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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모형 스핑클 9

세상을 쪼개라, 새 시장이 드러난다

신병철 | 78호 (2011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놀라운 통찰로 표면 아래의 진실을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10년간 통찰력 분야를 연구한 신병철 WIT 대표가 8000여 개의 사례를 분석해 체계화한스핑클모형을 토대로 기업인들의 통찰력을 높이는 실전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아무리 애를 써도 해법이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단순히 둘로 나눠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조금 오래된 얘기지만 하이트맥주가 대표적 사례다. 하이트맥주는물은 가려 마시면서 맥주는 왜 가려 마시지 않습니까?” “150미터 지하에서 뽑아낸 천연 암반수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1993년 시장에 출시됐다. 당시까지는 맥주 시장에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물을 핵심 차별화 포인트로 강조함으로써 소비자의 생각을 깨끗한 물로 만든 맥주와 그렇지 않은 맥주로 분리했다. 그 결과 소비자 인식 상에 2가지 맥주가 존재하게 됐다. 소비자는 이 중 어떤 맥주를 마실까? 당연히 깨끗한 물로 만든 맥주를 선택했다. 이를 통해 수십 년간 OB맥주가 지배해온 대한민국 맥주시장에 변화가 시작됐다.

아주 공공연하게 드러내놓고 분리의 관점을 제안한 브랜드도 있다. 삼보 컴퓨터의드림시스 체인지업이다. 커뮤니케이션 문구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두 가지 컴퓨터가 있다. 안 바꿔주는 컴퓨터, 바꿔주는 체인지업”. 이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으로 컴퓨터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다시 2가지로 재구성됐다. “바꿔주는 것을 사야 하나, 안 바꿔주는 것을 사야 하나?” 이 캠페인으로 1998년 당시 절대적 열위에 있던 삼보컴퓨터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분리는 대단히 통찰적인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2가지로 분리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사람이 지각하는 대부분의 범주화 역시 2가지로 구분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아군과 적군, 나와 너, 흑과 백, 전진과 후퇴, 사랑과 증오, 결혼과 이혼…. 사람은 왜 세상을 둘로 구분하는 것일까?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지적으로 과다한 자원을 쓰는 것을 매우 싫어해 꼭 필요한 만큼만 머리를 쓰려 한다. 이를절약의 원칙(principle of parsimony)’이라고 하는데, 세상을 간명하게 이해하려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몇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

크록스 - 신발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신발이 있다. 예쁜 신발, 그리고 편한 신발. 왜 예쁜 신발은 편하지 않고 편한 신발은 예쁘지 않을까? 여성 하이힐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유행인 킬힐을 비롯해 기하학적 디자인의 하이힐은 보기에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높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걸을 때 얼마나 불편할지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짐작이 간다. 신발은 원래 기능 제품이다. 발을 보호하고 따뜻하게 하고 편하게 하는 것이 신발의 주된 목적이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점점 더 고급소재를 쓰기 시작했고 브랜드와 스타일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가격도 비싸졌다.

그런데 디자인과 고기능성을 향해 치닫던 신발시장에 엉뚱한 제품이 하나 등장했다. 바로 크록스 신발이다. 이 신발은 예쁘지도 않고 기능성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편리성과 경제성은 매우 높다. 패션 소품으로 간주되던 신발 시장에 하나의 충격이 등장한 것이다.

앞부분은 불룩 튀어나와 있고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바람도 솔솔 드나든다. 디자인은 촌스럽고 소재도 싼 고무다. 이 제품은 오직 싸고 편한 신발을 지향한다. 한 번 사서 신다가 마음에 안 들면 버리면 그만이다. 크록스는예쁜 신발 아니면 편한 신발이라는 기존 틀을 깨고부담스러운 신발 vs 싸고 편한 신발이라는 새로운 이분법을 만들어냈다. 신발의 오래된 상식을 재정립한 것이다. 크록스는 신발을 처음 내놓은 2003년 첫 해에 고작 120만 달러어치를 팔았지만, 2008년에는 무려 8 500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단기간에 700배가 넘는 성장을 이룬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유명인들까지 이 신발을 심심치 않게 신고 다니며 더욱 유명세를 탔다. 크록스는 무엇을 한 것인가? 소비자의 인식에 새로운 분류기준을 제시했다. 

 


스톨리치나야 보드카 - 우리가 진짜 러시아 산이다!

스톨리치나야 보드카도 전형적인 분리 전략을 활용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자 머릿속에 간단명료하게 기억시키고 놀라운 성과를 거둔 제품이다. 이 브랜드는 제품의 다양한 속성 중 원산지를 이용해 소비자 인식을 둘로 나눴다. 원산지는 소비자가 구매 결정을 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다. 같은 소니 제품이라 하더라도 일본에서 만든 것과 중국에서 만든 것은 신뢰성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원산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다.

그렇다면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보드카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게 좋을까? 당연히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게 더 좋을 거란 인식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국에서 판매되는 보드카는 실제로는 미국에서 제조됐지만 이미지는 모두 러시아산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대개 보드카 이름은 사모바르, 스미르노프, 울프슈미트, 포포브, 니콜라이 등 러시아 혈통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보드카를 살 때 어디서 제조됐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사람들이 전체 구매자 중 과연 몇이나 될까? 이름 자체로 러시아산처럼 보이는 데 굳이 이를 의심해 제조 원산지가 어디인지 따져 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때 스톨리치나야 보드카는 전형적인 분리 전략을 썼다. 자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다른 브랜드들과의 이미지 분리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스톨리치나야 보드카의 광고 슬로건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산 보드카 대부분이 마치 러시아에서 제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사모바르: 펜실베이니아 주 스킨리에서 제조. 스미르노프: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제조. 울프슈미트: 인디애나 주 로렌스버그에서 제조. 스톨리치나야는 다릅니다. 진짜 러시아산입니다.” 물론 병 상표에도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제조라고 큼지막하게 표시했다.

