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시장개황
인도를 ‘Next China’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표현에는 12억 명이 넘는 거대한 인구가 지닌 잠재력을 바탕으로 쾌속성장을 해온 중국과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이란 기대가 반영돼 있다. 광둥성의 선전(深圳)과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가 개방 이후 불과 10년 만에 고층 빌딩숲을 이뤘듯 델리, 뭄바이 인근의 첨단 기업단지가 마천루로 변모해갈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 인도는 최근 수년 새 연평균 8∼9%대의 성장세를 구가하면서 잠재력을 세상에 드러냈다. 인구 구조나 외국 자본의 관심, 정부의 성장정책 등을 종합해볼 때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과 가장 닮은 나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인도를 합쳐 친디아(Chindia)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오류와 편견의 함정이 있다. 정작 인도인들은 친디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인도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에게 ‘향후 인도도 중국처럼 성장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성장을 향한 목표는 같으나 걸어야 할 길은 다르다”고 말한다. 인도를 한국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됨을 뜻한다.
1. 인도는 ‘Next China’가 아니다
“중국에선 일사천리로 사업이 진행되는데 인도는 왜 그리도 느린지….”
“중국보단 느리지만 인도도 연평균 8∼9%씩 성장한다. 내수시장이 크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아도 매우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할 것이다.”
이처럼 인도를 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은 비관에서 낙관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현지에서 사업을 벌이는 기업인들조차 종사하는 업종에 따라 미래 사업전망이 갈린다. 자기 이해관계가 걸린 부분만을 들여다 보니 그럴 것이고 대국 인도를 속속들이 파악하기엔 그간의 교류역사도 너무 짧다.
가장 심각한 오류는 중국과의 교류경험에서 나온다. 시차는 있지만 인구대국이면서 저개발 경제에서 개혁개방을 시작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눈부신 성장세를 목도하면서 인도 경제도 중국이란 거울을 통해 관찰되고 평가되고 전망된다. 그런데 대개 그 전망이란 것들이 인도가 중국과 비슷하게 고도 성장해 언젠가는 중국마저 넘어설 것이란 추세적 낙관들이 많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은 경제구조는 물론이고 더 구조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역사, 인종, 종교 등 모든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개혁개방 초기 경제여건이나 정책기조가 판이하며 지금까지의 개방 성과나 산업구조 변화 양상도 크게 다르다. 당연히 외국기업의 사업환경에서도 큰 차이가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인도를 ‘넥스트 차이나’로 간주하는 자세는 인도 사업에서의 실패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인도는 중국과 어떻게 다를까.
①사회주의 시장경제 vs. 자본주의 허가경제
중국 개혁개방 실험은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건설’이란 목표로 귀결됐다. 중국 사회주의가 포기하지 않는 대원칙은 공유제(共有制)다.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는 토지, 국가기간 산업 분야 핵심기업은 국유나 공동소유(集體所有)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
반면 인도는 무갈(Mughul) 왕국의 뒤를 이은 영국의 식민통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가 독립 초기 식민지 유산을 척결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소위 ‘허가경제(License Raj)’ 체제를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식민지 수탈에 기여했던 자본가 세력에 대한 반동으로서 정권을 장악한 초대 수상 네루(Jawaharlal Nehru)와 집권 국민의회당의 정치경제적 성향과 관련이 깊다. 네루는 명문가 출신의 영국 유학파였지만 부농, 산업자본가 등 식민지 기득권 세력과 궤를 달리했다. 인도 정부의 경제에 대한 계획과 통제는 IMF 구제금융을 받고 개혁개방 노선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1991년까지 지속됐다. 1991년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을 표명한 이래 인도의 허가경제는 서서히 완화돼 점차 자유시장 경제체제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②중앙권력 vs. 지방권력
중국 헌법은 중앙의 통일적인 지도에 따라 공산당이 국가의 행정사무를 지도한다.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지방 말단 행정단위까지 예외가 없다. 반면 인도는 지방분권과 자율성이 센 편이다. 과거 네루 정권이 집권했던 1964년까지만 해도 중앙정부의 파워가 지방 정부를 압도했다. 그러나 네루 사후 제 정파는 이합집산을 거듭해 1970, 1980년대 들어 종교, 인종, 카스트(계급) 등에 기반한 다당제 지역기반 세력으로 재편됐다. 그 결과 지금은 28개 지방정부의 권한이 크게 신장됐다.
특히 세제(稅制)에서 그 단면이 드러난다. 중앙정부가 조세항목의 세율을 정해 국가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하는 중국과 달리 인도 지방정부는 조례를 통해 적용세율에 차등을 둘 수 있다. 지방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도의 외자기업들에는 큰 불편사항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인도 지방정부의 자율성은 재정면에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인도는 정부수입 중 중앙정부 수입 비중이 30%대에 그치고 지방교부금에서도 15∼2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정 파워가 약한 중앙정부가 지방권력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도의 지역성이 중국보다 더욱 심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인도의 지방 언어는 수십 개에 이르고 인종별 거주분포도 뚜렷하게 나뉜다. 인도 대륙 전역에 권력을 행사했던 마지막 왕조가 이슬람 왕조였기에 전통 힌두교 사회와 이슬람 사회의 갈등은 심각하다. 두 종교사회의 점유율은 현재 각각 80%, 13%대에 이른다. 인종, 언어, 종교가 한데 융합되지 못한 채 갈리면서 인도의 지역성은 모자이크 스타일처럼 경계가 비교적 뚜렷하다. 이 같은 지역성은 외자기업에도 인도를 단일 시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지역별로 세분화(Segmentation)하고 개별적 최적화 시장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의미다.
③인구 보너스 소멸 vs. 개화(開花)
마오쩌둥(毛澤東)은 공산화 직후 ‘사람이 많을수록 역량이 커진다(人多力量大)’란 슬로건 아래 출산장려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인구폭발을 경계해 1자녀 정책이 국가 정책으로 자리잡아 강도 높은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했다. 고령화돼가는 현 추세대로라면 중국은 머지 않아 부양인구 비율이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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