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enture Report 3 혁신 가속화 방법론

사람•연결망•보상이 빠른 혁신 낳는다, BBC처럼…

96호 (2012년 1월 Issue 1)

 
 
 
 
‘38년→13년→4년→3년→2년’
라디오가 처음 발명되고 5000만 명이 사용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8년이다. TV는 시장에 나온 지 13년 만에 50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기술의 확산 속도 측면에서 TV가 라디오보다 3배 정도 빨랐던 것. 사용자 5000만 명을 넘어서는 데 인터넷은 4년, 아이팟(iPod)은 3년, 페이스북은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혁신(innovation)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21세기 정보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 사회에서 혁신은 사업 성공의 필수요소다. 한국 기업들에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혁신을 가로 막는 장애물을 뛰어넘고 빠른 혁신으로 성공 고지에 신속하게 오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혁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보고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을 뛰어넘는 신속한 혁신의 비결을 소개한다.
 
똑똑한 사람이 더 창조적이다?
액센츄어는 혁신과 관련해서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몇 가지 이야기들을 간추려봤다. 첫째, ‘똑똑할수록 창의적’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능지수(IQ)와 창의성의 상관관계는 IQ 120 정도까지는 유의미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면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120 이상의 IQ를 갖고 있다고 해서 더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둘째, ‘젊을수록 더 창의적이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나이와 창의력은 큰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많이 갖고 있는 전문가일수록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전문적인 만큼 기존 틀이나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는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셋째, 혁신이 몇몇 전문가나 창조적인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상당수의 ‘위대한’ 혁신이 제품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나 고객과 같이 혁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나 제안에서 시작했다.
 
넷째, 혁신은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실패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모든 혁신은 좋다’는 생각이다. 꽤 많은 혁신 아이디어가 시장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사라졌다. 고객이 아닌 기업이나 생산자의 눈에서 내놓은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혁신에는 나이도, 지능지수도, 전문성도 크게 중요치 않다. 기존의 제품이나 아이디어와 완전히 달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고객의 눈높이에서 조금이라도 새롭고 편리하고 눈에 띄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면 훌륭한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혁신이 이렇게 간편하고 단순하다면 유익한 혁신 아이디어나 제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액센츄어가 북미와 유럽 기업의 고위간부 600명을 대상으로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에 대해 물었더니 응답자의 45.1%가 ‘기존 제품 생산 고수’를 꼽았다. 42.8%는 ‘단기 성과에 대한 집착이 혁신’을 가로막는 전형적인 장벽이라고 답했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 모델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존 제품의 생산 라인을 확장하는 데 투자한다. 혁신 아이디어에 따라 장기계획을 세워 투자하느니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에 투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시장을 개척하기보다 성공한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발 빠르게 따라가며 이익을 남기는 데 익숙했던 한국 기업의 성장 역사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보수적인 동양 문화와 위계질서, 수동적인 태도, 부실한 보상체계 등도 혁신의 걸림돌이다. 혁신을 통해 성공궤도에 오르려면 이런 근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빨라지고 다양해지는 혁신 VS 갈수록 목소리 커지는 고객
기원전 시대에 ‘혁신’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철이나 유리 개발, 계산기 발명 등 12가지에 불과했다. 이후 1000년경까지는 종이, 증기, 도자기 등 8가지, 1600∼1700년 사이에는 망원경, 현미경, 진공펌프 등 17가지 정도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발명에 포함됐다. 1800∼1900년 사이에는 60가지, 1900∼2000년 사이에는 수백 가지의 혁신적인 제품이 등장했다. 앞서 살펴본 라디오, TV, 인터넷, 페이스북 등의 사례처럼 혁신적인 발명품의 숫자만큼이나 혁신 기술을 이용하는 확산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의 목소리도 갈수록 중요해져 혁신 과정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의 산악 자전거를 들 수 있다. 산악 자전거는 큰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 아니다. 1980년대에 자전거 타기를 즐기던 한 아마추어가 몇 년에 걸쳐 산악 자전거를 만든 뒤 직접 자전거 제작 사업에 뛰어든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10년 뒤 대기업이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산악자전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현재 미국 사람들이 타는 자전거의 65%가 산악 자전거다. 개인 컴퓨터용 공개 운영체제(OS)인 리눅스 역시 사용자들이 함께 만들어 간 대표적인 혁신 제품 가운데 하나다. 수천 명이 리눅스 개발에 참여했다.
 
대기업들도 혁신 과정에서 고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객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심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 앞서가는 혁신 기업들은 이미 고객과 더불어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구글은 2002년 문을 연 ‘구글 랩(google labs)’을 혁신의 산실로 활용하고 있다. 구글 랩을 통해 사용자들이 다양한 제안과 불만을 내놓으면 구글은 고객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구글 맵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구글의 서비스 가운데 18가지가 구글 랩에 올라온 사용자 아이디어에서 발전한 것이다. 구글은 지금도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시험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05년부터 고객과 소통하기 위한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놓고 있다. 이 사이트(the Microsoft Connect site)를 통해 올라온 의견을 참조해 9만여 가지의 제품 결함을 수정했고 7000가지가 넘는 아이디어를 제품 제작에 활용했다. 이 밖에도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고객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품 생산과 서비스 과정을 개선하는 데 고객이 직접 참여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시대가 열린 것. 크라우드소싱은 군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rcing)의 합성어로 군중에게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아웃소싱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고객 눈높이에 맞춘 혁신을 일궈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성의 기업 인터넷 블로그(corporate web blog)나 LG전자의 고객 대상 블로그, 현대자동차의 커뮤니케이션 도구(communications tool) 등이 그 예다. BC카드는 신용카드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의견을 듣기 위해 고객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연다. 현대백화점은 고객들의 최신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고객들로부터 ‘유행 보고서(trend report)’를 받아 활용한다.
 