이 전략은 자사의 장점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며 소비자 머릿속에 인식됐던 보드카 시장을 둘로 갈라놓았다. 소비자가 몰랐던 경쟁사 정보를 제공해 시장 선도자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후 자사 제품의 특징을 강조했다. 재포지셔닝 전략으로 효과를 얻으려면 소비자의 마인드에 경쟁사 상품에 대한 변화를 일으킬 그 무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자사 상품이 아니라 경쟁사 상품에 대해서일수록 좋다. 스톨리치나야처럼 소비자가 몰랐던 것을 환기해 줌으로써 이 정보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스톨리치나야는 러시아식 보드카 이름으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착각, 즉 스큐드(skewed)에 빠져 있을 때 자사 제품의 원산지가 진짜 러시아임을 밝혀 다른 미국산 제품들과 경쟁 영역을 분리했다.

이 내용이 소비자에게 알려질수록 소비자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제품만 남게 된다. 러시아산 보드카와 러시아 짝퉁 보드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대성공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분리가 가능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사례다.

분리에 대한 소비자 심리의 이해

둘로 나누는 것은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통찰을 얻는 데 아주 강력하며 효과적인 방법이다. 왜 그럴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의 조직화(information organization)를 이해하는 게 좋다. 정보의 조직화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스티븐 그레이서와 레이먼드 바우어가 함께 한 연구에 의하면, 소비자는 1 1500여 개의 광고에 노출된다고 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평균적으로 76개만을 지각하고 약 12개 정도를 기억한다고 한다. , 전체 광고 중 0.8%의 광고만이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광고는 정보처리 과정이 일어나기도 전에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게 된다. 1500개의 광고 중 12개는 기억에 저장되고 나머지 1488개는 스쳐 지나갈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의 조직화(information organization)를 이해해야 한다. 외부의 정보를 접했을 때 일어나는 정보의 조직화는 크게 두 가지 단계를 거치며 일어나게 된다. 하나는 범주화(categorization)단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보의 통합(integration)단계이다.

먼저 범주화 단계를 살펴보자. 범주화는 서로 비슷한 정보를 하나의 구성 단위로 묶어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지식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돈하고자 하는 본능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매우 순간적이며 거의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 이를 카메라로 분류하든 컴퓨터 관련 제품으로 분류하든 양단간 결정을 내린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이렇게 범주화함으로써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다. 정보의 통합은 범주화된 정보를 통합해 장기기억으로 저장시키는 단계다. 예를 들어 새로 나온 디지털 카메라의 세부 내용을 살펴본 후,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지식구조와 통합하는 것이다. 만약 새로 나온 디지털카메라가 더 고급이라면 고급의 위치에 놓을 것이고, 특이한 속성이 있다면 이것을 디지털 카메라의 지식구조 안에서 통합하는 것이다. 이 두 단계는 논리적으로는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외부의 모든 정보는 이 두 단계를 거쳐 발생한다. 이때 범주화되거나 통합되지 않은 정보는 모두 버리게 된다. ,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범주화와 통합의 과정 안에 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시장을 둘로 구분하는 게 효과적이다. 시장을 둘로 구분하면 이러한 범주화와 통합의 과정을 임의적으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논의한바꿔주는 컴퓨터 vs 안 바꿔주는 컴퓨터의 범주화를 임의적으로 유도하면, 소비자는 이를 중심으로 컴퓨터를 재범주화(re-categorization)하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정보를 통합하게 된다. 이때 일어나는 강압적인 범주화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기억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이전에는 없었는데 임의적으로 발생하는 기억체계를 임시 기억 범주(ad-hoc category)라고 한다.

시장을 둘로 나눈다는 것은 이러한 임시 기억 범주를 점차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과 같다. 이 임시 기억 범주는 그 자체의 기억 연결고리를 갖게 되고, 이에 따라 더 높은 기억률을 확보하게 된다. 앞서 1500개의 광고 중 겨우 12개만 기억된다고 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12개의 광고만이 임시 기억 범주를 만들었고 나머지는 이에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자적인 임시 기억 범주를 갖게 되면 정보를 찾기 쉬워지며, 기억률이 높아지고, 저장된 내용을 인출하기도 쉽다. 다시 말해, 시장을 둘로 나누면 임시 기억 범주를 더 잘 만들 수 있고, 그에 따라 정보의 통합이 수월해지며, 기억률이 높아지고, 선호도가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시장을 둘로 나누는 게 효과적이다.

통찰이란 표면 위의 현상이 아니라, 표면 아래의 진실을 발견하는 힘이다. 이때 이원화는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게 된다. 소비자로 하여금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볼 수 있게 해주면 이해가 간명하고, 선호도가 높아지고, 기억이 용이해진다. 시장을 둘로 나누는 단순한 작업의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병철 대표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명 학술지인 에 브랜드 시너지 전략과 관련한 논문을 실었다. 브랜드와 통찰에 대한 연구 및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통찰의 기술> <브랜드 인사이트> 등의 저서가 있다. 시맨틱 리서치 전문회사 WIT 대표를 맡고 있다.

신병철 WIT 대표 bcshin03@naver.com

  • 신병철 | - (현) 브릿지컨설팅 대표 (Brand Consulting Agency)
    - 숭실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2005~현재)
    - 고려대 경영대/경영대학원,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 외국어대학교 경영대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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