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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ilience 확보 전략

위기 대응: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

이호준 | 78호 (2011년 4월 Issue 1)
 

‘언싱커블(unthinkable)’.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와 충격으로 다가온 현재 일본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다. 아무리 내진 성능이 뛰어나더라도 손실을 피해갈 수 없다는 M9.0 클래스의 초대형 지진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방사능 유출과 여진에 대한 공포도 세계적인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대형사고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넋이 나가거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즉 정신적 공황과 일시적 마비 현상을 겪는다. 하지만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빨리 받아들여 결정적 순간에 신속한 의사결정과 행동에 나선다. 극한 위험상황에서 이들은 왜 남들보다 침착하게 잘 대처했을까? 전문가들은 충격을 받아도 남들보다 빨리 원상태로 돌아오는 회복력을 뜻하는 리질리언스(Resilience)라는 능력이 그들의 생존력을 높였다고 보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진이나 테러로 본사 건물이 무너져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회사가 망연자실하지 않고 바로 다음날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까?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공장 시설과 장비가 온데간데 없이 날아가버린 회사가 문을 닫지 않고 조업중단 없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도 이런 기적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9.11 테러로 맨해튼 본사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는 상상조차 힘든 시련을 당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음날 영업을 재개했다. 수년간의 꾸준한 대피훈련 덕분에 건물 붕괴 직전 2700명의 직원이 신속하게 빠져 나온데다 완벽하게 이중화된 재해복구 시스템 및 대체 사업장(alternate site)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GM 역시 허리케인과 같은 강풍으로 주요 시설과 장비가 파괴되는 일을 겪었다. 하지만 미국 전역의 표준화된 공장설비와 운영 덕분에 탄력성과 잉여 자원을 확보, 중단 없이 제품을 생산했다.
 
이들 기업은 예외 없이 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찍부터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BCP를 통해 갑작스러운 조업 전면 중단과 같은 상황에서도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고, 빠른 속도로 핵심 업무를 복구 및 재개했다. 또 정해진 목표 시간 내에 전반적인 비즈니스를 정상 수준(Business As Usual)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지녔다. BCP는 최악의 상황(worst-case)을 가정하고 비상 시 사업장 및 생산설비 운영, 원자재 조달 방안, 임직원을 포함한 주요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 실질적인 대비책을 포함하고 있어 재난 시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번 대지진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대부분의 주요 일본 기업들은 지진 발생 직후부터 BCP를 가동하고 있다. BCP는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실질적 대응을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적용 범위 또한 특정 사건 사고나 이벤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재해, 재난뿐 아니라 북한 핵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위험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 관련 정세가 불안해지면 기업은 비상 대책반을 가동, 미디어를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국내외 주주, 투자자, 거래처, 임직원 등 주요 이해관계자의 동요를 막는다. 자금과 원부자재의 흐름과 계약관계 등을 재점검해 안전 재고 및 비상 재원도 확보한다.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는 비상사태 시나리오(worst-case scenario)를 마련하고 신상품 출시, 마케팅, 신규사업 계획 등 경영전략도 재검토한다. 실제로 상황이 나빠지면 불요불급한 업무를 최대한 제한하고 부족한 자원을 몇몇 핵심업무 또는 서비스에 집중하는 소위 ‘플랜 B’라는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한다.
 
이처럼 대부분 기업은 위기 시 재무 성과나 지표 하락을 막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주로 세운다. 하지만 가능성은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할 때의 전략은 간과하기 쉽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후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복귀하려면 어떤 점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전략도 부족하다. 특히 사업장 접근 불가, 상당수 임직원의 결근, 전력, 수도, 가스 등 사회 인프라의 공급 제한, IT 시스템 사용 불가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위기 대응 준비 체계가 바로 BCP다. BCP가 없으면 위기 후 경영진은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비상경영조치를 취해도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재난 대형화와 글로벌 경영의 취약성
BCP를 마련하는 게 왜 중요할까. 미 지질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M6.0 이상의 강진은 해마다 150회 정도 발생하고 있다. M5.0∼5.9의 지진도 1300회 이상 보고된다. 2004년 남아시아 지진을 시작으로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 2010년 아이티 및 칠레 지진, 2011년 2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재해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연히 인명 피해와 경제 손실도 늘고 있다.
 
영국 로이드보험과 유명 미래학자 제임스 마틴의 보고서 는 대형화하고 있는 재해, 재난에 매우 취약한 공급망 리스크를 새롭게 주목(A New Kind of Risk)하고 있다. 특히 특정 사건이 비즈니스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쳐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시스템 전체를 위협했던 사태가 대표적이다.
 
때로는 한 지역의 위기가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2010년 4월 9.11 테러 이후 최악의 사태로 일컬어졌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유럽 항공대란이 대표적이다. 화산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애초에는 생각지도 못한 피해가 발생했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던 자동차 제조회사의 가동이 전면 중단되거나 각종 국제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각 기업 임원의 해외출장 및 파견 계획이 재조정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은 신종플루 창궐이나 무장단체 테러처럼 어마어마한 사건은 아니었다. 게다가 유럽의 변방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여러 형태의 직간접 충격으로 발전하면서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커진 비즈니스 환경, 글로벌화의 특징인 상호연결성과 의존성이 맞물려 상대적으로 작은 충격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여러 기업의 비즈니스에 막대한 피해를 미칠 수 있다. 이는 과거 기업이 관리해 오던 전통적 위험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띤다. 특정 재해나 사고에 대한 비상 대응 마련,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보는 시나리오 플래닝 등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동시 다발적이고 무작위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다양한 사고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해당 기업의 평상시 활동에 녹아 있어야만,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유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리질리언스 전략 또한 이런 측면에서 수립 및 실행이 필요하다.
 
세계적 보험전문 금융업체 마시 앤드 맥레넌은 보고서를 통해 아이슬란드 화산재 사태 후 BCP를 보유한 기업이 그렇지 않았던 기업에 비해 효과적으로 위기관리를 하고, 정상 상태로 빠르게 복귀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블룸버그 또한 일반적인 비상 계획인 ‘플랜B’를 넘어 예측 불가능한 요인까지도 고려하는 ‘플랜 V(Volcano 혹은 Victory)’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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