너무 많은 기업들이 몰려 숨이 막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지금의 사업 환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비유를 해보자.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열대지방에서 우기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초식동물들은 신선한 풀들로 다음 세대를 먹이고 강물은 넘쳐나 물고기들도 풍요를 누린다. 그런데 기후가 건기로 바뀌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면서 생명체들은 혹독한 생존 경쟁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동물들은 신선한 풀을 찾아 이동할 것이고 물고기들은 더 깊은 물웅덩이로 모여들 것이다. 건조한 날이 길어질수록 작은 웅덩이에서 좀 더 크고 깊은 웅덩이로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이 시기 똑똑한 악어들은 좀 더 깊은 웅덩이에 진을 치고 모여드는 물고기를 사냥한다. 위기를 피해 더 좋은 곳을 찾아갔으나 모두가 모여드는 바람에 더 이상 나만의 낙원이 아닌 곳이 됐고 오히려 위험한 곳으로 변해 버렸다.
깊은 웅덩이의 역설인 것이다. 지금의 사업 환경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기업들은 미래의 유망 분야나 사업모델로 몰려든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경쟁자들로 인해 사업은 금방 레드오션으로 변해버려 오히려 신사업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블루오션의 역설이 돼 버린 것이다. 마치 좁은 방에 사람들이 넘쳐나면 공기가 탁해지듯 모든 기업들이 유망하다고 하는 시장에 모여들면서 시장은 숨이 막히는 매력이 없는 곳으로 변한다.
시장이 커졌으나 막상 다가가 보면 너무 쪼개져 있거나 이질적이어서 매력도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흔히 지금 글로벌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로 +30억 명으로 이뤄진 새로운 시장의 형성을 이야기한다. 새로이 편입된 30억 명의 거대 신흥시장이 있다는 이야기다. 분명히 숫자로서는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 신흥시장은 선진시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구매력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크지만 단위당 부가가치는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특징은 전체 규모는 커 보이지만 차근차근 들어가 보면 너무 많은 이질적인 시장군들이 혼재돼 있다는 점이다. 소득별 차이도 심하고 지역별, 인종별, 종교별 차이도 크다. 시장이 균질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만큼 시장에 접근하는 비용이 크다는 이야기다. 결국 1인당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는 선진시장에 비해 낮고 시장의 균질도는 크게 떨어진다.
흔히 농지를 사야 한다고 하면 비옥한 곳을 먼저 선택하고 점차 단위당 수확량이 떨어지는 척박한 지역을 구매하려 할 것이다. 새로운 사업을 할 때도 그렇고 투자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단위당 수확량이 높은 곳이 먼저고 점차적으로 수확량이 낮아지는 곳을 선택하게 된다. 지하지원의 개발도 마찬가지다. 석유나 석탄을 채굴할 때도 우선 경제성이 높은 곳, 비용이 낮은 곳을 선택하게 된다. 선진시장이 전자의 경우라고 하면 새롭게 형성되는 개도국 시장은 품위가 낮은 자원의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결국 요약해 보면 기업들은 가뭄의 악어 웅덩이처럼 숨 막히게 엉켜 생존경쟁을 하고 있고 시장도 크기는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단위당 채산성이 낮거나 쪼개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들이 쉽게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기 어려운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숨이 가빠지는 환경으로 변했다. 희박한 공기, ‘Thin Air’의 시대가 된 것이다.
Thin Air란
Thin Air에서 Thin의 의미는 단위당 투입 대비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시장 환경을 말한다. Air는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런 현상이 생겨나고 모든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즉 고산지역으로 올라가면 공기가 희박해 지듯이 우리 기업들이 누릴 수 있는 환경과 시장이 주는 편안함이 점차 소멸된다는 의미다. 우리가 평지에 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숨 막힘이 생겨나고 있다. 고도가 높아지면 대개의 경우 아무리 건강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고산병을 겪게 된다고 한다. 산소의 희박함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건강한 기업도 Thin Air 상황의 경쟁에 몰리면 고산병을 겪듯 무기력과 환경대응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고 이것이 위기의 시발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IT화로 인한 정보의 흐름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정보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데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시간의 장벽도 없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새로운 아이디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파된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혁신에 목마른 기업들도 많아진다. 마치 건기가 닥쳐 물이 있는 웅덩이로 모든 동물들이 달려들 듯이 이들 기업도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한다. 비슷한 사업들과 아이디어가 넘쳐날 수밖에 없고 이는 또 다른 숨 막히는 경쟁을 만들어 낸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감소하면서 나만이 아는 정보는 거의 없어진다. 정보의 왜곡이나 불균형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점차 줄어든다. 세상은 점차 투명해지고 빨라지게 되면서 Thin Air화를 가속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동성의 문제다. 돈과 사람, 그 속에 있는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세상을 넘나들고 있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투자할 사람들은 많다. 사람을 모으는 것도 과거 어느 때보다 쉽게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세계화가 가장 큰 몫을 했다. 오늘날 산업의 특징은 범지구적인 자원의 동원과 배치라 할 만큼 전 세계적인 단위로 움직인다. 문제는 여기에 앞서 언급한 IT가 덧붙여 지구 단위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계곡의 빠른 물살처럼 일순간에 모든 것이 바뀔 만큼 혁신의 변화가 빠르다. 때문에 유망하다고 하는 것들에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기업들이 투자하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손쉽게 모방되거나 변형된다. 혁신성이나 독점적 지위의 유지에 의한 가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은 희소성의 소멸이다. 희소성은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다. 희소성만 있다면 다소 비효율적이고 경쟁력이 없는 기업도 장기간 안정적인 사업영위가 가능하다. 통상 규제, 기술, 자원의 독점 등 다양한 요소가 희소성을 만들어 낸다. 희소성이 있다는 것은 공급은 제한될 것이고 이로 인한 진입장벽이 높다는 의미다. 그런데 문제는 규제의 제거로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거나 기술혁신으로 기존 방식을 우회하는 것이 가능해 이런 희소성이 점차 소멸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방송은 전통적으로 주파수 자원의 희소성에 근거해 설계돼 오고 있는 규제 산업이다. 당연히 사업권 자체가 수익을 의미한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은 전파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채널의 유한성을 상당 부분 극복하게 한다. 또 기존의 방송방식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 준다. 바꾸어 말하면 과거와 같이 단순히 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수익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의사, 변호사, 의사 등도 마찬가지다.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들 직업군이 누리던 희소성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인위적으로 Thin Air 환경을 막거나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IT는 더욱 발달해 막힘없이 아이디어가 전 세계로 유통될 것이며 세계화는 더 진전돼 사람과 돈의 흐름은 왕성해 질 것이다. 희소성을 담보했던 기술적 한계나 규제와 같은 장치들은 점차 소멸되고 그 자리를 치열한 경쟁자들이 대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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