 
달라진 혁신 모델… 회사의 혁신 정도 파악
전통적인 혁신 모델은 ‘선형 모델(linear model)’이다. 새로운 발견과 평가를 거쳐 혁신적인 아이디어라고 판단하면 상용화 계획을 세운다. 이어 실제 상용화가 가능한지 판단을 거쳐 시험적으로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만들어 고칠 점이 없는지 따져본다. 그런 뒤에 상용화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사용자 의견 등을 모아 제품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친다.
 
처음 아이디어 발견 단계에서 이용 후기를 모으는 단계까지 보통 몇 달에서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최근의 혁신 모델은 혁신 과정의 주체들이 거미줄처럼 서로 이어진 ‘그물망 모델(networked model)’이다. 기업은 물론 소비자, 공급자, 동업자, 정부 연구소, 벤처회사, 가상 네트워크 등 모든 관련자가 실시간으로 연결돼 혁신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아이디어 채택에서 상용화까지 걸리는 시간도 빠르면 몇 주, 길어도 몇 달을 넘지 않을 만큼 신속하게 이뤄진다. (그림 1)
 
 
하지만 신속한 혁신 모델을 활용하려면 먼저 ‘우리 회사가 얼마나 혁신적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회사가 혁신이 많이 이뤄진 회사와 같은 방법과 수준으로 혁신에 나선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어떤 병에 걸렸느냐에 따라 치료법이 다른 것과 같다. ‘혁신 성숙도(innovation maturity)’를 △1단계: 예측하기 어려운(unpredictable) 혁신 △2단계: 검증된(qualified) 혁신 △3단계: 다듬어진(disciplined) 혁신 △4단계: 빠르고 효과적인 혁신 △5단계: 시장 주도적인 혁신 등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림 2) 혁신 성숙도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이익과 예측 가능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즉,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혁신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회사의 혁신 성숙도를 따져보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혁신전략, 아이디어 소싱과 배양, 자원 및 실행 관리, 혁신 수준과 속도 등을 들 수 있다.
 
 
빠른 혁신을 가져오는 3가지 비밀 열쇠
회사의 혁신 정도를 파악했다면 그 다음은 자신의 위치보다 더 높은 단계의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혁신 성숙도 평가 기준을 따라 좀 더 빠르게 다음 단계의 혁신에 이를 수 있는 3가지 비밀 열쇠가 있다. 3가지 열쇠는 사람 수, 연결 마디(connection nodes), 보상 체계다. (그림 3)
 
 
이 3가지 열쇠가 어떻게 혁신 속도를 빠르게 하는지 살펴보자. 빠른 혁신을 가져오는 첫 번째 비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혁신 과정에 참여하느냐’다. 혁신에 나서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혹은 자신의 회사에게) 물어보자. 얼마나 많은 회사 사람들이 혁신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회사의 혁신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외부 조직은 어디며 얼마나 되는가? 고객들이 혁신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이런 물음에 ‘혁신에 참여하고 있다’는 답변이 저조하다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최대한 많은 회사 사람들과 외부 조직의 참여가 빠르고 효과적인 혁신의 필수조건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혁신 과정에 고객들이 참여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 네트워킹, 즉 연결 마디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다양한 협업 도구(collaboration tools)와 소규모 인터넷 사이트, 블로그, 워크숍이나 포럼 등이 모두 중요한 연결 마디가 될 수 있다. 혁신 과정에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 그 연결고리는 얼마나 튼튼한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개발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도 빠른 혁신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혁신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는 사람도 계속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혁신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무엇인지, 어떤 보상이 사람들을 혁신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는지 등을 세밀하게 연구해 조직원들을 혁신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영국 BBC는 이러한 비밀 열쇠를 잘 활용해 빠른 혁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사업 라인, 시청자, 기업, 조직 구조 등 4개 분야에서 35개 혁신 전략을 세운 뒤 빠른 혁신으로 가는 3가지 비밀 열쇠를 꺼내 들었다. 110명의 고위간부와 100명의 직원, 15개 이상의 공급업체, 1000명이 넘는 수용자가 혁신 과정에 참여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과 유기적인 연결망을 유지하며 공동작업을 벌였고 BBC 인터넷 사이트의 블로그에 회사의 전략을 공개한 뒤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모았다. 누가 혁신 과정에 기여했는지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릴 뿐 아니라 혁신의 품질, 영향, 과정 등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성과에 맞게 보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빠른 혁신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지금 우리 회사의 혁신 수준은 어디에 와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낸 뒤 효과적인 협업을 거쳐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사람들 스스로가 혁신에 나설 수 있는 효과적인 ‘당근’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혁신 과정 내내 끊임없는 점검과 관찰, 집중이 필요하다.
 
 
닉 테일러 액센츄어 코리아 테크놀로지 대표 nick.j.s.taylor@accenture.com
필자는 액센츄어 코리아 테크놀로지 대표로 재직 중이며 기업의 시스템 통합(SI), IT전략/인프라/보안(ISIS), 어플리케이션 아웃소싱(AO), 첨단 시스템 및 테크놀로지(AS&T) 서비스와 부산 소재 코리아 딜리버리 센터를 통한 아웃소싱을 총괄 담당하고 있다. 영국에서 전략적 IT 효과(SITE) 및 인프라 컨설팅(IC) 부문 사업을 총괄하는 등 15년간 40여 개 글로벌 기업의 IT 조직·프로세스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총괄 지휘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